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인 사람들로 예를 들어보자.

들어가기 전 사람들은 짧게, 혹은 크게 숨을 몰아쉰다. 얕거나 커다란 긴장감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문고리를 잡기 전에 똑똑똑 문을 두드린다. 안 쪽에서 들어오라는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잠시 기다린다. 허락이 떨어지면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간다. 당연히 '실례하겠습니다.' 라던가 '들어가겠습니다.' 라는 인사는 빼놓지 않도록한다. 허리를 꾸벅 숙이고 인사를 마치면 가운데 커다란 책상 앞에 허리를 꼿꼿히 세우고 목소리가 엇나가지 않다록 가볍게 목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보고를 시작한다.

이것이 보통 호카게실에 들어가 보고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디까지 '보통'이라는 이야기다.


"쌤!! 나왔다니깐!"


우즈마키 나루토는 언제나 보통에 속해본 적이 없다. 예고도 없이 문을 벌컥 염과 동시에 해사한 웃음을 실실 흘리면서 호카게실로 들이닥친다. 그 흔한 노크 한번 없이 호카게실문을 열어놓고 뱉는 한 마디는 반말이다. 의외성 No.1이라는 사실은 10살 남짓 어린시절부터 18살 청년이 되어서도 변함이 없다.

자리에 앉아있던 6대 호카게는 웃으면서 그를 반겼다. 전쟁이 할퀴고 간 마을의 재건에 힘쓰는 6대 호카게 무른 눈웃음을 흘리고 다니는 주제에 깨나 냉정한 면이 있는 사람이다. 가차없이 부하를 굴리는가 하면 사람을 한계까지 몰고 가면서 부드러운 웃음으로 더 할 수 있지? 라고 물어오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우즈마키 나루토에게만 자기 눈웃음 만큼이나 무른 면이 있다. 


"어서오렴. 수고했다."


수고하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이번 임무 랭크는 B급으로 멸망 직전 세상을 구한 '영웅' 우즈마키 나루토에게는 누워서 죽을 퍼먹는게 더 쉬울테니까. 하지만 6대 호카게 카카시는 구태여 다치진 않았고? 라는 물음을 던졌다. 당연히 대답은 오우! 당연하지! 다. 대답만큼이나 상태는 멀끔하다. 임무로 인해서 조금 먼지가 묻은 임무복은 손으로 툭툭 털어내면 금세 새 옷 구색을 갖출 것이다.


"기록을 가지고 온건 좋은데..."


활기차던 목소리가 영 맥을 목춘다.  암호화 되어서 읽을 수가 없다니깐요. 이어지는 말에 원인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번 나루토의 임무는 불안종자에 잠입해서 정보를 빼돌리는 것. 언제나 의욕이 넘치는 녀석이니 대차게 정보를 빼돌린 건 쉬웠겠지만 막상 빼돌려온 두르마리를 열어보고 도통 알 수 없는 문자겸 그림을 보고 한동안 고개를 갸우뚱 거렸을 것이다.


"확실히.... 이정도 암호면 해독반으로 보내는게 좋겠군. 그렇게 복잡한 거 같진 않으니 아마 1시간 안으로 해결 될거다."


카카시는 살짝 시무룩한 나루토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너의 능력부족이 아니라는 작은 위안이 담긴 손이다. 나루토는 푹 주저앉은 머리 위 무게에 살짝 눈을 감았다 떴다. 그 사이 카카시는 나루토를 지나 문을 향했다.


"암호 해독반에 다녀오마. 나머지는 보고는 그 후에 들을테니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텅 빈 호카게실에 일개 하급닌자 하나를 덜렁 두고 나가는 호카게라니 다들 기함을 토할 것이다. 하지만 그 상대가 나루토라면 조금 말이 달라진다. 이제 나루토의 나이는 18살, 곧 성인이 되고 정식적으로 호카게를 위한 절차를 하나씩 밟아 나갈 것이다. 정확하게 내정된 바는 없지만 모두가 마음 속 한 구석에 7대 호카게로서 나루토 이외 다른 이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굳이 호카게실에 혼자 남았다고 사고를 치는 멍청한 짓을 저지를 일은 없으니까. 13살 무렵은 봉인의 서를 몰래 들고 달아나는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르긴 했지만 그도 이제는 성장했으니 그정도는 스스로 알 것이다. 성숙해 졌다. 라고 표현할 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나루토는 고요해진 호카게실에 멀뚱히 서있다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나 혼자 두고 나가도 되는거냐니깐?"


