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우드 주택의 거실 한 가운데에서, OJ는 외로워하고 있었다. 시계침이 똑딱거리는 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들려왔다. 


외로운 OJ라는 지칭은 재미없는 에메랄드나 성격 좋은 앤젤이라는 말처럼 이상하게 들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숨을 건 프로젝트가 끝난 후, 계속 그의 곁에 있었던 마지막 가족이 떠난 것은 생각보다 OJ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엠은 평소처럼 가벼운 짐만 챙겨서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겠다며 집을 떠났다. 바람처럼 떠도는 에메랄드 헤이우드를 이 집에 묶어둘 수단은 더이상 없었다. 엠은 거절했지만, OJ는 한사코 고집을 부려 제 동생을 시내까지 태워 주었다. 마침내 이별의 순간이 도래했을 때, 엠은 조수석 차 문을 열려다 말고 OJ에게 작별의 포옹을 해 주었다. 


"그렇게 불쌍한 얼굴로 보면 떠나기 힘들잖아."


엠이 웃으면서 말했다. OJ는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이따금씩 그와 얼굴을 마주 보는 사람들은 그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을 짓는다고 말하곤 했다. OJ도 스스로 그렇다고 생각했다. 거울을 들여다 보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우울한 남자가 자신의 무심한 동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엠은 언제나 OJ의 얼굴에서 그의 가장 깊은 내심을 읽어내곤 했다. 


"영영 안 오는 것도 아닌데. 걔랑 시간 좀 보내고 금방 돌아올게."

"천천히 와도 돼. 어차피 넌 목장에서 할 일도 없잖아."

"외로운 오빠랑 놀아 주는 게 내 일이지."


그리고 엠은 유쾌한 손인사를 남기고는 차에서 내렸다. 엠은 차에서 내린 후에도 차창을 향해 요란한 작별 인사를 날리다가, 횡단보도 앞에 도착해서는 다시 얌전하게 전방을 주시했다. OJ는 엠이 길을 건너 건물 저 편으로 사라질 때까지 출발하지 않고 동생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외롭다니, 그렇지 않아, 라고 생각하면서. 


나에겐 말들이 있어. 그러니까 너는 언제까지고 자유롭게 네 삶을 살아. 


OJ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엠이 떠나고 일주일이 지난 후, 다음날 아침이 밝을 때까지 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텅 빈 헤이우드 주택에 앉아 있던 OJ는 결국 자신이 외롭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OJ는 고작 30분이 흐르는 동안 병맥주를 홀짝이면서 100번도 더 시침과 분침을 곁눈질했다. 그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돌아오기를. 그가 평소처럼 요란하게 인사하며 헤이우드 주택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기를. 


자신이 그런 짓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자마자, OJ는 스스로가 어이없어서 머리를 싸맸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모든 일을 겪고도 아직도 외로움이 두렵다니. 


OJ가 그런 감상에 빠져 있었을 때, 문득 헤이우드의 마당으로 검은색 승합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들어와 멈춰 섰다. OJ는 엔진 소리를 들었지만 별달리 반응하지는 않았다. 그는 OJ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OJ는 그가 자신을 외로움 속에 혼자 내버려두고 빨리 꺼져줬으면 싶었다. 


"안녕, OJ."


앤젤이 프라이스의 유니폼 위에 재킷만 하나 걸친 채로 현관문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OJ는 고개만 까딱했다.


"이 집 CCTV가 또 먹통이 됐길래,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와 봤어. 또 정전이 된 건 아니지?"

"아니야."

"그럼 고장 났어?"

"아니."


앤젤은 죽은 해파리처럼 터져 버린 진 재킷의 최후를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봤으면서도, 그것이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어두운 색으로 내리는 비, 지나가는 벌레, 움직이는 구름에도 앤젤은 하나하나 예민하게 반응하며 습관처럼 헤이우드 주택을 찾았다. OJ는 가끔씩 그가 진 재킷이 다시 나타나기를 원하는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다. 


"그럼 뭐가 문제야?"

"내가 전원을 꺼 놨어. 이제 미친 사람처럼 하늘을 감시할 이유는 없으니까."


OJ가 무정하게 말했다. 앤젤은 현관문 앞에 멀뚱히 선 채로 목울대를 울렸다. 아아.


OJ는 그것으로 앤젤이 이 집에 있을 이유는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앤젤은 몸을 돌려 집을 떠나는 대신 대뜸 거실로 들어왔다. 재킷을 벗어 대충 근처에 걸어 두고는 OJ가 앉아 있던 쇼파에 함께 앉았다. OJ는 대체 앤젤이 무슨 생각인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럼 내가 할 일은 없네."

