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밤이었다. 창밖에는 이따금 천둥 번개도 치고 있었다. 날씨가 이런데, 치사토는 정말 좋은 날씨라고 했다. 공포영화를 보기에.

 

“치사토, 영화 시작해요. 빨리.”

“벌써? 지금 갈게~.”

 

오프닝 화면이 뜨는 타이밍에, 팝콘이 가득 든 데드풀의 머리통을 들고 치사토가 나타났다. 소파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타키나에게 팝콘 통을 내민다.

 

“히히, 이것 봐.”

“뭔가요? 기분 나쁘게.”

“기분 나쁘다니, 데드풀이 상처받잖아.”

“죽은 사람 머리통이 어떻게 상처를 받아요.”

“자자, 이날을 위해 산 거니까.”

“이런 것 좀 그만 사세요.”

 

말하면서 타키나는 머리통, 아니. 팝콘 통에 손을 뻗었다. 둘이서 팝콘을 입에 집어넣고 우물거리며 화면으로 시선을 향한다.

 

“타키나, 보다가 무서우면 치사토 씨한테 안겨도 돼.”

“안 안겨요.”

“나는 안겨야지.”

“맘대로 하세요.”

“……………우왓!”

“조용히 하세요. 영화 시작했으니까.”

“췌엣. 안 놀라네.”

 

치사토는 입을 삐죽이면서 뒤로 손을 뻗어 타키나의 머리칼을 만지작였다. 타키나는 영화에 집중한 듯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은 사뭇 치사토를 만족시켰지만,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내가 보여주는 영화를 열심히 봐줬으면 하지만 나도 봐줬으면 한다. 치사토는 상당히 성가셨다.

지금 둘이서 보는 영화 제목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 여름 특선 영화로 이번에도 치사토가 선정한 것이었다.

 

“돈을 훔친 여자를 추적하는 형사물인가요?”

 

제법 영화 패턴을 파악하게 된 타키나가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치사토는 타키나의 머리칼을 만지작이던 손을 내리고, 몸을 앞으로 굽혀 음료수가 담긴 잔을 들었다.

 

“그런 요소도 있긴 한데. 뭐, 끝까지 봐봐.”

“네.”

 

치사토가 팝콘에 손을 가져가고, 타키나가 음료수 잔에 손을 가져갔다. 그대로 둘이서 영화에 집중한다.

남자친구와 결혼하기 위해 회삿돈을 빼돌리고 모텔에 묵게 된 여자 주인공을 극진하게 대접하던 모텔 주인은, 그가 샤워하는 장면을 엿보려고 했다. 그 장면의 시퀀스가, 이 영화를 유명하게 만든 명장면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쥐며 화면 앞으로 몸을 살짝 숙이는 타키나를, 치사토는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화면 속의 여자 주인공이 욕조에서 죽고, 화면이 전환됐다. 다음 장면에서 모텔 주인은 죽은 여자 주인공을 보고 놀라 당황했다.

 

“모텔 주인이 범인이 아니네요?”

“글쎄~.”

“범인인가요?”

“타키나 씨, 끝까지 보면 알게 돼.”

“………네.”

 

영화 속 인물들의 범죄 행위나 사격 자세에 딴죽을 거는 수는 확연히 줄어들었지만, 반대로 이야기의 전개가 어떻게 되는지 빨리 알고 싶어하는 경향이 늘었다. 치사토는 그 점도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타키나의 다리에 드러누웠다.

 

“타키나, 팝콘. 아~.”

“일어나서 드세요.”

“입에 넣어줘~.”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팝콘을 쥔 손을 치사토의 얼굴에 갖다댄다. 치사토는 입을 벌린채 기다리고 있다가, 팝콘이 코에 닿아 당황한다. 무릎을 모아 몸을 위로 옮기고, 입을 벌리고, 타키나의 손가락째 집어넣는다. 타키나가 깜짝놀라 치사토의 입에서 손가락을 빼냈다.

 

“뭐하시는 거에요?”

“음~. 짜.”

“당연하죠.”

 

타키나가 화면에서 눈을 떼고 물티슈를 찾아 몸을 굽힌 사이, 창밖에서 번개가 치고 화면에 모텔 주인의 어머니의 정체가 드러났다. 치사토가 때를 놓치지 않고 양팔로 타키나의 허리를 껴안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우와앗! 타키나, 타키나 저거 봐! 꺄아악!”

“뭐, 뭔가요?! 우왓, 무거워.”

“뭐?! 너 지금 뭐라고 했………….”

 

갑자기, 온 세상이 어둠으로 덮였다. 둘은 놀라서 굳어있다가, 몸을 떼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허둥지둥 권총을 찾아 소파를 손으로 더듬는 타키나 옆에서, 치사토는 스마트폰 불빛으로 방안을 살폈다.

