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웃으며 나에게 안겨올때, 너의 품에서 느껴지는 고된 하루가 어찌나 아프던지.


안 좋고 슬픈 것 따위의 부정적인 일들은 늘 몰아서 닥친다. 벚꽃이 떨어지면 푸르른 나무가 온천지라지만 인간사의 ‘설상가상’의 법칙은 그렇지 않다. 벚꽃이 떨어지면, 모든게 하르르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날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뿐이었다. 단지 타버린 벚꽃이 가장 무거운 날이었을 것이다.

 

정확히는 첫 시작부터가 어긋났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걸 모른 채 셔츠 단추를 끝까지 채우는 것처럼,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게시판 앞에서 시끌벅쩍한 것이 가장 첫 단추였다. 등교를 하던 성우가 아이들 머리 위로 흘긋흘긋 보이는 글자들에 불길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고개를 빼꼼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정답 변경사항으로 공지된 공고문이 화제의 중심이었다. 문제는 성우가 어제자로 가채점을 완료했다는 사실이었고, 어제의 또렷한 기억으로 감점이 있지 않았다. 고로,

 

“이게, 뭔 개소리야..?”

 

마른 하늘에 날벼락, 대충 그런 느낌이었다. 게시판에 달린 큰 공고문을 중얼거리며 읽은 성우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재환에게 물어왔다. 옆에 서있던 재환은 어깨를 으쓱이며 어디서 주워들은 말을 주섬주섬 꺼냈다.

 

“국어가 잘못 알려준거래. 자습서에 있는 내용이 맞대. 왜 당일부터 난리였잖아. 자습서랑 쌤 필기랑 다르다고.”


 성우는 반쯤 벙 찐 상태로 재환의 말을 들었다. 가끔 말이 안돼는 소리를 들으면 사람들이 웃음을 내뱉곤 하는 것처럼, 성우는 헛웃음이 나올 것 같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니 그러면 상식적으로 복수정답으로 처리해줘야하는거 아니야?”

“황민현이 3번 골랐대.”

 

아, 제길.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단박에 행간을 알아챈 성우가 황당한 표정으로 어깨에 짊어지던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선 가방 속 시험지를 찾았다. 급히 가방 지퍼를 여는 손이 자꾸 엇갈려 나간다. 다급한 손길 아래에 어질러진 성우의 물건이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성우가 난잡한 책들 사이로 시험지를 꺼내들었다. 불행하게도 시험지는 정직하게 5번이라 답하고 있었다. 

성우가 3번 선지에도 고민의 흔적이 남아있는 시험지를 어그러뜨렸다. 재환이 구석탱이가 찢어진 시험지 위로 흔들리는 성우의 손을 확인하고선 곧장 성우의 눈으로 시선을 옮긴다. 자신의 감정을 그다지 드러내지 않는 성우의 눈이 어느 때보다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도 잘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은 조그만 감정변화가 드러나더라도 이런식으로 여실하게 드러나는 것이었다.

 

“..씨발..”

“...”

“..진짜.. 진짜 이 좆같은.. 하,”

 

욕을 하는 성우는 상당히 이질적이다. 재환뿐만아니라 그 사이에서 바라보고 있던 모든 인파가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이미 반쯤 이성을 잃어버린 듯 보이는 성우를 둘러싼 학생들이 누그러진 채 수근거렸다. 정답 변동의 원인이 황민현이라는 소문이 파다해지면서, 그에 대한 성우의 반응이 어떨지 다들 한창 궁금해있던 참이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성우의 모습은 흥밋거리로서 제격이었다.

재환이 쭈그려 앉아있는 성우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사방에서 수군거리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자신의 앞에서 떨리는 손으로 시험지를 쥐고 있는 성우가 더 중요했다. '좋은건 널리 나쁜건 홀로.' 재환의 철칙이었다. 

재환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성우에게 말했다.

 

“성우야, 일단 오늘 시험부터,”

“내가 지금 답 바뀌었다고 이러는거 같아?”

 

받아치는 성우의 말이 일반적이지 않다. 과도하다 못해 어딘가 나사가 풀린듯,

 

“아니, 야,”

“씨발 우리나라가 아무리 더러워도, 어? 학교가 이러면 안돼지. 안그래?”

 

성우가 쥐고 있던 시험지를 들고 떨리는 다리로 벌떡 일어서 두층 아래 있는 교무실로 향했다. 수많은 인파의 눈을 신경 쓰던 재환이 두리번거리며 성우를 말려보았지만 성우는 꿋꿋히 아이들을 밀어내며 걸어갔다. 

