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부상자와 사상자를 남기고 제국은 승리했다. 얼마나 많은 동료를, 전우를 잃었는가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이루어질 적절한 보상과 그저 사라진 그들을 잊어버리는 그들만이 남겠지. 기억속에, 역사 속에만 존재할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몸을 돌리자 승리를 자축하는 노랫소리가 귓전을 울려왔다. 막사에 불이 오르고, 취기에 오른 사람들이 서로를 얼싸안고 춤추는 것을 바라보다 느른히 눈을 감았다. 이것또한 그들이 슬픔을 이기는 방법이겠지, 하고선


“안녕히, 그리고 고이 잠드시길”


바람이 얼굴을 스치우자 베일이 바람에 흩날려오고 부르튼 손을 한 번, 곱게 정돈된 의복을 한 번 어루어 주어주곤 언제 그랬냐는 양 사라졌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또 정쟁에 휘말린채로 이리저리 몸을 사리며 권력층들의 눈치를 보겠지. 아비가, 어미가 나를 어찌 이용할지는 뻔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다가온 사람에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왜, 같이 즐기지 않고, 혼자 이리 나와있는겝니까.”


“그저, 흥이 나지 않을 뿐입니다. 승전했다고는 하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았습니까.”


 “그대는...”






***






“그대로 죽어 오라고 하질 않았느냐. 어찌 살아서 도착한것이냐!!”


신경질적으로 던져진 찻잔을 그냥 맞으며 가만히 그를 바라보자 그는 짜증난다는 듯 발 너머에 있는 나를 째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가만히 웃음지으며 뇌까려왔다. 


“...어머니께서는, 제가 승전을 하고 온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으시나 봅니다.”


“...”


“모두가, 황제를 칭송하더군요. 세상에 둘도 없을 강한 황제라며, 국격을 높인다, 고 이야기 하면서요. 왜요. 전쟁에서 제가 목숨을 쉽게 내놓을 줄 알았습니까? 제가요? 무슨 이유에서요. 어머니는 아직까지 저에대해 잘 모르시나봅니다.”


“이.. 이.. 건방진..!!”


낮게 웃음을 흘리곤, 마치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랑을 보듯이 그녀를 바라보다 이내 가볍게 몸을 움직이자 크게 당황한 그의 모습에 즐겁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잘 좀 대해주지 그러셨습니까. 그러면 그 사람이 목숨을 잃을 일도, 제가 굳이 사서 일을 벌려 전쟁에서 이기고 들어오는 일도, 없었을 터인데. 이젠 어쩝니까? 저는 당신이 그리도 아끼는 그아이보다 훨씬, 큰 신임을 가지고 있어서요. 게다가 가문의 이름을 드높이기까지 했으니, 아까워서 어째요.”


“뭐라?”


“이제 죽이지도 못하시니, 앞으로, 참 재미있겠습니다. 아, 이제 정쟁에 휘말리게 되려나요? 어찌되었건, 이젠 상관없는 일이니 아무쪼록 어머니께서는 그저 가만히, 은애하는 그 아이를 품에 낀채 조용히 살아가시면 되겠네요. 저런, 전쟁에서 죽은 목숨을 댓가로 그 아이에게 격이 맞지 않는 짝을 붙이시려고 했는데 정말, 아쉽게 되었지 뭡니까. 그 것으로 눈엣가시인 저도 치워버리려고 하셨는데요.”


“..!! 알고, 있었..?”


“모를리가요. 몇 년전부터 계속, 알고 있었답니다. 당신이 당신의 손으로 그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모를리가 없잖습니까. 아버지도, 가담했다는 것을요. 그럼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몇날 몇일을 밤을 새서 오는 바람에 여독이 많이 쌓였거든요.”


머리 위로 쓰여진 베일을 가만히 손가락으로 툭툭 치자 가벼운 바람이 치마폭과 베일을 스치우곤 가라앉아와 입술위로 미소를 띄었다. 그 사람이 내게 준 능력 중 하나였기 때문에 더욱 더 기쁘게 쓸 수 있었으니까.


“봐요, 바람도 이리 힘들다 아우성을 쓰고 있지않습니까. 자신이 아주, 힘들다고 하면서”


“너, 그 능력을 어떻게 손에 넣었지? 그건 이미 없어져야할 능력이거늘”


“글쎄요. 비밀입니다.”


