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암울의 시기였다. 방랑자의 신, 간즈가 발을 디뎠다던 포밀러 대륙 동쪽에 비죽 튀어나온 라일룩 반도는 그 시기, 바다의 먹이로 자주 잠겼다. 사람들은 지대가 낮은 해안에 둑을 쌓고 높은 산 위에 집을 지었고 숲으로, 나무 위로 올라갔다. 할머니는 그 시기를 아주 어린 나이에 맞닥뜨렸다. 많은 청년들이 바다에 휩쓸려가 바닷속 수인의 먹이가 되었다. 내가 자라며 본 수인은 묘족과 견족, 단 두 종족뿐이었지만 포밀러 근처에는 아직 멸종되지 않은 희귀한 수인 종족들이 남아있다고 한다. 전신이 물고기의 비늘로 덮인 바다의 어족 또한 그런 수인의 종류 중 하나였다.

할머니는 어족이 포밀러 대륙과 라일룩 반도를 지켜준다고 여겼다. 황야의 대륙 시쉴에선 예전부터 많은 부족의 사람들이 포밀러와 펠로시안으로 손을 뻗었다. 타로의 일족, 팔폰인의 피를 물려받은 펠로시안 족은 미래를 점치고 훌륭한 방어작전을 쓰며 시쉴대륙과 평화휴전을 맺고자 했지만 시쉴에 악마의 힘을 받은 마인이 손을 뻗치며 몇몇 팔폰인들은 게덴이나 라그란즈 등 많은 나라로 흩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시쉴과 상당히 가까웠던 라일룩 반도는 수시로 시쉴 인들의 위협을 받았지만 라일룩 반도 인근 해안에서 사는 어족들의 사나운 공격으로 인해 대부분이 바다에서 가라앉았다. 그땐 어족들의 개체 수가 많았지만 시쉴 인들이 포밀러 대륙을 공격하기 위해 어족들을 학살하면서 개체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어족들이 우리 해안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이유가 있다면 그곳이 가장 물고기가 많고 지형과 해류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어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는 세계 어족의 90%가 우리 라일룩 반도를 중심으로 모여있다고 했다. 오죽하면 낚시하러 나갔던 사람들이 가끔 어족의 시체를 주워오기도 할 정도였다.

각 대륙에 자리 잡은 국가의 세력이 안정되고 전쟁이 내전으로 이어지자 어족들의 시체가 그물에 걸리는 수는 줄어들었지만, 엄마는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고 했다. 어족이 다른 민족만을 공격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어족은 일 년에 한 번씩 라일룩 반도를 덮치는데 그때마다 해안가에 나섰던 어부들이 갑자기 실종되거나 실성해 돌아오곤 했다.

내가 지내는 아릴 마을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바닷가로부터 숲을 한 번 지나야 나오는 꽤 외진 장소에 터를 잡은 마을이었다. 원래는 바닷가 근처에서 살았지만, 할머니 때 바다가 반도를 덮치자 이 마을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라일룩 반도를 벗어나는 게 가장 안전하지 않겠냐고 엄마에게 물었지만 엄마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국경선을 넘는 것이 발견되면 그 자리에서 사살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라일룩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족의 피를 묻혀온다 생각한다고 엄마는 말했다.

라일룩 반도를 사는 사람들의 시조는 어족이란 건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진 속설이다. 나도 어릴 적 할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신은 창생의 알을 통해 여러 존재를 탄생시켰다. 그 사이에는 사악한 몬스터도 섞여 있었다. 현재 살아남은 고등 지식을 가진 존재는 인간, 마인, 드래곤, 수인, 도깨비, 마물이 있는데 사실 이 여덟 종족 말고도 다섯종족이 더 있어 열셋종족이다. 수인은 세계가 안정을 되찾자 여러 동물과의 교배를 통해 다시 그 종류를 늘렸다. 어족은 인간의 모습과 물고기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데 신의 재앙으로 종족의 수가 멸절에 가까울 정도로 줄어들기 이전, 라일룩에서 살았던 인간과 교배를 맺었다고 한다. 라일룩 인간이 포밀러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족의 시조다, 라는 속설도 간혹 들리지만 확실하지 않은 사실을 신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애초에 동물도 아닌 인간과 어족이 교배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나의 답에 엄마는 늘 내가 너무 현실적이라며 눈빛을 흐리고는 했다.