분노와 두려움이 담긴 성우의 뒷모습을 잠자코 바라보다, 재환은 다시금 쭈그려 앉아 성우가 내던지고 간 물건들을 가방 속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필통사이로 터진 컴퓨터 사인펜이 손에 묻어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하나 둘 가방속에 집어넣는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나마 잠잠했던 주변이 성우가 떠나자 점심시간이라도 된 듯 우렁차게 떠들기 시작했다. 저거 답 황민현 엄마가 바꾼거래잖아. 그럼 성우 엄마도 와야되는거 아니야? 야.. 너 몰라? 성우 엄마 돌아가셨잖아. 재환은 그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못한다.

 

세상은 이렇게 차갑다. 없는 자에겐 능력이 있어도 모든 걸 뒤집을 순 없다. 그게 어떠한 종류이든, 세상은 아직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이성적인 사고가 마비되기 시작하면, 말이 어떻게 나오더라도 후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성우는 방금 자신이 어떤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으면서도 머리 속에서 거품처럼 생성된 고민은 빠르게 녹아내렸다. 감성이 지배를 하는 순간부턴 머릿속에서 명령을 내린다. 그런건 이따 생각해도 괜찮아.

계단을 내려가며 성우는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엄마가 있었더라면, 적어도 이 학교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줄수 있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보다 학교란 곳은 관료적인 체제가 철저하게 돌아가는 곳이었다. 아이들의 서열은 곧 어머님들의 서열이었고, 엄마들은 아이들이 얻어낸 권력으로 주변 엄마들을 다스리는, 학생의 성적과 엄마의 위상은 떨어놓고싶어도 떨어뜨릴수 없는 곳이 학교다. 그 이야기는 황민현의 엄마가 근거 삼아 하는 이야기에 토를 달 수 있는 엄마들은 사실상 없다. 부가적으로 학교에선 철저하게 아이들의 서열을 지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수반한다. 대입과 직결적으로 연결되어있는 문제였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재환의 엄마가 민현의 엄마와의 친분 덕분에 어떠한 수로든 이렇게까지 상황이 흘러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우는 알고 있었다. 재환의 답은 3번이었다. 어제자로 자신의 상식과 선생님의 필기가 엇갈리는 그 원인의 문제에서 성우는 재환에게 물어봤더랬다. 재환과 엇갈렸던 답에 느껴야했을 불안감 또한 잊지 않고 있었다.


성우가 마지막 계단을 내려가기 위해 코너를 돌며 시험지를 펼쳤다. 상처를 만지면 통증이 따라온다는 것을 알음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계속 만지는 것처럼, 성우가 기가막히게 5번이라 선택한 자신의 과거를 욕하며 시험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빠르게 움직이는 발이 어지간히 떨려온다. 교무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서 소용돌이 치는 심장이 더 크게 휘몰아쳤다. 쿵쿵, 모든게 제어가 되지 않는다.

수없이 선생님들과 많은 대치를 일으켜보았다지만, 이렇게까지 주체못할 감정이었던 적은 없다. 교무실에 들어서서 자신이 무슨 말을 꺼낼지 성우 스스로도 장담할 수 없었다. 진정하라고 스스로에게 외쳐보았지만 발이 멈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서글펐다. 자신의 의견을 내세워줄 사람이 이 주변에 하나 없다는 것이. 제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자신이 혼자서는 이 학교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증거가 마치 자신을 보라는듯 눈 앞에 있는 시험지에 있다. 성우가 문제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걸음의 속도를 높여 이젠 뛰다시피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서러움, 슬픔, 분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빠르게 돌아가게 했다. 


그리고 성우는 곧 자신이 그랬던 것을 후회한다.

 

쿵- 쿵, 쿵.

 

시험지에 가려진 시야 사이로 묵직한 충격이 성우의 몸에 가해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시험지가 구겨지는 소리와 함께 성우는 내려오던 계단으로 미끄러지듯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 통증이 곧이어 자연스레 따라온다.

자신의 엉덩이를 문지르며 성우가 찌푸렸던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순간 마주한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가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을. 

깰수도 없이 단단하고 높은 벽을, 자기 혼자서 올라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며 괜한 짓을 했다는 것이었음을.


 

듣기조차 거북한 충격의 소리가 성우의 눈 앞에서 들려오고, 교무실 앞으로 엎어진 익숙한 인형이 보였다. 정지됬던 사고가 이제는 형체조차 알아버릴 수 없게 부셔지기 시작한다.

성우의 본능적인 곳 어딘가에서 외쳐댔다. 일어나. 일어나란 말이야. 일어나 당장. 

