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며칠째 이러고 있는 거지. 웃는 낯으로 운동장을 지나 기숙사 방으로 돌아온 미유키의 시선이 달력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 선 순간부터 얼굴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후였다. 전치 3주. 그 후에도 한동안은 조심해야 하는 부상. 지금은 그에 반도 지나지 않는 시점이다. 주변에서는 휴식을 취하는 것이 가장 빠른 완치의 길이라고 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처럼 아무렇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침대에 앉자 지끈거림이 가라앉질 않았다. 차라리 움직일 때나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는 애써 외면 할 수 있었던 것은, 정적이 드리우자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했다.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통증이 계속되는 터라 미유키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행인 것은 현재 기숙사를 혼자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문이 벌컥 열릴 이유도, 누군가 물건을 가지러 들어 올 이유도 없었다.

야구부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부상을 알고 있지만, 시합을 앞둔 이들에게 통증을 호소할 만큼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몸을 바로 피고 누워있는 것이 더 낫다는 사실을 알아도, 계속되는 통증은 몸을 웅크리게 만든다. 그리 큰 부상은 아니다. 통증 또한 참을 만하다. 침대 위에 머리를 웅크리듯 기대며 그렇게 중얼거린 미유키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밖에서 들리는 기합소리가 커지자 잇새로 낮은 욕지거리가 새었다.


[젠장, 젠장!]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이, 아니 훈련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온 몸을 옥죄는 느낌이었다. 더 나아가 곧 있을 시합에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꽤나 긴 시간동안 야구를, 주전을 해오며 용케 큰 부상이 없던 미유키였기에 묘한 초조함이 온 몸을 감싸는 듯했다.

야구를, 하고 싶어서.


[…꼴사납게.]


입 밖으로 음성을 토해내자 더더욱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래, 꼴사납다. 그 단어 이외에 어떤 것으로 지금의 자신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지, 미유키는 알 수 없었다. 남들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는 척 웃음을 지으면서도, 혼자 남을 때마다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히고는 하니까.

툭툭, 이마로 침대를 몇 번 두드리듯 움직였던 미유키가 몸을 일으켜 침대 위로 몸을 뉘였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이런 저런 조언을 듣다보니 가장 1순위로 뽑힌 것이 잠을 청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옆구리를 콕콕 찌르는 듯한 아픔은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었다. 통증을 잊으려 억지로 눈을 감았지만 감각은 더욱 예민해질 뿐이었다.

쿵쿵, 진정되지 않는 심장소리가 기합소리와 섞여 귓가를 두드렸다. 바쁜 일정을 보냈던 육체가 오래만의 휴식에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한 것이다. 아니, 계속 이래야지. 미유키는 또 혼자 속삭였다. 휴식의 편안함에 육체가 길들어지는 것은 위험했다. 몸은 나태해지긴 쉬워도 다시 긴장을 시키는 일은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터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여전히 소리는 차단되지 않는 채였다. 눈을 감으면 운동장의 배경이 너무도 확연하게 떠올랐다.


[..아, 진짜.]


운동을 오랫동안 하면 이게 문제였다. 움직이는 것에 몸이 너무도 익숙해지는 것. 그리고 스스로가 그것을 못 견딘다는 것. 결국 미유키는 몸을 일으키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스코어북이라도 정리를 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저녁을 먹은 후에는 연습에 얼굴을 한번 비치고….

생각이 멈춘 것은 다시금 울리는 음성 때문이었다. 저 음성이 향하는 곳이 거의 미유키, 자신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미유키 카즈야, 하고 후배인 주제에 선배의 이름을 멋대로 부르는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 녀석의 옆에는, 같은 이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고요하게 오라를 내뿜은 다른 녀석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오노를 괴롭히고 있을까. 쓴 웃음이 얼굴 위로 비쳤다.