엄마는 늘 언니와 함께 바닷일을 하러 나갔었다. 언니는 훌륭한 뱃사람의 기질을 갖고 있지만 엄마는 아직도 언니의 기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바위에 붙어있는 따개비 등을 떼는 일 외의 다른 바닷일은 언니 혼자 보내는 법이 없었다. 언니에 비해 내 솜씨는 형편이 없어서 내가 바다에 간다면 하는 일은 따개비를 넣을 자루를 들고 언니의 뒤를 따라다니는 것 뿐이다. 나는 아마 숲에서 나무꾼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물이 나와 통 친해지지 않으려 한다는 건 확실한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맥주병이다. 물이 나를 받쳐주긴커녕 자꾸만 깊은 수면 속으로 데려가려고만 하는 것이다. 10년 동안 나는 물과의 화해를 시도했지만 늘 언니의 등에 업혀 집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바다의 이유 없는 싫증을 받아줄 만큼 나는 여유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제는 절반쯤 포기하고 수영을 배우고 있는 상태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숲 일에 종사했다. 마을은 대부분 수해에서 달아난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은 대부분 바다를 무서워했다. 우리 집처럼 여전히 바닷일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있다 해도 바다가 너무 먼 탓에 몇 번 나가고 생활의 대부분을 숲 일로 해결했다. 불행이라 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어족의 눈에서 달아날 수 있지만 바다와 멀어 배를 늘 부두에 묶어놓고 오는데 도둑이 훔쳐 탈 때가 많았고 한 번 왕복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더 불행한 것은, 이렇게 바다와 멀리 떨어져 사는 우리가 어족의 눈에서 완전히 도망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언니가 실종되기 하루 전, 우리의 일상은 다른 것이 없이 흘러갔다. 언니는 엄마와 그물과 낚싯대, 구명 물품 등을 바리바리 챙겨 숲으로 사라졌고 나는 둘을 배웅한 뒤 할머니 곁에서 할머니가 만들고 있는 목도리 끝에 작은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때는 가을이었고 창밖으로 보이는 숲은 여름과 가을의 고집에 이리저리 휩쓸려 푸른색과 붉은색, 노란색으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엄마는 언니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와 물통 안 가득 잡아 온 물고기들의 신선도를 해치지 않으려 보관실에 집어넣고 방석이 깔린 의자 깊숙이 몸을 맡겼다. 언니는 갯벌 속의 조개를 캐기 위해 조금 더 남았다고 했다. 오늘 하늘을 보아 파도가 거칠 테지만 썰물 시간 동안은 잠잠할 것이라며 엄마는 걱정 말라고 손을 휘저었다. 갯벌 일은 밀물이 들어올 즈음에 나가면 되지만 바다 위는 파도의 움직임을 직접적으로 받으므로 엄마가 먼저 빠지는 것이 이치에 맞았고 나는 그것에 큰 의문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그날 언니와 함께 돌아와야 했다.

노련한 채집꾼인 언니는 밀물 때가 지나고 비가 내린 지 몇 시간이 흐르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비가 그치기가 무섭게 언니를 찾으러 갔다. 갯벌의 끝자락 깊숙이 언니의 신발이 박혀 앞코만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고 했다. 언니의 흔적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갯벌에 노련한 언니라면 충분히 발을 뺄 수 있었을 것이다. 엄마는 언니가 혹시 조개를 캐는 것에 너무 열중해 바다에 휘말린 것은 아닐까, 사흘 밤낮을 바다에서 지냈다. 삼일의 끝, 폭풍우가 라일룩 반도를 때려 비가 쏟아지던 날 엄마는 바다의 짠 내를 몰고 들어와 신발도 벗지 않고 말없이 이부자리 위에 누웠다. 비에 젖은 엄마의 갈색 곱슬머리가 이불 위에 달라붙었다.