그러나 계단 5칸 아래에서 엎어진 그 인형은, 떨리는 성우의 입처럼 바람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초단위로 느껴진다. 한초 한초가 지나갈때마다, 아우성이 커지고 풍선이 터질 듯 머리 속이 어지러워지고 속이 메스꺼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게 무너져 내리는건, 그때부터였다. 눈 앞에 엎어져 있는 황민현의 몸 어딘가로 부터,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성우의 사고가, 이성과 감정을 모두 상실한 채 어디론가 휴거해버리는 기분이었다.

 

일진이 사납다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성우의 잔류한 생각들이 말한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을 때 알아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일은 이런식으로 더 크게 진화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현실이, 기대와 설렘이 성우의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하고, 시험이 끝나면 잠깐이라도 누릴 행복에 웃음이 났던, 불과 어제만 해도 그랬던 기억이. 그런 행복이 깨지는 것은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이렇게나 빠르다. 

성우의 손끝이 불과 몇 분 전보다 더욱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불행은 예견한대로 오지 않으며,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해일처럼 몰려오는 것이었다. 인간사가 그렇다.

 

 

 

 

인간연고 08

냥연

 

 

 

 

살면서 큰 사고를 당해본 사람은 알 것이었다. 차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순간에도, 피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 다는 것은 아무 이유가 없을리 없었다.

 

성우가 떨리는 몸으로 주저앉아 손톱을 물어뜯었다. 손 끝 어딘가로부터 살점이 떨어져나와 피가 맺히기 시작했지만 그 시큰한 느낌조차 떨리는 바람에 잘 들지 않았다. 눈 앞에서 쓰러진 황민현을, 어떻게 해야하는데, 어떻게 해야하는데. 자신이 뭔가를 해야하는데. 생각은 거기에서 더 이어지지 않았다.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죄책감이 닥쳐오기도 전에 두려움이 우선적으로 몸을 잔뜩 감싸왔다. 당황한 마음은 두려움을 만나면서 몸의 온도를 잔뜩 높여놓기 시작했다. 성우는 이 상황과 더불어 마음에서 소용돌이 치는 감정이 두려웠다.

 

누군가 심장에 돌을 전력으로 던진 듯, 모든게 정지했다. 움직이라는 거라곤, 눈앞에서 흐르는 누군가의 피밖에 없었다.

 

성우가 떨리는 몸을 일으켜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귓가로 시험 시작을 예고하는 예비종이 울려왔다. 그 공포스러운 종소리에 성우의 머리 속이 탁해져왔다. 무엇이 우선이어야 할지 조차 이제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성우는 교무실이 코앞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힘겨운 다리를 이끌어 4층으로 향했다. 다니엘. 다니엘이었다. 당장 머리 속에 떠오른 사람은 다니엘이었다. 어느 순간에도,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다. 다니엘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다니엘.. 다니엘..”

 

사경을 해메는 듯한 목소리가 한 이과반 안으로 퍼진다. 시험 준비를 하는 고요한 교실 사이로 섬짓한 문소리가 들리고, 성우는 문고리를 부여잡은 채 눈으로 다니엘을 찾았다. 아이들의 시선이 어떻게 얽혀오는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삿대질 하며 감독선생님이 큰소리를 쳐오지만 그 소리마저 먹먹하게 귓가로 먹혀들어갔다.

 자신의 눈이 찾는 사람을 발견하기도 전, 누군가가 성우의 팔목을 채고선 교실을 빠져나온다. 팔이 우선적으로 끌리고 어깨가 놓치지 않으려는 듯 이끌려나왔다. 자신의 앞에서 자신을 끌고 가는 익숙한 넓은 등에 성우가 잃을 것 같은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았다. 귓가가 웅웅거려서 다니엘의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와, 와 그러노 성우야. 무슨 일인데.”

 

자신의 두 팔을 잡고 물어오는 다니엘에게 성우는 입술이 떨려와 아무 말을 할수 없었다. 성우는 그저 다니엘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2층으로 향하는 길이 천리마냥 멀다.

 

“..저..저...저..”

 

2층 계단이 끝나는 지점과 교무실 사이, 적지 않은 면적으로 빨갛게 물든 바닥에 다니엘이 뛰어들었다. 말을 더듬으며 민현의 몸을 일으켜보고자 하는 다니엘의 손길이 저와같이 파들거렸다. 성우의 눈동자 안으로 다니엘의 흰 와이셔츠와 교복바지가 빨갛게 물들어간다. 다니엘은 민현의 상체를 두 손으로 들어오며 민현의 의식을 확인해보지만, 곧 의미 없는 짓임을 깨달았다. 

