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피터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아이든은 이미 제 사정을 퀼에게 나불나불 불어버린 뒤였다. 당연히 믿지 않은 퀼이었지만, 아이든이 15m를 점프했다가 상처 하나없이 사뿐하게 착지한 것을 보고 믿을 수 밖에 없었다. 피터는 한동안 아이든이 돌보았다. 그 세계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다행히 메레디스가 가입했던 보험이 한 몫을 단단히 했다.


그리고 퀼은 피터를 보살피는 법을 아이든에게 배웠다. 환자치곤 메레디스가 지나치게 건강한 덕이 컸다. 그리고 퀼이 어느정도 보모 일을 배웠을 때 즈음, 아이든 헌터는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다.


"..아이든, 다음에도 올거지?"


어린 피터 퀼이 물었다. 아이든은 확답하지 않았다.


"나도 모르지. 하지만 난 내 능력을 조절할 수 없으니까. 또 보면 좋겠네."


피터가 손을 흔들었다.



* * *


슉- 털석-


아이든은 침대에 누워, 느리게 한숨을 쉬었다. 일어나 일지를 쓰고, 읽고, 기록한 뒤 일어난 아이든 헌터는 몸을 둥글게 말았다.


..미련을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인연을 만든다고 이곳에 일에 영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그토록 순수하게 오가는 애정이 아름다웠을 뿐.





헌터의 하루는 바쁘게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오늘은 수요일, 바타르의 팀과 함께 까마귀들을 소탕하는 날이었다. 아이든은 슬슬 이 까마귀 떼의 증가가 아드리안 새끼의 짓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그 새끼의 촉수라면 까마귀들을 몰아 거처를 바꾸는 짓 정도는 가능했다.


[염병천병할 놈의 개새끼..]


아이든이 혼자 중얼거렸다. 옆에서 오래 붙어다녀 그게 욕이란 것을 알아챈 코코가 키득거렸다.


완전무장을 한 상태로, 아이든 헌터가 장총을 등뒤에 걸었다. 그것을 도와준 코코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다녀오세요, 대장."

"맡기지."

"아무렴?"


코코가 능청스레 대답했다. 아이든은 머리를 살짝 흔들어 머리카락을 흔들고는 경계지점으로 향했다. 그곳엔 이미 바타르와, 특별인원인 해리엇 페레즈가 군기가 든 자세로 아이든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부 모였군."

"전원, 경례!"


바타르가 크게 소리쳤다. 그의 지휘 아래, 전원이 절도 있게 오른발을 구르며 왼주먹을 가슴 정중앙에 올렸다.


"경례!"

"경례."


아이든 헌터가 시니컬하게 말했다. 굳이 숨기지 않은 기백의 헌터의 등 뒤에서 일렁거렸다. 아이든 헌터 특유의 카리스마가 흘렀다. 얼핏 작은 소녀였으나, 이 14살 짜리가 100명이 넘는 인원의 얼굴을 난도질한 경력이 있는 것을 아는 이들은 감히 소녀를 무시하지 못했다.


"전원 무장했나?"


아이든이 나른하게 물었다. 바타르가 대표로 대답했다.


"예, 전원 무장 했습니다."


부락은 세력의 소속, 중앙만큼 군기가 빡세지 않아 사적으로는 다들 친하게 지냈으나, 공과 사는 중앙보다 빡세게 구분되었다. 독자적으로 경례자세를 만들 정도로 권력이 큰 그들의 세력에게도 어느 정도의 위계질서가 있었다. 그리고 아이든 헌터는 그 권력의 최상위권에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이곳의 인원들 대부분이 민주주의를 기억하고 있으니 곧 바꿔야겠지만, 최소한 인력부족인 지금은 다들 아이든을 따르고 있었다.


"그래, 승차한다. 실시!"

"실시!"


전원이 크게 외치곤 팀을 나눠 준비된 트럭으로 올라탔다. 14명으로 이루어진 이루진 바타르의 팀에, 특별히 하룻동안 편입된 해리엇 페레즈까지. 아이든은 깔끔한 움직임에 고개를 끄덕이고, 가까운 차량의 조수석으로 올라탔다. 다른 차에는 바타르가 있었다.


작전은 이미 브리핑이 끝난 상태였다. 차가 출발한다. 흘끗 옆차의 짐칸을 보니, 해리엇 페레즈가 션을 다독이고 있었다.














식품회사의 건물에 팀을 나눠 진입했다. 15명의 인원을 셋으로 나눴다. 아이든은 독자적으로 움직일 것이고, 션과 헤레즈가 포함된 팀은 바타르가 지휘하며, 나머지 두 팀은 미리 선출된 리더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아이든 헌터가 무전기를 들었다.