내가 바다에 나가지 못하게 된 것도 그날 이후였다.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지만 정신에 큰 타격을 입은 건 확실해 보였다. 절망에 빠진 엄마의 주변에는 날파리같은 남자들이 접근해왔다. 엄마는 바다와 결혼했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바다와 일을 사랑했기에 예전만 했으면 엄마가 상종도 하지 않았었지만, 엄마는 그 허울뿐인 위로와 진득한 시선이라도 그리운지 이제는 그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수많은 구혼자가 역겨웠다. 그들이 뒤에선 뱃일 중에 엄마의 몸에 새겨진 영광의 흉터들을 비웃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무리 엄마를 좋은 말로 다독이려 한들 엄마에겐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엄마는 어족이 데려가는 다음 사람이 내가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쩌면 엄마는 바닷일에서 멀어져 평범한 여자들의 일에 머물려는 걸지도 몰랐다. 적어도 집 안에 있다 보면 어족이 숲을 넘어오는 일은 없을 테니까. 라일룩의 여자들은 대부분 남자를 바다에 떠나보내고 그들의 생사를 걱정하며 생계를 묵묵히 지키고 집 안의 아이들을 돌보았다. 그들에겐 직업이 필요 없다. 여자가 할 만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아빠는 내가 아주 어릴 적에 돌아가셨는데 그때도 엄마는 바다로 나가 아빠와 많은 마찰을 겪었다고 했다. 아빠는 화가 나 먼바다로 고기잡이배를 타고 갔고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그때도 꺾지 않던 신조를 꺾어버린 것이다. 할머니가 고집 있게 가르친 항해의 기술을 엄마는 하나하나 버려갔다. 나는 언니를 도와 자루를 들고 서 있다 바위에 앉았을 때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던 엄마의 굳고 단단한 등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물고기의 저항을 수없이 견뎌내며 자란 어부의 단단한 근육이 노를 저으며 강한 생명력으로 요동치는 것을 나는 기억한다. 엄마 안의 굴곡지고 생명력 넘치는 것들은 언니를 잃은 사건과 함께 싸늘하게 죽어갔다. 엄마는 잘랐던 머리를 길렀고 식음을 전폐해 말라갔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차마 바다에 가자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엄마 안의 것들이 죽어가는 것을 무서워하면서도 그것을 되살리려 건드렸다간 더 큰 재앙이 나를 휩쓸고 갈 것 같아 겁이 났다. 나는 엄마를 따라 말을 없애고 얌전해져야 했다.

할머니는 뜨개질을 하다가 늘 나를 불러 당신이 젊을 적 겪었던 바다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엄마는 언니가 사라진 이후로 할머니가 내게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걸 싫어했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가 바다를 향한 나의 마음을 부추긴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엄마의 말이 옳았다. 할머니의 젊을 적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나 또한 돛대 하나에 매달려 폭풍우를 가르고 거대한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기분이 들고는 했으니까. 나는 일부러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며 바닷바람에서 작은 불씨를 지키듯 할머니의 옛날이야기가 멈추지 않게 끙끙거렸다. 결국 엄마는 할머니의 이야기만큼은 막지 못했다.

라일룩에서 약 45리아페스(팔폰의 길이 단위. 약 12.3km) 정도 떨어진 부근에 어족들이 주로 분포해있는데 어족의 영역을 무사히 지나면 해적들의 무법지대가 이어진다. 바우돌 섬을 근거지로 삼는 해적들은 도깨비가 깨어나는 밤에는 배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바우돌 섬 깊숙한 곳에 자신의 재산을 숨겨놓는다. 가끔 도깨비들의 장난으로 물건이 뒤바뀌거나 사라지는 경우가 있지만, 해적들에게 도깨비는 천재지변과 같은 존재이기에 사라진 물건에는 큰 아쉬움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시쉴 대륙을 근거지로 삼는 해적들은 재화에 대한 욕심이 더 크고 악랄하다. 라일룩 반도는 시쉴 대륙과 가까웠고 해적들 또한 생명이 자랄 만한 조건임에도 생명이 자라지 않는 황야의 대륙에서 온 자들이 많았다.