잔뜩 피로 범벅이 된 두 손으로 민현을 잡은 채 다니엘이 어떻게 된것이냐는 듯 성우를 쳐다보지만 성우는 그저 땅에 발을 붙히고 서있을 뿐이었다. 송장처럼 서있는 성우의 표정이 햇빛으로 인해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다니엘은 알수 있다. 성우의 볼 언저리로 반짝거리는 것이, 성우의 공들인 성을 무너뜨리는 것을.

 

“..다니엘, 다니엘, 나는, 나는 내가.. 내가, 그러려던게 아니라.. 다니엘..”

“...성우야 이리와서 야 좀 붙잡아라. 괘안타.”


성우가 손거스러미를 거슬리게 뜯는다.


“..내가.. 내가, 그러려던게 아니었어 다니엘.. 나는.. 나는, 못봤어.. 나는..”

“..괘안타 성우야. 그러니까 와서 야 좀 잡고 있어라.”

“...내가, 내가 잘못했어. 내가.. 내가 민현이를 밀었어.. 내가.”

“쫌! 와 잡고 있으라고! 성우 니 잘못 아이니까!”

  

성우의 머리 속으로 몇일 전의 기억이 스친다. 오고가는 대치 속에서 결국 언성을 높이고 말았던 다니엘, 그리고 박차나오려하던 자신까지. 혼란스러운 기억이 성우의 머리를 잔뜩 헤집어놓았다.

성우가 결국 주저앉아버렸다. 무릎을 쭈그린 채 자신의 머리 칼을 잡아뜯어오는 성우의 손길이 날카로웠다. 다니엘은 자신이 소리지른 것에 대해 곧바로 후회했다.

 

복도 한복판으로 다니엘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불특정한 누군가를 부르는 다니엘의 목소리가 성우의 귓가를 스쳤다. 귓가로 닿는 계단 손잡이가 지나치게 차갑다. 시험을 알리는 종소리가 다시 한번 울렸다. 그 무거운 종소리에 성우가 생각한다. 다니엘의 목소리가 섞여들어오면서 잔뜩 어질러진 머리 위로 성우가 귀를 틀어막았다.

 

세상이 무너져내렸으면 좋겠다.

 

 

 

 

 

 

 

 

 

 

 

 

 

 

 

 

병원 특유의 의약품 냄새가 다니엘의 코를 찔러왔다. 모든 일이 오늘따라 너무 순식간이라 어떻게 지나쳐왔는지 기억이 아물했다. 굵은 다니엘의 목소리가 복도로 퍼지며, 아이들 어른들 할 것 없이, 교실과 교무실에서 뛰어나왔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반으로 돌려 보내며 시험을 진행시키고자 바빴고, 몇몇 선생들이 다니엘을 도와 황민현을 부축해서 병원으로 향했다.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진지 30분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다니엘은 새삼 놀라며 병원 침대에 몸을 얹혀왔다. 아침부터 무슨 날벼락인지, 몸이 잔뜩 지쳐왔다.

 

생각이 자연스럽게 성우에게 닿았다. 분명히 아이들은 보았다. 엎어져있는 민현의 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성우의 굳은 몸을, 보았을 터였다. 다니엘은 그 사실로서 성우에 대한 걱정으로 머리가 가득차기 시작했다. 다친건 분명 황민현인데 어째 걱정은 자꾸 성우에게로 향했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미비한 죄책감에 다니엘이 마른 세수를 했다. 

아침 9시인데 몸과 정신은 마치 저녁 9시같았다. 자신의 앞에서 링거를 맞으며 누워있는 황민현의 얼굴이 창백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복도를 잔뜩 깔은 피는 머리쪽에 난 기다란 상처로 인한 것이었다. 뇌검사 결과가 나오면, 이 불행의 척도가 어느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눈앞으로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바쁘게 지나다녔다. 삐,삐- 뚜뚜- 와같은 의료 기계 소리가 저 멀리로 아득히 들렸다. 응급실의 풍경은 아침이나 밤이나 크게 다른 것이 없다고 다니엘은 생각했다.

 

“다니엘, 네가 처음 발견한거니?”

“..아니요.”

 

맞은편에 앉아있던 윤리 선생님이 물어왔다. 항시 인자한 표정으로 아이들의 인사를 받아주시던 표정이 이 순간만큼은 한숨과 함께 근심으로 가득차보였다. 다니엘은 ‘네’라고 대답하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짓이겨 눌렀다. 성우를 지키기 위해선, 역설적이게도 이 순간에 거짓말을 해서는 안됐다.

 

“..성우인거지?”

“...”

 

다니엘이 대답 없이 민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무엇인가 터질듯한 이 평안한 고요가 폭풍전야같다.