"그렇지."


OJ는 악센트에 '떠나라'는 메시지를 실어서 대꾸했다. 하지만 앤젤은 쇼파에서 일어서는 대신 OJ가 탁자 위에 쌓아 둔 맥주병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마셔도 돼?"


OJ는 어깨만 으쓱였다. 앤젤은 그것을 긍정의 대답으로 듣고 맥주병의 뚜껑을 따서 한 모금을 들이켰다. OJ는 거기서 외롭고 안온한 밤은 다 틀렸다고 생각했다. 


"사실, 여기까지 달려 오면서 별별 생각을 다 했어."


앤젤이 갑자기 자기 고백을 시작했다. OJ는 별다른 반응 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집에 도착했을 때 불이 꺼져 있을까 봐 걱정했어. 그 광경을 보면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

"나는 아마 평생을 그런 생각을 할 거야.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에어컨같은 걸 틀어 대서 마을에 정전이 와도 또 그런 생각을 하겠지. 아과 둘세의 그 시골집이 어떻게 됐을까. 그곳에도 어둠이 내렸을까."


그래. 아마 그 일을 함께 겪은 모든 이들이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앤젤도, 엠도, 그리고 자신도. 그 광경을 목격한 이들 중 목숨이 붙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일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OJ만은 아과 둘세의 그 시골집이 어떻게 됐을지 궁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그는 집과 땅에 매여 있는 유령처럼 영원히 이곳을 지키고 있을 테니까. 


"그 생각을 하면, 여기로 달려오지 않고는 못 배기게 돼."


앤젤이 털어 놓았다. OJ는 대답하지 않고 맥주만 한 모금 더 들이켰다.


"한심한 일이지. 다 끝난 일인데."

"아니야."


OJ가 문득 입을 열었다. 앤젤이 고개를 돌려 OJ 쪽을 바라보았다.


"어떤 일들은...시간이 필요하지."


진짜로 끝나기 위해서. OJ가 중얼거리듯 대꾸했다. 앤젤이 힘 빠진 목소리로 웃었다. 그 섬뜩한 말이 어쩐지 서툰 위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끔 너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아. 언제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여기서 말에게 밥을 주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앤젤은 OJ를 존경한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OJ는 그것이 자신의 제일 재미없는 면이라고 생각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OJ는 대충 대답하고는 고개를 털어버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OJ는 앤젤이 빨리 돌아가길 바랐지만, 지금은, 그렇지는 않았다. 앤젤이 있는 동안 OJ는 단 한번도 시계를 보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존재가 외로움을 달래는 데는 조금 도움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OJ는 조금 변덕을 부려 보았다. 외로운 사람들은 가끔 이상한 짓을 저지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도 한다.


"앤젤."

"응?"

"위스키 마실래?"


OJ가 물었다. 앤젤은 OJ가 이렇게 곁을 내주는 일이 흔치 않다는 걸 알았다. 그가 벙찐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OJ가 일어섰다. 그는 거실을 나가 어디론가로 들어가더니, 고급스러운 유리병에 든 오래 된 위스키를 찾아가지고 왔다. 


밤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OJ와 앤젤이 서로의 잔을 부딪쳤다. 




세 시간쯤 흘렀을 때, 위스키는 벌써 반 통이 없어져 있었다.


그 술은 OJ의 아버지가 이 집에서 말과, 영화 산업의 추억과, 가족 사진 다음으로 귀중히 여기던 것이었다. 착실한 OJ는 그러지 않았지만, 엠은 청소년 시절에 호시탐탐 그 술을 훔쳐 먹을 기회를 노렸다. 일탈을 하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단지 아버지를 화나게 하려던 건지 OJ는 알지 못했다. 어쨌든 그의 여동생은 어느날 밤 마침내 그 술을 훔쳐 달아났다가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는 그대로 붙잡혔다. 가혹하게 혼나고 울고 있는 엠을 달래면서 OJ는 생각했다. 언젠가는 저것보다 훨씬 비싼 술을 사 주겠다고. OJ가 그럴듯한 월급을 처음으로 받았을 때 엠에게 위스키를 사준 건 그 약속을 기억했기 때문이지만, 엠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오래 전에 잊어버린 것 같았다. 


