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해결사건부>윤노아x여주인공(플레이어 디폴트 코드네임:로즈)
  • 한섭만 플레이해서 중섭에서 나온 스토리나 설정같은건 잘 몰라요. 오류가 있어도 너그럽게 스루해주세요.
  • 갑작스럽지만 여러분은 윤노아와 루인이 같은 성우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냥 그렇다구요.......... 
  • 분명 입덕은 유신우였는데...윤노아 스토리를 보면볼수록 골때리고 웃겨서 그만....... (제일 웃겼던거: 학위 두개 발언)
  • 전부 날조입니다. 공식이 아닙니다.
  •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_^~~~~






<서브컬쳐 속 섹시한 사이코 정신과 의사 클리셰남에게 애호 받고 있다>






윤노아는 혼혈이었다. 그것도 양쪽 국가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종적 특징만 끌어와 섞어 둔 듯한 모습의 가장 이상적인 혼혈 말이다. 요약하자면 예쁘장하다는 뜻이다.

 

서양인 특유의 선명하게 쌍꺼풀진 눈이나 긴 속눈썹은 서구적이면서도 부담스럽거나 과하지 않았다. 얇은 입술은 단아하고 콧날은 오뚝하고 광대와 턱은 완만하게 갸름했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눈동자였다. 유리잔 속 샴페인처럼 투명한 금빛 눈동자가 어찌나 영롱하게 반짝이는지 가만히 눈을 맞추고 있으면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턱을 감싸며 살랑거리는 은발과도 참 잘 어울렸다.

 

이렇듯 인형처럼 아름다운 용모의 윤노아는 행동거지마저도 조신하고 고상했는데, 듣자 하니 본국에서는 귀족 작위인지 뭔지 하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요즘 세상에 귀족이라니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남자의 직업은 의외로 정신과 의사였다. 최근에는 대학에서 교수로 강연을 하고 있었다. 사근사근하고 상냥하고 평판도 좋다. 내가 알기로 윤노아의 주변인 중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혈통도 좋고 직업도 좋고 용모도 수려한 남자는 어디 하나 빠지는 곳 없이 완벽했으나, 딱 하나 약점이 있었다. 이걸 약점이라고 해도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약한 면’을 약점이라고 하니까. 약점은 약점인 것이다.

 

윤노아의 약점은 아침이었다.

 

“윤 선생님. 아직도 정신이 안 드세요?”

 

윤노아는 초점 없는 눈으로 침대에 구부정하게 앉아있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이 몇 시인지.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분간이 안 가는지 눈동자가 멍- 했다. 앞머리는 헝클어지고, 섬세한 금실이 수 놓인 연한 크림색 셔츠는 단추가 세 개나 풀려 속살이 훤히 보였다.

 

“교수님. 이제 일어나셔야죠. 1교시 있으시다면서요. 제자들이 기다려요.”

 

1교시라는 말에 윤노아의 눈에 ‘내가 왜 1교시를 한다고 했을까-’ 하는 후회가 얼핏 서렸다. 천하의 윤노아가 후회라니. 그는 평소 지독할 정도로 자기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남자라서, 이런 사소한 표정 변화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귀했다.

 

“유신우씨가. 선생님 분명 자느라 1교시 못 갈 거라고 했는데 사실이었네요.”

 

막 자다 깬 남자는 멍하고 몽롱해서, 안경을 거꾸로 뒤집어씌워도 모를 것 같았다. 탁상에 가지런히 놓인 안경을 들어 남자의 콧잔등에 살짝 얹어주었다. 도수 탓에 어지러운지 윤노아가 눈을 질끈 감는다. 찌푸린 표정이 귀여워서 혼자 웃다가, 조심히 위아래를 뒤집은 안경을 다시 제대로 씌워주었다. 그때 손목에 서늘한 손길이 느껴졌다.

 

“재미있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멍하니 있던 윤노아가 내 손목을 아주 살살, 부드럽게 잡고 있었다. 힘이 거의 들어가지 않아서 잡는다기보다는 살짝 짚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깨지기 쉬운 유리 조각을 대하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윤노아가 내 손에서 안경을 가져갔다.

 

“아....! 정, 정신이 좀 드세요?”

“깨워주러 왔군요. 고마워요.”

 

변명하지 않아도 남자는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다. 윤노아의 시선이 내 눈에 머문다. 숨기고 있는 속마음을 하나도 남김없이 샅샅이 읽어내려는 듯, 내 눈과 코, 입술, 턱, 씰룩거리는 뺨에 이르기까지 집요하게 살핀다. 낯뜨거울 정도로 노골적인 시선에 결국 얼굴이 고구마처럼 새빨개졌다.

 

“...죄송해요. 윤 선생님께서 이렇게 멍하니 계신 건 처음 봐서. 신기한 마음에 장난쳤어요. 아침에 이렇게나 못 일어나실 줄 몰랐어요...”

 

열 오른뺨을 손부채질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내 행동에서 자신에 대한 호감을 읽어낸 남자가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내 결점이 당신의 호감을 사는 요소로 작용한다니 기쁩니다.”