 

수액이 빠르게 떨어지던 것을 보던 다니엘이 자리에서 일어나 수액이 떨어지는 속도를 조정한다. 투명한 액체가 속도를 늦추며 민현의 왼팔로 스며들었다. 다니엘은 떨어지는 수액을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쌤, 성우 잘 아시죠.”

“...”

“성우, 일부러 그런거 아인것도 알잖아요”

 

쌤이라면 알으셔야죠. 다니엘이 뒷말을 삼켰다.

 

저의 앞에 있는 선생은 다니엘의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과에서 배우는 한과목의 사회탐구가 윤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성우와 대화를 나누면서 윤리과목중에 ‘생활과 윤리’와 ‘윤리와 사상’이 어떻게 다른지 성우가 자신에게 설명해주며 자연스레 눈 앞에 있는 이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 해준 적이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몇 안돼는 선생님이라고, 가끔 찾아가면 맛있는 것도 주시고 무엇보다 삶의 지혜가 많으신 분이라고, 성우는 이야기했었다. 그 덕에 다니엘은, 모르는 선생님임에도 불구하고 윤리 선생님을 만나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었더랬다. 성우가 존중하는 모든 것들은, 같이 존중해주고 싶었다.

 

“성우가 다니엘을 많이 좋아하더구나.”

“...”

“오늘만 해도 그런 것 같고.”

 

남에게 듣는 너의 이야기는 어쩐지 쑥스러웠다. 그게 다니엘 자신에 관한 것일때는 더더욱 그렇다. 다니엘이 애꿎은 자신의 손가락을 만지작 거리며 민현의 얼굴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이마쪽에 15바늘이나 꿰멘 상처가 보기만해도 깊고 따끔하다. 넘어지면서 어디엔가 심하게 부딪힌 것 같다.

 

“누군가의 의지를 받는 다는 것은, 굉장히 값진 일이면서도,”

“...”

“때론 대가가 따르기도 한단다.”

 

성우가 말했던 윤리 선생의 ‘지혜’가 무엇인지, 대충 알 것도 같다. 다니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 닮은 듯 다르다고 윤리 선생은 생각했을 것이다. 두 아이가 외적으로 관심이 주목되는 것은 공부를 잘한다는 점, 그 공통점이 있었지만, 적어도 선생이 생각하기엔 그것은 부가적인 요소일 뿐이었다. 다른 듯 가장 닮은 둘. 고작 다니엘과 이야기를 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 처음이었지만, 반듯하고 정석적으로 교복을 입는 성우와, 넥타이 쯤은 필요도 없는 듯이 풀어헤친 다니엘의 복장에 있어서, 조곤조곤한 말투로 사뿐한 웃음을 건내오는 성우와, 조금은 건들건들 거리며 자신이 어른이 된 것처럼 구는 다니엘에 있어서도, 둘의 외적 요소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어쩌면, 다니엘이 어른마냥 구는 말과 행동들이, 이질감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다니엘이 진짜 어른보다도 더 어른스러워서일까. 다니엘을 보고 있자면 선생은 성우가 이따금씩 상담을 해오며 내보이는 깊은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애와 어른 사이. 19살은 그런 나이였다. 사춘기 시절 상처들을 아물어가며, 갈피를 잡아가는 평범하지 않은 곳에서 평범해져가는 시기. 둘은 다른 또래 아이들보다 어른에 더 빨리 가까워져 있다고 선생은 생각했다.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을 선생은 안다. 아픔이 많은 사람이 더욱 빨리 성장한다는 것을, 선생은 잘 안다.

 

“쌤요, 지는요.”

“...”

“야가 좀 숨 좀 쉬었음 좋겠어요.”

“...”

“야 보고 있음, 지까지 숨막혀요.”

 

다니엘이 민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투정부리듯 말하는 말투 속에서도 다니엘의 말이 잠겨왔다. 선생은 그 곳에서 비로소 한가지의 공통점을 더 찾는다. 다니엘과, 성우 그 사이에 존재하는 공감능력의 교집합에 대하여. 

톡, 톡 수액이 떨어지고 째깍째깍 응급실 시계가 돌아간다. 오늘 처음 경험하는, 여유로운 시간의 흐름이었다.

 

 



 

 


 

 

날카로운 구두 소리가 저멀리서부터 들려왔다. 다니엘은 얕은 수면 속으로 들려오는 구두소리가 점점 커지자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조용하던 응급실이 잠깐이나마 한적한가 했더니 이내 소란스러워지며 평범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니엘은 얼굴을 찌푸리며 소음의 원인쪽을 바라보았다. 간간히 들려오는 황민현의 이름에 다니엘은 화려하게 보이는 저 여성이 민현의 엄마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

 

“도대체 누가 그런건데요?!”