의문에 빠진 그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또다시 습관적으로 웃음을 흘리곤 안채를 나섰다. 능구렁이 새끼 같으니라고






***




저잣거리에는 활기가 가득차있고, 어린 아이들은 저잣거리를 활보하며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상인들은 서로 자기네 물건을 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었고, 선비들은 저잣거리의 중심을 지나가는 기생들의 모습에 멍하니 바보같은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고있었다. 예인, 그들은 이 바닥에서 몰라주는이가 없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모든 정보가, 모든 재주꾼이 저 속에서만 존재하고 있으니, 그들을 무시할수도, 욕을 할 수도 없었다. 지금 내게 오고 있는 저 기생 마저도.


“그간 작고하셨습니까. 나리”


“물론입니다. 그대도, 잘 지내셨는지요”


그녀가 특유의 눈웃음을 걸치며 부채를 펴들곤 내게 속삭여왔고, 나는 그저 허허롭게 웃으며 그의 이마로 흘러내린 곱디 고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귀 뒤로 넘기곤, 부채를 빼앗곤,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어줄 듯 귀에 속삭이었다. 한복 특유의 사락거리는 소리가 치마폭에 얽혀 기분 좋은 소리를 내어 만족하면서.


“이런, 그리 재촉하지 않아도. 이 놈은, 승전기념으로 기방에 들릴 생각이었답니다. 그대. 오늘 시간 되시는지요.”


“나리가 기방에 오신다면야. 무슨 일이있어도 시간을 비워야 하지 않겠습니다. 기생 감국, 오늘 밤 나리를 오매불망 기다리지요. 무려, 전쟁 영웅 중 한 분이질 않습니까”


“그대, 제가 전쟁 영웅이 아니었다면 초대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이십니까? 이거 섭섭해서 어쩌면 좋을까요”


사뭇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그를 곤란하게 만드려 울상을 짓자 그는 답지않게 당황하며, 우물쭈물 얼굴을 붉히곤 말을 내뱉고는 부채를 내 손에서 다시 빼앗고 다른 기생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티 나지 않게 그 누구보다 조용한 발걸음으로 발을 옮겼다. 한 마리 토끼와도 같은 모습에 가만히 그가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다 근처에 서적이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제가 감히 나리께 그럴리가 없질 않습니까. 나리는 다른 잡것들과는 다른걸요.”






***







서적들을 바라보며 여러가지 자료를 찾아보다가 이내 실속없는 것들만 있어 한숨만 내쉬고 주인장을 불러 서양에서 들어온 새로운 춘화첩은 어디에 있나 이야기를 물어보니 주인장은 곧장 음흉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 팔을 툭툭치고는 눈썹을 꿈트린채 소매 밑단에 손을 넣더니 이내 서책하나를 내게 꺼내들었다.


“이게 바로 바로 서역에서 물건너온 춘화첩입니다. 나리” 


“흠, 글쎄, 그다지 탐나는 건 아닌 것 같군 그래”


“아이, 나리도 참, 왜 이렇게 답답하게 구신답니까. 이 책은 단골인 나리를 드리기 위해 제가 힘을 내서 구한거라는 걸 아시질 않습니까”


주인장이 짐짓 불쌍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더니 서책을 내품에 안겨주고는 잽싸게 몸을 돌렸다. 무섭긴 한가보지. 그 우스운 행태에 너털 웃음을 짓고 주인장을 향해 엽전 뭉치를 던지고 나서 품 안에 서책을 잘 숨긴 후에 책방을 나섰다.


“이제 어딜 다녀온다. 투전판이라도 가볼까.”


