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떨 때는 이사 온 옆집 형이고, 자주 가는 카페 사장이고, 아니면 지독하게 싸워대는 과일가게 동업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많은 세상에서 노엘 갤러거는 한 번도 노엘 갤러거인 적이 없었다. 그는 어떨 땐 제임스였다가, 루이스였다가, 유진이었다가, 또 어떨 때는 알렉스이기도 했다. 꿈은 매번 달라졌지만 노엘 갤러거가 리암 갤러거의 형제가 아니기는 항상 같더라는 거다. 리암은 거기까지 얘기하고서 북받친 듯 또 한참을 울었다. 그의 곁에 가만히 앉은 노엘은 물 한 잔을 따라 리암에게 내밀었을 뿐 어떤 재촉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저 말을 듣고 며칠 전 있었던 일의 전말을 대충 이해한 듯한 표정을 지었을 뿐이다.

노엘이 건넨 물을 단숨에 들이켠 리암은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숨을 고르다가, 시간이 좀 더 지나서야 간신히 진정된 표정으로 눈물을 그쳤다. 눈가가 시뻘겋게 부어오른 그는 고개를 들어 노엘을 흘끔 쳐다보더니 힘없이 비죽 웃었다. 여전히 울컥울컥 감정이 치받는 것 같긴 한데, 옆에 앉은 노엘이 좀 침착한 게 아니어서 덩달아 진정이 되는 눈치였다.


"형은 나랑 로맨스영화 찍는 상상 해 본 적 있어?"

"석양의 무법자 찍는 상상은 해 본 적 있는데."

"존나 지 같은 상상만 하네…."


담담하게 돌아오는 노엘의 대답에 다시 힘없는 웃음을 터뜨린 리암이 이야기를 마저 털어놓기 시작했다.
노엘은 매번 다른 이름으로 꿈에 나타났지만, 그래도 리암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건 늘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어떨 때는 첫눈에 반했다며 들이대는 옆집 남자애를 밀어내고 또 밀어내다 결국엔 받아주고 마는 아저씨, 또 어떨 때는 손님으로 온 리암에게 번호가 적힌 컵 홀더를 몰래 끼운 음료를 건네주던 카페 사장님, 또 언제는 개 같은 애인한테 시달리다 리암에게 점점 마음이 넘어오던 작곡가, 지지난번은 어떤 이유로 고양이 인간이 됐던 리암과 사랑에 빠지는 수의사 아저씨….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손발이 안 맞아 죽도록 싸우면서도 사업을 파투 낼 생각이 없는 과일가게 동업자였다는 거다. 리암은 행복한 기억을 회상하듯 슬쩍 웃으며 그때 널 부르던 이름이 제임스였다고 말했다.

재수 없게 얽혀 대판 싸우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처럼 둘은 매일을 으르렁댔지만 미운 정이 무섭다던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둘이 키스를 하고 있었댄다. 것도 아주 제대로 싸우느라 자두를 막 집어 던지다 과일 물로 얼룩덜룩해진 서로의 모습을 보고 웃음이 터져서 그만 그렇게 됐다고, 꿈속인데도 그 키스에서는 혀가 아릴 정도로 달큰하게 잘 익은 과일 맛이 났다고.

이 얘기를 하고서 리암은 한 번 더 노엘의 눈치를 봤다. 노엘이 이걸 역겨워하진 않을까 걱정을 하는 낯이었지만 그는 무심한 낯으로 한 차례 웃고 말 뿐이었다. 이어서 툭 덧붙이는 말도 힐난과는 거리가 멀다. 넌 각본 쓰면 안 되겠다, 너무 클리셰잖아. 리암은 클리셰가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하여간에 비난은 아닌 것 같아 굳이 말을 보태지는 않기로 했다. 이게 아니더라도 할 얘기들이 너무 많았다.

꿈속에서 하는 사랑은 자기들이 팔던 과일만큼이나 아주 달큰하더라고 리암은 한참을 웅얼거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가득한 길거리에서 키스해도 전혀 손가락질받는 일이 없었고, 친구들에게 노엘을 내 연인 될 사람이라며 소개해도 경멸하는 사람 하나 없이 축하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눈을 뜨고 잠에서 깨면 너랑 나는 그냥 형 동생이고, 키스할 수 없는데 눈을 감으면 우리는, 그냥 눈만 감으면…. 그래 리암은 형이 자길 걱정하는 줄은 알았다고 했다. 아무리 행복해 봐야 꿈은 꿈일 뿐 현실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너무 잘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엔 정말 이것까지만, 여기까지만 본 다음 이 행복한 개미지옥을 빠져나오려고 마음을 먹었다는 거다. 그런데 얄궂게도 그런 마음을 먹는 순간 뭔가가 달라졌단다.

목이 메는 건지 아니면 타는 건지 마른기침을 두어 차례 내뱉은 리암이 마른세수를 한다. 그걸 본 노엘이 다시 물 한 컵을 따라 건넸지만 리암은 잔 주둥이만 입에 댔을 뿐 도무지 넘길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말들이, 못했던 말들이 꾸역꾸역 흘러나와서 다른 걸 넘길 수 없다고 했다. 동생 갤러거는 결국 컵을 내려놓고 이 질척하고 죄스러운 것들을 마저 토해내기로 한다. 부디 심장이 전부 불타버리기 전에 이야기가 끝날 수 있었으면, 그가 기도했다.

