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황태자의 정인]

그와 대화한 이후, 나는 정말로 황제 폐하의 탄신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사실 못했다고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날 밤, 나는 발코니에 오랜 시간 주저앉은 채 움직이지 못했고, 눈을 그대로 다 맞아야 했으니. 다음날부터 몸살이 나 앓아누운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나를 연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한 변명이 사실이 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탄신 연회의 마지막 날이다. 이제 움직일 수 있는 정도로 낫긴 했지만, 오늘도 나는 방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밖에서는 마지막 날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불꽃이 터지고 있었다.


"란, 불꽃을 구경할 수 있도록 창문을 좀 열어줄래?"

"하지만,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으셨는데요..."

"괜찮으니까. 부탁해."

"... 예, 그럼 이불을 꼭 덮고 계세요."


-팡, 파방, 휘요오


창을 열자 불꽃이 터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예쁘다..."

"예, 그러게요."


그렇게 한참을 란과 함께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더 이상 새로운 폭죽이 터지지 않았다.


"... 이제 끝났나 봐요. 문을 닫을게요. 날이 춥네요."


불꽃이 끝난 듯하여 보이자 란이 창을 닫으려는데,


-빰, 따라라라~


아름다운 악기 선율이 들려왔다.


"잠시만, 란. 닫지 말아봐."

"예...?"

"음악 소리가 예뻐서. 듣고 싶네."

"... 정말로요."

"피아노 소리 같지?"

"네, 그런 것 같은데... 이렇게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은 처음 들어봐요. 엄청난 실력자인가 보네요."

"그러게. 정말 근사하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귓가를 맴돌고 그렇게 황제 폐하의 탄신 연회가 막을 내렸다.


.

.

.

.

.


다음 날, 나는 습관처럼 같은 시간에 눈을 떴다. 일찍 눈을 떠봤자 해야 하는 일이 없음에도. 나는 조금 이른 점심을 먹고 란에게 말했다.


"란, 나갈 채비를 하려고 하는데, 좀 도와줄래?"

"예? 어디를 가시려구요?"

"도서관에 가려고. 한동안은 황태자 전하를 기다리느라 못 갔으니까.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지."

"예... 알겠습니다."


알았다고 말하는 란의 목소리가 어딘가 서글프게 들렸다.


나는 란의 도움을 받아 도서관을 향했다. 오랜만에 온 도서관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저녁 때가 되면 방에 갈 테니 먼저 가 있어. 오늘은 방해받지 않고 혼자 책을 읽고 싶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돌아가서 방을 정리하고 있을게요."

"응, 고마워."


그렇게 나는 책 한 권을 뽑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책의 제목은 '카이탄 제국의 초대 황제, 프히머 수베한 카이탄의 일대기'이었다. 나는 카이탄에서 나고 자란 이들보다 아는 게 부족하기에 카이탄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다시 떠오르는 그의 생각에 나는 어서 빨리 생각을 지우고 책에 집중하기 위해 책을 폈다.


모두가 그를 위대한 영웅이라 칭송하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멍청한 사내라 칭하게 될 것이다.


초대 황제. 완벽했을 것 같던 그에게 멍청하다니. 나는 의문을 품으며 다음 장으로 넘겼다.


그는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아주 작은 마을의 한 가정집 앞에 버려진 아이였다.

그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의 이름도, 얼굴도 몰랐다.

그럼에도 그는 행복했다. 양부모님들 밑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기에.

어릴 적 그는 모든 게 느렸다고 한다.

처음으로 걸음마를 시작한 것은 그가 태어난 지 12개월이 되는 때였고,

말을 하기 시작한 건 24개월이 다 되어서였다.

여덟 살이 되어서야 글을 쓸 줄 알았고,

열 살이 될 때까지 이불에 실례를 하는 일이 잦았다.

마을에 사는 그의 또래 친구들은 그런 그를 놀리기 바빴지만,

그의 양부모님은 변함 없는 애정으로 그를 돌보았다.

덕분에 그는 언제나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으며,

그가 열아홉번째 생일을 맞았을 때,

그는 마을의 그 어떤 이보다 출중한 능력, 그리고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은 그의 검 솜씨였는데,

그의 검술은 주변 모든 마을을 통틀어서 가장 강력했고,

강한 것뿐만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했다.

마을의 처녀 중 그를 마음에 품지 않은 이가 없었고,

마을의 청년 중 그를 동경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살던 마을에 한 상인이 도착했다.

그 상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딸의 미모는 가히 경국지색이라 할 수 있었다.

건장한 청년이었던 그 역시 그녀에게 빠져들었고,

그녀도 그의 능력과 미모에 빠져들었다.

그와 그녀는 빠르게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인이란 계속해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자이기에, 곧 그 마을에서 떠나야만 했다.

결국 그는 그녀를 따라 여행길에 올랐다.

여행길은 험난했고, 작은 마을에서만 생활하던 그에게는 너무나도 고생스러웠다.

그는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녀를 볼 때마다 마음을 다잡으며 여행길을 버텼다.

그러나 그의 여행길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도적 떼가 상인과 그 딸을 습격했고,

그가 자리로 다시 돌아갔을 때에는 그녀와 주고받았던 반지만이 쓰러진 마차 앞에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이후 그는 어딘가에 있을 그녀를 찾기 위해 여행을 이어 나갔다.

여행 중 여러 사람을 만났고 그중에는 그와 계속 길을 함께한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여행을 하며 다양한 위험에 처한 이들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모르는 사이, 그들은 유명인이 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그들을 영웅처럼 생각했다.

민심이 좋지 않았던 휜느 제국의 황제는 그들의 인기에 자신의 자리가 위태롭다 생각해 그들을 처단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였고, 결국 휜느 제국은 아주 작은 마을의 한 청년의 손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고, 그들의 성원에 힘입어 그는 카이탄 제국을 건국하고 초대 황제가 된다.

그렇게 그는 그 누구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마음에 품은 이는 찾을 수 없었다.

세상을 자신의 발밑에 두었음에도,

자신이 마음에 품은 한 사람을 곁에 두지 못한 그는,

병으로 앓다 오래 못 가 세상을 떠났다.

제국력 11년, 4월 30일. 히아신스가 하나둘 시들어가는 날이었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를 보내며.


"..."


초대 황제가 사랑하는 이를 잊지 못해 병을 앓다 세상을 떠났다니. 책은 다 읽었고, 창밖으로는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흠, 카이탄 제국의 초대 황제, 프히머 수베한 카이탄의 일대기라... 참 재미 없는 이야기를 읽고 계시는군요."

"느에?"


그때,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고, 나는 깜짝 놀라 이상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금색 머리카락과 푸른빛의 눈동자를 가진 인상이 좋아 보이는 이가 서 있었다.





등장(?)인물 프로필

프히머 수베한 카이탄 (알파)
: 카이탄 제국의 초대 황제.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지만 불의의 사고로 헤어지게 되고, 제국의 건국하기 전 자신과 여행을 함께 하던 이와 혼인하였다. 그러나 끝내 사랑하던 이를 잊지 못하고 상사병으로 앓다 세상을 떠났다.


새로운 챕터에 접어들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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