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의 가장 근엄한 곳, 근정전에서는 휘황찬란한 천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웅장한 근정전 팔작지붕의 처마와 옆 행각의 처마사이를 잇는 끈들과 함께 오색형형한 색의 비단들이 너울거리고 있었다. 근정전 앞 2단 석축(石築)의 월대 위에는 왕이 앉는 자리 오른쪽으로 왕실 사람들, 그리고 삼정승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왼쪽에는 대국(大國) 사신들의 자리 다섯 자리가 위치해 있었다. 월대 아래 품계석(品階石)이 놓인 앞마당인 조정(朝庭)에는 대신들이 한상씩 앞에 두고 자리하고 있었다. 왕을 바라보면서 그 왼쪽으로는 무관들이, 오른쪽으로는 문관들이 상 하나씩 앞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문관들과 무관들쪽 뒤로 당상관들의 자제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문무반 품계석 사이에서는 무희들이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춤사위를 고혹하게 뽐내고 있었다.


  "여어! 이연(泥蓮, 명의 호(號))! 여길세!"

  호여가 손을 들어 명을 불렀다. 대신들은 개인별로 상을 하나씩 받아 있지만, 당상관의 자제들은 조금 큰 상에 빙 둘러 앉게 마련해놓았다. 명은 바깥쪽에 있는 상에 홀로 앉아 있었으나, 소피를 보고 돌아오던 창재가 그를 발견하고 자신들이 있는 쪽으로 데리고 오던 참이었다.

  "아, 형님들도 오셨습니까?"

  명은 그들이 당상관의 자제들인지 몰랐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서 그들을 만난 것이 반가웠다.

  창재는 명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호여 옆에 앉았다. 명은 제 건너편에 앉은 휘랑에게 웃으며 말을 건네었다.

  "휘랑 형님께선 이번 대과(大科)를 치르신다고 들었습니다."

  휘랑이 그런 명을 한번 흘겨보고는 술을 따라주었다. 

  "오랜만에 얼굴 보이고서는 그나마 한다는 소리가 과거시험 이야기밖에 없는가."

  타박하는 말투에 무안해진 명이 시무룩해지자, 옆에 있던 호여가 웃으며 잔을 권하였다.

  "이연, 오해말게나. 휘랑이 그 동안 자네가 연락이 없어서 서운해서 그랬다네. 아니, 나와 창재만해도 그렇네. 자네 이번에 조강지처를 맞았다면서. 혼례식에 불러주지도 않고 우리 많이 섭섭했네."

  씨익 웃으며 호여는 호기롭게 잔을 입에 털어넣었다. 옆에 있던 창재도 말을 거들었다.

  "그래, 그렇네. 휘랑이 자네 혼례 이야기를 뒤늦게 듣고는 얼마나 짜증을 내던지... 하하하!"

  "술상을 앞에 두고 뭔 말이 그리들 많나."

  무안한 건지, 무심한 건지 모를 표정으로 휘랑이 말을 툭 내뱉었다. 

  "형님들께 제가 큰 죄를 졌습니다. 집안 사정으로 다른 객(客)들은 초청치 않고 집안 어르신과 근처 마을 사람들과만 조용히 치뤘습니다. 제가 조만간에 날을 잡아 형님들 모시겠습니다. 좀 봐주시면 안되겠습니까?"

  해맑게 웃는 명의 얼굴에 휘랑, 호여, 창재 셋 모두 얼굴이 화끈거렸다. 웃는 얼굴이 마치 아름다운 항아님처럼 아름답고, 어딘지 모르게 색(色)스러운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셋 모두 얼른 술로 목을 축이며 생각하는 것은 비슷했다.

  '아니, 사내가 저리 고혹적일 수가 있나?'

  '누가 보면 내가 남색(男色)에 홀린 줄 알겠구만.'

  "장가를 가더니, 색시가 아니라 신랑이 더 요염해진 것 같군. 밤마다 색시가 잠을 안재우나? 아니면 자네가 잠을 안재우나?"

