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혜성처럼 나타나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든 한 자경단이 있었다.


토끼귀 후드가 달린 검은색 망토에 빨간 운동화, 늘 손에 쥐고 있는 녹색 지팡이. '개성'의 임팩트가 마치 마법사 같다고 하여 '위저드' 라는 이명이 붙었다. 혹자는 토끼 귀와 깡총거리는 움직임을 보고 '보팔래빗'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위저드는 거대한 새 모습의 빌런과 함께 처음으로 나타났고, 그 자리에 있던 히어로들을 제치고 빌런을 '처리'함으로써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그 후로 큼지막한 사건에 몇 번 머리를 들이밀며 경찰과 히어로보다 먼저 빌런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강력한 '개성'을 통해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히어로보다 유능하다, 진짜 히어로는 이래야 한다는 평가가 대다수였다. 그런 말이 많아질수록 경찰은 위저드를 잡기 위해 애를 썼지만, 위저드는 언제나 신출귀몰하게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시가지에서 은발의 남자와 싸운 위저드는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


그의 정체, 나이, 개성, 동기... 모든 것이 수수께끼였다. 특히 그의 개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마법과 관련된 것으로 추측되지만, 올마이트의 개성처럼 7대 불가사의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직까지도 인터넷에선 당신 이야기로 떠들썩하다고.]

"황송하네요."


이즈쿠는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신문을 읽었다. 지정빌런단체 사예팔재회가 어제 정체불명의 빌런에게 습격을 받았다는 기사가 1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즈쿠는 글자를 눈으로 훑다가 멈칫했다. 사진 속의 남자가 낯이 익었던 것이다.


[만약 다시 활동할 생각이라면 언제든지 연락해. 대환영이니까... 너 스스로도 우수한 고객이고, 너한테 자극받는 바보들도 새 고객이 되어준단 말이지?]

"...."

[위저드?]

"아, 네. 감사해요, 기란 씨. 지금... 조금 바쁜 일이 생겨서 이만 끊을게요."

[아, 그래! 몸조심하라고.]


틀림없다. 그 남자였다. 에리를 쫓던 새부리 마스크.


"사예팔재회의 부두목 오버홀."


이즈쿠가 그 남자를 쓰러뜨리고 에리와 도망친 게 바로 며칠 전인데, 그가 속한 조직이 테러를 당했다고? 과연 이게 우연일까? 이즈쿠는 직감이 머리 한구석을 쿡쿡 쑤시는 걸 느꼈다.


**

'너 때문에 죽은 거다.'

'네 힘은 저주받았어.'


아냐, 아냐, 아냐! 에리는 도리질치면서 자신을 쫓아오는 치사키에게서 도망치려고 애썼다. 하지만 도망치려 하면 할수록, 치사키는 더더욱 커져서 에리에게 손을 뻗어왔다.


손이 닿으면 끔찍하게 아프다. 치사키는 에리에게 벌을 주기 위해,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에리를 반성하게 하기 위해 손을 댔다. 그러고 나면 고통스러운 과정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것이다.


손이 에리에게 닿으려는 순간, 에리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눈을 질끈 감고 다가올 고통에 대비했다. 그 순간,


-에리쨩, 이쪽이야.


따스한 온기가 어깨에 닿았다. 온기는 에리를 이끌고 밝은 곳으로 나아갔다. 살며시 눈을 뜨자 제 몸을 감싼 이즈쿠 언니가 보였다.


어둠이 걷히며 치사키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푸른 하늘에는 예쁜 구름이 떠다녔고 땅에는 꽃이 만발했다. 어디선가 맑은 노랫소리가 들렸다.


언니는 에리를 안아들고 꽃밭을 거닐었다.


-괜찮아, 에리쨩. 내가 있어.


-편히 자거라. 자장, 자장...


자장, 자장... 에리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소녀는 이번에야말로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다.


***

이즈쿠는 새근거리며 잠든 에리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에는 '드림' 카드가 쥐어져 있었다. 이즈쿠는 조심스럽게 카드에 입을 맞췄다.


"도와줘서 고마워, 드림."


드림 카드가 반짝 빛나더니 홀연히 이즈쿠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이즈쿠가 한숨을 쉬었다.


이즈쿠는 현재 상황이 그렇게 희망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아버지의 원조에만 기댈 수는 없다. 자립해서 생활비를 벌려면 아르바이트든 뭐든 해야 할 테고, 다시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면 검정고시를 봐서 고졸 학력이라도 얻어야 할 것이다. 이즈쿠에게 집을 선물한 '거물'의 문제도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또....


이즈쿠는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떨쳐냈다. 당장은 에리의 케어에 집중해야 한다. 아직 이 아이는 오버홀의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은 괜찮아. 아직은."


세상이 원래 불공평하다지만, 그녀의 삶은 왜 이다지도 어려운 것일까?



이즈쿠의 꽃길은 아직 저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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