해적들은 어족들의 해역을 빠져나온 고깃배나 무역선을 덮쳐서 이익을 취하는데 할머니가 젊었을 땐 해적들이 어족들의 구역보다 안에 있었다고 한다. 암울의 시대가 지나고 바다의 염분 때문에 엉망이 된 반도의 흙이 원래대로 되돌아오자 어부들은 단합해 크고 작은 배에 한꺼번에 올라타 해적들로부터 서로를 지키며 그들의 구역이 어족의 해역 밖으로 가도록 밀어 세웠다. 할머니는 그 이야기를 하며 눈을 빛냈는데 내 눈 또한 반짝이고 있을 거란 확신이 이유 모르게 들었다.

할머니는 그 작전에 유일한 여자 어부로 참가했다. 남자들은 할머니를 말렸지만, 당신의 주장에 흔들림이란 없었고 결국 할머니는 넓적한 고기잡이배를 타고 해적들의 범선에 맨몸으로 부딪쳤다. 할머니는 이야기를 멈추더니 갑자기 옷을 걷었다. 할머니의 처진 가슴 사이를 얕고 깔끔한 흉터가 가르고 있었다. 할머니는 이 상처가 그때 생겼다고 말씀해주셨다. 해적의 칼이 내리쳐오는데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빼 얕은 도상을 입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자신을 벤 해적 놈의 눈에 낚싯바늘을 찍어 완전히 파내버렸다며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 섬뜩한 이야기지만 싸한 전율이 전신을 휩쓸고 지나갔다. 집 안에서 가만히 뜨개질하는 이 늙은 여자가 해적의 눈깔을 파헤쳤다는 것을 어느 누가 믿을까. 하지만 증거는 할머니의 몸에 깊숙이 새겨져 있다. 생사를 가르는 경계선 같은 그 흉터가 할머니의 파란만장한 삶을 대변하는 것이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할머니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낚싯바늘을 들고, 물고기 회를 뜰 때만 쓸 줄 알았던 칼을 들고 해적선으로 뛰어들었다. 선장의 배에 칼을 찔러넣고 반시계방향으로 돌렸다. 할머니는 그때의 전율과 공포, 반감과 쾌감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피가 어떻게 쏟아 나왔는지, 선장이 어떤 눈으로 할머니를 내려다봤는지, 할머니의 손에 쥐어져 있던 낚싯바늘이 긴장으로 인해 손바닥 깊숙이 패여 들어갔는지 몰랐다는 것까지도. 할머니의 왼손은 늘 울룩불룩한 촉감으로 내 뺨을 주무르고는 했다. 나는 그제야 할머니의 신체에 아로새겨진 투쟁과 젊음의 흔적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할머니처럼 살 수 있을까? 아마 그러지 못할 것이다. 나는 수영 하나 못하는 바다의 앙숙이니까.

"어쩌면 너를 바다가 미워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밀."

밀은 할머니가 나를 부르는 애칭이지만 난 언제나 그 애칭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 이름을 너무 줄인 데다가 발음도 만족스럽게 굴러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참기로 했다. 할머니가 말씀하신 것에 대한 뜻이 너무 궁금하기 때문이었다.

"바다가 너를 사랑해서 깊숙이 데려가고 싶어 하는 걸지도 몰라. 바다는 인간이 자기 안에서 숨 쉬지 못한다는 것을 모른단다. 그러니까 바다의 애정표현이 가끔은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는 거지. 바다의 생각은 바다의 눈으로 이해하는 것이란다. 절대 인간의 기준을 세워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할머니. 바다에 빠져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럼 어족들은 인간이 좋아서 인간을 끌고 가는 거네요?"

"글쎄, 어족이 물속으로 끌고 가는 건 보았어도 인간을 먹거나 상처를 입히는 걸 본 적이 없구나."

"할머니!"