리암이 그 달큰한 일들을 겪고도 매번 눈을 뜰 수 있었던 건 꿈이 어느 시점에 다다르는 순간 모든 게 다 끝나기 때문이었다. 노엘 갤러거의 얼굴과 성격을 가진, 그러나 노엘 갤러거가 아닌 그들과 매번 영화 같은 첫만남을 가진 뒤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뭔가를 하고, 가끔 싸우기도 하고, 그러다 리암이 고백하면서 사랑이 이뤄지는 순간 꿈은 거기서 끝난다. 마치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오듯 눈 앞이 잠깐 까매졌다가 눈을 뜨면 그때는 벼른 날 같은 현실이었다는 거다. 리암은 그 얘기를 하면서 서럽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사랑이 이뤄지는 순간 알았는지도 모르지, 이게 진짜가 아니라는 거 말야. 네가 날 보면서 사랑한다고 속삭이는데 마음 한구석에선 그게 정말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았던 거야. 그래서 나는 내 꿈에서 쫓겨난 거고….

하지만 이번엔 뭔가 이상했다고 한다. 그래 노엘 갤러거가 제임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던 그 꿈 말이다. 리암은 꿈속에서 지독하게 싸웠던 그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제임스는 웃으면서 나도 같은 마음이라고 대답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끝났어야 할 꿈이 끝나지 않았다는 거다.

사랑이 이뤄지는 순간 리암은 어김없이 그게 진짜가 아님을 알게 됐지만 꿈은 끝나지 않았고, 어째저째 둘은 동거까지 하게 됐단다. 근데 더 얄궂은 건 둘이 함께 사는 집이 지금 노엘의 집과 아주 닮아있었다는 사실이다. 노엘의 얼굴을 한 제임스와 현실과 똑같이 생긴 노엘의 집에서 달큰한 사랑을 주고받던 리암은 그즈음부터 꿈과 현실의 구분이 더 버거워졌다고 했다. 노엘을 제임스라고 불러 겁먹게 했던 것도 딱 그 무렵이었다.

그날 점심, 노엘은 리암이 꿈속에서 본 것과 똑같은 집, 똑같은 부엌에 서서 리암을 향해 인사했다. 그 모습이 꿈속의 제임스가 하던 행동과 퍽 닮아있었으니 잠이 덜 깬 리암이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꿈이란 원래가 조악한 구석이 있어 현실이 어설프게 엮여있으니 그 탓인 것 같다며 리암은 웃었다. 하여간에 그의 입에 우리애 혹은 노엘 대신 제임스가 올랐던 건 거의 예견된 사고나 마찬가지였다는 거다.

하지만 그의 몽롱한 꿈결은 순식간에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던 노엘 탓에 산산조각이 났다. 당장에라도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것처럼 겁먹은 노엘의 모습을 보고 리암은 창졸간에 현실을 자각했다고 했다. 심장이 철렁하며 눈앞에서 투명한 유리가 깨지는 것 같았댄다. 눈앞의 그가 제임스가 아니라는 걸 깨달아서, 이게 손잡고 입 맞추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진짜 세상이라는 걸 깨닫는 바람에.

'…미안, 형. 나 잠이 덜 깨서 그랬어.'

'겁줘서 미안해, 노엘. 네 이름 노엘인 거 알아.'

그는 노엘을 달래기 위해 뱉었던 말들이 사실 자기 들으라고 하는 것에 가까웠다고도 했다. 바람 선선하고 햇살 따끈한 양지에서 곤히 자다 차가운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드는데, 현실이 얼음물 같다니 내 생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해봤다고 울먹이면서. 리암은 그 적나라한 현실에 흠뻑 젖은 순간 더는 그런 종류의 꿈은 꾸지 않을 것 같다고 직감했지만, 그 선듯한 예언을 조롱이라도 하듯 그 날 밤 꿈속에서 제임스는 리암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하며 침실로 향했다고 했다. 리암이 그걸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리암은 여기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하기를 꺼렸지만, 그날 꿈속 침실에서 키스보다 더한 진도가 나갔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노엘은 여기에 아무런 말도 얹지 않고 손가락으로 무릎만 톡, 톡 두드렸다.


***


그리고 거기까지 얘기를 털어놓은 리암은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건 훌쩍훌쩍도 아니고 거의 질질에 가까운 통곡이었다. 멀끔했던 얼굴이 흥건히 흐르는 눈물이며 콧물 탓에 아주 난장판이다. 그래 녀석은 저 꼴을 하고서 목이 아프지도 않은지 끊임없이 뭔가를 중얼거렸다. 웅얼웅얼, 잘 알아듣기도 어려운 그 소리에 가까스로 귀를 기울여 들어보면 결국은 다 미안하다는 소리다. 미안해, 잘못했어, 친동생한테 이런 일 당해서 기분 나쁜 거 알아…. 그런 말들을 주워섬기는데도 노엘의 낯은 무덤덤하기만 했다. 그래 사실을 밝히자면 그의 속도 그다지 복잡하지는 않았다. 옅은 파도가 울렁거리는 바다 위에 커다란 배 한 척이 뜬 것마냥 그의 속은 잔잔하기만 하다. 아니 정말은 몇몇 생각할 건덕지가 있긴 했지만 그건 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미 대부분 정리가 된 상태였다. 문제는 뭐부터 말을 꺼낼까 하는 건데…. 혀를 쯔 찬 노엘이 카우치에 풀썩 드러눕듯 기댄 채 말문을 튼다.