 

“아차, 정전인가보네. 조금 기다리면 비상 전원으로 전환될 거야.”

“순간 적습인줄 알았어요.”

“아하하. 나쁜 놈들도 비 오는 날에는 쉬겠지.”

“그렇게 방심하면 안 좋………….”

 

타키나의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치사토는 번뜩 장난을 떠올렸다. 치사토의 휴대폰에 깔린 보안 앱으로, 침입자에 대한 경고는 물론 전기와 수도도 조작할 수 있다. 전원이 들어오는 순간 몰래 다시 전원을 꺼버리고, 살짝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타키나는 무슨 반응을 보여줄까.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방금 그런 영화를 봤으니 조금 영향 받을지도 모른다. 화장실을 혼자서 못 가는 것 까지는 기대하지 않지만, 조금 불안해하는 모습은 볼 수 있을지도. 치사토는 그런 생각을 하며 남몰래 사악하게 웃었다.

 

“아, 전원 들어왔네요.”

“그러게. 다행…………어.”

“어.”

 

치사토의 조작으로 예비 전원이 다시 나갔다. 치사토는 연기로, 타키나는 진짜로 당황한다. 어둠 속에 침묵만 이어지는 가운데, 갑자기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렸다. 살짝 놀라면서도, 치사토는 이것도 기회로 생각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타키나, 지금 들었어?”

“네? 뭐를요?”

“어디서 물소리 들리지 않아?”

“치사토가 설거지 하고 나서 물을 제대로 안 잠근 거 아니에요?”

“아니거든.”

 

실제로 몇 번 있었던 일이라서, 치사토는 자기도 모르게 볼멘소리를 높였다.

 

“그럼, 샤워하고 나서 샤워기를 틀어놨다던가.”

“확인해볼래?”

“…………………….”

“…………………….”

 

둘은 잠시 침묵하고, 어둠 속에서 스마트폰 불빛을 켜고 척척 걸음을 옮겨 방안에서 이동했다.

 

“어디부터 가려고?”

“주방이요.”

“그래, 그럼 나는 샤워실에…….”

“안 돼요. 같이 가요.”

 

덥썩, 타키나에게 손목을 붙잡히고, 치사토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아? 타키나 무서워?”

“아니거든요. 치사토한테 무슨 일 생기면 안 되니까, 같이 움직여야죠.”

“아이잉. 믿음직스러워.”

“놀리지 마세요.”

“놀리는 거 아닌데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치사토는 타키나에게 손을 붙잡힌채 주방으로 이동했다. 물은 잘 잠겨있고, 똑, 똑하는 물소리도 나지 않았다. 스마트폰 불빛으로 확인했다.

 

“그럼, 다음은.”

 

문제의 샤워실. 아마 잘못 들었거나, 옆집 물소리라던가 그런 거겠지만. 치사토는 내심 조금 두근거렸다. 무서움 반, 공포 체험에 대한 기대 반으로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었다.

 

“치사토. 불빛 좀 비춰주세요.”

“응.”

 

그렇게 말하면서 치사토는 자기 얼굴에 스마트폰 불빛을 갖다댔다. 어둠 속에서 얼굴에 빛을 갖다 대서 귀신처럼 보이게 만드는 흔한 연출을 할 생각이었다. 예상과 달리 불빛이 눈에 직격해, 치사토는 호들갑을 떨었다.

 

“우왓! 눈 부셔! 와앗!”

“뭐 하세요. 바보에요?”

“너무해! 아, 내 휴대폰! 떨어뜨렸어. 어디로 갔지?”

“정말이지……….”

 

타키나가 한숨을 내쉬며 자기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손전등 버튼을 누른 순간, 치사토의 얼굴이 나타나 깜짝놀라 몸이 뒤로 무너졌다.

 

“와앗!”

“타키나?!”

 

욕조 안으로 떨어지려는 타키나의 손을, 치사토가 급하게 붙잡는다. 둘은 그대로 아까 청소를 끝낸 아무것도 없는 욕조에 빠졌다.

 

“아파아……….”

 

치사토는 자기가 벌인 일에 대해 조금 후회했다.

 

“괜찮으세요?”

“응. 타키나는?”

“저도요. 그런데 치사토.”

“와아아앗! 휴대폰으로 얼굴 비추지 마! 놀라잖아!”

“아. 잘못해서 거꾸로 들었어요.”

 

둘은 거기서 또 조용해졌다. 천둥 번개가 치는 비 오는 날 밤에 공포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정전. 안 들리던 물소리가 들리고, 원인을 규명하기까지. 크게 무슨 일은 없었지만 뭔가 탈력감이 찾아왔다. 조용한 욕실 안에 똑, 똑 하는 규칙적인 물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정말로 물소리가 들리네요. 치사토, 잠깐 그쪽 비춰봐 주실래요?”