그가 방으로 들어 온 것은, 주변 이들의 걱정도 있었지만 사실 미유키 스스로가 버티지 못한 결과였다. 옆에서 녀석들의 피칭을 보는 것도 좋지만 역시 보고 있노라면 몸이 근질근질해지고는 했다. 특히 좋은 공이 미트로 들어가는 소리를 들을 때면, 녀석들의 앞에 있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자신의 미트로 들어와야 했을 공이건만, 하는 생각에.

또 다시 손이 허전한 느낌에 미유키가 두어 번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지만 역시, 손에 쥐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 *



오늘의 공도 최고였다고, 미유키의 옆에는 쫑알거리는 이가 붙어있었다. 눈을 반짝이고 자신의 공을 설명하는 모습에 미유키는 헛웃음을 지었다. 설명만으로도 눈앞에 구질이 보이는 듯 했다. 그리고 그 공을 던진 후에 방방 뛰는 모습 또한 선연했다. 밥을 같이 먹기 위해 왔다던 자신의 베터리자… 어린 연인의 조잘거림에 웃음이 튀어갔다. 혼자 있었을 때의 적막감이 사라진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진짜 밥은 안 드실…]

[사실 볼이 된 거 아니야?]

[앗, 아닙니다! 날 뭐로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이 싫어, 부러 심술을 부리는 말이 튀어나간다.


[그럼 내일이면 잊어버린다거나?]

[미, 미유키 카즈!]


아니, 장난을 치자 바로 반응이 돌아오는 것에 더 그러는 걸지 도 모른다고, 미유키는 생각했다.


[선배… 겠지, 사와무라?]


툭, 코를 건드리자 고양이 눈이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어깨를 탈탈 털거나 옆구리를 가격했을 테지만 사와무라는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이를 갈 뿐이다. 투덜거리는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면서, 미유키는 실룩이며 올라가려는 입술을 억지로 참기위해 깨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스스로도 긴가민가한 상태인 모양이었다. 손으로 휙, 이런 식으로 휙, 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행동을 보이는데, 은근슬쩍 모션을 취할 때마다 조금씩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오노 선배도 좋았지만, 역시…]


사와무라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미유키를 힐끔거린다. 끝이 흐지부지된 것이 오노 때문인지, 아니면 미유키의 부상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자신을 필요로 해주는 것에 꽤나 마음에 든다.


[아, 애, 애가 아니잖슴까!]


머리를 마구 부비자 사와무라가 고개를 저어댔다. 하지만 부드러운 머리칼이 손에 걸리는 느낌은 퍽이나 마음에 들었고, 또….


- 귀엽단 말이지.


그리 길지 않은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귀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고개를 들면 아마 목까지도 빨갛게 변해 있으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아마, 그때와 비슷한 얼굴일 것이다. 얼굴이 빨갛게 변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진지한 모습으로, 조심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알려왔던 그때와.


[사와,]


이름을 부던 그때, 갑자기 불쑥 고개를 든 사와무라가 돌진해왔다. 미유키가 몸을 뒤로 빼기 전에, 빠르게 입술을 부딪히고 몸을 일으킨다. 미유키가 잡기 위해 손을 뻗으려 했지만, 매일 타이어를 이끌고 단련한 것이 빛을 발하는 듯 움직임은 빨랐다. 갑자기 움직이면 옆구리가 아파, 자신도 모르게 몸을 사린 이유도 있었지만.


[후… 다행인가.]


저 멀리서 밥을 먹고 오겠다는 소리가 들렸다. 요즘 움직임이 줄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입맛이 없었던 미유키로서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와무라가 걱정하는 것은 싫으니까. 시간을 힐끔 본 미유키가 약봉지를 뒤적였다. 아직 밥을 먹지 않았지만, 약만큼은 시간을 지켜 먹는 편이었다.


[일단 후루야와 사와무라의 기본 연습을 짜고…]


주장이 되고 나서 일이 많아졌지만, 투수 관리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것은 부상을 당한 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머릿속에서 정리를 하는 사이에 진통제가 드는 모양이었다. 분명 침대에 누웠을 때까지만 해도 오지 않았던 졸음이 쏟아져, 미유키는 의자에 앉은 채로 꾸벅 꾸벅 졸기 시작했다.


