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튀어 나가서 저 애송이들을 다 패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그저 충동일 뿐이었다. 이미 그는 충동적으로 행동해서 말아먹은 경험이 풍부했기에 가까스로 이성을 붙잡았다.

그는 근접전투는 젬병이었다. 저격이라면 또 몰라도.


하지만 경찰서 앞에서 총질이라니.

와서 잡아가라고 시위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그가 속한 조직, 아이깁투스는 현재 작센에 잠입해 있는 상황.

이 임무를 나가기 전에 클라인님이 몇 번이나 강조했던 부분이었다. 절대 작센 공권력과 부딪히지 말 것.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헨리가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휴식시간이 끝났는지 애송이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 중 한 녀석만이 남아 담뱃대에 불을 붙이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태연히 그에게 걸어갔다.


“이봐.”

“?! 뭐야, 누구냐!”

“워, 수상한 사람은 아냐.”


훈련 받은 경찰은 맞는지 총으로 위협하는 모습에 헨리는 그 특유의 느긋한 표정과 제스쳐로 그가 적이 아님을 피력했다.

확실히 지금 그의 모습은 돈 좀 있는 자제가 산책 나온 듯한 모양새였다.


“신원을 밝혀.”

“빡빡하네. 이곳으로 오라고 했다고. 그 여자가.”

“여자?”


헨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 뭐냐, 슈미츠라고 했던 것 같아.”

“하, 이젠 남자까지 불러들이다니. 그래서 넌 뭐야. 남창이라도 되는 거냐?”


경멸이 가득한 녀석의 얼굴에 당장이라도 주먹을 질러 넣고 싶었지만 헨리는 능숙하게 표정을 숨겼다.


“그런 실례되는 말을. 난 그냥 여성분들의 즐거움을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라고.”

“쯧, 아무튼 네가 뭐던 간에 이곳은 일반인들은 출입할 수 없어.”


그는 어느새 헨리를 향해 겨누던 총구를 아래로 늘어뜨렸다.


“출입하려는 게 아냐. 그 아기새가 두고 간 게 있어서 전해 주려는 것뿐이지. 내가 못 들어간다면 불러주었으면 하는데.”


슈미츠가 들으면 기함을 토할 별칭을 붙인 헨리의 모습에 경찰대원의 얼굴에는 짜증이 서렸다. 당연히 그녀를 부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던진 말이었다.


“물건을 주면 전해주지.”

“흐음, 그쪽을 어떻게 믿지?”

“뭐?”


헨리는 턱을 살살 긁으며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중요한 거라고. 당신이 중간에서 가로채면 어떻게 해?”


나른한 말투와 요사스럽게 휘어지는 눈매에 잠깐 시선을 빼앗긴 경찰대원은 멋쩍은지 헛기침을 했다.


아항.

이 녀석 쉬운데?


헨리는 눈웃음을 살살 치면서 그에게 한걸음 다가갔다.


“난 별 다른걸 하려는 게 아냐. 그저 그 여자가 두고 간 물건만 전해주고 바로 나올 꺼야. 잠깐 안내만 해주면 되는데.”


어느새 그에게 바짝 다가선 헨리는 그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아?”





헨리는 생각보다 서에 쉽게 들어섰다. 사실 완력으로는 이 녀석 하나도 감당하기 버거웠기에 그로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그가 자신의 허리춤이나 목선을 훑어 내리는 더러운 시선만 참아낸다면 그럭저럭 버틸 만 했다.


“저기 두 번째 문이다.”


밤이 다되어가는 시각이었기에 최소한의 경비 인력만이 있었고 그들이 있는 복도는 그 둘뿐이었다.


“절대 내가 안내해줬다는 말은,”

“당연히 비밀이지. 고마워.”


마지막 서비스로 그에게 환한 미소를 선물한 헨리는 바로 몸을 돌려 무거워 보이는 문 앞에 섰다. 뒤에서 그가 이름을 물어왔지만 대강 손을 흔들어 대답을 대신한 그는 바로 문을 열었다.


“으아악-!”


문이 열리자 마자 들리는 비명.

서에 들어온 이후 쭉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헨리는 반사적으로 품 안의 무기를 잡아 빼 들었다.


아까 저 쓰레기들의 더러운 대화를 들었던 터라 안 좋은 쪽으로 생각이 튄 탓이었다.


급하게 들어간 안의 상황은 안 좋긴 했다.


“넌 뭐야?”


입에 나뭇가지를 하나 물은, 부시시한 머리의 남성이 헨리를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고 슈미츠는,


“으악, 배, 뱀! 헤르더님, 뱀!”

“윽, 슈미츠 내 머리는 좀-“


순간적으로 시선으로 느껴지던 압박이 사라졌다. 숨 쉬는 것을 잊을 정도의 압박감이었다.

등을 타고 흐르는 식은 땀에 헨리는 슈미츠를 보러온 자신의 선택에 처음으로 후회를 했다. 자신이 미쳤다고 어딜 찾아온단 말인가.

헨리가 땅을 파고 들어가건 말건 슈미츠는 뱀에 대한 공포감에 그저 헤르더의 목에 매달려 있는 중이었다. 슈미츠를 진정시키는 걸 포기한 그는 뱀을 찾아 밟아 죽였고 한숨을 쉬며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이제 뱀 없어. 좀 내려와라.”


귀 끝이 빨개진 채로 주섬주섬 내려온 그녀는 창피한 건지 그저 발끝만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부시시한 머리를 한번 긁적인 헤르더는 이내 다시 헨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넌 누구야.”


헨리의 머릿속이 팽팽 소리가 날 정도로 돌아갔다.

여기서 뭐라 답해야 할 것인가.

아까 경찰대원에게 썼던 방법은 씨알도 안 먹힐 것이고 당연히 진짜 정체는 안 된다.

자신은 그저 슈미츠를 한번 더 보고 싶어서,


‘보고 싶어서? 내가? 저 여자를?’


혼란스러움에 그저 애꿎은 입술만 물었다.

도무지 자기 자신도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 침묵의 대치 상태는 길어졌다.

그것을 깬 건 진정된 슈미츠였다.


“어, 넌.”

“…아는 놈이냐?”


헤르더의 물음엔 어느새 날카로움이 무뎌져 있었다. 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슈미츠는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벌써 깽값 받으러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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