“아, 응.”

 

이쯤 되면 정말로 샤워하고 물을 제대로 안 잠근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실로 돌아가면 타키나가 눈치 못 채게 전원 버튼을 눌러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타키나에게 휴대폰을 건네받고, 조명 버튼이 켜진 상태에서 욕실을 비춘다. 그 순간, 욕실 거울에 검은 머리 여자의 창백한 모습이 비쳤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치사토?! 왜 그러세요!”

“귀, 귀, 귀, 귀…………….”

“뭐라구요?”

“귀시이이인! 귀신이 있어!”

“네? 귀신같은 게 있을 리 없잖아요.”

 

타키나의 냉정한 목소리에, 치사토도 놀랐던 게 조금 진정됐다. 헛것을 본 걸까. 숨을 가누는데, 옆에서 웃음 소리가 나서 다시 몸을 흠칫 떤다.

 

“치사토, 귀신이 무서우세요?”

“놀리지 마아아아!!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라 놀란 거야!”

“총은 안 무서워하는데.”

“또 그 소리냐! 총알은 피해도 귀신은 못 피하잖아!”

“귀신은 없어요.”

“타키나가 어떻게 알아?”

“없으니까 없죠. 그런 건 인간의 뇌가 착각을 일으키는 거에요. 분명 아까 무서운 영화를 봐서…….”

“타키나, 아까 그 영화 무서웠어?”

“…………장르가 호러영화잖아요.”

“왜 방금 조금 대답이 늦었어?”

“안 늦었어요.”

“타키나아~.”

“왓, 뭔가요?! 어두운데서 스마트폰으로 얼굴을 비추지 마세요!”

“귀신이다~ 치사토 귀신~.”

“귀, 귀신은 죽은 사람이 원한이 있어서 천국에 못 가고 현세를 떠도는 거잖아요! 치사토는 살아있어요!”

“귀신 안 믿는 거 치고 자세히 아네?!”

“치사토가 귀신이 되지 않게 제가 옆에 있을 테니까요!”

 

타키나는 흥분해서 갑자기 치사토에게 달려들었다. 좁은 욕조에 등을 기대고 있던 치사토는 피하지도 못하고 타키나에게 안겼다.

 

“엄청 감동적인 멘트인 거 같긴 한데! 앞뒤 맥락상 의미가 조금 이상하지 않아?! 잠깐, 숨막혀! 타키나!”

 

치사토가 공간을 벌리려고 손을 뻗은 순간, 샤워기에 손이 닿아 물이 쏟아졌다. 물에 젖은 치사토가 호들갑을 떨며 비명을 지르고, 거기에 놀란 타키나도 소리를 질러서, 욕실 안은 두사람의 비명으로 울려퍼졌다.

 

 



 

 

수 시간 후, 전원이 들어온 거실.

둘은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며 소파에 앉았다. 그대로 아까 보던 영화를 영혼없이 이어서 보고, 리모컨에 손을 뻗어 감흥없이 전원 버튼을 끈다. 영화를 볼 때 항상 엔딩 크레딧까지 보던 치사토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데드풀 머리통 속의 팝콘은 눅눅해져 있고, 잔에 담겨있던 탄산은 다 빠져 맛이 밍밍해져있었다.

 

“……………타키나.”

“네.”

“영화 어땠어?”

“회삿돈을……………횡령하면 안 돼요.”

“응…………. 그렇네.”

“그리고, 아무 모텔에나 가면 안 돼요.”

“응……………그렇네…………….”

“샤워할 땐 문을 잘 잠가야겠어요.”

“응…………. 그렇…………. 아니, 잠깐. 너 지금 날 못 믿는 거야?”

“네? 무슨 소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냐.”

“…………………….”

“…………………….”

“치사토.”

“응?”

“무서우면 절 껴안고 자도 괜찮아요.”

“아니, 안 무서운……………………응?”

“……………안녕히 주무세요.”

“타키나, 잠깐.”

“네.”

“치샤토, 무쪄워.”

“………………………….”

“뭐, 뭔데. 그 표정.”

“……………………………………….”

“뭐라고 말 좀 해봐!”

“타……………. 타키냐는 하나도 안 무서워요.”

“풉, 푸하하하하하하!”

"웃지 마세요!"

“으하하하하하하! 타키나 너무 웃겨!!”

"하나도 안 웃겨요!"

 

둘은 바닥에 누워 이불을 덮고, 서로 껴안고 잠들었다.

바로 옆 욕실에서, 여전히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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