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박인결과 그의 아버지는 객관적으로 나쁜 관계는 아니었다. 오히려 좋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박인결을 많이 아꼈다. 특히 어린 나이의 제가 아내를 잃은 것보다 더 큰 상실감을 가졌을 아들이 불쌍하다 생각하기도 했다. 엄마의 빈 자리만큼 채워주려고 노력하기도 했었지만 여전히 그건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박인결은 이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밤 10시에 무슨 야식이에요.”

“밤 10시니까 야식인 거지?”

어이가 없었지만 이렇게 야식을 들고 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 박인결은 주름진 손이 쥐고 있는 봉투를 제쪽으로 가져올 뿐이었다.

“간장 치킨?”

“응. 아들이 좋아했던 거 같은데?”

좋아하긴 했다. 튀긴 걸 잘 안 먹는 박인결이었지만 치킨만큼은 예외였다. 그도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으니 말이다. 무의식중에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신나?”

“그럼요. 이주연이랑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

아마 신나서 이 치킨을 다 해치우겠지만 어쨌든 녀석은 지금 자기 집에 있었다. 문득 이주연이 마지막으로 뱉은 말이 생각났다.

‘헛소리 하지 말고 끊어 인마.’

자신의 엄마를 닮았다고 하는 게 그렇게 싫은가. 아님 그저 어이가 없었던 것일까. 손을 씻고 먹을 준비를 하면서 고민했던 것을 툭 아버지에게 던졌다.

“아버지.”

“코X 아니면 펩X.”

“아무거나요.”

“에헤이 맛이 다른데 어떻게 아무 거나가 되나.”

어차피 둘 다 가져올 게 뻔했다.

“제가 이주연한테 우리 엄마 닮았다고 그랬거든요?”

“그래?”

박인결의 아빠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 침음하다 그래서 라며 되물었다.

“근데 헛소리 하지 말래요.”

“아 주연이 답네.”

호쾌하게 웃은 그는 닭다리를 제 아들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하긴 주연이는 확실히 네 엄마랑 닮은 구석이 있지.”

이주연은 박인결의 엄마를 닮았다. 이 사실은 사실 이주연만 모르는 것이었다. 그의 엄마도 하다못해 그의 누나도 저 성격은 우리 집 성격이 아니라며 맨날 분통을 터트리지 않는가.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지만 사람 답답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걸 꼭 빼닮았다.

“닮으면 제가 닮아야 하지 않나 싶은데.”

“네가 네 엄마 좋아하는 것보다 더 좋아했잖니. 이제 와서 말하지만 너희 둘이 형제라는 소리를 들은 게 넌 날 닮고 주연이는 네 엄마를 닮아서 그렇다. 얼굴은 하나도 없는데 하는 행동이나 분위기가 작은 혜연이 같지 뭐니.”

또 호탕하게 웃긴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슬픔이 스쳤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지만 대답도 않고 반응도 안 하는 네 옆에서 사흘 내내 애교부리고 재롱 피우는 거 보고 크게 깨달았지.”

콜라를 잔에 채우고 있는 박인결과는 달리 아버지의 손에는 맥주 캔이 들려 있었다.

“슬프긴 녀석이 제일 슬펐을지도 모르는데. 첫날 하루 울고 안 울었었지? 그에 비해 우리 아들은 사흘 지나서 미국 가서도 종종 울고.”

의문이긴 했다. 그렇게 엄마를 쫓아다녔으면서 같이 울어주기는커녕 재밌는 얘기를 해주겠다며 조잘거렸던 이주연은 일하는 분들을 돕기까지 했다. 그러지 말라고 화를 내도 우리 인결이 이제야 나한테 말을 거네 라며 웃는 놈이었다. 그래서 차마 미국에 있는 제게 연락을 안 했던 것일까. 그때 숨겨본 감정이 곪아서 박인결이 보기 싫어졌던 것일까.

처음 그와 과외를 시작했을 때는 온갖 적대감으로 똘똘 뭉친 게 눈에 선했다. 그래 봐야 숙제 안 하고 말 안 듣고 질문하는 거 외에는 말도 안 거는 것 뿐이었지마는.

“아버지.”

“그래 아들.”

“그때 주연이한테 제 전화번호 제대로 전달하신 거 맞죠?”

“그랬는데? 요즘엔 사이 좋게 지내는 것 같던데 왜 또 그걸로 싸웠어?”