* * *



슬금슬금, 뭔가가 조심스럽게 건드리는 기분이었다.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묘하게 편안한 느낌에 무심코 몸에 힘이 빠졌다. 그리고 부드럽게 따뜻한 것에 감싸여…


[읏,]


아픈 곳이 건드려져버렸다. 한순간 옅게라도 깔려있던 졸음이 흩어져 버렸다.


[괘, 괜찮습니까?]


그리고 바로 들리는 음성이 익숙했다. 눈을 감기 전에도 방에서도 들렸던 음성이었다. 팀원에서 누구보다 목소리가 크고,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인물. 옆구리가 조금씩 지끈거리는 와중에도 미미한 미소가 어렸다.


[…어, 어디 안 좋은 건가?]


미유키의 눈이 떠지지 않아서 인지 상대가 당황하는 기색이 너무도 선연하게 다가왔다.


[그, 어… 죽은 건…!]

[아니, 아니… 죽이진 말고.]


결국 웃음에 굴복한 것은 미유키였다. 큭큭, 하는 웃음을 숨기지 못하자 우왕좌왕하는 기색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사와무라는 다친 뒤로 이런 행동을 왕왕 보이고는 했다.


[그러니까 왜 그런 곳에서 자고 있어가지고…]

조심스럽게 옮겨진 곳은 침대였다. 제대로 이불까지 감싸여진 채였다.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바로 어째를 꾹 눌러왔다. 푹신한 곳으로 떨어졌지만 작은 반동에도 근육은 통증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둥글게 말려는 행동에 사와무라의 눈이 더욱 커졌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음을 지어보았지만, 이미 한번의 전적이 있었던 터다. 한순간에 긴장한 고양이 눈이 되어버린 것에 미유키가 볼을 긁적였다.


[괜찮아.]

[하, 하지만!]


믿을 수 없다는 듯, 사와무라는 입술을 달싹이다 다물었다. 얼굴이 흐려지는 것을 보니, 또 그때를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센바츠-봄 고시엔-에 가는 결승 경기, 마지막까지 부상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때.


[정말 괜찮다니까.]


이런 모습을 보면, 미유키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게 된다. 의도적으로 부상을 숨긴 것은 감독님 때문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자신의 선택이고 욕심이었다.


[이제, 숨기지 않는다니까.]


결국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사와무라의 표정이 나아지지 않아, 미유키가 양 손을 뻗었다. 이런 걸로 때우는 거냐고, 사와무라는 비죽이면서도 사양하지 않았다. 대신 미유키의 옆구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침대 위로 올라가 껴안는다. 쿵쿵, 점점 커지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사와무라의 것인지, 아니면 미유키 자신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푹, 쉬는 겁니다.]

[알았어.]

[좀, 다른 사람도 믿고!]

[응.]

[…나도, 믿고.]


작은 소리는, 하지만 너무도 또렷하게 들렸다. 가볍지 않은 음성과 똑바로 마주오는 시선. 마운드에서 보이던 사와무라의 모습이었다. 장난으로 넘길 수가 없는 모습에 미유키도 얼굴을 굳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를 믿고, 의지한다. 미유키에게 있어서는 가장 힘든 것이긴 하지만…


[믿어, 사와무라.]


그렇지만 조금씩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미유키는 그대로 사와무라의 목을 껴안아 힘을 줬다. 부상을 걱정한 사와무라가 어정쩡하게 자신의 얼굴 양 옆으로 손을 짚은 것을 확인하고, 미유키는 상체를 살짝 들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입술이 닿았다. 방금 전 도둑고양이처럼 스치듯 지나간 입맞춤이 아니라, 결국은 사와무라도 미유키의 목을 껴안게 되는, 그런 입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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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와미를 보고 싶어서 막 지른건가 싶지만ㅠㅠ 그래도 사와미는 너무 좋습니다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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