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부러져버렸던 발목은 괴물같은 회복력으로 나았다고는 하지만 종종 말썽을 피울때가 있었다. 날이 궂으면 한번씩 욱신대는 것이, 그럴때면 재희는 괜히 더 표독스러워지곤 했다. 그럴때면 청위의 부하들은 저들의 미친 안주인 기분을 거스르지 않기위해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았다.


오늘도 그랬다. 한낮이 가까워서야 겨우 일어난 재희는 눈을 뜬 순간부터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안그래도 벌겋던 목덜미가 새빨갛게 물들어있는 것을 숨길 생각도 없이 헐렁헐렁한 긴팔옷을 대충 걸쳐입은 채 집 안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살랑대다가 짜증을 부렸다가 하는 것이다.

청위의 보스는 그걸 두고 까만 고양이라고 하는 듯 했지만 부하들의 입장에선 웬 미친 재규어 하나가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재희가 그들 보스의 여자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게 말이 좋아 보스의 여자지, 사실은 달릴거 달린데다 어지간히 싸움박질 잘 하는 남자라는걸 모르는 멍청이는 없었으니 몸을 사리는게 당연했다.

처음 몇달은 괜히 텃세를 부리거나 만만하게 본 놈들이 시비를 걸기도 했었다. 그걸 매번 숨이 간당간당할때까지 두들겨놓고는 이미 양 발을 전부 삼도천에 걸친 놈의 핏물을 뒤집어 쓴 채 질질 끌어 집안을 가로지르는 꼴을 보고서야 부하들은 제 주인의 연인이 무서운줄을 알았다. 

그렇게 끌고간 놈들은 태현의 앞에 던져졌다. 청위 놈들은 보스의 여자한테 껄떡대도 괜찮은가봐? 라며 당연하게 스스로를 보스의 여자라고 칭한 재희는 제 몸에 묻은 피가 태현에게 묻는것 정도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태현의 멱살을 잡아 당겼다. 누가 보고있는것도 아무렇지 않은지 입을 맞추고는 안겨드는 재희의 옷 안쪽을 쓰다듬으며 얘는 잘못먹으면 체한다니까는. 하고 태연스레 말을 뱉는 태현도 제정신은 아닌듯 싶었다. 부하들은 그 쯤이면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도 잽싸게 방을 비웠다. 그러고나면 닫힌 문 안쪽에서 달큰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두사람이 한 집에 있을땐 알아서 두사람이 있을법한 곳을 피해다니는게 좋았다. 퍽 불편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재희가 혼자 집에 있을때보다는 나았다.

재희 혼자 집에 있을때면 제 취향인 부하들에게 추파를 날리거나 집 밖으로 빠져나가기 일쑤인데, 그렇게 되면 태현의 심기가 불편해졌다. 저 미친 안주인은 스스로를 보스의 여자라고 칭하면서도 다른 남자 아랫도리 빨아주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서 문제였다.

그렇다고 혼자 있는 재희를 막을 수도 없었다. 그랬다가 죽은 가족과 만날뻔 한 놈들이 너무 많았다. 차라리 태현이 빨리 돌아오기만을 비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재희의 개짓거리는 줄어들었다. 여전히 부하들은 재희의 눈치를 보느라 눈을 깔고다녔지만 예전보단 나았다. 운동상대로 걸리지만 않으면 다칠일도 없었다.

그러나 가끔 날이 궂을때면, 또다시 부하들은 태현이 어서 돌아오기만을 빌어야했다. 짜증이 솟구친 안주인은 눈만 마주쳐도 으르렁대기 바빴다.


"왜 심통이 났어, 공주야."


그나마 오늘은 태현이 금방 돌아왔다. 비라도 내리려는지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고 일정을 취소한 덕분이었다.


"아니거든."

"아니긴, 이렇게 찌푸려놓고."


태현은 입술을 삐죽대며 고개를 돌리는 재희의 미간을 살살 펴주며 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돌던 재희를 안아들었다. 잔뜩 심통이 나서는 짜증이라도 부릴것처럼 굴어놓고 은근슬쩍 몸을 기대오는 것이 이렇게나 고양이 같은데 남들은 왜 모르겠다는건지 모를 일이었다.


"뭐하게."

"마사지 해주려고."


재희를 침대에 얌전히 앉혀놓고는 욕실에 들어갔다 나온 태현의 손에는 오일과 뜨끈한 물이 담긴 작은 대야가 들려있었다. 하얀 셔츠를 팔뚝까지 걷어올린 모습을 보며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는단 생각을 한 재희가 흥, 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갑자기 마사지는 무슨."

"기분 좋을걸? 옛날에 사모님들 마사지도 해봤거든."


장미냄새가 폴폴나는 오일을 침대 곁에 두는 태현의 말에 재희가 그제서야 눈을 맞춰왔다. 파란 눈 한가득 담긴 의아함에 사모님? 하고 되묻는 말이 들리는것만 같아 태현은 가볍게 웃었다.


"말했잖아, 바닥부터 기어올라왔다고. 어릴때 잠깐 해봤지."

"야해. 사모님이랑 무슨짓했어?"


허벅지 안쪽으로 붉은 자국을 단 맨다리를 쭉 뻗은건 본인이면서 야하다며 저를 흘겨보는 재희의 부러졌던 발목위에 따뜻한 수건을 올린 태현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냥 말동무 해드린거거든. 어릴때라니까."

"어려도 분명히 손대고 싶어하는 사모님들 많았을텐데?"

"십대때야, 너무 어려."


욱신대던 발목이 조금은 잠잠해졌는지 표정이 풀린 재희를 살피며 태현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왜, 난 그때 첫경험 했는데?"


조심스레 따뜻한 수건 너머로 재희의 발목을 주무르던 손에 순간적으로 힘이 들어갈뻔 한 것을 겨우 참아낸 태현이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재희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조잘조잘 떠들기 바빴다.


"그때는 아저씨들이 손 많이 대더라고. 사모님은 안그래?"

"으음…. 아저씨."

"형이 보스 하기 전에는 삼촌이 보스였거든? 삼촌 친구들인지 뭔지 아무튼 그 사람들."


그 삼촌이란 놈이랑 친분이 있던 새끼들 다 잡아 죽여야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태현은 제 손위에 장미향이 나는 오일을 쭉 짜내 문질러 덥히고는 따끈따끈해진 재희의 발목을 약하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파?"

"넌 가끔 내가 유리로 만들어진줄 아는거 같더라? 너만큼은 아니어도 나도 되게 튼튼하거든?"


기분은 좋은지 웅얼웅얼 뱉어내는 재희의 말에 조금 더 힘을 줘 발목부터 종아리까지 꾹꾹 눌러 문지르며 태현이 웃었다.


"아닌거 같은데. 우리 색시 너무 연약해서 자꾸 기절하잖아."

"그거야 네가 너무 집요하니까 그렇지! 새벽까지 박으면 누구라도 기절하거든?"

"색시가 야한데 어떡해. 쳐다만봐도 좆이 서는데."


미끈한 장미향 오일이 종아리를 넘어 허벅지 안쪽을 문지르고 있었다.


"...기분좋게 해주면 넣게 해줄게. 그래도 새벽까진 안돼. 나 진짜 죽을지도 모른단말이야."


어느새 슬그머니 벌어진 재희의 다리를 보며 웃은 태현이 재희의 몸 위로 올라타 가볍게 입을 맞췄다.


1,2차 글쟁이 호박곰입니다 ㅇ_ㅅㅇ)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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