"사실 뭐…, 미안할 일이긴 한데."

그렇게 말했더니 녀석은 이제 울지도 못하고 숨을 뚝 그쳤다. 좀 전까지 자기 입으로 잘못했네, 기분 나쁠 거 아네 읊어댔어도 남의 입으로 확인을 받으면 충격이 큰 모양이다. 하지만 친형제, 그것도 어릴 적부터 쭉 함께 커온 가족에게 너를 욕정하노라 듣는 일은… 이건 그래, 미안할 일이 확실하긴 했다. 노엘은 골이 아픈 듯 천장을 바라보며 인상 쓰다 몇 분을 더 생각에 빠진 뒤에야 고개를 내렸다.

"참 이게 근데, 마음이 뜬금없이 생기는 건 아닐 거고."

뭐 이제 와서 이유까지 캐물을 생각은 없으니까 쉬던 숨 마저 쉬어라, 말을 덧붙인 노엘이 옅게 한숨을 푹 내쉬고 마른세수를 했다. 생각이 충분히 정리된 줄 알았는데 막상 말로 꺼내려니 단어며 문장이 무진장 꼬이는 게 아주 좆같았다. 하긴 조용한 곳에서 혼자 몇 시간을 숙고해도 모자랄 사안을 엉엉 우는 놈까지 앞에 두고 고민하려니 쉽지 않을 만도 하다. 하지만 그는 이걸 길게 고민해 봐야 더 탁월한 해결방안이 나올 리가 없을 거라는 사실 역시 직감한다. 당사자가 만족하고 상대도 만족하고, 그걸 보는 사람들까지 만족시킬 만한 끝내주는 명답이 여기에는 없다. 그럼 결국 남은 건 하난데….

카우치에 푹 기댄 자세를 조금 고쳐 더 편하게 드러누운 노엘이 흠, 소리를 내며 고민에 빠진다. 아니 사실 말이 고민이지 생각한 바를 내뱉기 위한 준비나 마찬가지인 행동이었다. 그래 어쨌거나, 이 일에 내 책임이 아주 쬐끔정도는 있을 것 같단 말이지.

"너 이리와서 나한테 키스해 봐."

리암이 내내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퍼뜩 든다. 얼이 나가있는 게 지금 자기가 환청을 들은 게 아닌가 의심하는 표정이었다. 동생의 멍청해진 얼굴을 힐끔 내려다보던 노엘이 혀를 쯔 차며 말을 덧붙인다.

"그 콧물은 좀 닦고. 얼른, 인마."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대답하기엔 지금 들은 말이 굉장히 충격적인 모양이다. 하지만 자리에서 쭈뼛쭈뼛 일어나 코까지 풀고있는 모습을 보자면 이 상황이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리암은 티슈 몇 장을 뽑아 얼굴을 축축하게 적신 눈물이며 콧물을 닦았고, 티슈 네 장이 난장판이 났을 무렵에야 노엘에게 다가왔다. 노엘은 녀석의 뺨에 묻은 티슈 조각을 보고 피식 웃는다. 리암의 뺨에 노엘의 손이 닿은 것도 그것과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리암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가 자기 뺨에 올라온 노엘의 손을 겹쳐잡았다. 사실은 저 뺨에 묻은 휴짓조각을 떼주려던 것뿐이지만 노엘은 굳이 오해를 풀지 않기로 한다. 하얀 거짓말이라든가 뭐라든가….

"지, 진짜? 키스해? 그래도 돼?"

"그새 내 기억이 좆된 게 아니라면 분명히 그래도 된다고 말 한 것 같은데…. 아 씨발, 그만 좀 울어라."

허락을 듣자마자 뚝뚝 떨어지는 저게 정말 눈물이 맞단 말인가. 노엘은 슬슬 사람 몸에서 눈물을 저렇게 많이 뽑아내도 괜찮을 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터져 입원해도 눈물 한방울 안 흘리던 놈이 이제 와서 아주 난리가 났다. 아니 씨발 내가 나가 죽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또 울어?

하지만 더 어이가 없는 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얼굴을 가까이 댄 리암이 키스랍시고 입술만 간신히 갖다대고 자빠진 지금 이 꼬라지였다. 뭐 어쩌려고 이러나 가만 둬보니 끝까지 뭘 더 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입술만 꾹 누른다. 일곱 살짜리 애가 키스하는 시늉을 해도 이것보단 나을 것 같았다. 답답해진 노엘이 인상을 팍 찌푸린 채 녀석의 뒤통수를 턱 붙잡고 밭게 끌어당긴다. 리암의 눈이 존나 평소보다 두 배는 더 커졌다.