이제는 이 술을 마신다고 해서 그들을 혼낼 사람도 없었고, 가혹하게 혼날 각오를 하면서까지 이것을 훔쳐 마시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OJ는 오래 전에 끝냈어야 할 과업을 뒤늦게 수행하는 것처럼 이 술을 말끔히 비우기로 했다. 오래 된 술에서는 눅눅한 볏짚 맛이 났다. 말 먹이를 씹어 먹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우리 게임을 하자."


위스키 몇 잔에 벌써 취기가 올라온 앤젤이 보기 드물게 실실거리면서 말했다. OJ도 제법 경계가 무너져 있었다. 


"무슨 게임."

"번갈아서 비밀 하나씩 말하기."

"그게 무슨 게임이야. 승패도 없고."

"더 말할 비밀이 없으면 지는 거지. 나부터 할게. 음, 나는 열일곱 살까지 동정이었어. 열네 살 때 첫경험을 할 뻔 했는데 너무 긴장해서 실패했거든."


앤젤이 킬킬거렸다. OJ는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묵묵히 다음 잔을 비우는 OJ를 앤젤이 재촉해댔다.


"네 차례야."

"난 비밀 없어."

"그럼 네가 진 거야. 진 사람은, 어, 발가벗고 집 주위를 한 바퀴 돌아야 돼."


OJ가 한숨을 내쉬었다. OJ의 두 다리를 부러뜨린다고 해도 그에게 그런 짓을 시킬 수 없을 것이다.


"빨리."

"...난, 사실 오프라 윈프리 쇼 좋아해. 엠은 늙은이 같다고 하지만."

"좋아. 그렇게 하는 거야. 이 게임에서 하기엔 지나치게 건전한 얘기지만."


앤젤이 박수를 쳤다. 게임은 계속되었다. 앤젤이 낯 뜨거운 TMI를 연발하는 동안, OJ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말의 이름과, 그가 처음으로 참여한 영화, 처음 받은 월급의 액수, 그가 실물로 본 스타들의 이름과 영화 현장의 면면들에 대해 하나씩 털어놓았다. 그러는동안 OJ의 경계가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서, 위스키가 거의 바닥났을 때에는 그가 일주일 내내 시계 초침 소리를 들으면서 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털어놓고 말았다.


"너 외롭구나."


앤젤이 완전히 취해선 쇼파 등받이에 온몸을 기댄 채로 말했다. OJ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넌 외로운 거야. 우리의 강철같은 기수에게도 연약한 면이 있었네."

"그래. 그런가 봐."

"순순히 인정하기까지?"


앤젤이 웃었다. OJ는 어깨를 으쓱이곤 말았다. 술이 떨어져서 조금씩 제정신이 돌아오고 있었다. OJ는 피곤했고, 이 미친 짓을 마무리하고 빨리 잠이나 자러 가고 싶었다. 


"이제 술이 없어."

"게임의 승패는 가려야지."

"무승부로 해."

"안 돼. 누군가는 벌칙을 받아야지."


OJ는 앤젤이 승리를 쟁취하기 전엔 게임이 끝나지 않을 거란 걸 깨달았다. 그래서 앤젤이 다음 비밀을 털어놓으면 재빨리 패배를 선언하고 자리를 뜰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앤젤은 빨리 입을 열지 않았다. 둘은 잠시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각자의 등받이에 기대고 앉아 있었다. OJ는 천장을 바라보는 채로, 앤젤은 OJ를 바라보는 채로.


"OJ."

"응."


앤젤의 부름에, OJ가 고개를 돌려 앤젤 쪽을 보았다. OJ는 앤젤이 마침내 다음 비밀을 털어놓으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둘의 시선이 교차했다. OJ는 앤젤이 게임을 계속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OJ는 기껏해야 그의 실패한 섹스담이나 남모를 페티쉬에 대해서 듣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OJ가 방심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 앤젤이 별안간 상체를 일으켜 OJ에게 돌진해왔다. 둘의 입술이 맞닿았고, 혀도 잠깐이지만 엉켜들었다. OJ는 당황하여 곧바로 앤젤을 밀어냈다. 


"뭐 하는 거야?"

"어...우리 지금 그런 분위기였잖아."


앤젤이 항의하듯 대꾸했다. OJ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너 게이야?"

"아니. 바이인데. 내가 아까 얘기하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일곱번째 비밀 쯤으로 얘기했던 것 같은 기억도 났다. OJ는 앤젤의 비밀을 대부분 흘려 듣고 있었다. 


"너는 어때?"

"뭐가?"

"남자랑 하는 거."