세월이 참으로 무색하다. 성숙해지기에 나루토에게는 조금 부족한 순간인 모양이다. 카카시의 굳은 믿음을 민망하게 만들정도로 나루토는 호기심에 찬 눈으로 호카게실을 바라보았다. 임무에 지칠 법도 하지만 비밀을 캐낸 아이처럼 눈을 반짝거리며 성큼성큼 책상으로 다가갔다.

털썩

망설임 없이 폭신해 보이는 의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오직 한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의자는 나루토 몸에 꼭 맞았다. 사실 맞다기보다는 누구든 그 의자에 앉으면 푹 파묻히니 들어맞을 수 밖에 없었다. 나루토는 의자에 기대고 주위를 가볍게 훑었다.

굳게 닫힌 문과 빽빽하게 두루마리와 책이 쌓인 책꽂이, 가운데 소파와 작은 책상, 넓직한 방이 한 눈에 들어왔다. 호카게만 바라볼 수 있는 시선. 매일 봐온 방이 새롭게 보인다. 오직 호카게만 알 수 있는 방의 전경에 잠심 정신이 팔렸다. 이내 의자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넓게 뚫린 창 밖으로 사람들이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 곳 역시 호카게만 알고 있는 경치다. 사람들이 움직이고 마을이 빠르게 회복하고 아이들이 웃고 크는 일상적이면서도 흐뭇한 광경이다.

똑똑

잠시 나루토답지 않은 상념에 잠겨있을 때 고요함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마치 의자의 주인이라도 된 듯양 나루토는 나직하게 말했다. 허락이 떨어지고 실례하겠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문이 열렸다. 커다란 의자는 여전히 뒤를 돌아 창 밖으로 내다보았고 그 덩치에 묻힌 나루토는 방금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루토가 허튼짓 안하게 호카게실에서 서류처리 하라고-"


문을 열고 들어온 주인공인 시카마루였다. 여전히 따분하고 귀찮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그는 양손에 서류를 들고 호카게실을 두리번거렸다. 차마 나루토를 온전히 믿지 못한 6대가 맡긴 노란색 머리의 천방지축 하급닌자를 찾아 눈을 굴렸다.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텅 빈 호카게실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시카마루가 등 돌린 의자로 의아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내가 허튼지잇? 너무하다니깐."


빙글 

돌아간 의자와 함께 노란색 머리의 천방지축이 드러났다.

너무하다고 말하는 주인치고는 실제로 꽤 어이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 남들은 넘볼 생각조차 못하는 호카게자리에 편하게 앉아서 저보다 상사이자 동료인 친구를 바라보고있다. 

시카마루는 약간 덜 닫힌 문을 마저 닫고 벌어진 입을 잠시간 다물었다. 지금 입을 벌리면 멋대로 헛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입 안에서 할 말을 갈무리한 시카마루는 먼저 한숨을 푹 쉬었다.


"이러니 6대님이 나한테 너를 맡기지. 귀찮게."

"뭐-왜- 내가 뭐 했다고 그러냐!"

"그런 짓을 했지. 빨리 거기서 비켜. 6대님 오시면 혼난다. 지금 나한테 널 맡겼으까 너 뿐 아니라 나도 혼난다고."


시카마루는 책상으로 다가가 서류더미를 올려두었다. 나루토는 억울한 목소리로 항의를 이어갔다. 고작 의자가지고 쨰째하다! 면서 아직도 젓살이 안빠진 볼을 부풀려댔다. 나이가 몇인데...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광경에 시카마루는 다시 한숨을 푹 쉬었다. 


"언제 또 앉을 수 있을지 모르는데 이정도는 허락해 줄 수 있는거 아니냐니깐."


책상 위 쌓인 다른 서류더미를 뒤적이던 시카마루의 손이 멈췄다. 의자에 푹 묻힌 나루토는 멍하니 호카게실을 내려다보았다. 꼭 다시 볼 수 없는 광경을 눈에 새겨넣으려는 듯이 꼼꼼히 천장부터 바닥까지 문에서부터 책장까지 쓸어보았다. 어쩐지 언제나 청람같던 파란색 눈이 조금 짙게 가라앉은 기분이 들었다.


