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 

*칠눈...인데? 논씨피로 드셔도 무방함

*쓰다가 음 이건 내 손을 떠났군 한 글이라 짧아요....




사랑 참 지랄맞게 하는 데는 뭐가 없다. 그거 그냥 되는 거더라. 어떻게 이렇게 된 건지 미리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고. 좆되는 거 알면서도 꼭 찍어 먹어보고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무엇인지도 모른채 그냥 휩쓸려가게 된다. 그랬다. 그렇게 됐다. 한 줄 요약 끝. 더는 할 말이 없다.

그애를 만나리라고는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천신은 좀 알았을지도 모른다. 인간을 싫어하다 못해 혐오하는 신답게 예고조차 안 했다. 진명은 세상천지 우르르쾅쾅 땅을 작살나게 뒤흔들어대고 하늘을 찢어갈기듯 번쩍번쩍 번개를 쳐주고 비를 좍좍 뿌려대며 요란뻑쩍지근 온사방팔방 얘 좀 봐라 얘 세상만사 모두가 알게 해줬으면서. 얘 앞으로 평생을 이렇게 살 거에요, 하고 선고만 땅땅 박아주더라. 넌 일단 이렇게 살 거긴 한데 뭐 내 알 바? 알아서 해 하고 어쩜 이리 한결같이 인간에게 무심하고 아 천신 인간 좀 싫어하는 듯? 이 아니라 그거 맞네 하고 확신만 줬다. 그렇다고 원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애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삶을 괜히 또 상상해보다가 기분만 역해졌기 때문이다.

닳고 닳은 감성에 곧죽어도 찾아볼 수 없는 공감에 살아남기를 최우선으로 치다보니 단물만 쪽쪽 빨아먹고 싶어서 적재적소에 갈아 끼워대는 되먹지 못한 사회성을 가지게 된 미친놈이 보기에도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 얘 뭐야? 싶다가 뭐 저런 게 다 있어? 로 넘어가서 하여간에….로 끝맺었으니 심경의 변화를 알 만 하리라. 이 ‘하여간에….’가 문제다. 뒤에 생략된 것이 많아서 그렇다. 많고 많은 것들 앞에 붙어서 전에는 하지도 않았고 생각지도 못했던 모든 짓거리들을 가능케 했다. 설명하기도 쉬웠다. 하여간에 그렇게 됐다고. 그 애를 마음에 들인 건.

까맣게 반질거리는 눈이 보기에 그렇게 좋았다. 굳게 다문 입술이 이따금 잔열같은 정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웃는 것이다. 조용히도. 그게 저 때문이라는 걸 항상 뒤늦게 깨달았다. 파악과 인지의 틈에서 잠깐 침묵을 유지할 수 밖에 없는 저를 그 사이에도 가만 두지 않겠다는 듯, 그러니까, 그 애는, 그 순간에도… 불가항력의 무언가를… 깊고 넓고 세게, 그렇게.

그렇게.

사랑하는 걸 그만둘 수는 없었다. 통제가 되는 감정인가 그건. 살아남으려면 배제해야 할 것들 순위 중에서 꽤 높은 위치를 차지했었는데. 사랑이 사람을 죽게하고 또 살린다. 그게 무슨 염병이냐고 따지기엔 제가 그러고 있다. 모든 걸 쥐고 흔들 수 없다면 어디 안전한 곳에 얌전히 넣어두고 모른 척하는 것이 제 딴에는 최선의 현실 타협이었다.

그러나 감정이 어디 가려지던 것이던가. 거짓말을 잘 한다고 자부하더라도 진실이 있는 한 소용이 없을 것이다. 옷에 숨긴 바늘마냥 따끔따끔하다. 그런 양심의 가책은 이미 버렸는데. 전부 떠나보냈는데. 어디서부터가 시작이고 한계인지 알 수 없는데 재발의 이유를 짚어낼 수 있을까. 원인모를 감정은 진단이 불가능하니 알맞은 치료제라고 처방받을 수도 없었다. 고칠 수도 없으니 영원히 끌어안고 살 것이다. 불치병처럼. 그렇게 남은 평생이 되겠지, 네가.

세상에 등장한 악몽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덮쳐왔다. 저멀리서 밀려오는 재앙이 항거할 수도 없다는 걸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죽어나가고, 범접할 수 없는 숭배의 대상마저도 죽고 죽었기 때문이다. 마치 거대한 운명처럼 걷잡을 수조차 없다. 그것은 하늘의 뜻이고 단죄가 되었다. 악몽은 그렇게 세상에 고하고 있노라. 학살의 중심에서. 이 역병같은 단죄를 막아보고자 사람들은 저마다 악몽을 진단했다. 그러나 늘 실패했다. 어딘가 미쳐버린 학자들만이 진실에 근접했으나 사막에 모래알로 스러지거나 광기로 취급받거나 했다. 그렇다. 그들은 ‘사랑’을 외쳤다. 사랑없이 살아야 가능한 삶을 사는 진왕이 누구보다도 열렬히 ‘사랑’하고 있노라고 외치면 그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천신이 인간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만큼이나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그러나 늘 이면을 보고 진실을 꿰뚫어 저마다의 언어로, 공식으로 세상을 설명하는 학자들에게는 영 말도 안 되지가 않았다.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어야 하지만. 봐라. 단죄도 결국은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싫어했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 딴에 세상에 관심을 두고 고치겠다며 달려든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지독히도. 그러면 어느 한 구석에 반발이 나왔다. 세상을 사랑한다면서 다 죽이는 건 또 무어란 말인가. 악몽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인가 세상 속을 살아가는 그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인가? 그 무언가를 위해 단죄를 행하는 것이지 않나? 그 무언가가 악몽의 세상이라면? 거기에 걸맞는 세상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필요없는 것은 버리고 골라내고 치우는 것처럼. 우리는 악몽이 원하는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그 과도기 한복판에 서 있는게 아닌가?

그리고 새하얀 머리카락의 사내가 전설로만 전해지는 상서로운 눈과 함께 등장했다. 학자들은 주시한다. 가장 유력한 가설을. 악몽의 곁으로 달려간 진군위를.

악몽은 학자들에 의해 쓰여지고 논해진 기록들과 역사들을 지켜본다. 흘러가는 시간과 쌓이는 감정들 사이에서 목적을 이루고 있다는 충족감이 얹혔다. 죽음은 늘 그의 손끝을 따라다녔다. 남의 것이든, 그의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든. 그러니 열심히 그려내고 적어내려가며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어떠한 죽음이었고 죽음이 될 것인지를.

피에 절은 옷을 입고 삭막하게 되짚던 죽음은 흥이 나질 않아 무심한 시선을 던지고 만다. 겹쳐지는 죽음들이 한 권의 역사서가 될 때까지 반복된다. 피처럼 붉은 입술이 달싹이고 만다. 죽음과 사랑으로 잠식된 악몽이 노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이 살아 돌아왔음에도 멈출 수가 없을 것이다. 죽든 살았든, 악몽의 사랑은 여전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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