차라리 말이라도 한 번 꺼내볼까 싶었다. 하지만 미국 얘기만 하면 여전히 속이 울렁거리고 손이 떨려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단순히 왜 전화 하지 않았냐는 질문 하나만 하면 되는 것일 텐데.

“주연이도 힘들었대.”

“...그건 전에 얘기해주셨잖아요.”

“경기에서 크게 넘어지고서 많이 우울해 했다는 거?”

이런 주제가 나올 때마다 꾸준히 말이 나오는 얘기였다. 박인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리 자주 말했나 회상하던 아버지는 뭐 알면 적당히 봐달라는 식으로 대화를 마쳤다.

“내일은 어디 가는 데 없니? 아빠가 데려다줄까?”

“주말에도 출근하셔야 하잖아요. 아침에 운동하고 도서관 갈 생각이에요.”

“집에서 하지.”

집이라면 너무 좋았다. 환경도 좋고. 하지만 지나치게 넓은 것도 있었다. 도서관은 그래도 사람이 많으니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안 들어서. 박인결은 입꼬리만 올려 웃을 뿐이었다.

“아 그래. 주연이 데리고 와라.”

“...이주연이요?”

“그래. 어차피 너희 둘 다 공부하잖니. 아주머님한테 맛있는 거 좀 해달라고 하고.”

그새 맥주를 반 이상 비운 그는 괜찮은 생각이라며 알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주연이한테는 네가 얘기할래?”

“...걔 올 생각 안 할 텐데. 그리고 걔 오면 다른 애들도 불러야 해요.”

“그래 다른 애들도 좀 불러!”

박인결은 굳이 숨길 생각도 안 하고 불쾌감을 표출했다.

“어 우리 아들? 그런 표정 지으면 안 되는데~”

“시끄러워져요 그럼. 특히 이주연 빠돌이 두 놈이 있는데.”

“그럼 주연이한테 둘이서만 보자고 하면 되지.”

“이주연은 아마 저보다 걔네를 더 좋아할 걸요. 단 둘이서 과외도 없는데 볼 이유는 없어요.”

말해놓고 나니 짜증이 치미는지 박인결은 미간을 확 구겼다 폈다.

“...설마 아들.”

“왜요.”

“질투해?”

웃음을 참을 참는 모습이었다. 제 아들의 질투를 목격한 게 기쁜 듯 그는 박인결의 어깨를 쥐곤 아까보다도 더 크게 웃었다. 애초에 웃음을 참는 게 아니라 크게 터트리기 위해 시간을 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이고. 우리 아들이 사춘기인가. 친구 친구들한테 질투를 하고.”

“...웃지 마세요.”

“그래그래. 한창 그럴 나이지. 아이고 주먹싸움 안 하는 것만 해도 어디니. 인결아 알지?”

“선빵은 필승이 아니고 일단 맞고서 합의금을 뜯자. 이거요?”

“그래. 그렇다고 맞는 대로 다 맞진 말고. 주변에 증인 만들어두고. 똑똑하니까.”

눈가의 눈물까지도 훔친 그는 박인결의 어깨를 토닥이며 빈 그릇들을 싱크대로 옮겼다. 고무장갑까지 끼고 설거지를 하는 모습은 한 대기업의 사장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 근데 요즘 괴롭히는 애들은 없니?”

설거지를 하느라 싱크대 위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컸다. 박인결의 주저함은 물소리에 묻혀 있었다.

“없어요.”

짧은 부정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빠가 정리할 테니 넌 주연이랑 다시 통화하라며 엉덩이를 툭 차주기 까지 했다. 박인결은 그대로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꼭 닫았다. 숨겨뒀던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18살이라는 나이는 본인에겐 자신이 꽤 자란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건 그 시간이 지나서야 알아챈다. 최근 들어 집요한 괴롭힘이 는 것 같은 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차단해버린 문자와 카톡을 풀기만 해도 수십 개의 문자들이 쏟아질 것 같았다. 박인결은 전화 기록으로 들어가 그중 가장 위에 남은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반대편에서는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이주연. 내일 우리 집 올래?”

물어봐서 피해 볼 건 아니었으니까.

 

*

 

“...서혜인?”

“얜 괜찮지 않을까?”

이주연의 옆에 있는 건 겨우 한 사람 뿐이었다. 부스스한 머리로 일어나자마자 대충 껴입고 머리만 누르고 나온 건지 서혜인의 눈에는 졸음이 가득 묻어 있었다.

“...왜? 공부할 거라며. 왜 벌레 보듯이 봐.”

“그런 적 없어.”