"... 무슨 소리인데."

"뭐.... 말 그대로라니깐. 언제 내가 이 자리에 앉을지도 모르고~"


허리를 곧추세운 나루토는 팔을 쭈욱 벌려 기지개를 켰다. 마치 자신의 일이면서도 상관없다는 듯 덤덤한 말투는 꼭 변명같았다. 뱅글뱅글 어린아이 장난처럼 돌아가던 의자를 잡고 시카마루는 나루토와 마주했다. 여전히 빙글빙글 웃던 나루토는 시카마루와 눈이 마주치자 가느다랗게 눈을 접어 웃었다.

시카마루는 약간 신경질이 일었다. 어제 시카마루는 12시에 퇴근하였고 출근은 언제나처럼 8시반에 맞춰 도착했다. 책상에는 눌어붙은 커피잔이 5개가 쌓였고, 에너지 드링크 캔은 2개가 깔끔하게 비워졌다. 재떨이는 어제와 오늘 벌써 한 번씩 싹 비웠다. 담배갑은 아침일찍 출근하는 길에 한 보루 사다뒀지만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없어질 것이다. 쉬는 날은 없고, 피로는 착실하게 몸을 축내고 있다.

하지만 시카마루는 입밖으로 불만을 토로한 적이 없다. 귀찮다는 말을 입에 다고 살긴하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물러날 기미는 보인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즈마키 나루토를 위한 일이니까. 우즈마키 나루토가 호카게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니까.

16살 끔찍한 전쟁 이후로 쉬지않고 호카게 보좌라는 직함을 달기까지 달리고 있던 이유는 너무나 명료했다. 자신의 가치관이 뒤바뀌었으니 그만한 뒷수습인 것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초연한 얼굴을 하고 언제 내가 여기 앉아보겠어? 라는 넋두리를 하고있다. 짜증을 내도 모자랄 만한 상황이었다. 입술을 살짝 짓씹은 시카마루는 습관적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라이터를 켰지만 즉시 제 앞에 나루토가 눈에 들어왔다. 담배는 다시 담배갑으로 꾹꾹 눌러 넣었다.


"시카마루. 내가 자격이 있을까?"


무거운 공기를 가르고 나루토가 먼저 말을 꺼냈다. 


"18살인데 난 아직 하급닌자고."

"......"

"동료들은 대부분 상급닌자야. 영웅이라고 떠받들어 지지만 아직까지 S급 랭크 한번 받지 못해봤고 시험은 번번히 떨어져. .......그리고 빼돌린 두루마리 해석 하나 할 줄 모르지."


시카마루는 목구멍으로 차오르는 말을 인내했다. 아직 나루토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시카마루. 나는 어릴 때부터 호카게가 되고 싶었고, 지금도 되고 싶다니깐. 근데 가아라가 카제카게가 되고, 사쿠라가 병원에 틀어박혀 일하고, 사스케가 여행을 떠나고, 카카시 쌤이 6대가 되고, 마을이 다시 돌아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박탈감.

지금껏 주위를 돌아보는 것보다 앞을 보고 달려나가기 바빴던 나루토에게 드디어 시간이 주어졌다. 동료들은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고 각자 맡은 일에 충실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나루토는 그들을 돌아보았다. 하급닌자부터 중급닌자에서 상급닌자까지,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분야에 뛰어들기까지. 나루토의 눈에는 그들의 길이 너무나 곧고 반듯해보였다. 그리고 겸사겸사 제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굽이지고 어딘가 부실한 하급닌자의 길이 보였다. 

나루토는 조금 불안해졌다.

자신을 두고가는 동료들을 보고 빨리 달음박질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제 손에 들어오는 임무는 B급이 최대였다. 이정도는 낙승이니까 더 높은 랭크의 임무를 달라고 징징거려보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자신에게만 무르던 카카시는 냉정하게 안 돼- 라고 잘라냈다. 

그리고 오늘, 그 B급 임무마저 마음에 차는 성과로 나오지 않았다. 