  속으로만 생각하던 호여와 창재와는 달리 그대로 내뱉는 휘랑이었다.

  휘랑의 그 말에 얼굴이 발그레지며 쑥스러운 듯이 살짝 고개를 숙인 명은 뒷통수를 긁적였다. 호여와 창재의 눈엔 그마저도 요염해보였다.

  "아... 그... 뭐.... 후자이긴 합니다만... 하하하! 뭐 보통 사내들이 다 그런것 아니겠습니까?"

  명은 속으로 진땀을 흘리며 어색하게 대꾸하였다. 생각보다 예리한 양반들인 것 같았다. 명은 자신에게 쏟아진 관심을 돌리려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형님들께선 오늘 대국의 사신들이 저희를 어찌 할 것 같아 보이십니까?"

  명의 말에 웃고 있던 셋의 표정이 자못 진중해졌다.

  "우리 아버님께선 아마 무언가 시험해보지 않겠냐고 하시더군."

  창재가 말하였다.

  "우리 아버님도 마찬가지일세."

  호여도 맞장구쳤지만, 휘랑은 아무 말 없었다.

  "저희 아버님께서는 그런 이야기는 하시지 않으셨지만, 이번에 저희들이 하는 것에 있어 이는 집안이 걸린 것 뿐만 아니라 국가의 위신이 걸려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걸 보면, 형님들께서 말씀하신대로 무언가를 시험하지 않을까하는 그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

  명의 말이 끝나자 셋은 말이 없어졌다. 휘황찬란한 천들과 아름다운 무희들의 춤사위는 이제 그들의 여흥을 돋우지 못하였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내심 긴장하며 그 전까지는 넷이서 그저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이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월대 위에서는 대국의 사신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 도착하여 연회에 참석한다는 사신은 언제 오시는지 궁금하군요."

  성철이 대국의 사신단의 수장에게 술을 권하면서 웃으며 물었다.

  "그분은 이제 곧 도착하실 것입니다."

  얼굴에 웃음을 띈 사신은 간단하게 답하였다. 그의 대답을 들은 월대 위의 왕과 왕족들, 그리고 삼정승은 의아했다. 그가 사신단의 수장인데, 존대말이라니.

  성철이 그의 말을 통번한 역관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가 존대말을 쓴 것인가? 아니면 자네가 그렇게 통번한 것인가?"

  "존대말을 썼습니다. 보통은 他(그)라고 말할텐데, 분명 那位(그분)이라고 지칭하여 말하였습니다."

  역관이 머리를 조아리며 답하였다.

  역관의 말에 왕을 비롯해 월대 위에 있는 사람들의 의아함이 더욱 커졌다. 

  그때 닫혀있던 근정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러자, 월대 위에 있던 대국 사신단 수장이 벌떡 일어나 기단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왕을 비롯해 대신들은 당혹스럽게 사신을 바라보았다. 근정문을 통해 들어온 이는 대국 사신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가 다른 길이 아닌 어도를 밟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다들 얼굴이 아연실색해졌고, 왕은 표정이 구겨졌다. 

  그에 세자가 얼굴을 굳힌 채 자리에서 일어나 호통을 쳤다.

  "아무리 대국의 사신이라 하나, 어찌 일국의 왕만이 지날 수 있는 어도를 밟는 것인가!"

  이는 우리나라를 업수이 여기는 것이 아닌가라는 말을 간신히 목구멍 아래로 삼켰다. 아무리 그래도 대국의 사신이기 때문에 너무 감정적인 말은 삼가해야 했다. 역관이 세자의 말을 통번하자, 월대 아래로 내려갔던 사신단 수장이 외쳤다.

  "조용히 하시오!"