"3층에 새끼 2마리. 5층에 성채 1마리. 8층에 둥지, 12층에 성체 2마리 새끼 5마리, 옥상에 성채 3마리."


빠르게 까마귀들의 수를 정리한 아이든 헌터가 다시 말했다.


"난 옥상으로 간다. 바타르, 지휘권 일임할테니 잘 해봐."

-네.-


짧고 간결하다. 아이든 헌터는 고개를 우둑우둑 꺽으며 빠르게 계단을 올랐다. 옥상 문을 여는 대신 창문을 통해 빠져나간 아이든 헌터가 낡은 물탱크 위로 올라갔다. 손에 든 장총을 들었다. 기척을 최대한으로 죽인 채 총부리를 겨눈다.


탕,탕,탕! 투다다다다당!


처음 세발이 순식간에 까마귀의 머리와 눈을 꿰뚫었다. 거대한 덩치에는 모자라지만, 본래 조그만 상처가 사람을 죽이는 법이다. 기백을 불어넣은 총알이 까마귀들의 몸을 뚫었다. 멈추지 않고 총을 갈긴다. 아이든 헌터의 총부리가 타겟을 놓치지 않고 움직인다. 이내, 노를 들어 기백을 불어넣어 강화한다. 나무로 된 노가 검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단 10분도 되지 않아, 옥상은 찢어진 까마귀들의 시체와 붉은 피로 물들었다. 아이든이 무전기들 들었다.


"소탕을 끝냈다. 지금부터 아래층으로 내려가며 소탕을 시작한다. 각 팀의 리더는 지금 몇층에 위치했는지 보고하라."

-A조, 5층입니다.-


바타르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들린다. 뒤이어 다른 이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B조, 3층입니다.-

-C조, 12층입니다. 새끼는 날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C조, 버텨라. 지금 당장 간다."


계단을 내려가며 아이든 헌터가 냉정하게 말했다. 검붉게 강화된 노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흘렀다. 아이든은 그 노를 한번 휘둘러 피를 털어내었다.


그리고 12층에 도착한 순간, 아이든 헌터가 주저없이 노를 강화하며 던졌다.


쉬익- 허공을 뚫고 날아든 노가 곧장 성체 까마귀 한마리의 목을 꿰뚫었다. 끼에에엑!!!


아이든 헌터가 허리춤에서 카타나를 빼들었다. 웅- 검이 진동한다. 헌터가 소리쳤다.


"C조! 방벽대열!"

""!!!""


아이든 헌터의 목소리에 경비대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짝을 잃은 까마귀가 남은 새끼를 지키기 위해 움직인다. 아이든 헌터가 카타나를 들었다. 도망칠 통로는 경비대에 의해 막힌다.


"...하!"


짧게 기합을 내며 아이든 헌터가 카타나를 파괴적으로 휘둘렀다. 검붉은 검신이 일렁였다. 우지직- 강제로 꺽고 비틀며 검격이 지나간다. 일부로 끊어친 검상, 피가 쏟아진다. 까마귀가 소리질렀다.


대부분의 인원이 얼굴을 찡그렸다. 시끄러운 절규, 아이든 헌터만이 아무렇지 않게 까마귀의 모가지를 따버렸다.


끼이익! 끼이익! 어미 잃은 새끼들이 시끄럽다. 아이든 헌터가 명령했다.


"나머지는 너희들이 처리한다. 훈련의 성과를 보지."

"네!"


리더가 대표로 대답한다. 5명의 인원이 달려나간다. 새끼라고 자비를 줘선 안됀다. 저것들은 인간을 먹고 산다.


아이든 헌터가 직접 훈련시킨 인간들의 무기가 섬뜩히 빛났다. 검붉게 강화된 날붙이들이, 어린 까마귀들의 여물지 않은 깃털을 뚫고 살을 찌른다.








콰광! 아이든은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에 급히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건물 벽에서 벽으로 점프해 공중을 이용해 내려간 곳은 3층, 새끼 한마리가 하늘을 날아간다. 아이든 헌터는 주저없이 총을 겨눠, 까마귀를 쐈다. 탕! 거칠게 공기를 뚫고 날아간 탄환이 까마귀를 직선으로 뚫어버렸다. 하늘에서 나는 게 서툰 새끼 까마귀가 떨어져 추락한다.

부서진 외벽에 서 있던 아이든이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A조의 리더가 부상자를 다른 부하에게 넘기고 있었다.


"A조. 부상자는."

"1명 있습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보고."

"새끼 두마리 중 하나가 돌연변이였습니다. 죽였으나 그 와중 다른 한마리가 탈출했습니다."

"그렇군."

"시정하겠습니다."

"...."


아이든 헌터는 침묵하고 부상자에게 다가갔다.


"다친 곳은."