오늘 나루토는 호카게실 앞에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손에 든 두르마리를 살짝 고쳐쥐었고 문고리를 잡았다가 떼기를 두번 반복했다. 곧 마음을 굳히고 표정을 갈무리하고 활짝 웃으며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언제나보이던 호카게실이 멀어져보여 조금 부자연스럽게 성큼성큼 걸었다. 

호카게 의자에 앉자 머리 한편으로 미뤄두고 있던 생각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호카게 자리의 주술이라도 걸린걸까- 답지않게 복잡한 생각도 여럿들었다. 


"시카마루. 내가 호카게가 될 수 있을까?"


그 물음을 마지막으로 나루토는 아~!!! 허탈한 소리를 내며 의자로 몸을 푹 뉘였다. 자신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흘려 들으라니깐. 뒷말을 붙여보았지만 늦은건 잘 알고 있었다. 눈 위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괜히 뜨끈해지려는 눈두덩리는 식히려들었다.

그러나 그 손은 얼마 안가 시카마루 손에 붙들렸다.


".... 너는 확실히 공부는 잼병에다가 이성보다는 몸이 앞서니까 비효율적에 남들보다 아주 뛰어난 실력이라고 할 닌자도 아니야. 재능이 특출난 것도 아니고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지."


나루토는 픽 웃었다. 맞아- 라고 맞장구를 치려던 찰나 시카마루가 말을 이어갔다.


"그런 네가 호카게가 되겠다고 말할 때 처음은 콧방귀를 뀌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태클조차 못 걸어. 너는 될거니까. 니가 말하는 건 지키는게 너의 닌도라고 모두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으니까. 다 죽어가는 마당에 당장 세계가 없어질 마당에도 너는 될거라도 호언장담했으니까."


나루토의 손은 따뜻한 체온과 다르게 약간 차가웠다. 손을 꾹 쥐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온기가 돌아온다.


"그래서 나도 너를 호카게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말해다시피 너는 공부도 못하고 특출난 재능도 없고 모자란거 투성이니까. ....내가 그걸 채워주고 알려주면서 니가 호카게가 될 자리를 만들어야 된다고.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피가 낭자하는 전쟁통에서 말이지."


픽 헛웃음이 나왔다. 스스로 말하면서도 조금 우스웠다. 그게 그 상황에서 할 생각인가?


"여전히 너는 암호해독도 못하지만 나는 암호해독에 너보다 뛰어나고, 여전히 너는 하급닌자지만 내가 너를 대신해서 호카게 보좌관이 되어서 길을 만들어 놨어. 그리고 나는 앞으로 니 옆에 있을거다."


체온이 돌아왔다.


"이래도 너는 자격이 없는거냐."


비로소 시카마루는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어울리지 않게 위로라는걸 다시 할 줄이야. 괜히 근지러운 뒷목을 긁었다. 나루토는 큰 눈망울을 몇 번 껌뻑거렸다. 


"무슨...!"


그리고 안겨들었다. 자신 앞에 조금 삐딱하게 서있는 시카마루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좋아해 시카마루."

"알아."

"무드없게 그러지 말고-"

"너한테 무드 소리를 듣다니... 그래그래, 나도 좋아한다."


여전히 자신의 배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나루토를 내려다보고 시카마루는 노란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보기완 다르게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손가락 틈틈히 빠져나갔다. 간지러운듯 킥킥 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깨가 들썩였다. 우리 예비 호카게님이 대답이 마음에 들은 모양이다.


"키스해줘."

"호카게실이다."

"어차피 아무도 없다니깐."

"남의 사무실에서-"

"곧 내 사무실이 될거잖아."


나루토는 시카마루의 말을 싹둑 잘라먹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베시시 웃는 얼굴이 짓궂게 퍼졌다. 억지스러운 논리에 말문이 턱 막혔다. 방금 전까지 곧 죽을 상을 하고 있던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어차피 시카마루는 자신은 이 막무가내에게는 못 이긴다는 걸 잘 알고있다.


허리를 숙여 가볍게 입을 맞춰주지 호선을 그린 입술이 맞닿았다. 촉 짧은 소리의 끝에 나루토는 다시 볼을 부풀렸다. 그걸로 끝이냐니깐? 끝이다. 시카마루는 허리를 세워 몇개 서류를 추려내고 근처 펜을 잡았다. 나루토는 에엑-! 하고 항의했지만 방금 전과 다르게 이럴때의 시카마루는 너무 냉정했다.


