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콜과 인퀴지터의 안온한 어느 날.

* 스포 없음.



그런 사람이 있다.

분명 그곳에 존재하지만 한없이 그 기척이 고요하여 소리 없이 서 있는 나무처럼, 기껏해야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전부인 풀잎처럼 차분하고 잠잠한 사람.
이렇게 말해도 사실은 인퀴지터 역시 그런 이는 단 한 사람밖에 보지 못했다. 

그 고요함은 단순히 소리가 없음을 넘어 투명하기까지 해서, 누군가는 그를 유령이나 귀신 같은 것으로 취급했다. 하지만 인퀴지터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인기척이라고는 하나 없는 숲속에서 홀로 앉아 있던 그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순전히 우연으로, 워테이블의 작전 회의를 마치고 복잡해진 머리를 식히기 위해 밖으로 나왔던 인퀴지터가 평소와 다른 산책길을 택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만남이었다. 만남이라기보다는, 정확히 표현하자면 ‘발견’에 그쳤다고 할 수 있다. 문득 고개를 들어 그 방향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그 큼지막하여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모자가 눈에 들어왔을 뿐이기때문이다. 청년과 인퀴지터 사이의 거리는 상당히 떨어져 있었고, 그 ‘발견’은 일방적으로 인퀴지터 쪽에서만 행해졌다. 그리고 인퀴지터가 걸음을 멈추고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본 것은, 단지 뜻밖의 마주침에 놀라서가 아니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 청년의 주위를 몇몇의 동물들이 평화롭게 둘러싸고 있었다. 커다란 모자의 챙은 두껍고 튼튼한 가지처럼 작은 새들의 쉼터가 되었고, 다리 위에는 토끼가 잠을 자듯 편히 누워 있었으며, 새끼 노루는 신기한 듯하지만 경계심 없이 어깨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고 있었다. 청년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나무와 풀과 같았다. 

그 광경을 인퀴지터는 한동안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다가, 잠시 후에 발을 돌려 스카이홀드로 돌아갔다.


그리고 가끔씩 인퀴지터는 그 모습을 보게 됐다. 비슷한 시간대에 비슷한 장소로 가면 현실의 광경 같지 않은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때마다 인퀴지터는 단 한 번도 먼저 다가간 적이 없었다. 처음 그를 발견했을 때보다 거리가 좁혀지는 일은 없었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기만 하다가 먼저 제자리로 돌아간다. 언제나 그 반복이었다. 인퀴지터는 그것을 깰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여기로 오는 것도 슬슬 그만둬야겠다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날은 이제 여기 오는 것도 마지막이다, 라고 마음먹은 날이었다.

챙 모자가 들썩였다.

인퀴지터는 화들짝 놀랐다. 파란색 눈동자가 이쪽을 곧게 향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청년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놀라거나 뜻밖이라거나 불쾌한 듯한 기색을 띄운 건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은 표정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청년은 가만히 인퀴지터를 응시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 이리로.

그는 소리를 내지도 않았고 몸을 움직이지도 않았지만 어쩐지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퀴지터는 고개를 저었다.

- 내가 가면, 모두 달아날 거야.

그는 뭔가 생각하는 것처럼 계속 인퀴지터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한참 후에 조금씩, 아주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나무가 가지를 뻗고 풀이 씨앗을 뿌리는 듯한 고요하고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이윽고 그가 완전히 일어서서 발걸음을 옮길 때까지도 그를 둘러싼 동물들은 여전히 평온해 보였다. 모자 위의 새들은 계속 가지 위에 앉은 것처럼 편히 쉬고 있었고 팔에 안긴 토끼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새끼 노루는 그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따라왔다.

이윽고 청년의 걸음이 완전히 멈췄을 때, 그는 인퀴지터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그러고는 아까 일어섰을 때처럼 천천히, 또한 부드럽게 다시 앉았다. 그를 둘러싼 동물들은 단 한 마리도 떠나지 않았다.

인퀴지터는 최대한 청년의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옆얼굴이 바로 지척에서 보였다. 투명하다고 생각했던 그의 얼굴에는, 엷지만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멀리서만 보았기에, 그리고 커다란 모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표정이었다.

새끼 노루 한 마리가 졸린 듯이 인퀴지터의 무릎 위에 머리를 올려놓았다. 인퀴지터는 괜히 손을 들거나 쓰다듬으려 하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안온한 날이었다.


그때 그때 좋아하는 것을 막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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