무엇이 그렇게 웃긴 건지 할머니는 킬킬거리며 대바늘로 내 뺨을 쿡쿡 찔렀다. 괜히 기분이 나빠졌지만 할머니에게 화를 낼 순 없어 입을 꾹 다물었다. 할머니는 부루퉁해진 손자의 마음을 알아차리셨는지 나를 놀리는 걸 그만두고 다시 바느질을 이어나가며 이야기를 이었다.

선장은 칼부림을 하며 물러났고 할머니는 칼에 상처 입기 전에 서둘러 물러나 배 위에서 몸을 던져 바다를 헤엄쳤다. 당신의 고깃배 위로 오른 할머니는 다친 왼손을 지혈하며 해적선을 상황을 살폈다. 선장을 공격한 할머니의 선택은 탁월한 것이었고 해적선은 점점 어족의 영역으로, 그 밖으로 물러갔다. 어족들은 인간의 피 냄새를 맡고 파도와 함께 고깃배 위로 올라왔다. 어부들과 할머니는 해적들을 더 밀어내지 못하고 황급히 키를 돌렸다. 수많은 어부들이 어족들의 손에 붙잡혀 바다로 끌려가 물거품과 함께 사라졌고 소수의 사람만이 돌아왔다. 선장에게 치명상을 입힌 건 할머니였지만 죽어가는 선장의 목숨을 끝낸 어부만이 주목을 받았다. 할머니는 결과에 의연했다. 할머니가 선장실에서 들어간 걸 본 사람이 있다 해도 그 난리 통 속에서 무시하기 쉬웠고 할머니는 자신이 치명타를 먼저 내었다고 말을 해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가슴 사이에 흉터가 생긴 할머니를 보고 괜히 끼어들었다가 몸 버렸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퍼뜨렸다. 할머니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표정에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럼 할머니는 뭘 위해서 싸웠는데요? 할머니가 한 중요한 일은 하나도 알려지지 않은 거잖아요."

"물고기를 자랑하려고 잡니? 먹으려고 잡지. 해적들을 몰아낸 것도 똑같단다. 살기 위해 몰아낸 거지 자랑하려 몰아낸 게 아니야. 기억하려무나. 어떤 경우에서든 근본적인 이유를 잊으면 안 돼. 그걸 잊는 순간 의미도 사라지는 거란다."

"그래도 그만큼 멋진 일을 했다면 자랑해도 괜찮을 텐데……."

"운명이려니, 생각해야지. 그럼 밀. 물어보마. 내가 했다고 말하면 세상 사람들이 믿을 것 같니?"

할머니와의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엄마가 집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마지막 말은 내 가슴 속에 계속 일렁이듯 맴돌았다.

그때부터였다, 꿈속의 내가 바다 위에 서 있기 시작한 것은. 물 위에 서 있는 줄도 모르고 걸어 다니다가 내가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심해 깊숙이 가라앉아버리고 만다. 점점 새까맣게 어두워지는 물 위를 향해 손을 휘저으면 나는 따개비가 달라붙은 미끄러운 어족의 손에 붙잡힌다. 어족들의 손가락 사이에 자리 잡은 얇은 물갈퀴가 내 눈을 가린다. 두려움에 뒤돌아봤을 때, 어족은 내 언니와 똑같은 얼굴로 나를 뚫어지라 바라보며 씩 미소짓는다. 순간 막혀가던 숨이 트이며 눈이 번쩍 뜨인다. 꿈속의 눈인지, 현실의 눈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갑작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면 엄마의 피곤한 코골이 소리가 자장가처럼 마음을 가라앉힌다.