  그 사이 근정문을 통해 들어온 사신은 중간까지 걸어오고 있었다. 걷는 모양새나 외양에서는 당당함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가 월대 아래까지 바짝 다가오자 사신단 수장은 그를 향해 공수를 하고 허리를 직각으로 굽혔다. 대국의 말로 무언가를 주고 받는 듯 하였으나, 워낙 작은 소리라 월대 위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왕은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그대는 누구이기에 이 나라의 예법을 무시하는가?"

  낮고 침착한 음성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실리지 않았지만, 그 무거움은 태산과도 같았다.

  왕의 말을 통번하자, 사신단의 수장이 뭐라뭐라 소리쳤다가 중간에 뒤늦게 온 사신의 제지에 말을 멈추었다.

  역관은 그 말을 듣고 통번을 하지 않은 채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빨리 통번하게. 무엇하는가!"

  옆에 있던 우의정이 다그치자, 역관의 입이 덜덜 떨리며 말을 더듬었다. 그 사이 뒤늦게 온 사신은 사신단 수장과 함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 그게... 저 사신은... 아니, 저분은..."

  역관이 말을 더듬자, 왕의 눈쌀이 찌푸려졌다. 성철 역시 답답한 마음에 그를 한번 쳐다보았다가 뒤늦게 온 그 사신이 계단을 반쯤 오르자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을 보던 성철의 동공이 점점 커지며 얼굴이 굳어졌다.

  "전...전하! 저 사신은 사신이 아니라!"

  성철의 말은 사신단 수장의 말로 인해 끊어졌다.

  "무엇하는가! 대국의 태자 전하시네! 예를 갖추시오!"

  사신단 수장이 소리치자, 역관은 이번엔 재빠르게 통번하였다. 그 말에 월대 위에 있던 이들은 물론, 품계석 쪽에 있던 대신들과 그 자제들도 모두 놀라 웅성대었다.


  아니, 대국의 태자가 왜 사신으로 오는가?

  그게 말이 되는가? 태자가 여길 오다니? 

  저 역관이 혹여 잘못 통번한 것 아닌가?


  다들 술렁대었다.

  왕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든 이들이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섰다. 왕은 자리에서 나와 대국의 태자라는 이가 서있는 월대 가운데로 나갔다.

  "대국의 태자께서 이 작은 나라까지 걸음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하여, 예를 다해 맞이하지 못한 점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왕의 그 말은 매우 부드럽고 예스럽게 말하였으나, 그 속뜻은 당신네들이 고하지 않고 이리 몰래 왔으니, 이렇게 대국의 태자를 맞이한 것이 우리의 실례가 아니란 것을 주지시키는 것이었다. 

  대국의 태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전하를 이리 놀라게 해드려 송구합니다.  황제 폐하의 뜻을 꺾고 몰래 오느라 채비가 늦어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 양해바랍니다. 하여, 사신단 명단을 통보하였을 때 내가 빠져있었습니다."

  놀랍게도 대국의 태자는 약간 발음이 어눌하였으나, 통번없이 이 나라의 말로 명확하게 말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대국의 태자가 온 것에 처음 놀라고, 그가 이 나라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에 두번 놀랐다.

  "이 나라 세자께선 위엄이 있으십니다. 하하, 저 밑에까지 목소리가 쩌렁쩌렁 들려 나는 대장군이 호령하는 소리인 줄 알았습니다."

  이어서 말한 태자의 말에 세자는 얼굴을 굳혔다. 말이 칭찬이지 그 말은 세자를 까내리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떨떠름한 얼굴로 세자는 그에게 공수하며 말하였다.

  "아까는 태자전하이신 줄 모르고 결례를 범하였습니다. 부디 양해바랍니다."

  "아, 괜찮소. 몰랐으니, 당연한 것이오. 알고도 그러는 것이 문제지."

  세자는 그의 말에 무언가 불편함이 느껴졌다. 얼굴은 온화하게 웃으며 사람 좋은 말을 하는 듯 한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기실 대국의 태자가 어도를 밟고 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나라의 왕과 대국의 태자는 어떻게 보면 비슷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런 서열상으로 본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그래도 일국의 왕이 지나는 길이기 때문에 조정신료들은 그가 어도를 밟는 것이 마치 소국(小國)이라고 무시해서 그러는 것 같아 내심 기분이 상하였다.