노엘은 제법 과감했다. 도통 움직일 생각이 없는 것 같은 녀석의 입을 열고 혀를 섞었다. 혀끝으로 녀석의 입천장을 간지럽히기도 하고, 불현듯 축축한 혓바닥을 마주대 느긋하게 문지르기도 했다. 질척하고 야한 소리가 조용한 거실을 음탕하게 메운다. 도저히 형제간 주고받는 스킨쉽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적나라한 행위였다. 노엘은 그대로 몇십 초간을 더 키스하다가, 맞닿은 리암의 몸이 얕게 벌벌 떨리는 걸 느끼고서 몸을 물렸다. 얇고 축축하고 허연 실이 두 형제의 입술 사이로 길게 늘어지다 툭 끊어진다. 노엘이 이 키스에 대한 소감을 내뱉은 것도 거의 그것과 동시였다. 형 갤러거는 뭔가를 깊게 고민하듯 미간 사이를 옅게 찡그린 채다.

"음."

"……."

"사실 그렇게 좋은 건 아닌데."

다소 느리게 뱉어진 노엘의 감상을 듣고 리암은 말 그대로 심장이 쿵 내려앉은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그런 표정이 어딨단 말인가 물어도 어쩔 수가 없다. 녀석은 딱 그런 얼굴이었다. 하얗게 질려서 시선 둘 데를 찾지도 못하고, 어울리지 않게 벌벌 떨면서…. 하지만 원래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 오해가 없거든. 노엘은 몇 초간 좀 전의 기억을 되새겨본 뒤, 완전히 확신이 선 듯한 표정으로 나머지 말을 했다.

"근데 그렇게 기분 드럽지도 않거든."

그 순간, 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리암이 고개를 팍 쳐들었다. 눈물로 축축하게 젖은 눈동자 속에서 대단한 혼란이 읽힌다. 그래 지금 자기 형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을 게 분명했다. 노엘은 그의 동생이 더 깊은 고민에 빠지기 전에 나머지 말을 털어놓기로 한다.

"난 내 동생을 살려야겠고."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힘든 길 가지 말자는 뜻이지, 이 가엾은 새끼야. 내가 방금 친동생이랑 존나 키스했는데 기분이 별로 안 드러웠다니까?"

"진짜 씨발 하나도 모르겠단 말야……."

이쯤 했으면 알아들을 법도 하지 않나? 노엘이 답답한 듯 작게 혀를 찼다. 알아들었는데 못 믿어서 이러는 건지, 진짜 몰라서 이러는 건지 의아해 가만 살펴보니 진짜 모르는 표정이긴 했다. 하기야 상대가 상대니 어지간히 절망적인 결말만 줄줄이 꿰고 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노엘은 울상인 녀석이 좀 더 가엾게 느껴졌다. 그리고 화도 조금 난다. 세상에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새끼가 왜 하필 가장 어려운 길만 골라 앓고 있었단 말인가? 미련하다. 뭐라 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련하다. 하지만 노엘은 저 미련마저 함함하도록 서른 몇 해를 살아온 인물이기도 했다.

"난 너랑 이러는 거 나쁘지 않다고."

"거짓말…."

"내가 이 마당에 미쳤다고 구라나 치고 앉았겠냐?"

노엘이 기가 차다는 듯 혀를 차자 리암은 좀 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제 저 눈에 떠오른 감정은 의문이었다.

"끔찍하게 느껴야 하잖아."

"뭐?"

"징그럽다고, 다신 보지도 말자고 해야 하는 거잖아."

얼씨구. 노엘이 이걸 입으로 소리 내 말했다는 걸 알아챈 건 리암의 어깨가 작게 움찔한 걸 본 탓이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한 줄 알았는데, 하긴 어지간히 기가 차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걸 왜 네가 정해? 너 내가 징그럽냐? 나랑 키스했더니 토악질할 것 같고 그래?"

"그, 그게 아니라…!"

"근데 지도 못 하는 걸 왜 나한텐 하라고 지랄이야? 너 나한테 더럽다는 소리 듣고 싶어? 당장 꺼져서 두 번 다신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뭐 그딴소리가 진짜 듣고 싶으냐고."

"……."

"왜 바라지도 않는 말을 억지로 들으려고 해, 새끼야. 네가 죄책감이나 뭐 그런 걸 느끼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내 입을 빌어서 자해하려고 들지는 마라. 어림도 없으니까."

리암의 뺨에 붙어있던 휴짓조각을 마저 떼어내는 손길은 퍽 다정했지만, 그가 입으로 내뱉는 말들은 단호하다 못해 냉정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노엘 갤러거는 그의 동생이 채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긴 말들을 읊었다.