“선생님은 정말이지 무슨 말씀을 그렇게 전공 책 읽는 것처럼 하세요.”

“당신이 내게 푹 빠지면 좋겠어요.”

“아이고. 그렇다고 너무 훅 들어오시진 마시고.”

 

딱딱하게 말한다고 뭐라 했더니, 이번에는 거리감 없이 직구로 돌진해온다. 진땀을 흘리며 화제를 돌렸다.

 

“그, 그리고, 원래 사람이 좀 부족한 면이 있어야 끌리는 거 아닌가요?”

 

안경을 접어 탁상에 내려놓은 윤노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누구에게나 신뢰를 주는 나직한 중저음에 귀를 기울인 것도 잠시-

 

“하지만 당신은 존재 자체로 완벽해요. 부족한 면 같은 건 없습니다.”

“선생님...제발...제발요...제가 잘못했으니 그만 하세요. 다시는 안경으로 장난 안 칠게요.”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방심했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낯뜨거운 찬사에 내가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재미있는지 윤노아가 설핏 웃는다. 역시 진심은 아니고 나를 골리려 일부러 장난치는 것 같다.

 

그만하시라고 흘겨보자 윤노아가 눈꼬리를 가늘게 휜다. 눈빛에서 묘한 애교가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착각이겠지. 착각일 것이다.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가만히 눈을 마주치고 있자 윤노아의 커다란 눈이 또 가물가물 감긴다. 졸린 가보다.

 

“아직 피곤하세요?”

“아니요. 괜찮아요.”

“졸리신 것 같은데... 아직 삼십 분 정도 여유 시간 있으니 더 주무세요. 다시 깨워드릴게요.”

 

그를 다시 침대에 눕히려는데 어디선가 지잉, 하고 낮은 진동음이 들렸다. 내 것인 줄 알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액정에는 아무런 불도 들어와 있지 않다. 진동은 전혀 다른 곳에서 울리고 있었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윤노아의 휴대전화였다.

 

착각일까? 그가 츳, 하고 혀를 찬 것 같았다. 휴대전화를 집어 든 윤노아가 망설임없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고 끊어버리는 행동에 조금 당황했다.

 

“괜찮으세요? 급한 연락...아닌가요?”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지잉-

 

괜찮기는 무슨. 아니나 다를까. 즉시 또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윤노아의 눈에서 순간 빛이 꺼진 것 같았다. 낯설 정도로 서늘하고 무감동한 눈이었다. 윤노아가 물끄러미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다 다시 고개를 들고 미안한 듯 웃었다.

 

“미안해요. 잠시만요.”

 

괜찮다고 대답해야 하는데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까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던 것 같은데 착각일까. 시끄럽게 울려대는 휴대전화를 윤노아가 탁상 위에 놓인 어항으로 가져갔다. 참방, 하는 소리와 함께 휴대전화가 물에 잠기며 어항 밑바닥에 가라앉는다.

 

“...?”

 

그의 행동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뭐가 잘못된 건지 바로 뇌까지 전해지지 않았다. 눈을 끔벅 끔벅거리다 한 박자 늦게, 어? 하고 멍청한 소리를 냈다. 물에 잠긴 휴대전화의 액정이 곧 까맣게 변하며 꺼졌다. 침수를 인식하고 보호 모드로 변경된 것이다.

 

“어, 어어. 어...어.”

 

입술만 벙긋거리며 어항 속 휴대전화를 가리키자 뒤늦게 윤노아의 눈동자에 아차, 하는 빛이 어린다.

 

“혹시 방금 제 행동이 부적절했나요?”

“알긴 아시네요...”

 

어색한 대답에 윤노아의 눈이 흐려진다.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입술을 살짝 깨문다. 저거 빨리 건져야 할 것 같은데 건져도 괜찮겠지. 쭈뼛거리며 다가가 물에 잠긴 휴대전화를 건졌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휴대전화를 급한 대로 휴지로 싸맸다.

 

“사실. 요즘 감정 조절이 잘 안 돼요.”

 

한탄 섞인 어조였다. 고개를 돌리자 윤노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웃고 있었다. 손으로는 이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당신이랑 있을 때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면...화가 나는 것 같아요.”

 

그가 내게로 손을 뻗었다. 주저하다 휴지로 싼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 윤노아가 건네받은 물건은 탁상에 올려놓는다. 살래살래 고개를 젓는 태도에서 그냥 내버려 두라는 뜻이 전해졌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네요. 부디 잊어주세요.”

“아니에요. 요즘 스트레스받는 일 있으시면 언제든 이야기해주세요. 저라도 괜찮으시다면요.”

 

윤노아가 대답 대신 생긋 웃는다. 윤노아는 말을 할 때나 음식을 먹을 때를 제외하면 거의 입을 벌리지 않는다. 입을 벌리지 않고 입꼬리만 살짝 올린 미소가 유달리도 연약해 보였다.

