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소중히 간직했던 것들의 상실이라던가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불행 같은… 그리고 하예리에게 있어서는 최근에 생긴 전담 트레이너의 존재까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자신을 컨트롤해오는 현경의 존재가 싫진 않았지만 어딘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평소에도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면서 걸어요?”

 “현경 씨. 저 지금 일하고 있잖아요.”

 현경의 질문에 하예리가 날카롭게 받아쳤다. 어느 부분까지 괜찮고, 어느 부분부터 괜찮지 않은지 아직 명확한 선을 긋지 못해 생기는 일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다행인 것은, 현경의 성격이 무심하다는 것에 있었다. 하예리가 날카롭게 반응해도, 살갑게 대해도, 어떤 온도로 있든 신경 쓰지 않았다. 본인이 선을 넘은 것 같다고 생각되면 그 즉시 뒤로 빠졌고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게 행동했다. 신경 쓰고 있는 사람은 하예리 뿐이었다.

 “우리 회사 애들 광고잖아요. 이런 거 다 체크해요. 사진이든 뭐든… 이미 결과물이긴 하지만 나중 상황에 반복되면 안 되는 거 아니면 괜찮은 거 이런 건 기억해뒀다가 피드백해 주거든요. 지금 우리 애들이 하는 거 아니더라도 언제 맡게 될지 알 수 없기도 하고.”

 괜히 신경질적인 말투였나, 하는 생각에 주절주절 설명하던 하예리가 걸음을 멈췄다. 한 화장품 광고가 붙어있는 유리 앞이었다. 광고 속 남자는 매끈한 몸을 드러내고 수줍은 듯 웃고 있었다. 잠시 그 앞에서 꼼꼼히 광고를 살펴보던 하예리가 입을 열었다.

 “어떤 거 같아요?”

 “네?”

 “현경 씨가 보기에, 어떤 거 같냐고요. 이거.”

 갑작스러운 질문에 현경이 입을 삐죽이며 잠시 광고를 훑었다. 뭘 묻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평소 TV나 영화,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연예인이나 아이돌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짧게 한숨을 쉬며 서 있는 현경을 보던 하예리가 물었다.

 “별로 안 끌리죠?”

 “아… 뭐… 근데 이건 제 개인적인…”

 “원래 그런 거에요. 별로 관심 없는 사람들을 끌어당겨야 하거든요.”

 “흠… 어렵네요. 딱히 저 남자가 누워… 앉은 건가? 아무튼… 누워있다는 거 말고는 잘 모르겠어요.”

 “보호 본능을 자극하려고 한 것 같은데… 애가 너무 튼실해.”

 현경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하예리가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네, 하예리에요. 이번에 애들 관리 파일 보내줘요. 지금… 11시니까 13시까지.”

 전화를 끊은 하예리가 고개를 저었다.

  “칼 같네요.”

 현경이 슬쩍 이야기했다. 하예리가 멋쩍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냥… 제 일이니까요.”

 “그럼 저도 제 일 좀 할게요. 일하시는 것도 좋은데 제가 굳이 차 타지 말고 오전에는 걸어서 가자고 한 이유는…”

 “아~ 현경 씨, 제발… 저도 알아요. 운동시키려고 하는 거잖아요.”

 “아뇨. 평소 습관이나 자세 같은 거 보려고 한 거에요. 듣던 대로 너무 일밖에 모르시는 것 같은데… 이렇게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계속 멈춰서고 하니까. 그냥 따로 시간을 내서 저랑 센터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몇 가지 점검을 좀 하고 그 이후에는 대표님 집이나 사무실에서도 관리할 수 있게 할게요.”

 현경의 제안에 하예리가 울상을 지었다.

 “아… 나 진짜 운동 너무 싫은데.”

 “다 그렇게 말하죠. 왜 그러세요 사춘기 남자애도 아니고.”

 단호한 현경의 표정에 하예리가 단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VICTORY XENTER]

 결국 현경의 손에 이끌려 나래의 피트니스 센터에 도착한 하예리가 센터 내에 있는 VIP룸으로 향했다.

 “먼저 들어가 계세요. 몇 개 필요한 거 챙겨서 갈게요.”

 “얼마나 걸려요? 오늘 바로 운동 하는 거 아니죠?”

 애절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하예리를 잠깐 바라보던 현경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혹시 이런저런 테스트를 하다가 도저히 오늘 이대로 보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뭐라고 핑계를 대지? 하는 생각에 빠진 하예리가 코를 벌름거리며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평소였으면 몸이 10개라도 모자랐을 텐데 하필 요 며칠 중요한 행사가 다 끝나는 바람에 핑계 댈 스케줄도 없었다.