먼저, 노엘 갤러거는 동생을 사랑한다. 안타깝게도 그게 동생이 하는 사랑과 성격이 좀 다르긴 했어도 그 크기만큼은 뒤지지 않을 것임을 장담했다. 네게 성애를 느낀다며 고백한 동생에게 경멸과 분노 대신 키스를 돌려준 것도 그래서였다. 역겹냐고? 그의 막냇동생은 암담한 결말밖에 보이지 않을 사랑을 하며 죽어가고 있었는데, 글쎄 기가 막히게도 그 상대가 노엘 갤러거라고 한다. 그 순간 노엘이 느낀 감정은 역함도 거북함도 아닌 안도감이었다.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었다. 노엘은 자기 목숨만큼 아끼는 동생을 살리고 싶었고, 마침 녀석이 마음 준 상대가 노엘 갤러거 자신인 이상 방법은 우스울 정도로 간단했으니까. 동생을 저렇게 시들시들 말라 죽게 둘 바에야 차라리 녀석이 원하는 걸 주면 되는 거 아닌가? 내가 널 사랑하지 않아서, 필요한 것보다 덜 사랑해줘서라는 좆같은 이유로 널 잃고 싶지 않거든. 노엘은 리암의 꿈 이야기가 중후반 즈음을 지날 무렵 이미 이런 결론을 내린 뒤였다고 말했다.

"감히, 씨발, 여기엔 감히라는 말을 해야지. 세상에 나보다 널 더 사랑하는 사람은 끽해야 한 명뿐일 텐데… 씨발, 어딜 감히."

여기까지 말을 들은 리암은 내내 흘리던 눈물을 멈추고 묘한 것 대하는 듯한 표정으로 노엘을 쳐다봤다. 태연하다 못해 심드렁하게 저런 말들을 늘어놓는 노엘이,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로 도덕이며 윤리를 싸그리 무시한 결론을 내놓는 둘째 형의 말하는 낯은 아주 서슬 퍼렇기 짝이 없었다. 리암은 그가 하는 말들이 아주 어렵고, 사실 조금 무서운 것 같다고도 생각했지만 그게 싫진 않았다. 아니 솔직히 온 몸이 벌벌 떨릴 정도로 기쁘다. 그래 저게 형의 동정을 먹고 자란 결말이어도 리암은 상관이 없었다. 리암 갤러거는 어울리지 않게 꿈속으로 도망칠 만큼 절박했고, 목이 말랐고, 모든 걸 다 내려놓은 채 형 앞에서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아주 간절한 마음이었으니까.

그런데 형은 네가 바라는 걸 그냥 주겠다고 한다. 어릴 적 자기 몫의 과자를 양보하듯, 좀 더 커서는 하나 남은 맥주 캔을 대수롭지 않게 툭 양보하듯 정말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이번엔 자기를 주겠다고 말한다. 이걸 돌려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고백은 네가 눈물 콧물 질질 짜면서 해준 꿈 얘기로 대충 때우기로 하고…."

"시, 싫어."

킁, 훌쩍. 리암은 코 먹는 소리를 내며 한참 만에 대거리를 했다.

"나중에 다시 할 거야…."

"모르는 모양인데, 세상에 영화 같은 시작만 있는 건 아니란다."

그리고…, 뭔가 더 말을 하려던 노엘은 뒤늦게 진이 빠진 듯 아주 피곤한 기색으로 카우치에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한참 전부터 내내 운 건 리암인데 왜 이쪽이 이렇게 지치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제는 잔소리고 뭐고 질펀하게 잠이나 자고 싶은 심정이다. 비록 좀 아까 늘어지도록 낮잠을 자고 나왔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먹은 거라곤 초코비스켓 한 조각 뿐이라지만 그것들을 다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피곤했다. 하지만 끝끝내 노엘의 신경줄 한 가닥을 자극하는 것이…. 그래 쟤도 아침나절부터 뭐 먹은 게 없을 텐데, 그래놓고 존나 펑펑 울었으니 속이 말이 아닐 텐데 하는 자잘하면서도 당연한 걱정들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하던 노엘은 뒤늦게 밀려오는 짜증의 파도를 느꼈다. 아니 씨발, 나는 시작부터 끝까지 쟤 걱정만 하고 자빠졌네. 테이블 위에 있던 지갑을 리암에게 냅다 집어던진 것도 다 그 탓이었다. 야, 저녁 아무거나 좀 시켜. 먹고 마저 울든 어쩌든 하자고.

하여간에 갤러거들은 그날 저녁을 응급실에서 마무리해야 했다. 저녁을 먹고 기분이 좋아진 노엘이 오늘부터 같이 자보는 건 어떻겠냐고 묻자, 자기가 아직 꿈속에 있는 게 아닌가 돌연 의심에 빠진 리암이 벽에 머리를 세게 갖다박았기 때문이다. 그걸 본 노엘은 이 씨발 미친놈이 가지가지 한다며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드렸지만 한 편으론 사실은 그럴 만하긴 하다는 생각을 했다.


***


"근데 있잖아."

노엘과 한 베개를 베고 누운 리암이 눈을 감은 채 넌지시 말을 걸었다. 응급실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고 거의 녹초가 된 몸으로 돌아온 두 형제는 약속대로 같은 방 같은 침대에 누워 잠들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불이 모조리 꺼진 새벽 두 시의 방안은 지독할 정도로 깜깜했지만, 노력해서 안력을 돋우면 바로 옆에 누운 사람 정도는 못 볼 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불을 끄고 침대에 눕자마자 뚫어져라 시선을 보내는 리암을 노엘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단 뜻이었다. 그래 녀석은 그대로 쳐다만 보다가 잠드나 싶더니 기어코 입을 열었다. 노엘은 저걸 대답해, 말아 하고 몇 초를 고민하다 결국 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은 참이고…, 아 씨발. 이제 진짜 존 레논이 와도 눈은 못 뜰 것 같은데. 그래도 첫날부터 섹스하자고 덤비지 않아서 얼마나 고마운 일이란 말인가. 아직 거기까지는 결심이 덜 섰다.