 

지잉-

 

그때 주머니 안쪽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내 전화가 맞았다.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받으려는데 불쑥 조금 전 윤노아가 한 말이 떠올랐다. ‘당신이랑 있을 때.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면 화가 나는 것 같아요.’

 

“급한 전화 같은데, 받으세요.”

 

윤노아가 퍽 너그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런 비유를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내의 부정을 눈감아주는 마음 넓은 남편 같은 어투였다.

 

“괘, 괜찮아요. 나중에 다시 걸면 돼요.”

“빼앗거나 부수거나 하지 않을 테니 받으세요. 괜찮아요.”

 

남자가 손등으로 입매를 가리며 웃었다. 설명이 꽤 구체적이었다. 꼭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버리고 싶다는 것처럼 들렸다. 찜찜함 속에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유신우였다. 내가 윤노아를 잘 깨웠는지 궁금해서 전화했단다.

 

창가에 기대서서 전화기 너머 유신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째 뒷목이 싸했다. 불길한 예감에 뒤를 돌아보자 침대에 앉아있던 윤노아가 없었다. 덜컹, 하고 나무장 흔들리는 소리에 옆으로 시선을 옮겼다. 대체 침대에서 언제 내려온 건지. 윤노아가 장식장을 짚고 휘청거리며 기대 서 있었다. 잠이 덜 깨서 원근감이 떨어진 모양으로 금방이라도 고꾸라져 쓰러질 것 같았다.

 

“선생님! 잠깐만요! 제가 부축해드릴게요! 신우씨. 미안해요. 조금 있다가 다시 걸게요.”

 

급하게 전화를 끊어 침대에 내던지고 윤노아에게 달려갔다. 팔을 안고 부축해 세우자 그가 쑥스럽게 웃으며 “고마워요.” 한다. 말간 얼굴은 복숭아꽃 같은데, 끌어안은 팔은 남자답게 단단하다. 책상에 앉아 일만 했을 텐데 상당한 근육질이었다.

 

얇은 셔츠 너머로 느껴지는 갈라진 팔 근육의 감촉을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머릿속으로는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다른 생각을 하며 그를 부축해 계단을 내려갔다. 잠시 말이 없던 윤노아가 불쑥 입을 열었다.

 

“고백할 게 있어요.”

 

윤노아의 고백이라니, 어째 불안하다. 표정만으로는 지금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판별할 수 없는 남자라서 몇 배로 더 불안했다.

 

“사실 그렇게까지 어지러운 건 아니었는데, 당신의 관심을 받고 싶어서 과장된 행동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전화 끊고 달려와서 좋으세요?”

“아마도...네.”

 

좋은 것 같다고, 윤노아가 애매하게 말끝을 흐렸다. 자기도 자기가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잘 모르겠다는 눈치다. 뭐라 대꾸할 말이 없어서 한숨을 삼켰다.

 

“솔직하시네요. 솔직하게 고백하셨으니 용서해드릴게요. 그나저나 슬슬 시간이 빠듯해요. 아침 먹을 시간은 없으니, 차에서 샌드위치 드세요. 제가 학교까지 차로 태워드릴게요.”

“솔직하게 고백하기만 하면 뭐든지 용서해주시는 건가요?”

“어...그건 좀. 상황을 봐야 할 것 같은데...”

“어느 정도 선까지 용서해주시나요?”

“선생님.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혹여나 저 가지고 실험해볼 생각은 하지 마세요.”

“하지만 궁금한데...”

 

작은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숨결이 목덜미에 닿는 것 같았다. 지금 윤노아를 돌아보면 끝장이다. 머릿속에 적신호가 켜졌다. 그것은 본능에 가까운 신호였다. 지금 고개를 돌려 윤노아와 눈을 마주친다면, 무언가가 완전히 끝장나버릴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밀려왔다. 지금 돌아보면 돌이킬 수 없다. 지금 돌아보면.

 

톡-

 

“-!”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고서야 그 작은 소리가, 계단 난간을 두드린 윤노아의 손톱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코끝이 닿도록 가까운 거리에서, 내 쪽으로 고개 숙인 윤노아가 반짝이는 눈으로 웃고 있었다. 동시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계단 옆에 난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남자의 아름다운 얼굴을 하얗게 부신다. 금색 눈동자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잔인하도록 천진난만했다.

 

“궁금한데. 대답 안 해주실 건가요?”

 

농익은 처녀 같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퉁명스레 대답했다.

 

“...궁금한 게 많으면 먹고 싶은 것도 많다던데.”

“지금 농담하신 건가요?”

“네.”

“저도 학생들한테 써 봐야겠네요.”

“하지 마세요. 이미지랑 안 어울려요. 윤 교수님.”

 

이 남자와 함께 있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심장이 철렁해서,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붉어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계단을 내려갔다. 내가 대답하지 않을 것을 알았는지 윤노아가 내게 더 살며시 기대온다. 가느다란 줄기를 뻗는 나팔꽃 같았다. 그에게 조용히 어깨를 내주었다. 


큰일이네. 


마음속으로 탄식했다. 첫사랑이었다.

 






(끝)

 

이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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