"진짜로? 진짜로 뽀뽀가 끝? 그걸로 끝이냐니깐?"

"끝이다."

"난 키스해달라고 했는데에..."

"그걸로 참아."

"칫"


오늘의 나루토는 꽤 빠른 포기의 길을 택했다. 일 하는 시카마루는 아무리 건드려도 콩고물조차 떨어지지 않는 다는걸 꽤 많은 시간을 들여서 깨달았다. 책상에 살짝 걸친 시카마루는 묵묵시 서류를 넘겨 펜을 움직였고 나루토는 턱을 괴고 그런 시카마루는 구경했다. 마침 해도 저물어 가는 광경에 노을 빛이 함께 물드니 안그래도 두텁던 콩깍지가 한겹 더 씌인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애인 하나는 진짜 잘 뒀다니깐.

집중한 제 애인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속으로 킥킥 웃는다.


시간이 깨나 지났는지 벌써 어스름이졌다. 슬슬 눈이 피로한지 침침해지자 시카마루는 서류를 잠시 내려두었다. 문득 주위가 조용하다는걸 깨달았다. 손에 차이는 무언가가 따끈하다.

색색

일부러 숨을 죽인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루토는 어느덧 남의 책상에 편하게 엎드려 잠을 청하고 있다. 아까까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자리라고 말했던 녀석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 무상함에 피식 웃으며 눈가를 가린 앞머리를 조금 치워주었다. 어쩐지 눈가가 조금 거뭇해보였다. 괜히 이런저런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잠자리를 뒤척이게 되는 것도 당연하지. 쯧- 가볍게 혀를 찬 시카마루는 눈가를 가볍게 쓸었다. 노란색 속눈썹이 촘촘하게 박힌 눈가는 황혼과 어우러져 빨갛게 물들었다.

참 잘어울렸다.

그 자리도, 자세도, 황혼도, 나뭇잎 마을도.

전부 그를 위해 마련된 것 처럼 어울렸다. 그래서 시카마루는 그에게 주자고 결심했던 것이다. 이렇게도 이 자리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 또 어디있을까. 아까 호카게실을 열고 들어왔을 때도 뱅글 돈 의자에 앉은 인물이 너무 현실같았다. 마치 아침까지 앉아있던 6대를 넘어서 7대가 이미 제 눈 앞에 현현한 것 같았다. 그래서 잠시간 입을 다물었었다.


분명 지금이 순간이 지나고 나루토는 한 번 더 흔들리는 날이 올 것이다. 굳은만큼 속은 여린면이 있는 녀석이니까 . 그리고 자신을 의심해야 하는 순간은 꼭 나타날 것이다. 그럴때마다 저 귀여운 입술은 또 상념을 풀어내겠지. 시카마루는 책상에 가지런히 올려진 나루토의 오른손을 잡았다. 체온이 느껴지는 듯 조금 싸늘한 손. 그럴때마다 그 넋두리까지 들어주는 것이 바로 자신의 몫이다. 저 입술이 또 오물거리면 그때는 진짜로 키스를 해주도록 하자. 

대신이라고 할 것도 못되지만.

시카마루는 허리를 깊숙이 숙여 새근새근 숨소리가 오가는 입술에 입을 맞췄다.


달칵


"아."

"..."

"아직 내 취임식 끝난지도 얼마 안됐는데 말이지...."


시카마루는 굳은 몸을 어찌할 줄을 몰랐다. 닌자면서 이정도 기척을 잊고 있던건가. 몸이 둔해지는 것도 정도가 있지. 당장이라도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어졌다. 문을 연 카카시는 문턱에 팔짱을 끼고 기대어 생긋 웃었다.


"허튼짓은 다른 녀석이 하고 있었군."

"....... 비밀로 해주시죠."

"일하는거 봐서. 라고 해둘까?"


날이 제법 저물어 버려서 참 다행이다. 캄캄해진 호카게실에 자신의 벌개진 얼굴이 덜 눈에 띌테니까. 라고 시카마루는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렴 '그 카카시'가 그런 것도 눈치 못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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