"뭐."

"형보다 날 더 사랑하는 사람 한 명… 그거 누군데?"

아니 씨발, 겨우 그런 거 물어보려고 엉아의 숙면을 방해한단 말이냐? 근친을 저지르는 불효자식이 되기로 확인 도장까지 다 찍은 마당에 이제와서 왜 저게 궁금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노엘은 그냥 사실을 알려주고 얼른 퍼질러 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하룻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진짜 예전에 약 빨고 사흘 내내 파티를 했을 때만큼 피곤하다.

"우리 엄마, 멍청아."

"켁."

"왜. 갑자기 명치 위쪽이 살금살금 아프고 그러냐?"

"어, 어떻게 알았어? 의사야?"

"그게 바로 양심이라는 거란다, 이 새끼야. 네가 나한테서 5파운드씩 뜯어갈 적에 진작 느꼈어야 했을 물건이지."

궁금증 풀렸으면 이제 자라, 퉁명스레 대꾸한 노엘이 더 이상 대화는 않겠다는 듯 눈을 감고 입을 닫았다. 뭐 이래서야 연인이라기보단 어릴 적 한 방을 쓰던 형제에 더 가까운 모양새지만, 노엘은 그래도 뭐가 바뀌긴 바뀌었다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면 이불 아래 놓인 손에 슬그머니 와 닿는 녀석의 손을 말없이 잡아주는 노엘 갤러거 같은 거 말야. 답잖게 긴장이라도 했는지 식은땀이 살짝 밴 녀석의 두툼한 손에 슬그머니 깍지를 끼면서 노엘은 계속 생각을 했다. 리암에게 채 말로 내뱉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생각한다.

달큰하지 않을 것이다. 멀쩡히 살아계신 어머니와 진작 형제의 믿음을 저버린 하늘 앞에 맹세컨대, 절대 이 관계가 순탄하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정상적인 관계라면 겪을 일 없을 오해와 싸움, 눈물이 봄 끝 무렵 떨어진 꽃처럼 형제의 앞날에 깔렸다. 절뚝절뚝 걸음을 절어가며 그것들을 밟고 지나가면 발에는 필히 시뻘건 꽃물이 들 테고 지나온 자리는 지저분하다 못해 처참하리라. 하지만 그때 가서 그걸 누구 탓을 할 것인가? 시름시름 말라 죽어가는 동생을 살리려고 했던 과거의 노엘 갤러거를?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노엘은 자기가 내린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형, 자?"

"아마 그럴걸."

"네 성격 진짜 지랄맞은 거 알지?"

알지, 새끼야. 네 취향 존나 이상해. 노엘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진 않는다. 너무 졸려서 우는 놈 달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대답 대신 눈만 좀 더 질끈 감기로 했다.

"……있잖아."

"…."

"미안해."

미안해. 고마워, 미안…. 리암은 대답 없는 노엘의 뺨에 대고 한참 동안이나 저런 말들을 중얼거리다 어느 순간 잠이 든 듯 조용해졌다. 한결같이 뜬금없는 놈이다. 하지만 저게 뭐에 대한 사과인지 굳이 물어야 할 만큼 노엘은 둔하지 않았다. 리암은 노엘이 주는 사랑의 종류가 자신이 가진 것과 같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노엘이 그와 같이 어떤 선을 넘기로 했다는 걸, 그리고 그 선 너머가 결코 잘 닦인 포장길은 아닌 것도 잘 알겠지.

양심은 형제가 아주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동안에도 불쑥불쑥 둘을 후벼 팔 거다. 그건 아주 죽을 만큼 아프지는 않아도 손가락 끝을 쿡쿡 찌르는 정도로는 따가울 게 분명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는 걸 노엘은 시작부터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리암 역시 이걸 알았으니 수 차례 사과를 주워섬겼겠지. 두 형제는 그 모든 불안을 보전한 채 한 침대에 누운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남은 삶에 꼭 한 가지 말머리를 붙여야 한다면 이만한 문자가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 갤러거는 형 갤러거를 사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엘 갤러거는 동생을 살려내길 선택했다. 그래 여태껏 노엘이 연애 감정을 갖고 그를 대한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걔와 입 맞춘 순간 느낀 건 역겨움이 아닌 모호함과 의문 뿐이었으니, 어쩌면 내게도 친형제를 사랑하게 되는 인자 같은 게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노엘은 생각한다. 이제 와서 되새겨 봐야 달라질 것은 없지만 어쨌거나 그런 가능성의 곁가지가 뻗어있기는 하다는 거였다.