 “오늘 스케줄 미경 씨한테 받아뒀으니까 괜한 생각 하지 마세요.”

 “아악!!!!”

 소리 없이 나타난 현경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하예리가 소리 질렀다. 그 모습에도 그저 킥킥거리며 웃는 현경이 하예리는 어딘지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사람을 이렇게 움직이는 걸까…? 나의 몸이 그 정도로 쓰레기인가…

 “아까 13시까지 파일 받기로 하셨으니까 그전에는 마칠 거에요. 우선 대표님은 생각부터 바뀔 필요가 있어요. 남이 떠먹여주는 것도 한계가 있거든요. 대표님이 직접 느끼고 생각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다시 원위치로 돌아올 거니까요.”

 별 표정 없이 팩트를 날리던 현경이 손에든 작은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자 벽면에 스크린이 내려왔다. 그 모습이 어딘지 위압적이어서 하예리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때부터 배워서 알고 있겠지만 반복 학습은 중요하니까 말씀드릴게요. 우리 X 성을 가진 생물은 무엇보다 강하고 큰 생식 세포를 가지고 있죠. 덕분에 매달 자연의 폭포를 겪고요. 이 모든 크고 강한 몸, 그리고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하는 활동은 필수적으로 많은 에너지원을 가져야 하는데. 바로 이 점이 우리 여자와 남자의 다른 점이죠. 여자가 더 단단하고 힘이 센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거에요.”

 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이었다. 여자들은 생리를 시작하면서 한 개인으로 자립하게 되는 변환점을 맞이하는데, 부모와 주변의 어른들은 생리를 시작한 여자아이들을 위해 온갖 운동 기구와 운동복, 건강식품을 선물한다.

 “그런데 그 바탕을 갖지 못하면 거의 평생 겪는 에너지 활동이 오히려 우리 몸에 독이 될 수 있겠죠.”

 마찬가지로 최근까지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말이었다. 어느새 하예리의 옆에 선 현경이 가져온 작은 기계를 하예리의 팔에 갖다 댔다. 10초도 안 돼서 삐빅하는 소리가 났다. 기계를 자세히 살펴보던 현경이 다시 스크린 앞으로 향했다.

 “대표님은 정말 괜찮은 몸을 가지고 있어요.”

 “저요?”

 “네. 믿기 힘드시겠지만… 저도 믿기 힘드네요. 원래 몸이 타고난 편인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에 비해 적은 노력을 들여도 꽤 괜찮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거예요.”

 칭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눈치로 알 수 있었다. 엄청난 행운이었다. ‘덜 운동해도’ 되다니! 하예리는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애써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경이 다시 리모컨을 누르자 화면이 바뀌었다. 누군가의 타임테이블이 피자모양으로 나뉘어 있었다.

 “대표님의 지금까지 평소 일정이에요. 대략적인.”

 “아… 프라이버시는 없나요…”

 “세세한 내용은 없어요. 대략적인 거니까. 여기 있는 취침 시간, 수면시간, 기상 시간 그리고 매 끼니. 이 정도만 건드릴 거에요.”

 대부분인 거 같은데, 하고 하예리는 생각했다.

 “무조건 수면은 8시간. 지켜주셨으면 좋겠지만 많이 바쁘시니까 5시간은 최소. 지켜주세요. 지금은 거의 3~4시간만 주무시더라고요. 그리고 식사는… 뭐, 제가 같이 챙겨드릴 거니까 크게 신경 안 쓰셔도 되지만 3번 이상은 무언가를 먹을 거에요. 기상 시간은 무조건 8시. 일어나면 곧장 센터로 오세요.”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현경을 보고 있자니 어딘가 현실감이 없어서 하예리는 멍하게 앉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저렇게 말하는 것들을 과연 내가 지킬 수 있을까,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들인가 하는 생각들이 머리를 뒤덮었다. 그런 하예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현경은 신이 난듯했다. 스크린과 리모컨을 정리하던 현경이 불현듯 멈췄다.

 “아. 깜박할뻔했다.”

 “?”

 “그리고 나래 씨가 당부했던 부분인데, 대표님 연애 사업도 좀 도와드리라ㄱ…”

 “아아악! 진짜 김나래! 그건 됐어요!! 운동 열심히 할 테니까 그런 건 신경 쓰지 마세요!!”

 순간 하예리는 자기가 무슨 말을 뱉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미 튀어나온 말이었다. 현경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네, 뭐, 저는 그런 의지 좋아합니다.’ 하는 무뚝뚝한 말을 뱉고는 차를 빼겠다며 먼저 내려가 버렸다. 

반가워요. 인터넷은 잘 안합니다. 답답해서 가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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