  "자, 그러지 마시고, 이리 앉으시지요."

  왕은 대국의 태자를 보고는 사신단 자리 중 가장 상석을 권하였다.

  태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그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사(正使)께서는 건강합니까? 먼 길 다녀오느라 힘들었을텐데, 그래도 얼굴색이 좋아보여 다행입니다. 아, 멀리서 듣자하니 이번에 좌의정이 되었다던데, 축하합니다."

  자리로 가던 태자가 성철을 발견하고는 다가가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었다. 많은 이들이 성철에게 눈이 쏠렸다.

  "네, 태자전하. 염려해주신 덕분에 건강히 잘 돌아왔습니다."

  성철은 무수한 시선들을 느끼며 얼른 일어나 태자를 향해 공손히 답하였다.

  그의 말에 호기롭게 웃으며 자리에 앉은 태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국에서 먼 길인데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태자께서 이리 직접 왕림해주시니 이 또한 이 나라의 홍복이 아니겠습니까?"

  왕은 태자를 향해 말하고는 월대 위의 사람들 모두에게 건배를 권하였다.

  "내 어릴 적 동북쪽에 있었습니다. 그때는 황위 계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때라 동북쪽에서 천둥벌거숭이처럼 지냈습니다. 그때 이 나라 어느 고을에 있던 친구에게 신세를 졌지요. 그 참에 이 나라의 말도 배우고, 그 친구와 막역지우의 정을 나누었지요. 게다가 그 친구 덕분에 태자비도 그때 만나 인연을 맺을 수 있었으니, 내게 있어 이 나라는 아주 고마운 나라일 뿐이오."

  태자의 말에 왕을 비롯한 주변의 모든 신료들이 놀랐다. 이 나라의 사람과 친구를 맺는 황족이라니. 그것도 막역지우의 정을 맺은. 다들 그 친우라는 자가 누구인지 궁금증이 일었지만, 태자는 그에 대해 더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하여, 본인은 이 나라에 애정이 많습니다. 대국의 태자로써 이 나라에 대해 더욱 잘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이 나라가 바르게 잘 되어야 우리 대국도 안정적으로 정사(政事)를 운영할 수 있지 않겠소. 그리하여 이번에 사신단이 간다길래 황제 폐하께 간청하여 겨우 허락을 받아 오게 된 것이오. 아, 물론, 지난번 진하사에 대한 답례를 할겸 그때 좌의정이 보여준 놀라운 문장 솜씨에 감탄하여 이 나라 동량들의 실력도 보고싶어 이리 찾아왔습니다. 내가 너무 과한 요구를 드린 건 아닌지 싶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먼저 널리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태자의 언변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먼저 대신들의 자제들을 불러내어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 이유가 이 나라의 실력이 좋아서라니. 상대 나라의 위신을 둥둥 띄워주면서 자신에 대한 반감을 줄이는 언변에 다들 그가 어떻게 태자가 되었는지 알만 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자께서 이리 높게 보아주시니 일국의 왕으로써 감사드리면서도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좌의정의 문장실력이야 이 나라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인지라, 이 나라의 동량들이 태자의 눈에 들까 내심 걱정이 됩니다. 하하하."

  왕은 먼저 한발을 빼며 혹시나 있을 무안한 상황에 대비하여 낮춘 자세로 말하였다.

  "전하께서는 겸손이 과하십니다. 그 옛날 저의 친우 역시 문장이면 문장, 무예면 무예, 그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았습니다. 일개 시골 구석에 있는 이가 그 정도면 이 나라의 도성인 한양에 있는 사대부들의 자제들은 어떨 지 짐작도 가지 않습니다. 오늘 여기에 와 그들을 볼 수 있음에 사실 마음이 떨려 흥분을 감추지 못하겠습니다."

