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녀석에 대한 소문을 들은 것은 여름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반에. 완전 괴짜라니깐?" 

 다른 학생들이랑 어울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공부만 들이파는 범생이도 아니고. 불량학생도 아닌 그런 녀석. 그런 녀석이야 반에 한두명쯤은 있다. 죠스케는 점점 뜨거워지는 햇살을 노려보다가 다시 머리 모양을 다듬는데 집중했다. 지금은 그런 이상한 녀석 소문보다는 머리를 제대로 간수하는게 급했다. 죠스케가 하는 양을 보고 옆에서 고개를 들이민 오쿠야스가 말을 이었다.

"소문 완전 쫙 났을걸? 3학년에 누구지. 어. 고릴라하고 시비가 붙었는데, 맞는 내내 한 마디도 안했다고."

"그거, 간 부은 녀석 아냐?"

죠스케가 눈썹을 찡그렸다. 고릴라라는 별명을 가진 3학년이라면 이 학교 학생이라면 백이면 백은 설설 피해다닐 무지막지한 녀석이다. 무슨 유도를 했다는데, 힘만 무식하게 쎄선 하급생들을 괴롭히기로 정평이 나 있는 선배. 선배라고 하기도 싫지만. 그런 녀석이랑 시비가 붙다니 운도 없지. 죠스케가 빗을 세워서 조심스레 머리 다듬기를 끝낼즈음 창문 바깥으로 고개를 빼고 있던 오쿠야스가 중얼댔다.

"어. 걔다."

아무래도 오쿠야스가 말하는 '걔'라는 건 그 소문의 주인공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쟤, 맨날 끝나고 나서 미술실에 가거든. 솜씨좋게 머리를 부풀리는데 성공한 죠스케가 거울 앞에서 이래저래 제 모습을 비춰보며 건성으로 대꾸했다. 저런 어떻게든 좋은 화제보다는 이번에 나오는 페르가모의 신상구두라던지, 새로 발매되는 비디오 게임 쪽이 훨씬 더 좋은 화제다. 하지만 뭐 소문이라는 거. 역시 한 번 확인해둘 필요성은 있지 않으려나. 뭔데. 죠스케의 심드렁한 목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쿠야스가 창문 밖을 가리켰다. 밑에.

"그래?"

머리 손질도 끝났겠다 따라 머리를 내민 죠스케의 시선이 밑으로 서서히 향했다. 있다. 상당히 큰 사이즈의 스케치북을 옆구리에 끼고 걸어가고 있는 단정한 교복. 딱히 별다를 거 없어 보이는데. 덩치가 엄청 큰 것 같지도 않고. 죠스케가 눈썹을 까닥였다. 

"그래도 오늘은 얼굴 멀쩡하네."

오늘은? 창틀에 턱을 괸 채 죠스케가 중얼댔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맨날 상처 달고 살더라고. 그때였다. 뭐라 말할 새도 없이 꿰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은 건. 날카롭게 생긴 녹색 눈동자가 자신을 빤히 보고 있었다. 고등학생 1학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중학생만큼 앳된 얼굴에는 불긋하게 부은 상처가 자리잡고 있었다. 얼굴뿐만 아니다. 목 근처에도. 자세히 보려고 고개를 좀 더 빼는 순간 죠스케는 볼 수 있었다. 목소리를 내지 않았는데도 선명하게 보이는 입모양을.

신경 꺼

방금 뭐라하지 않았냐? 오쿠야스의 말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무안이라도 당한 것처럼 얼굴이 홧홧해졌다. 지금 신경 끄라고 한 거야? 아니, 처음부터 신경 쓸 생각은 없었지만. 성격 한 번 더럽네. 이미 멀리 멀어진 작은 뒤통수가 자꾸 눈에 밟혔다. 그 초록색 눈. 다가오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아무 것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눈. 단지 한 번 눈을 마주쳤을 뿐인데도 알 수 있었다. 이때까지 봤던 다른 사람들의 눈과는 다르다. 별 생각없이 개개 풀려있는 눈동자도 아니고, 장난기나 호기심이 깃들어있는 눈동자도 아닌 눈. 자기 주위의 모든 것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선언하기라도 한 것 같은 그런 눈. 

1학년 C반 키시베 로한.

다음 날, 오쿠야스를 통해서 알게된 녀석의 이름은 그랬다. 입학한 지 벌써 반 년이 지났는데도 친구는커녕 같이 어울리는 사람도 없다. 말을 걸면 무시하거나 무뚝뚝하게 날선 반응을 하는 탓에 교우관계도 나빴다. 선배들 앞에서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은 탓에 흠씬 두드려맞은 적도 몇 번 되는 모양인데 한 번도 반항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마 그 때 본 목의 상처도 그것때문이겠지. 고릴라의 악력이라면 그 가느다란 목 따위는 얼마든지 조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왜?

"히가시카타 죠스케. 다음 장 읽어봐라."

화득 고개를 든 죠스케가 눈동자를 황급히 굴렸다. 다음 장이라니. 다음 장? 교과서는 펼쳐놓긴 했지만 언제부터 손도 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에 아까부터 가득 차 있던 건 단조롭게 흘러가는 수업이 아니라 키시베 로한, 그 녀석의 모습이다. 그, 잘 모르겠슴다. 우물쭈물하던 죠스케를 보던 선생이 혀를 찼다. 웃음소리가 드문드문 터져나왔다. 집중해. 히가시카타. 다음, 히로세 코이치. 지명을 받은 코이치가 간결한 대답과 함께 낭랑하게 다음 쪽을 읽어나가는 동안 엉거주춤하게 자리에 앉은 죠스케가 머리를 긁적였다. 말 한 번 섞어보지 못한 그 로한이란 녀석이 왜 이렇게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신상 카탈로그나 비디오 게임이나 그런 것들도 아니고. 말이라도 섞어본 녀석이면 억울하지나 않지.

