반칙의 허용범위






손에 들린 펜이 잠시 허공에서 멈칫했다. 앞에 앉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은 빨래를 개키던 손을 덩달아 멈추며 동호를 향해 빙글 웃어 보였다. 왜요, 너무 시시해? 순간 돌아오는 물음에 손에 쥐고 있던 펜을 고쳐 꽉 주먹 속에 쥔 동호는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너무 심오해서.”

“심오는 무슨.”

“.....”


동호의 대꾸에 손에 쥐고 있던 티셔츠를 정돈해 내려놓은 여인은 곧 완전히 동호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세월을 품에 안은 채 달달 돌아가는 보일러의 미세한 소음만이 한동안 침묵으로 휩싸인 공간을 채운다. 계절은 잘도 벌써 겨울이었다. 영원히 가지 않을 것 같던 겨울이 순식간에 흐르고 제법 꽃들이 폈다 느꼈을 때 먹었던 꽃구경을 가자는 마음은 이미 꽃이 진 후에야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그리고 한밤에도 가시지 않는 더위와 전투적으로 싸우며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니 계절은 다시 원점이었다.


“40년을 살았는데도 4일 만에 갈라설 수 있는 게 인연이라는 거니 얼마나 시시해.”

“40년의 세월을 거스를 만큼 그 이유가 대단한 거 아니구요?”

“작가 선생이 듣기엔 대단해요? 내가 애 아빠랑 갈라 선 이유가?”

“.....”


숨 쉬는 것만 봐도 지겨워서 헤어졌어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살다 보면 길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한 계절, 그리고 다음 계절을 보내면서 동호는 결국 다시 계절처럼 제자리로 돌아왔다. 보이는 길이 황민현에게 가는 길이었고 그래서 그 길만을 따라 걷다 보니 눈앞에 놓인 다음 길 위에 겨울의 초입 즈음의 얼굴을 하고 있는 제가 있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던 처음과는 달리 이번엔 스스로 그 길 위에 서 있게 된 동호는 그저 제 눈앞에 닥친 상황에 성실이 부딪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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