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여기서, 저 사람이랑, 단 둘이.

도대체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억지였다. 아니야, 괜찮아. 사람들의 틈에 섞이면 들키지 않을 테니까. 아직 후루야 씨는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듯 했다. 통화를 하는 후루야 씨의 모습은 평소와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어딘가 가라앉은 눈빛, 그리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 지금의 그는 낯선 것 투성이였다. 나는 최대한 그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까지 왔으면 괜찮겠지. 적당히 시야가 가려지는 곳으로 오고 나서야 나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나저나 저 사람 진짜 여긴 왜 온 거야. 답답한 마음에 발코니로 나갔던 건데, 오히려 더 답답해져 버렸다.

오랜만에 갑자기 들이닥쳐서는 파티에 가자고 등을 떠민 부모님 덕분에 억지로 끌려온 파티기도 하고, 파티를 휘젓고 다니는 두 사람의 아들인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 크게 이상할 건 없지만, 그래도 이런 곳에서 마주치는 건 영 껄그러웠다. 어느 유명한 대부호가 주최한 파티라던가, 후루야 씨가 무슨 일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건들일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 동안 꽤나 다양한 표정을 봐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을 떠올리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늘 무언가 감추고 있긴 했어도 그것은 그의 직업 때문인 경우가 많았으니까. 이번에도 그런 거라면 지금처럼 거지같은 기분이 좀 나아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답답한 마음에 잘 마시지도 않는 샴페인 잔을 들었다. 어차피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터였으니 조금만 마셔도 괜찮지 않을까. 이 기분이 나아질 수만 있다면.

"실례-"

잔을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목소리만큼 익숙한 체향과 섞인 향수 향이 훅 끼쳤다. 갑작스레 나타난 그는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내 잔을 빼앗았다. 

"아직 너에겐 너무 이르지 않을까. 쿠도 군."

그였다. 평소와 같은 얼굴로 나를 보며 웃는 그의 얼굴이 왜인지 모르게 거북했다. 이미 봐버린 표정 탓일까. 나의 손에서 잔을 빼앗은 그는 그대로 제 입으로 그 잔을 가져갔다. 연미복 차림의 그는 그를 줄곧 봐 온 나에게도 꽤나 근사해보였다. 멀리서 그에게 감탄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 것도 같았다. 짓궂게 웃던 그가 이상하다는 듯 내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없,어요."

"흐음-, 뭐 그렇다면."

그는 생각보다 순순히 물러났다. 이 마저도 평소와 같지 않다고 평가한다면 내가 너무 곡해하는 걸까. 그는 아무렇지 않아보이는데, 정말 내 괜한 생각일까. 내 머리를 멋대로 흐트러놓고 금새 멀어져 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돌렸다.

..정작 문제가 있는 사람은 본인이면서.


* * *


결국 몸이 별로라는 핑계를 대면서 파티를 먼저 빠져나온 나는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말로 부모님을 안심시키고는 재빨리 집으로 향했다. 어쩐지 그 사람이 떠난 그 장소에 있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와 다른 건, 나도 마찬가지인가.

그러게 왜 그런 표정과 목소리를 해서는, 이렇게 신경쓰이게 만드는 거지. 아니, 지금까지 내가 무심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내게 굉장히 많은 것을 배려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아이처럼 굴었다. 그 사람이 단지 받아준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이기적으로 굴었던 것이다. 아마 이런 나를 그 사람은 이미 알고 있던 거겠지.

..그래서 날 못 믿는 건가. 못 믿어서 내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는 걸까. 답답했다. 당장이라도 만나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마저도 내 이기심이란 생각이 들어서 나는 끝내 그 사람에게 연락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 사람은 바쁘니까 직접 얘기를 듣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그 동안 내가 버틸 수 있을까. 겨우 행복해질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는데. 나는 그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제 나, 완전히 질렸겠지 그 사람.

집에 도착하자 누군가 내게 달려와 그대로 나를 끌어안았다. 누군지 확인도 하기 전에 익숙한 체향이 다시금 훅,하고 들어왔다. 단 한 순간도 틈을 보이지 않았던 사람인데 그 사람의 안을 훔쳐본 기분이 들었다.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겨우 손을 들어 그 사람의 등을 쓸어내리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와 나는 한 동안 그렇게 말 없이 서로를 안고 있었다.

그 후로 먼저 입을 연 것은 후루야 씨였다. 언제나처럼.

"미안, 놀랐지."

"별로.. 애인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이 뭐가 그렇게 대수라고요."

"하하.. 그런가?"

"후루야 씨, 제 애인이라는 자각은 있는 거죠?"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그에게 농담을 걸었다. 평소처럼 능글맞게 받아치길 기다렸지만 어째선지 그는 서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지금 서러운 사람이 누군데.. 그 사람을 향한 못된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후루야 씨? 그를 한 번 더 부르고 나서야 그가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똑바로 마주봤다.

"오늘 이상한 거 알아요?"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어영부영 넘어갈 생각하지 말고요. 확실히 해야 겠어. 내가 어린 아이같아서 질렸어요? 다 알고 만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봐. 나한테는 아무 말도 안하고, 갑자기 이렇게 찾아와서는.. 아까도 뭐야 이상한 표정이나 하고 있고.. 처음 듣는 목소리였어, 그건. 나, 놀랐단 말이에요.. 놀랐다고.."

결국 울고 말았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늘 이 사람 앞에선 불가항력이었다. 자꾸만 밀려나오는 울음에 목놓아 울어 버리고 말았다. 아, 진짜 끝이겠다. 멋대로 몰아붙여놓고 눈물까지 보이다니 진짜 최악 아닌가. 그의 반응을 살피고 싶었지만 눈 앞이 뿌옇기만 했다. 속절없이 흘러나오는 눈물만 흘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였다. 그가 아까처럼 나를 제 품으로 끌어 안았다.

"미안해.. 불안하게 만드려는 건 아니었어. 질린 적 없어, 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 나는.. 단지, 너에게 걱정끼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숨기려는 거 아니였어. 정말이야.. 신이치."

"정말.. 숨기려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었어. 정말이야."

그제서야 나는 고개를 들어서 그를 바라봤다. 소매로 눈물을 엉망진창으로 닦아내고 나자 걱정어린 그의 얼굴이 보였다. ..미안해요. 그 말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가 미안해. 품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준 그는 다시금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사랑해, 신이치.

"나도, 나도요."

왜 그런 표정을, 목소리를 하고 있었는지 하나도 물어보지 못했지만 나는 그저 그와 마주 웃어 넘겼다. 알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내 모든 부분을 알리지 않는 것처럼 그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그럼에도 서운했던 것은 변하지 않지만 이렇게 맞춰 걷는 것이 연애라는 것을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아마 앞으로도 같은 일들이 반복될 지 모르겠지만 그 때도 오늘처럼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며 나는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좋아해요, 후루야 씨.

그러니까, 함께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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