“어제 씻었어. 자고 일어나면 머리는 당연히 뻗치는 거잖아.”

가방이 꽤 무거워 보였는데도 서혜인은 실례 한 마디만 내뱉으며 박인결을 지나쳐갔다. 박인결이 이주연을 물끄러미 보자 터치 인식을 하는 것처럼 술술 대답이 들려왔다.

“원래 아침에 좀 저기압이야. 저러다 말아. 둘이서 민기원이랑 김도원 떼어낸다고 고생했단 말이야.”

이주연은 어제 박인결의 전화를 받자마자 서혜인에게 먼저 얘기를 했다. 전부터 박인결을 노리던 서혜인은 냉큼 알겠다고 말했고 이주연은 서혜인에게 그럼 민기원이랑 김도원도 부를까 물어본 것이다. 그리고 서혜인은 아주 명확한 대답을 내놨다.

“둘 다 시끄러우니까 부르지 마라고 하길래 난 응 알았다고 그랬지,”

박인결은 서혜인의 성격은 몰라도 하는 행동은 꽤 마음에 들었다. 물론 친구 입장에서는 정 없다고 서운해할 거 같지만 그저 반 친구면 딱 좋은 관계였다.

“너 혜인이랑 잘 지내봐. 둘이 성격 개똑같아서 잘 맞을 듯.”

박인결은 이주연의 말이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일종의 동족혐오다. 이쪽을 바라보던 서혜인도 마찬가지인지 쳐다만 볼 뿐이었다.

“여기 혹시 북극이야? 피부까지 얼겠네.”

“한 여름인데 뭔 개소리야. 박인결 여기?”

박인결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사실 서혜인의 선택은 아주 합리적이었다. 세 명은 최고의 공부팟(?)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이주연은 두 사람에게 각자 잘 하는 것을 물어보며 제가 부족한 점을 채웠고 서혜인은 간단하게 박인결과 얘기를 주고받으며 못 풀었던 국어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박인결은 그저 조용한 환경에서 집중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지난번에 인원이 많을 때는 시간이 지날수록 서혜인의 얼굴은 낯이 어두워지기만 했는데 지금은 간식까지 입에 넣을 정도로 맑았다.

“...야 이거 어디 거냐?”

“D 제과. 지난번에 아버지가 사오셨어.”

“되게 비싼 데 아니야?”

박인결은 그런가 대답을 하며 입에 다쿠아즈를 넣었다. 너무 달아서 하나 이상은 안 먹고 이주연도 마찬가지라 대부분은 서혜인의 입으로 들어갔다. 이주연은 인절미나 고구마처럼 흔히 말해서 구수한 입맛을 가지고 있었다.

“나만 먹는 거 같은데.”

“조용히 있으니까 상관 없어.”

“그럼 시끄러운 애들은 안 주게?”

“더 줘야지. 그래야 닥칠 거 아니야.”

“맞는 말이네.”

이주연은 민기원이나 김도원이 들으면 섭섭할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는 두 인간들을 노려봤다.

“너흰 정이라는 게 있냐?”

“있으니까 너랑 친구 하지.”

쉽게도 나온 대답에 이주연은 감동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틀어막았다. 역시 우리 혜인이 겉으로는 드라이아이스여도 속은 뜨스운 핫팩인 거지? 서슴없이 서혜인의 목을 껴안은 이주연은 얼굴을 비비기까지 했다. 서혜인은 박인결을 쳐다봤다. 마치 눈치라도 보는 것처럼 구는 통에 박인결은 슬쩍 입을 벌렸다. 이미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하긴 전부터 서혜인의 말이 의미심장하긴 했다. 그런데 사귀는 것도 아닌데 왜 눈치를 보는 것인가 싶었다.

“밀어내지 마아...”

“징그러워 미친놈아. 박인결 얘 좀 떼어 내봐!”

“그냥 둬. 너희 저녁 먹고 갈 거야? 그럼 지금 얘기해야 하는데.”

“아 나 저녁에 형이랑 밥 먹기로 함.”

목을 껴안고 있던 이주연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야 나도 데리고 가. 너희 형 못 본 지 꽤 됐어.”

“우리 형 지갑 털지 않겠다고 하면.”

“아니 사주신다는 데 마다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아 이 참에 너도 박인결 너도 인사 좀 해라.”

박인결의 대답도 없이 결정된 탓에 그는 저녁 때 겉옷을 입고 집을 나서야 했다. 도대체 주변에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 건지 가늠도 안 됐다.

 

글을 씁니다

서레야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