“..어머님 우선 진정하시고,”

“우리 민현이 시험 못본거 어떻게 하실건데요? 애 대학 떨어지면 선생님이 책임지실거세요?”

 

잘산다더니, 잘산다고 죄다 교양이 있는건 아닌지 앙칼진 목소리가 응급실 전역에 울려퍼졌다. 다니엘은 어느 부분에서 부모애를 느껴야하고 아닌지 헷갈려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의 아이의 일이라면 모든 부모가 이 상황에서 예민하고 화를 내는 것이 당연했지만, 다니엘의 앞에서 민현을 끌어안아오는 이 부모는 무엇이 우선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우선, CT 촬영했구요 어머님, 머리에 상처가 꽤나 크게 나서 응급조치 했습니다.”

 

CT, 바느질 과같은 무서운 말이 들려오자 민현의 엄마는 그제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 보였다. 민현의 머리를 들추며 이거 흉지면 어쩌냐고 눈물을 보이며 호들갑을 떨어오는 모습이, 영락없는 대한민국 엄마들의 모습이다. 작은 흉터만 나도 연고를 발라주며 펑펑 우는 사람이 부모라는 사람들인데, 이마를 들췄을 때 민현의 엄마가 무슨 감정을 느꼈을진, 예상하기도 힘들다.

다니엘은 그런 모습을 보며 자신의 엄마가 통념적인 부분에선 핀트가 엇나간 엄마가 아닌가 생각했다. 살아오면서 크게 다쳐본적도 없고, 끽해야 축구하면서 나는 찰과상이 전부였지만 만약 내가 이렇게 다쳤다면, 우리 엄마는 어떻게 행동했을지, 다니엘은 궁금하면서도 알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모친이라면 안 봐도 비디오였다. 분명, 민현의 엄마처럼 시끄럽진 않더라도, 아마 선생이 먼저 자신의 상태를 보고했을 것이다.

 

“네가 다니엘이니?”

 

물기 속에서 가꿔진 목소리가 다니엘을 향해 들려왔다. 눈물로 화장이 번진 와중에도 자신을 재는 눈빛으로 훑더니 민현의 엄마가 두어번 헛기침을 했다. 어디서 들었는진 모르겠지만 민현을 부축해서 병원에 온 사실을 아는 듯 싶었다.

 

“고맙구나.”

 

모든 부모는 자신의 자식을 위해 자존심을 굽힐 줄 안다. 다니엘은 그저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생색을 낼 마음은 일절 없었을뿐더러 자신을 재는 저 여자의 눈빛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다만 그 네글자 속에서는, 민현을 위한 진심이 느껴져서 다니엘은 잠자코 있었을 뿐이었다.

 

“나중에 어머님 모시고 밥한끼 대접한다고 전해드려라. 내가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라.”

“...”

“..그리고 심화반 건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겠어”

 

산통을 깨는 여자의 말에 다니엘의 표정이 다시금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이 아줌마야, 딱 그 전까지가 좋았다. 무엇이 우선인지 이 여자는 확실히 모르고 있다.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려다 도로 집어넣었다. 아마 저런 여자랑 함께하는 식사자리는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더군다나 애초에 다니엘이 자신의 엄마한테 연락할 일이 있지 않을 터였다.

다니엘은 아무것도 있지 않고, 고작 가진게 잘난 아들과 돈많은 남편인 자신의 앞에 있는 여자를 진심으로 동정했다. 자식이 다친 와중에도 그 다친 자식의 등에 엎어 권력을 행사하는 그 여자를, 다니엘은 진심으로 동정했다. 동시에 머리 속으론 자신의 모친이 둥둥 떠오른다. 다니엘은 눈 앞의 민현 엄마와 자신의 모친 사이의 차이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했다. 아, 적어도 자신의 모친은 저를 방치하면 방치했지 다자신에게 엎혀있진 않았다.

다니엘은 의미모를 안도감을 느낀다.

 

세상은 외적인 요소만을 가지고 수준있는 내면을 드러낼 수 없다. 그것은 고작 백조인척하는 거위에 불과하다. 거위도 백조처럼 똑같이 울 수 있지만 결코 백조가 되지는 못한다.

 

다니엘이 마음을 고쳐먹고선 말을 꺼냈다. 이젠, 모든 생각이 성우중심으로 돌아간다. 언제 이렇게 커져버린 것인지, 다니엘은 이 상황 속에서도 끼어드는 성우의 생각에 어이 없는 웃음이 났다.

 

“그런거 필요 없고요,”

“...”

“성우, 일부러 그런거 아이니까,”

“우리 민현이 성우가 밀쳤니? 어머 선생님, 어쩜 그런걸 그렇게 숨기실 수가 있어요?”

