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처럼 데이트하고 돌아오던 길, 엘레나는 같이 한 식사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 조잘거리며 제 소감을 말했다. 윌은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당장이라도 끌어안고 종일 사랑을 속삭이고 싶었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그녀가 자신에게만 보여주는 표정 변화와 다채로운 언어들이 좋았다. 허나 이런 감정을 거르지 않고 표출하기만 한다면 그녀는 필히 당황할 것이다. 눈을 큼직하게 뜬 채 굳을지도 모르지. 그렇기에 윌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 하지 않았다. 그녀를 사랑하니까, 당신이 나로 인해 곤란하지 않았으면 하니까. 감정을 마구잡이로 표현하면 그녀가 자신을 싫어할까 봐, 소중하고 소중한 그녀에게 더욱 잘 보이고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들과 함께 걷다 보니, 그녀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엘레나가 머물고 있는 호텔 앞까지 도착했다. (이 당시의 엘레나는 케나르에서 집을 구하지 못했기에 처음의 호텔에서 장기투숙 중이었다.)


"오늘 즐거웠어요. 내일 봬요. 윌."


엘레나가 호텔 로비로 들어가려 했을 무렵, 윌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주 천천히, 또 충분히 뿌리칠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게.


"...?"


윌은 천천히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금빛의 실타래가 달빛을 반사해 창백하면서도 은은한 빛을 띠었다. 그는 엉킨 머리칼을 손끝으로 살살 빗기도 하고 결 좋은 그녀의 머리칼을 손끝으로 지분거렸다.


"엘레나."

"네?"


어딘가 사뭇 진지해 보이는 윌의 모습에 엘레나가 천천히 침을 삼켰다. 심각한 이야긴가? 그녀의 생각이 훤히 표정에서 보여서 윌은 픽 웃어버렸다. 조금은 긴장이 풀린 것 같은 기분에 나지막이 제 생각을 전달했다.


"있지, ...나 너한테 키스하고 싶어."

"....네? 아, .........네!"


윌의 목소리는 묻 제 연인을 대하는 사람들처럼 무척이나 다정했다. 그는 다시 한번 더 그녀의 의사를 물었다. 윌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엘레나, 제 연인의 의사였기 때문이다.


"나랑 키스하기 싫어? 아니라고 해주면 좋겠는데."

"아니요!"


엘레나가 그의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대답했다. 쑥스러움에 뺨이 발갛게 물들어도, 잔뜩 긴장해서 목이 빳빳해졌더라도 그녀는 그녀였다. 그의 눈빛을 전혀 피하지 않았다. 엘레나는 자신이 반사적으로 소리 지르듯 대답한 것이 영 부끄러웠는지 눈꼬리를 살짝 접었다. 여전히 눈빛은 피하지 않은 채다.


"그럴 리가요. 그럴 리 없잖아요."


명백한 수락이었다. 그녀는 숨을 한껏 삼키더니 그에게 말했다.


"그, 그럼 윌... 키스하기 전에, 저 양치 좀 하고 와도 될까요?"

"으응?"


전혀 예상치 못한 답에 윌이 눈을 큼직하게 떴다. 그의 다정한 눈빛에 놀람이 깃들자 그녀의 목소리는 기어갈 듯이(허나 그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아까 먹은 저녁이, 입에 남아 있을 수도 있고, 또 호텔 앞이니까 로비에서... 빨리하고 올게요."


그녀의 뺨과 귀가 잔뜩 발갛게 익었다. 옅은 분홍빛이었던 피부가 사과처럼 빨개졌다.


"그럼, 그럼.. 양치하고 올게요! 금방 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엘레나...?"


윌이 대답하기도 전, 엘레나가 로비 화장실로 달려갔다.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윌의 입에서 의문을 잔뜩 담은 말이 튀어나왔다. 입을 맞추려는 분위기를 겨우 잡았더니, 그녀가 양치하러 도망치는 상황은 생각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문득 걱정됐다. 그러니까, 그녀가 이를 닦으러 간 사이 무엇을 할지도, 그리고 갑자기 자신의 입이 찝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호텔 로비로 들어가 1층 로비에 들어갔다. 윌은 걸음을 옮기는 내내 엘레나를 생각했다. 긴장한 모습이 어떻게 저렇게 귀엽지? 사랑스럽지? 새빨갛게 익은 그녀의 뺨과 귀를 생각하니 웃음이 연신 새어 나왔다.


꼼꼼이 양치를 끝낸 후, 화장실에서 나오는 길 엘레나가 보였다. 엘레나는 여기서 그를 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윌은 그녀를 생각하던 와중에 마주친 것이 영 부끄러웠는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가 에스코트해도 될까요. 공주님?"


엘레나는 그의 손을 붙잡았다. 목소리가 잔뜩 떨려 하는 것 같았다.


".....네."


둘은 함께 손을 잡은 채 호텔 로비를 지나갔다. 윌의 몸짓은 정중하고 또 아주 연약한 것을 쥐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그녀를 에스코트했다. 섬섬옥수처럼 길쭉한 손가락이 얽히고 얽혀 체온을 나누는 느낌은 평소 데이트를 할 적 손을 잡을 때보다 윌을 훨씬 들뜨게 했다. 자신보다 오랫동안 양치만 했는지 화장은 조금 지워져 있었다. 다시 호텔 앞, 나무가 잔뜩 심어진 산책로로 나오자 윌은 작은 웃음을 터트렸다. 긴장해서 숨을 고르지 못했는지 숨을 색색거리는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웠기 때문이다. 참다못해 터진 웃음에 엘레나가 그를 타박했다.


"윌, 왜, 하.. 왜 웃어요오.."

"아니. 미안, 푸핫!"

"...아니, ...아니이이... 푸흡."


그녀를 책망하려던 엘레나도 그가 호쾌하게 웃는 모습에 따라 웃었다. 둘의 웃음소리가 나른하게 조명이 켜진 거리를 메웠다.



한참을 웃은 뒤, 윌은 제 눈가를 엄지로 빠르게 쓸어내린 뒤 엘레나의 얼굴을 감쌌다.


"윌?"

"쉿."


엘레나가 그의 이름을 부르려할 때, 윌이 그녀의 검지로 막았다. 윌은 잔뜩 들뜬 이 분위기가 조금은 수그러들었으면 했다. 그러니까 그녀가 자신을 보는 눈빛에 떨림과 사랑만이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윌은 말없이 엘레나를 바라봤다.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자 엘레나는 잔뜩 긴장한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를 얼마나 한참 바라봤을까, 초조해진 엘레나가 입을 열었다.


"저, ..위..?"


그녀가 입을 열어 그를 부르기도 전에 그가 입을 맞췄다. 윌은 그녀에게 입을 맞추면서도 한 손은 그녀의 머리칼 사이을 헤집고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받쳐 올렸다. 그의 생각처럼 엘레나는 키스하는 내내 그의 몸에 기댄 채 숨 쉬는 법을 잊을 것 같았다. 그가 잡아주지 않았다면 뒤로 넘어졌을지도 모른다. 민트향이 가득한 채, 둘은 옅은 조명 아래서 서로를 꽈악 끌어안았다. 중간에 엘레나의 숨이 너무 부족해질 때마다 윌은 입을 떼 그녀가 숨을 쉴 수 있게끔 했으나 이내 다시 입을 맞췄다. 아마 윌의 머릿속에서는(어쩌면 엘레나도 그랬을지 모르지만) 연신 정신이 아득해졌다 다시 바짝 들었다를 반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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