지금 사방에 산재한 혼돈과 모호함 사이에서 단 하나 뚜렷한 건, 이 앞으로 후회가 끼어들 틈은 없어야만 한다는 하나의 정언명령이다. 자기연민과 혐오에 함몰되어 죽기 싫거든 그들은 계속해나가야 했다. 목적지가 어디가 될지도 모르고 떠도는 앞길에는 딱 두 사람 몫의 씨발할 혼란이 기다리고 앉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거기까지 생각할 단계는 또 아니지, 졸음으로 희끄무레하게 흐려지는 생각글자들을 죄 흩트린 노엘이 마침내 사고하기를 멈췄다. 진짜 많이 피곤해서 이 이상은 뇌세포를 쥐어짤 수 없었다.

이내 머릿속을 정신없이 헤집어놓던 문자들이 잠기운에 못이겨 하나 둘 사그라들고, 노엘의 머릿속에는 다음과 같은 여섯 글자가 마지막으로 떠올랐다 사라진다. 

나중에, 천천히.

***


그리고 다음 날, 노엘은 리암에게 몸통을 꽉 졸려 호흡곤란이 오는 바람에 평소보다 세 시간은 일찍 아침을 맞이해야 했다. 아니 사실 이건 아침도 아니었다. 아직 어스름하게 해도 덜 뜬 걸 보니 이건 영락없는 새벽녘이다. 무슨 밧줄 같은 거에 꽉 묶여 숨 못 쉬는 꿈을 꾸다 눈을 뜬 노엘 갤러거가 가장 먼저 목격한 게 완전 반짝거리는 눈을 하고 자기 형을 끌어안은 리암 갤러거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이 뻔한 사실이고…. 

졸린 데다 숨까지 차 무진장 괴로웠던 노엘은 이 새낄 무진장 줘패놓을까 생각했지만, 좀 더 선명해진 시야로 본 녀석의 눈가가 시뻘겋게 부어올라 있는 걸 보고서 쥐었던 주먹을 내려놓았다. 일어나서 또 한바탕 훌쩍거린 모양이지. 리암이 노엘의 동그란 머리통에 뺨을 부빌 적에 와닿은 축축한 숨 역시 저 짐작에 신빙성을 실어줬다. 지금 노엘이 자기 뺨에 막 부벼지는 입술을 가만 냅두는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꿈이랑 느낌이 달라. 존나 훨씬 좋아…."

"그럼 씨발아, 짭이랑 진짜가 같겠냐?"

"알지. 네가 진짜야, 네가."

숨 막히고, 뺨은 축축하고 눈꺼풀까지 가물가물한데 그래도 대답하는 말에는 노엘의 성질이 날것 그대로 묻어있었다. 이제 와 말이지만 쟤 꿈속의 그 무수한 가짜 노엘 갤러거랑 비교당하는 게 좀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거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슬그머니 열이 올라 뭘 비교하고 앉았냐며 구박을 좀 하려다, 그래도 이쪽이 훨씬 좋다는 녀석의 말에 김이 빠져 그냥 눈만 감고 말았다. 피곤하고 졸려서 입 안이 무진장 달았다. 아, 딱 세 시간만 더 자고 싶다. 그러나 노엘은 소원처럼 그 길 그대로 까무룩 기절할 수가 없었다. 문득 떠오른 생각과 함께 뭔가를 확인할 필요를 느낀 탓이다. 그거, 애초에 이 모든 사단이 일어난 원인 말이야.

"너 이번에도 꿈꿨냐?"

"그…, 아니."

"어째 좀 서운해하는 걸로 들리는데."

"아니, 그래도 작별 인사는 하는 게 맞지 싶어서…."

"작별 인사는 무슨. 이제 나한테 집중해, 새꺄."

"헉."

하여간 얘도 웃긴 놈이다. 침대 바깥 방향을 향해 돌아누운 노엘은 자기 등 뒤, 아니 등보다는 조금 더 아래 뒷허벅지즈음 느껴지는 단단한 뭔가를 알아채고 픽 웃었다. 방금 이 대화에 이런 반응을 할 만한 건덕지가 어디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게 기분이 더럽진 않아서 관대히 모른 척을 해주기로 한다. 다행히 노엘 갤러거는 모르는 척하는 것에 이골이 난 편이었으므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근데 진짜 기가 찬 일이긴 하지. 발기한 친동생 좆이 몸에 닿았는데 기분이 더럽지가 않다니, 그럼 이대로 존나 섹스해도 괜찮은 거 아냐? 이런 거 보면 확실히 나도 어디 맛 간 건 맞지 싶은데…. 무겁게 떨어지는 눈꺼풀을 반갑게 받아들이며 노엘 갤러거는 그런 생각들을 한다. 하여간에 두 형제가 진짜 섹스를 한 건 이날로부터 이 주가 지난 뒤의 일이었다.

***

세상 어딘가에서 끔찍한 근친 커플이 한 쌍 더 탄생했든가 말든가, 어쨌든 지구는 돌았고 아침이 밝았으며 갤러거 형제에게는 스케쥴이 생겼다. 새 싱글 프로모션을 위한 라디오 인터뷰 건이었는데, 원래는 노엘만 나가기로 돼 있던 걸 리암이 따라붙은 거였다. 물론 이걸 낭패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방송국 관계자들은 두 갤러거가 한꺼번에 나온다는 소식에 반색했고 노엘도 말을 덜 할 수 있게 됐다며 은근히 반기는 눈치였으니까.