혹시 언니가 어족이 된 것일까. 그래서 내 꿈까지 나타나 자기와 함께 가자고, 혹은 자길 다시 인간으로 되돌려달라고 청하는 것일까. 한 번 더 바다로 간다면 나는 답을 얻을 수 있을까? 시신 대신 묻힌 언니의 신발은 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입을 가지지 않았다. 나는 그저 막연하고 근본적인 질문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었다. 내 물음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오늘이 언니가 죽은 지 1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슬퍼할 것이란 걸 알고 있다. 무사하게 돌아온다 해도 며칠은 감금되어 있겠지. 나는 하늘을 베낀 저 푸른 바다의 사랑과 증오를 견디지 못한다. 만약 파도가 나를 쓸어간다면 어떤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깊숙이 끌려갈 것이다. 어족은 일 년 마다 사람을 데려가지만 정해진 날짜는 없다. 엄마는 매달 오늘이 되면 방 안에 깊숙이 틀어박혀 있기 때문에 내가 나가는 줄 모를 것이다. 할머니는 어족을 마냥 두렵고도 고마운 존재로 여겼기에 바다로 달려가는 나를 붙잡지 않을 것이다. 딱 한 번, 한 번만 바다를 보고 싶다. 엄마와 언니가 물고기와 함께 가져오던 짠 바람의 냄새를, 구름과 맞닿은 머나만 세상의 끝을. 다가서면 달아나는 철새들과 발을 진득하게 붙잡는 갯벌의 끈기를 느끼고 싶다. 단 한 번만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어족이 하필 오늘 나를 끌고 데려갈까? 오늘은 구름이 잔잔하고 바람이 적다. 파도가 온순하면 어부들의 배가 수평선 너머를 가득 메울 것이다. 바닷가를 가볍게 걷는 열여덟의 여자를 데려갈 만큼 바다는 소모적이고 멍청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럴 것도 같다. 바다가 나를 부르는 듯 귀에서 먹먹한 소라고둥 소리가 들렸으니까.

라일룩의 시조는 어족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오랫동안 바다를 누빈 생명이 육지의 사람을 탐내 뭍 위로 올라와 교배하였다고 한다. 라일룩 사람의 피에 정말 어족의 기억이 흐르고 있다면 내가 바다를 그리워하는 것도 당연한 것 아닐까? 바다가 너무 그리워 꿈을 핑계 대는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바다는 18년 동안 나를 찾지 못했다. 나는 숲 뒤에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확실히 바다를 그리워했다. 엄마의 짠 소금 내가 내겐 가장 평화로운 냄새고 언니의 갯벌 진흙이 묻은 장화가 내겐 가장 익숙한 질감이다. 바다가 나를 가라앉힌다 해도 나는 내가 빠져 죽을 수도 있단 두려움 속에서 마치 의무인 것처럼 언니에게 수영을 배웠다. 단 한 번도 물을 가르고 나아간 적이 없으면서. 나는 왜 그렇게 바다에 필사적인 걸까.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창문을 넘었다. 숲은 계절을 알려주고 있었다. 숲은 잊었던 시간을 내게 되돌려놓는다. 나를 사람들이 인지하는 시간 속에 가둬놓는다. 지금은 이 시간이라고, 이 계절이라고. 내가 더위와 추위를 구별하지 못하는 인간이 된다 하더라도 숲은 제 모습을 끊임없이 바꾸며 붉고 노란 모습으로 지금은 가을이고 물이 차가울 것이란 사실을 속삭인다. 바다는 늘 차가울 뿐, 내 몸이 다르게 느끼는 것인데도. 숲을 헤쳐 멀고 넓은 바다를 눈에 담았다.

바다는 1년 전과 같다. 하늘은 평화롭고 물은 새파랗다. 햇살이 파랑 위에 부서져 조각조각 흩어졌다. 밀물이 가득 들어찬 바다는 거대한 호수 같다. 작은 고기잡이배들은 멀리서 점처럼 작게 일렁거린다. 부둣가에는 밧줄이 길게 늘어져 있고 남자들이 간밤에 친 그물을 걷고 있다. 돌로 쌓은 둑을 향해 바다는 바보같이 몸을 부딪친다. 더 앞으로 갈 수 없는 걸 알 텐데도. 파도의 노력 때문인지 사람들은 수시로 둑을 수선하기 위해 들락날락거렸다. 불이 꺼진 먼 등대가 선명한 붉은 색을 햇빛에 반사하며 아침마저 뱃사람들의 길을 알려주려는 건지 반짝거린다. 새들의 울음소리가 사람들의 외침과 뒤엉켜 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나는 둑 위에 올라가 이유 없이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바다는 새파란 색으로 나를 현혹하려 한다. 나는 수시로 머릿속이 둔해지는 걸 느끼며 조용히 언니를 불러보았다. 바다는 사람의 말을 모른다. 사람의 눈으로 사람을 보지 않는다. 바다는 아둔해서 그런 것을 모른다. 사람이 바다를 생각해야 한다. 바다의 말을 이해해야 한다. 나는 눈을 감고 둑에 사납게 부딪치는 파도의 진동을 전신으로 느껴보았다.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순간 바다가 정말 속삭인 듯이 온몸을 울리는 목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혔다.

