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이런 게 보고 싶었어.










어슴푸른 새벽,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깬 지민이가 눈을 비비적 거렸어. 부비면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까, 이제 막 들어와서 겉옷을 벗기 시작하는 익숙한 뒷모습이 보이는 거지. 푸른빛에 아른아른 거리는. 잠이 달아나지 않아 무거운 눈꺼풀을 반복해서 감았다 뜨기만 하던 지민이가 적막이 깔린 방 안에서 조용히 입술을 벌렸어. 그리고 나지막이 불렀어.


"...태형아."
"...어? 깼어?"
"응......"
"아이고."


놀라서 움찔거리는 등. 바로 홱 돌아보는 얼굴. 깨워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자박자박 다가오는 태형이에게 지민이는 괜찮다는 의미로 배시시 웃어주겠지. 멀리서 봐도 아방하고 귀엽게. 너무 귀여워서 똑같이 미소가 번져버린 태형이가 지민이 눈높이에 맞춰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이고, 보드라운 뺨을 잡아올려서 제 입술을 문댈 것 같다. 태형이 목으로 팔을 뻗은 지민이가 목에 손을 감으면, 지민이 허리랑 엉덩이를 안정적으로 받쳐서 들어 올릴 것 같고. 그냥 안아 들고 싶은 태형이랑 안기고 싶은 지민이라 별말 없이 그렇게 서 있을 것 같다. 가끔 태형이가 나 열심히 일하고 왔으니 쓰다듬어주세요, 하고 어리광 부리는 것처럼 지민이 목에 얼굴을 부빌 것 같고. 가만가만 태형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지민이는 태형이 이름을 작게 부르겠지. 태형아, 태형아. 노래하듯이. 그러면 태형이는 응. 응, 지민아. 응. 대답해줄 것 같고.

평소에도 지민이가 태형이 이름 자주 불렀으면. 뭘 부탁하려고 부를 때도 있고, 그냥 별 의미 없이 이름을 부를 때도 있고. 가끔은 이름 먼저 부르고 뭘 말할지 생각할 때도 있고. 근데 되게 신기한 게 태형이는 다 구분했으면. 지민이가 저한테 뭘 부탁하려고 부르는구나, 그냥 이름 불러보고 싶었구나, 이번에는 뭐가 말하고 싶길래 저를 불렀을까. 세 가지 경우를 다 구분하는 거야. 본인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로. 언젠가 지민이가 태형이 소맷자락을 잡아당기면서 물어본 적이 있었음. 내가 너 이름 부를 때 뭐 때문에 부르는지 구분돼? 맑은 눈망울로 빼꼼 올려다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키우던 태형이는 지민이 이마에 제 이마를 문대면서 태연하게 말했겠지. 응, 당연히 구분 돼지.


"태형아."
"응."
"태형아~"
"그래."
"태형아."
"어? 뭐 물어보고 싶은 거 있나?"
"...진짜 신기하네."
"흠, 또 뭐가 신기하실까."
"그냥... 뭐 물어보려던 거 어떻게 알았나 해서. 방금까지는 응, 응 하고 말았잖아."
"지금은 물어보려고 부른 거 같았으니까."
"그럼 방금까지는?"
"그냥 내 이름 부르고 싶었던 것 같은데."
"...신기하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지."
"신기해?"
"응. 히히. 기분 좋다."
"웃어주니까 나도 좋네."


아무래도 붙어있는 시간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읽히는 것 같다고 유추해 봄. 가끔은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쳐다보기만 하는 데도 지민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 읽히는 태형이라 신기하긴 해. 그게 뭐라고 괜시리 설레어지기도 하고. 그만큼 서로에게 익숙해졌다는 것 같아서. 익숙해졌다는 말이 얼마나 간지러워. 태형이 가슴 부근에 뺨을 문댄 지민이가 조곤조곤 웃으면, 매끈한 이마 위로 입술을 문대는 태형이도 얼굴 무너지게 웃고 있겠지. 네가 너무 좋아서.










여느 때처럼 밤을 새던 중 갑자기 며칠 전에 동생이랑 얘기했던 게 떠올라서 적어보았어요. 평소에 (의미없이)동생 이름을 자주 부르는데, 동생이 그냥 이름 불러보고 싶은 거랑 아닌 거랑 딱 구분된다고 해서 신기했던 일화가 있었습니다. 연인들이 저렇게 구분한다고 가정하면 상당히 로맨틱한 상황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짤막하게 ㅎㅎ 적어보았습니다ㅎ 물론 동생이랑 뽑뿨하지는 않았어요(강조)



VM / KM ※ 트위터 @SUHWA_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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