내게 있어 투전판은 그 어느것보다도 매력적인 정보들의 교환이 이루어 지는데다가 아무리 돈을 투자한다 한들 그 것의 배가되어 나를 찾아와 내가 매일 웃음을 지을 수 있게 하는 곳이었다. 정보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던 내게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져다 준 것이고, 내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고민이네”


그러면서 책방을 한참동안 서성이길 한참, 특유의 건들거리는 모습으로 저잣거리를 활보하다 시정잡배와 시비가 걸린 사백의 모습에 혀를 차고 그의 가까이에 다가갔다. 귀찮은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대상이 대상인지라 그에게 다가가야만 했다. 전우기도 한데다 그 사람의 소중한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리 부탁을 했었으니까


“사백, 여기서 뭘 하고 있습니까. ”


“이거, 우리 목단이 아닌가..! 아니 그게말이지, 여기 있는 이 분들이 내게 용건이 있다질 않나. 거, 투전판에서 큰 목돈 한 번 딴게 뭐그리 대수라고 여기 시전까지 찾아왔다고 한다네”


그의 말에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시정잡배를 향해 손을 휘젓자 그들은 내가 쓴 베일을 한 번 보곤, 실책을 저질렀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서 부리나케 시전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다 사백을 향해 몸을 돌려 그의 몸 이곳 저곳을 살피었다. 


“... 투전판입니까. 사백은 그런 것에 소질도 없으면서 뭘 그리 꼬박꼬박 도장을 찍고 다니는겝니까”


“거야, 목단이를 보러왔지. 전쟁중이었을 때는 그저 막사를 찾아가면 되었었는데, 종전을 하고나선 영, 시원찮은게 아닌가? 그래서 자네가 자주 머무르는 곳을 생각해서 자네를 찾으러 투전판에 뛰어들었지만, 막상 자네는 없고, 필요없는 쭉정이들만 있지뭔가. 그래서 그냥 투전판을 뒤집어 엎고 나왔다네, 잡배들이 쫒아올 때는 정말 큰 일이 아닌가 걱정을 했지만, 결국 자네를 만났으니 다행인 일이지”


“사백..”


내 손을 벌려 염낭을 쥐어주고서, 그 누구보다도 가벼운 목소리로 똑같이 생긴 다른 염낭을 허리춤에서 꺼내서 경단을 입에 베어물고 그 누구보다도 가벼운 어조로 노랫가락을 중얼중얼 이야기 하듯 이 것은 나에게만 주는 것이라 비밀스럽게, 허나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제 배도 고프고 하니, 저기 저 주막에서 삼계탕 한 그릇하지 않겠는가? 후식은 이 경단일세”


“삼계탕이요? 무슨 말도안되는 소리를 하십니까.”


사백은 닭 자체를 먹질 못하니, 어디에선가 비밀 이야기를 하자는 게 뻔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어떤 이야기를 어디에서 들었기에 이리 이야기를 하나 싶어 그를 응시하자 그는 아무것도 아닌양 표정을 꾸며내면서 어깨를 으쓱여왔다.


“에헤이- 이 사람도 참, 뭐 그런것 가지고 그러나”


“사백. 일단 이리로 오시지요. 그 곳에 있는 주막은 맛이 썩 좋질 못합니다.”


그의 손을 가벼운 힘으로 끌어당기자 맥없이 따라오는 그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져왔다. 연약하고, 다정한 그의 행동에 슬쩍 미소를 지으며 근처의 허름한 주막으로 이끄니 근처의 주모가 조용한 발걸음으로 방 안으로 안내했다.


“모든 것은 이리(二利)의 뜻대로”


“사라질터이니, 그대 이리(泥犁)에 빠져주게나”


주모는 아스라한 미소를 짓고 내게 양초 하나를 내밀더니 곧장 발을놀려 자취를 감추었고 사백은 그런 나를 조용히 응시하다 곧장 입을 열었다.


“곧, 우이(牛耳)가 궁합을 본다더군”


우두머리가 궁합을 본다. 영토의 확장을 하던 나라의 우두머리가 사람들과의 궁합을 보고, 장가를 든다는 의미였다. 궁합을 본다는 것은 자신의 사주단자에 맞는 사람을 찾는 다는 것, 곧 혼인을 하지 않은 관료대신들의 자식을 왕에게 올리고, 궁합을 보는게 뻔했다. 하지만 그의 또래라고 해보았자 겨우 3명, 폐하께서 어떤 선택을 하실진 모르겠지만, 자신의 어미와 아비는 유일한 자식이라고 믿는 아이를 보낼것이 뻔했다. 아니, 소중하기 때문에 더욱 보내지 않고 나를 보내려나. 웃음이 비집고 나와 베일 사이로 손을 넣어 웃음지었다. 어떻게 혀를 놀려야할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분을 선택하셨으면 좋겠네요”


“자네는.. 아무렇지 않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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