늦은 아침까지 든든히 챙겨 먹은 형제 둘은 나갈 준비를 하면서도 많은 대화를 했다. 개중 노엘이 특별히 신경 쓴 건 오늘 인터뷰 중에 뭔가 수상한 건덕지를 흘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의를 주는 일이었는데, 리암은 거기다 암만 그래도 내가 씨발 남들 다 듣는 앞에서 근친을 고백할 정도로 머리가 비진 않았다며 대거리를 했다. 물론 노엘은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너 예전에도 무대 위에서 나랑 섹스했다고 막 떠들었잖아. 그랬더니 리암도 뒤늦게 그때 일이 생각났는지 얼굴이 시뻘겠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때는 자기도 지 형을 좋아하는 줄을 모르고 있었댄다. 모르면 용감하다더니….

근데 그럼 언제 자각한 건데? 뭐 때문에 깨달음을 얻으신 거냐고. 노엘은 저 말을 듣고서 바로 이런 의문들을 떠올렸지만 그 무수한 물음표를 입 밖에 내는 섣부른 짓은 하지 않는다. 이제 스케쥴까진 한 시간 남짓 남았고, 거기까지 이동하는 데 걸릴 시간은 대략 오십 분인 데다, 건물 입구에서 스튜디오까지 가는 데에도 추가로 오 분이 걸릴 예정이라는 걸 빤히 알았으니까. 저 얘길 들으려면 한 시간이 다 뭐냐, 밤을 새워도 모자랄 마당에 지금 시작을 끊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일은 아무 일정도 없으니까 갔다 와서 물어봐야지.

노엘은 서둘러 현관으로 나서며 한참 동안 거울 앞에 서 있는 중인 동생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야, 머리 그만 만지고 나가자. 그만하면 충분히 잘생겼다."

"나 잘생겼어?"

"이 뻔뻔한…, 두 번은 말 못 하지."

거울을 족히 이십 분은 봤으면서도 녀석은 아직 미련이 남은 표정이었다. 최근에 내내 잠만 자느라 머리를 못 다듬었다나 어쨌다나(넌 이마빡에 존나 큰 혹을 달고 걱정하는 게 머리털이냐?), 우울하게 중얼거리는 리암을 가만 버려뒀다간 오늘이 다 가도록 집 밖에 못 나갈 것 같아 노엘은 쉽고 빠른 방법으로 동생을 달래기로 한다.

"손 참 많이 간다."

노엘은 리암의 뺨을 잡고 쪽, 가볍게 키스했다. 그러면서도 기분이 썩 묘한 것이 대체 이게 뭔가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 재밌는 건 리암도 비슷한 걸 떠올린 듯한 표정이라는 거다. 그래 아직 감촉이 남은 듯한 입술을 건드려보며 리암은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길 잃은 어린애 표정 같기도 하고, 혹은 자기가 저지른 짓을 두려워하는 다 큰 어른 같은 얼굴을 닮은 것도 같고. 막막하다, 녀석의 지금 표정을 한마디로 정리해보자면 그런 표현이 적당할 것만 같았다. 리암은 그 표정에 지독하게 잘 어울리는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노엘에게 묻는다. 형, 있잖아….

"우리 이제 어떡해?"

"어떡하긴 뭘 어떡해? 일 나가야지."

반면에 형 갤러거의 반응은 태연하기만 하다. 건조한 건지 여상한 건지, 하여간에 눈물 샐 틈은 없어 보였다. 하기야 이제 스케쥴까지 진짜 딱 한 시간이 남았으니 달리 틀린 말한 것도 아니고, 또 노엘은 지각을 반기는 인사가 아니었다. 내일 지구가 쪼개져도 스케쥴은 나가야 할 마당에 것보다 사소한 일로 늦을 수야 없는 일이지. 현관 옆 옷걸이에서 겉옷을 챙겨든 노엘이 리암을 돌아보며 채근했다.

"가자, 늦겠다."

그리고는 바닥에 널브러진 우산까지 꼼꼼히 챙긴 뒤 먼저 밖으로 나선다. 노엘은 뒤따라 나온 리암이 현관문을 잠그는 소리를 들으면서 주욱 앞으로 걸었다. 굳이 뒤를 돌아보지는 않는다. 이대로 몇 초만 있으면 알아서 잘 따라붙어 재잘거릴 놈을 잘 아니까.

서두르는 걸음으로 나선 런던 거리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고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천인공노할 관계에 분노해 땅이 갈라지지도, 하늘이 내려앉지도, 템즈강 물이 죄 말라버리지도 않았다는 거다. 그렇다고 또 희망찬 햇빛이 내리쬐느냐 하면 것도 아니고… 그냥 맨날 보는 똑같은 풍경이었다. 얼마 전에 웬 취객이 들이박아 금이 간 집 앞 보도블럭 한 칸 반마저 그대로다. 

노엘은 이 모든 게 참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세웠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니까.



完.

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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