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해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렀다. 오늘까지하면 벌써 다섯 번째나 겪은 경험이다...  역시나, 그의 속옷 부근은 어젯 밤 꿈의 여파로 젖어있었다.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오늘도 해리는 위즐리 가족보다 조금 일찍 아침을 시작했다. 굳이 이유를 얘기하자면,  속옷을 빨기 위해서.


 "-오, 해리. 대체 듣고 있긴 한 거니?"


 해리는 눈을 껌뻑거리며 몽상을 몰아냈다. 부스스한 갈색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는 헤르미온느와, 그 옆에서 걱정스런 표정을 하고있는 위즐리들-그러니까 지니 위즐리까지-눈에 담으니 해리의 멍한 정신에 빛이 들어온다. 


 "아, 물론이지. 헤르미온느."


 어딘지 모르게 피곤해 보이면서도 나른한 눈빛을 한 해리였다. 그의 주변을 둘러싼 이들이 본능적으로 침을 삼켰다. 해리는 성인과 소년의 경계에 선 듯한, 뭐랄까 형용하기 어렵지만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헤르미온느는 애써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하여튼..해리, 요즘 밤에 잠이라도 못 자는 거야? 왜 그렇게 넋을 빼놓고.." 


 "오,전혀! 밤엔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요새 피곤한 일이 있어서 말이야-"


밤 얘기가 나오자 해리는 적잖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는 황급히 아니라고 변명을 했지만, 헤르미온느를 포함한 그 외 위즐리 가족들은 탐탁찮은 표정이었다. 위즐리 형제는 그의 심상찮은 표정을 보고 눈치를 채곤 낄낄 웃어댔다. 그들은 심지어 해리를 몰래 쿡쿡 찔러대며 '어떤 아가씨야?' 하고 짖궂게 물었다. 해리는 망할 위즐리 형제를 애써 무시한 채 불긋해진 귀를 매만지며, 대화 화제를 따라가려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그의 신경은 온통 딴 곳이다. 


그런 해리의 모습에 불사조 기사단들과 위즐리 가족들은 그가 피곤해 보이는 것 같다며 오늘은 쉬라는, 관대한 명령을 내려주었다. 좁은 방에 혼자 남은 해리는 어제 꾼 꿈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 속에서 은빛 생각들은 한데 뭉쳐져서 은빛 형상으로 나타났고, 그것들이 이루는 형상은 이제 전혀 놀랍지 않게도 말포이였다. 



아, 드레이코 말포이!


처음 해리가 그 현실같은 생생한 꿈을 꾸는 그 때, 솔직히 말하자면 해리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적어도 그때만큼은.


해리 포터가 아니었다.


나 자신이 아니게 되는 기분. 해리는 자기 자신을 잊을 만큼 눈 앞의 생명체에게 정신을 빼앗겼다. 흰 살결이 자신의 체액으로 젖어들고, 부끄럽다며 울고, 끝엔 쾌락에 허덕이면서도 분노를 내비치던 말포이를, 그 순결한 영혼을-

대체 어떤 이가 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해리는 싫다는 말포이의 다리를 잡아 벌리고, 그의 것을 쳐넣고 흔들었다. 해리는 정말로 그랬다. 싫다고 바르작거리며 제 등을 손톱으로 긁어내리는 반항이 꼭 고양이가 발톱세우는 모양이라 그 마저도 사랑스럽게 느끼며, 말포이를 잔인하게 희롱하고 그가 자신에게 반응하는 몸짓 하나하나에 기꺼워했다. 또한 자신이 그 뜨겁고 깊은 곳 어느 한 군데를 푹 찌르면 노란 고양이는 눈초리에 눈물을 달고 싫다며 저를 밀어내었다. 


'싫어, 싫다고...아..!'


'당신이 정말 싫어, 당신은 개자식이야-"


'아아, 너무 좋아! 제발 빨리, 아앙!'


하도 그가 물고 빨아서 붉지않고 온전한 살점이 더이상 말포이의 몸에 보이지 않게 되자 해리는 어떠한 감정을 느꼈던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에게로 쓰러진 어린 아이같은 그를 보며, 해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을 느꼈다. 충만함.


그 순간엔 어떤 두려움과 의심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를 둘러싼 세계는 무한으로 뻗어있었고...그 세계의 중심엔 자신과 그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고아나 마찬가지로 자라온 그 마법세계의 사람과의 관계는 항상 소중했고, 또 그만큼 불안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관계-하물며 대부와의 관계에 비해서도- 해리에게 지금 이 이상의 충족감을 가져다 준 관계따위는 없었다. 해리는 축 늘어진 말포이의 몸을 그러안았다. 이 아이를 놓칠 수 없었다. 


...그러나 꿈은 꿈일 뿐이다. 그렇지 않나?


해리는 눈을 뜨자마자 침대 옆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지만, 그 곳엔 항상 아무도 없었다. 

옆에 좀 전까지만 해도 사랑을 나눴던 이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절망스러운지! 우습게도 해리는 언제부터 제가 말포이를 이렇게까지 원했는지 조금의 의문도 들지 않았다. 그만큼이나 해리는 말포이에게 빠져있었다...


해리는 생각했다. 말포이, 아니 드레이코는-제 아버지처럼 고약한 죽음을 먹는 자 따위 절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그가 그렇게 만들고야 말 것이다. 해리는, 그가 만약 막지 못한다면 , 볼드모트의 밑에 들어가 총애를 받을 드레이코의 모습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밑에 깔리는 상상이었지만.


힘들다고 우는 드레이코,


흥분에 허리를 떠는 드레이코,


사랑을 속삭이니 고개를 젓는 드레이코...


절대로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해리는 말포이 가문과 볼드모트의 마수에서 충분히 드레이코를 꺼내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학기가 시작하면 그에게 다가가자. 분명 처음엔 밀어내겠지만, 결국 그는 불사조 기사단의 편에 서서, 아니 해리 자신의 편에 서서 볼드모트에 대항할 것이다-


어젯밤 꿈처럼 달콤한 상상에 해리의 얼굴에 슬금슬금 미소가 떠올랐다. 학기 시작일은 몇 일 남지 않았다. 드레이코를 볼 수 있을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산호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