앤젤이 물었다. OJ는 남자는커녕 여자에 대해서도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OJ는 다시 앤젤이 빨리 집에 갔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하지만 위스키를 이렇게 먹여 놓고 알아서 운전해 가길 바라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었다.


"...내일 술 깨고 얘기하자. 오늘은 자고 가."

"나 별로야?"

"그런 문제가 아니야."

"그럼 무슨 문제인데?"


앤젤이 은근하게 OJ의 옷 소매를 잡았다. OJ는 이런 제안을 어떻게 뿌리쳐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애초에 이런 유혹을 받아본 적도 별로 없었다. OJ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그런 쪽으로 별로 인기가 없는 사람이었다.


"왜 나야?"


OJ가 솔직하게 물어 보았다. 앤젤은 OJ의 옷 소매를 만지작거리면서 잠깐 고민하다가, 곧 대답했다.


"우린 엄청난 일을 함께 겪었잖아."

"응."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이해를 못 해."


앤젤의 목소리는 진실하게 들렸다. OJ도 그런 마음에 대해 알았다. 그 일이 있은 후, 남매는 한동안 여러 매체에 불러다녔다. 덕분에 조금 돈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금방 꺼졌다. 사람들은 아과 둘세에서 있었던 일들을 모두 잊은 것처럼 보였다. 


앤젤은 누구든 만나기만 하면 아과 둘세에 나타났던 그 기묘한 동물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설명하고 싶은 열망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건 사람들에게 이미 다 지나가버린 화제에 불과했다. 


"그래서, 나도 외로웠어."


앤젤이 말했다. 그 고백에 외로운 OJ의 마음도 조금 무방비해졌다. OJ는 쇼파를 박차고 일어서는 대신, 조금 망설이다가, 앉은 채로 손을 뻗었다. 앤젤의 염색한 금색 머리카락이 OJ의 손 안에 가득 잡혔다. 앤젤은 취기에 물든 눈을 감은 채로 그의 손에 자신을 맡겼다. OJ가 긴장한 듯 숨을 삼켰다. 


"처음이야?"


앤젤이 물었다. OJ는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앤젤은 웃지 않았다. OJ는 그가 웃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웃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더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문득 앤젤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그의 목덜미에서 시원한 계열의 향수 냄새가 맡아졌다. OJ는 그 냄새가 앤젤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아래쪽에 조금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앤젤이 그에게 키스하는 동안, OJ는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자신의 허벅지를 어색하게 주무르고 있었다. 


입술이 떨어지고, 앤젤이 OJ의 허벅지 위에 올라타면서 프라이스의 유니폼 상의를 잡아당겨 벗었다. OJ는 앤젤의 아래쪽도 자신과 비슷한 상태가 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 OJ는 그들의 속도가 비슷하다는 것이 조금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앤젤이 OJ의 상의도 끌어올려서 벗겼다. 둘의 입술이 다시 마주 닿았을 때, OJ는 자신의 맨살에 와닿는 타인의 벌거벗은 살결을 생경하게 느꼈다. 그것은 따뜻했고, 묵직했고, 내면에서 쿵쿵거리는 박동이 느껴졌고, 무엇보다 살아 있었다. OJ는 그 감각이 생각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어서 놀랐다. 그는 살아있었다. 그가 스스로를 파란 방수포와 철조망으로 감았던 날, 울타리가 조금만 더 길거나 약했더라도 사라졌을 감각이었다. OJ는 순간 아찔한 기분이 들어 앤젤의 몸뚱이를 꽉 껴안았다. 


"앤젤."

"응."

"앤젤."


OJ가 그의 이름을 연거푸 속삭였다. OJ는 자신과 앤젤과 엠이 모두 그날 끔찍한 위험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위험을 피하지 못해 결국 죽음을 맞은 이들 때문에 깊은 슬픔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에야 분명하게 깨달았다. 


앤젤도 OJ의 어깨를 깊숙이 껴안았다. 둘은 잠시동안 그렇게 껴안은 채로 서로의 심장 박동을 느꼈다. 


OJ가 그것을 충분히 각인한 후 고개를 들었을 때, 앤젤이 OJ의 이마에 짧게 뽀뽀했다. OJ는 이제 정말로 준비가 된 것 같았다.


OJ가 앤젤을 통째로 들어올려 쇼파 위에 길게 눕혔다. 


그날 밤, OJ는 태어나서 한번도 해 보지 못했던 것들을 잔뜩 경험할 수 있었다.

내로라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