"어깨입니다. 참을 만 합니다."

"출혈량은."


부상자를 부축한 다른 부하가 말했다. 처치를 빨리 해 미비합니다.


"붕대로 처지하고 대열 뒤쪽으로 가도록."


아이든 헌터가 말을 끝내고 부서진 벽으로 걸어갔다.


"트럭으로 신속히 복귀한다. 다른 조는 이미 교전 끝냈어."


그 말을 끝으로, 아이든은 부서진 벽에서 그대로 바깥으로 점프해 떨어졌다.


쿵! 빠르게 착지해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든 헌터는 트럭으로 향했다. 이미 복귀한 이들이 아이든 헌터를 보고 경례했다.


"경례하지말고 쉬어, 리더들은 지금 보고하고."

"네, 알겠습니다."


끄덕, 고개를 기울였던 아이든이 트럭에 기댔다.







이내 복귀한 이들과 함께 부상자를 추렸다. 부상자를 남겨두고,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그들은 아이든의 지휘 아래 다시 일어섰다. 이제 수색할 시간이었다.


"털 수 있는 건 최대한 턴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아이든의 우렁찬 목소리에 경비대의 인원들이 정자세로 대답했다.



건물 안, 확실히 식료품 회사라 그런지 쓸만한 것들이 있었다. 보아하니 전에 있던 인간들을 까마귀들이 싸그리 먹어치우고 자리를 잡은 것 같은데.. 아이든 헌터는 까마귀들이 싸놓은 새똥을 헤집고 축축한 종이상자를 몇개 꺼냈다.


[아 육시럴.]


아이든이 욕하며 카타나를 꺼내들었다. 찌르기로 검기를 날리니, 종이 박스가 갈기갈기 찢어진다. 와르르, 그나마 깨끗한 바닥으로 통조림 몇개가 쏟아졌다.


"잭팟이군요. 좀 더럽긴 하지만."

"그래, 염병할."


아이든의 옆에 있던 부하 하나가 한마디 붙이고는 사라졌다. 사뿐히 욕설을 지껄이곤, 아이든은 허리춤에 찬 삼단봉을 꺼내들었다. 코코가 마개조한 물건이라 아이든의 키보다 높아지는 녀석이었다. 기백으로 경화시켜 단단하게 만든 뒤, 통조림들을 대충 쓸었다. 아 새똥 개더러워.


미리 가져온 수레에 통조림들을 담으며 아이든은 다른 이들이 찾은 것들을 확인했다. 낡은 만화잡지, USB, 오래된 노트북, 연필, 과자봉지, 껌, 물병, 피규어...


"여기 원래 누군가가 살았었던 것 같습니다."


와르르- 건조 파운드케이크 봉지를 쏟아넣으며 바타르가 말했다.


"그러다 까마귀들의 급습으로 싸그리.."

"먹혔겠지."


새똥에 해골 있더라.

아이든이 말했다. 존나 오래되긴 했지만.


"..아이도 있었을까요."


션이 크레파스통을 몇개 들고 오며 말했다. 하늘색 머리칼의 션 곁에는 해리엇 페레즈가 녹안을 빛내며 스케치북을 가득이 쏟아넣었다.


"대부분 쓴거지만, 불쏘시개로 쓸만 할거에요."

"그래, 그래보인다."









수확물을 싣고 부락으로 돌아온 아이든 헌터는 애쉬 그린필드의 울먹이는 보고를 듣고 경악했다.


"아나스타시아와 에이미가 없어..!"


애쉬를 존나 갈구고 싶었지만, 그럴 새가 아니었음으로 아이든 헌터는 책임자를 불렀다.


"코코!"


임시로 부락을 맡고 있던 코코가 창백한 얼굴로 달려나왔다.


"수색은?"

"경비대와 수색팀 보내놨어. 라이언 팀이랑 루지 팀, 마리 팀."

"흔적은 없나?"

"-뉴저지 놈들 인원 셋이 잡혔어."


아이든이 인상을 썼다.


"인신매매."

"..아이든 헌터."


애쉬 그린필드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나, 우리 아나스타시아 좀 살려줘.."

"조용히, 그린필드. 빈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아이든이 걸음을 척척 옮겼다.


"코코, 이 놈은 떼어내서 어디 앉혀놔. 난 수색 들어간다. 무장가능 인원 반띵 해서 수색보내고 나머지 반은 부락 지켜. 알았나?"

"..네, 대장."

"난 지금부터 수색팀에 참가한다. 부락 지휘권은 너한테 좀 더 맡기지."

"네,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네 일을 해, 코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아이든 헌터가 말했다.


"난 내 일을 할테니."


흑남색 머리카락에 분노가 퍼졌다.


지구가 망해도 밥은 먹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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