“아이니까!”

 

다니엘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 내 소리 안지르기로 했는데- 다니엘이 눈을 지그시 감으며 지금쯤 복잡한 마음일 성우에게 속으로 속삭였다. 미안타 내 한번만 더 소리 좀 질렀다 성우야.

윤리선생과 민현의 엄마가 동시에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도무지 이 여자는 평생 상대하고 싶지가 않다고 다니엘은 생각했다. 천천히 떠진 다니엘의 눈 속으로 억압된 분이 이글거렸다.

 

“아이니까, 성우 가만히 냅두라고요.”

 

민현의 엄마가 벙찐 얼굴로 다니엘을 쳐다보며 어물쩍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이 발길을 옮겨 응급실을 빠져나갔다.

 

가끔은, 저 건들거리는 다니엘의 모습이, 해결책이 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윤리선생은 깨닫는다.

 

 

 

 

 

 

 

 

 

 

 

부모가 아이를 지키는 것과 같이, 그 정도는 아니어도 누구든지 자신의 사람을 지켜야 할 상황 속에선 강해지곤 한다. 다니엘은 오랜만에 보는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 이렇게나 이질적일수가 없다. 늘 남들 앞에선 해맑은 웃음만을 보여주는 것이 다니엘이 선을 긋는 방법이었지만 상황이 막상 이렇게 닥치면, 다니엘은 다른 모습으로 선을 긋곤 한다. 그 모습이 스스로조차 지나치게 간만이여서, 가끔 이럴 때 다니엘은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혼란이 오곤 했다. 책임감은 사람을 강하게 했다.

 

언젠가, 자신이 또 한번 이랬던 적이 기억속에 남아있다. 중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 학급 회장을 맡았던 자신의 반에는 연약한 남자애가 있었더랬다. 한번은 옆반 패거리가 그 연약하고 키도 덜 큰 아이를 폭행한적이 있었는데, 그 순간 다니엘은 느꼈었다. 가슴 어딘가로부터 피어오르는 가소로움과, 분노. 그 어린날에 기억에 다니엘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후일담은 그렇게 깔끔하지 않았다.

 

다니엘이 차가운 울타리를 두손으로 잡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병원 옥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 좋게 선선했다.

 

글쎄, 생각해보면 이게 과연 저의 어떤 모습일까, 다니엘이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져본다. 원체 긍정적이고, 지나간 것에 연연하지 않기에 살아가면서 과도한 분노를 자주 가지지 않는 다니엘이었다. 그런만큼 간혹 튀어나오는 그 형태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어쩌면, 이런 모습으로 선을 긋는건 남들이 싫어하니까, 남들이 피하려하니까, 아예 역방향으로서 평상시엔 웃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보고싶다.”

 

성우야.

 

중얼거리는 다니엘의 말이 꾹꾹 눌려 진심이 가득하다. 자신이 누구인지 마주하고 싶을땐, 늘 그렇듯 성우가 머리 속으로 떠오른다. 성우는 다니엘에게 있어서, 그런 누구도 갖지 못할 불가항력적인 힘이있다. 스포츠보다도 더한.

 

19살, 환절기 어딘가. 그 속에서 찾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성우의 존재는 다니엘에게 필연적이다.

 

 

 

 

 

 

 

 

 

 

또로록 울리는 도어락 소리에 성우가 식탁의자에서 튕겨나오듯이 일어났다. 곧이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다니엘의 숙인 어깨가 보였다. 성우는 얼음장처럼 가만히 서서 다니엘이 신발을 벗고 어서 자신에게 와주길 기다렸다. 다니엘의 교복에 얼룩진 피자국들에 성우의 숨이 멎는 듯 했다.

 

“성우.”

 

다니엘이 천천히 성우에게 다가오며 두자의 이름을 부른다. 성우는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서 성우만이 보낼 수 있는 눈빛으로 다니엘을 쳐다본다. 어깨가 잔뜩 가라앉은 다니엘의 모습이 성우의 마음 한켠으로 미안한 감정을 잔뜩 쏟아내게 했다. 얼마나 지쳤을지, 얼마나, 오늘 하루가 길었을지. 성우가 가만히 서서 다니엘의 지친 하루의 무게를 받아낸다. 

창밖으론 어느새 어둑어둑 해가 져간다. 그 사이로 자신에게 뛰듯이 다가오는 다니엘의 모습이 영락없이 풀죽은 강아지같다. 그래서 성우는 더 미안했다.

 

“..내 함만 안아주세요.”