  진짜로 그러는 양 짐짓 상기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태자께서 보았다는 그 시골 선비가 누구인지 과인도 참으로 궁금합니다."

  왕이 말을 건네자 태자가 웃으며 주변을 빙 둘러보면서 말을 받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그 친구가 보고 싶어 이리 왔는데, 그 친구는 이곳에는 없으니 아쉽군요."

  "나중에 혹여 그 친구를 만나시게 되거든 과인에게도 한번 소개시켜주시지요."

  왕이 조용히 말을 받자 여전히 웃는 낯의 태자가 답하였다.

  "그러지요. 이번에 만나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좀처럼 찾기 어려운 친구라서. 하하하!"

  호탕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의 답에 또 왕의 질문이 이어졌다.

  "태자께서는 이 나라 대소신료 자제들의 무엇을 보고자 함입니까? 말씀해주시면 제가 사람들을 일러 준비토록 하지요."

  왕의 표정은 다소 굳어져 있었다. 어떻게 둘러대어 그런 일만은 피하려고 하였지만, 태자의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확인하였으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하하, 이제 막 왔는데, 조금만 더 따뜻한 술과 고기들을 먹고나서 배가 채워지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태자는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진짜 배가 고팠다는 듯이 상 위의 음식들을 맛있게 먹기 시작하였다. 

  

  한동안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었다. 월대 위의 태자와 왕도 별다를 바 없었다. 백성을 위한 길에 대해 논하다가도 옛 성현들의 고사를 나누다가, 어쩔 때는 가벼운 저잣거리의 이야기들로 연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먹고 마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태자가 슬슬 입을 떼었다.

  "전하께서 괜찮으시다면, 이 나라의 대소신료 자제들에게 하나 제안을 해보아도 괜찮겠습니까?"

  왁자지껄 떠드는 와중에 태자의 그 말이 들리자 모든 이들의 눈과 귀가 월대 위로 쏠렸다.

  그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이 연회에서 이 나라의 동량지재들의 문무(文武)를 눈으로 보고 싶소. 문무(文武)를 보여주는 이에겐 황제 폐하께서 하사하신 선물을 내리도록 하겠소."

  태자의 말에 월대 아래에 있던 이들이 술렁였다. 대국 황제의 선물이라니, 이 얼마나 진귀한 것인가. 술을 마시던 이들의 눈에 이채로운 눈빛이 돌았다. 그 눈빛엔 서로 자신이 그 선물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묘한 기대감이 서려있었다.

  "휘랑, 문장이라면 자네가 빠지지 않지 않나? 난 자네가 나간다면, 빠지겠네. 자네와 비교 당하기 싫으이."

  창재가 휘랑을 팔꿈치로 툭 치며 말하였다. 휘랑은 술잔에 술을 채우며 관심없는 얼굴이었다.

  "난 참여할 생각없으니, 창재 자네는 마음껏 발휘해보게."

  "어허, 이 사람! 자네가 안나서면 어쩌나? 자네 부친께서 가만히 계시질 않을걸세."

  창재의 말에 호여도 호응하였다.

  "맞네, 자네는 하기 싫어도 억지로 끌어다가 하라고 하실 지도 모르네."

  "그게 그리 좋으면 자네들은 하시게. 아, 글로 치면 지난번 소과에 장원을 한 이연도 있지 않는가."

  자꾸 자신을 보채자 명에게 얼른 관심을 돌렸다.

  "아! 그렇군! 이연, 자네가 있었지!"

  "아, 아닙니다. 전 그저 연회만 즐기라는 아버님의 말씀이 있으셔서... 저 보다는 휘랑 형님께서 나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휘랑과 명이 서로를 추켜 세우며 아웅다웅하고 있을 때, 월대 위의 관리가 큰 소리로 외친 말에 입을 다물었다. 

  "모든 당상관 자제들은 월대 앞으로 나오시오!"

쓰고 싶은 글을 쓰는 초보 작가입니다. 사극 동양풍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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