"그동안 어디 있었어?"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그것은 눈이 완전히 멀어버린 것처럼 새하얬다. 머리에는 머리카락 대신 미끈한 비늘과 올라오다 달라붙었을 것 같은 미역 한 줄기가 늘어져 있었다. 둑을 붙잡은 손엔 얇은 물갈퀴가 금방이라도 찢어질 듯  피막처럼 얇게 펼쳐져 있었고 팔뚝엔 따개비 몇 개가 붙어있었다. 그것에겐 귀가 없었다. 입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고 은빛 몸은 헐벗은 채였다. 나는 상황에 맞지 않게 붙어있는 미역 한 줄기가 너무 이상해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숲에 있었어. 숲은 바다와 친하지 않잖아."

그것은 생각보다 두렵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어족이란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유 모르게 나를 기다렸다는 것도. 이제야 내가 물 밖으로 올라오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할머니의 말대로 바다가 나를 부른 것이다. 어족이 나를 찾았다. 나의 피엔 짙은 어족의 흔적이 뿌리 깊게 남아있던 것이다. 왜인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란이 온 것처럼 웃음이 마음대로 나왔다.

"돌아갈래."


루이빌은 깊은 바다를 헤치고 집에 돌아왔다. 그는 완전히 헐벗은 채로 그물에 걸려 바깥세상에 나온 물고기처럼 퍼득거리고 있었다. 갯벌이 그의 몸을 완전히 잡아먹은 듯 온몸에 진흙이 묻은 채 단단히 굳어 그는 사람이기보단 하나의 바위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루이빌의 엄마는 맨몸으로 숲으로 헤치고 돌아온 제 맏딸의 몸에 담요를 둘러주고 그를 꽉 끌어안았다. 엄마의 온기에 루이빌의 몸에 묻은 흙이 조금 녹아 엄마의 몸에도 달라붙었다.

"나는 어족이었어. 어족인 거야, 엄마!!"

루이빌은 비명을 지르듯 엄마에게 자신이 어족이었다고 외쳐댔다. 사람들은 막내딸마저 바다에 끌려가고 맏딸이 미쳐 돌아온 엄마를 딱하게 여기며, 그나마 맏딸이 돌아온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자며 엄마를 위로했다.

라일룩 반도를 감싸 안은 바다의 파도는 유독 부드러웠다.




창작 여성서사

해방 : 바다로부터의 침입이나 피해를 미리 막아 지키다,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벗어나다.

주제에서 너무 많이 벗어난 느낌이다, 싶지만 분명 해방이 들어가 있습니다. 잘…찾아보시죠.

리아페스가 또 나왔는데도 게덴의 길이나 화폐가 세계 공용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라 안에서 무언가를 사거나 할 땐 그 나라의 단위를 쓰지만, 나라와 나라 간의 거래를 할 때 단위가 자꾸 엇갈리니까 무역 국가인 게덴이 기준을 만들었고 그게 퍼져 공식적으로 공용 단위가 된 거죠.

인간, 드래곤(=리쉬안), 엘프, 수인(~족), 마인, 정령, 블루엘프(월인. 인간들은 엘프와 동일취급함.), 혈귀(몬스터 중 하나지만 가장 지적능력이 뛰어남), 도깨비(버려진 물건의 섬, 바우돌 섬에서 삶)

창생-세상의 모든 사람을 통칭하는 말이지만 우거진 생명이라는 뜻으로 썼습니다.

100=27.5

0.275

0.275X45

12.375

아리드알의 숲히리루스마력의 흐름알리그레의 겨울과 같은 세계관


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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