 

팔을 벌리며 다가오는 다니엘에 성우가 나올 것 같은 울음을 꾹 참고 다니엘의 등을 감았다. 어떻게 됬는지 성우는 먼저 묻지 않았다. 그 말 한마디로, 다니엘을 생각하는 자신의 태도가 가벼워 보일 것 같았다. 

오늘 성우가 느껴야 했을 말로 표현 못할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담담함. 감정의 소용돌이가 가라앉고 나서부턴, 황민현도 황민현이지만 다니엘이 걱정되기 시작했더랬다. 자신이 잔뜩 망가뜨린 상황에서, 자신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세상까지 망가뜨려버린 다니엘이었다. 성우는 다니엘까지 블랙홀로 끌여들인 것으로부터 죄책감에 휩싸였다.

 

다니엘이 성우의 목 언저리로 고개를 비벼왔다. 그 행동에 성우가 뚝하고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을 간신히 참았다. 대롱대롱, 끝끝내 성우는 눈물을 떨구지 않는다. 코  끝으로 다니엘의 향이 잔뜩 퍼져온다.

 

우리 싸울 때 그런 생각했었잖아 다니엘. 한쪽이 한쪽에게 무너지면, 우리의 세상이 무너져 버리고 말거라고.

 

성우는 울음을 참아야만 했다. 모든걸 너에게 떠넘겨버린 순간에, 자신을 위해 모든 파편을 다 맞아줄 것이라 생각했던 성우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다니엘은 그런 사람이었다. 

너에게 모든 걸 떠넘기며 무너지지 않기로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이순간만큼이라도, 자신이 다니엘에게 기댄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작은 마음으로 기대오는 다니엘을 위해, 성우는 눈물을 참아야만 했다. 

단연 다니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만큼은 성우가 울지 않기를, 속으로 간절히 바랬을 것이다. 휘청이는 모든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붙잡은 손을 놓지 않기 위해서라도.

 

“민현이, 깼다.”

“...하아.”

“가벼운 뇌진탕이라칸다.”

“...”

“더 봐야되긴 하는데, 한시름 놔도 된다.”

 

성우가 다니엘의 어깨에 얼굴을 묻어왔다. 덮쳐오는 안도감도 잠시뿐임을 성우는 알았지만, 지금만큼은 그저 오늘 하룻동안 눈앞의 모든 걸 방패삼아주었던 이 사람에게 느껴지는 감사함이, 얼마나 큰지 만끽하고싶다.

 

“..애들이,”

“괘안타.”

 

막 나오려는 성우의 말을 다니엘이 빠르게 끊어버린다. 잔뜩 내리깐 다니엘의 목소리가 듣기좋다. 성우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다니엘의 허리를 더욱 강하게 감았다. 이 품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서있을수 있었을지 생각만으로 감당이 되지 않는다. 서로의 숨소리가 적막하게 오고갔다.


괜찮지 않다는걸 성우와 다니엘 둘은 전부 알았다. 다가올 시련이, 얼마나 클지도. 성우가 받아내야할 소문과 비난의 수준이 어느정도일지도 아직 몰랐다. 그렇지만 그것에 대해 지금만큼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모든 세상이 손가락질 하는 순간에도, 단 한사람이 자신의 진실된 상황과 마음을 알아준다면 이겨내지 못한다고 한들, 버텨낼 수는 있다. 성우가 눈을 감았다. 내일 학교를 어떻게 나가야할지, 보이는 시커먼 세상이 감은 눈처럼 아득하다. 

지금 바라는 건, 얼만큼 더 길게 태풍이 휘몰아칠지 모르더라도, 그것이 끝나고 나면. 그것이 전부 지나가고나면. 그저 다니엘과 함께했던 맥주 두캔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다. 단지 원하는 건 그것 뿐이다. 누구든지 나락으로 자빠지면 이렇게 된다. 시험문제, 그깟거 틀려도 된다.


그날은 벚꽃이 모두 떨어져,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짓밟히기 시작했던 날이었다.

폭풍전야이자, 최후의 만찬이었다.






보고싶다. 각자의 공간에서 외치는, 나지막한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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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발행 18.05.05 / 23:52 Pm

재발행 18.07.16 / 12:33 Am


정신없죠.. 네.. 저도 정신이 없네요... 뭐 어떻게 어떻게 여기까지 써왔네요..헣

재환이 현실이랑 가상캐릭이랑 간극 어쩔꺼야.. 하지만 재환이의 진지가득한 컨셉도 저는 응원합니다★...


구독 댓글 하트 늘 감사합니다. 



-Edit Comment

성에 차지 않지만, 처음 쓴 그 느낌이 또 간직하고 싶어서 쉽게 손 댈 수도 없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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