벽에 기대선 죠스케가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꾹꾹 찍었다. 오쿠야스 녀석. 고등학교에 다니는 형이 데리러 온다더니 먼저 간다는 문자만 남기고 갔다. 코이치는 이미 야마기시 유카코가 데리고 간지 오래다. 같이 가자고 하면 갈 녀석들은 많지만 굳이. 괜히 이상한 화제에 말 얹기도 싫고. 오늘은 아무 말이나 들어줄 기분도 아니고. 

교문을 지나 학교 뒤쪽으로 뻗은 골목길을 돌았을 때쯤에는 기분이 나아졌다. 더이상 로한 생각도 나지 않았고. 이대로 집에 가서 실컷 비디오 게임이나 할까. 생각하고 있을즈음 명백하게 누군가가 뺨을 얻어맏은 듯한 소리가 났다. 발에 채인 스케치북을 반사적으로 집어올리자 드문드문 뜯겨 있다. 억지로 잡아뜯은 꼴이다. 딱히 그림에 별 조예가 없는 자신도 잘 그렸다고 감탄할 정도의 스케치들이었다. 길가에 웅크려 있는 고양이며, 어디인지 모르는 풍경들, 학교의 화단같은 것들. 그런 스케치들이 흉물스레 구겨져 너덜너덜하게 찢겨 있었다. 시선을 들자 죠스케의 눈에 고집스레 입을 다물고 있는 로한과 뜯겨진 스케치북 낱장을 구둣발로 짓이겨 구겨버리며 로한 앞에 다가서는 3학년생이 보였다. 고릴라 패거리가 분명했다. 덩치는 거의 세 배 차이. 위협적으로 을러대는 목소리에 위압감이 어마어마할텐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로한은 서 있었다. 

"비켜주시죠."

이 자리에 끼어도 되나, 망설이고 있었던 죠스케의 귓가로 단정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별 감정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표정만큼은 노골적으로 피곤하단 표정이었다. 한쪽 뺨이 볼썽사납게 부어오른 것만 빼면 전날 보았던 모습과 똑같았다. 여름인데 덥지도 않은지 후크를 목 끝까지 채운 검은 가쿠란이며 한쪽으로 빗어넘긴 머리카락. 그 눈.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꾹 누르는 듯한 눈. 그런 눈을 하고 로한은 순순히 멱살을 잡혔다. 제지하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 모습에 부아가 치밀은 건 당연히 상대였다. 두꺼운 팔이 목을 졸랐다. 죽고 싶어?

"죽이던지."

목을 졸려서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로한은 그렇게 뇌까렸다. 인상을 찌푸린 채로도 시선을 떼지 않는다. 눈 앞의 상대가 한심해 죽겠다는 얼굴로 로한이 입꼬리를 비죽 끌어올렸다. 

"제대로 찔러야 죽어."

한 번 죽어보기라도 한 듯한 말투였다. 완전 또라이 아냐. 이거. 발길질이 로한의 명치를 짓누르기 전에 죠스케가 주먹을 휘둘렀다. 

아. 일났네. 죠스케가 눈썹을 시무룩히 내렸다. 일단 크레이지 다이아몬드로 기세 좋게 쓰러뜨리긴 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분홍색과 하늘색의 그리스 보병을 닮은 형체가 멀뚱히 자신을 내려다봤다. 어차피 로한에게는 보이지 않으니 그렇다쳐도. 조용히 있으려고 했는데... 얼굴에 잔뜩 난감한 표정을 띤 죠스케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 괜찮아?"

일단 구해준 셈이니 감사 인사를 받을 생각은 아니지만 안위라도 살필 생각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죠스케는 총총 멀어져가는 뒤통수를 냅다 붙잡았다. 야. 너.

"뭐?"

말이 나오지 않는다. 고맙다는 인사라던가 뭐 그런 걸 들으려고 잡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크레이지 다이아몬드라면 지금 로한의 상처를 깨끗하게 낫게 할 수 있을 터였다. 지금은 의심할 것 같긴 해도. 찢어진 스케치북을 가득 끌어안은 채 로한이 죠스케를 바라봤다.

"뭔데. 고맙다는 인사 해줘?"

".. 그건 아니고."

"아니면 섹스해줘?"

죠스케의 눈이 크게 뜨이는 걸 로한이 멀뚱히 바라봤다. 고작 그런 것가지고, 같은 말을 써붙여놓은 것 같은 얼굴에 되려 당황한 죠스케가 입을 뻐끔댔다. 방금 섹스라고 한 거야? 정작 말을 뱉은 로한은 여상히 미소를 지었다. 싫으면 말고.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런 감정이 없었던 눈동자에 서서히 색이 어렸다. 마치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마음대로 상대를 쥐고 휘두를 수 있다는 자신만만한 얼굴. 저 눈동자에 홀릴 것만 같다. 죠스케가 고개를 끄덕였을 땐, 이미 로한이 앞서 걸어가는 중이었다. 황급히 로한을 쫓아가면서 죠스케는 얼굴에 피어오르는 열기를 지우려 애썼다. 꼴사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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