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gger warning

본 소설은 체벌 요소, 폭력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장편] wE will N D 13









W. 편백









"뭘 바라세요?"



개별은 결국 참지 못하고 생각하던 그대로 말을 내뱉어버렸다. 밖에서 엿듣고 있던 C가 놀란 얼굴로 문에 달린 유리창을 통해 치료실 내부를 살폈다. 



날이 잔뜩 서 있는 그 말투에 S의 안면이 전체적으로 꿈틀거렸다.



"뭐?"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시냐구요."



진심으로 궁금했다. 제게 대체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 본인이 훈련장에 무방비한 상태의 저를 집어 쳐 넣어 놓고 다쳐 왔다고 지금 화를 내는 건가? 개별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터놓고 얘기나 좀 들어보자는 식으로 몸을 힘겹게 일으켜 세워 앉은 개별은 얼룩 덜룩한 얼굴로 저를 바라봤다. 녀석의 눈에선 흔들림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S가 주먹을 꽉 쥐었다.




 네가 어떻게 하길 바라냐고? 




모르겠다. 나도 모르겠다고. 네 새끼 그 고운 면상에서 빨주노초파남보를 다 찾아낼 수 있을 만큼 휘황찬란하게 멍들어 있는 것도, 제게 그 어떤 말도 의지도 없이 괜찮다고 일관하는 것도 짜증이 난다. 악령도 홀릴 것 같은 눈으로 저를 아니꼽게 올려다보는 것도 싫다.



다치지 않길 바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ND에서 지내지 못하도록 쫓아내는 게 맞지. 아니면, 나한테 쌀쌀맞지 않게 굴기를 바라는 것인가? 



S가 순간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그의 뒤로 유리창 너머 고개를 빼꼼 내민 C와 눈이 마주쳤다. 개별은 길게 날숨하며 몸에 힘을 풀었다. 무언가를 보더니 어깨를 갑자기 축 늘어뜨리는 녀석의 동태를 캐치한 S가 뒤를 살짝 돌아 보았다. 정보 팀장이 서 있었다.



S는 눈에 가득 실린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C의 능력인가. 눈 마주치면 개별이의 어깨든 내 눈이든 힘이 싹 풀리는 게 말이다. 개별이 놈은 아마 마음이 놓여서일테고, 나는 짜증나서겠지.


내 눈을 바라보는 눈과 정보 팀장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서.


S는 멍이 군데 군데 들어있는 제 어린 것의 몸을 눈으로 훑었다. 어째 이 녀석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러다 온 몸이 본연의 색이 무엇인지 까먹으면 아바타나 슈렉마냥 푸른색으로 피부가 재생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넌 정보 팀장이 그렇게 좋냐?"



...?



제 뒤, 문 너머를 바라보던 녀석이 미간을 꿈틀거렸다. 제게 뭘 바라냐는 질문에 맥락 다 무시하고 대뜸 정보 팀장 얘기를 꺼내니 본인의 귀가 의심되나 보다. 저를 올려다보는 눈빛엔 경멸과 당혹스러움이 혼합되어 있었다. 이 눈깔은 진짜 겪어봐야 안다. 세상 띠껍다.



"네."



뭐야 저 표정은...? 개별은 어쩐지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S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봤다. 난데 없이 정보 팀장님이 좋냐고 물어보는 건 왜고, 좋다는 말에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저를 내려다보는 것인지 의미도 의도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3번처럼 이쁨 받고 싶어?"


3번은 또 왜 나와? 개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솔직히 말해서 C와 3번의 사이가 부러웠던 것은 사실이었다. 정보 팀장님이야 원래 교육생들에게 친절하고, 자상했기에 마음 같아선 형 혹은 삼촌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그는 본인 팀원에겐 지극한 존경심을 우러러 받고, 받는 만큼 팀원들을 챙긴다.


그에 반해 작전 팀장님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말 그대로 바라지도 않는다. 아니 바라면 안 된다. 이쁨은 무슨. 그냥 하루라도 손찌검을 안 당하면 감지덕지지. 남들은 팀장님이 나를 특별히 여기고 애정을 쏟아붓는다고 하지만 난 단 한 번도 그리 생각해 본 적 없다. 그저 남들 다 노린다는 나를 본인에게 맞추어 길들이고 싶은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저를 이리도 모질게 대할 리가 없지 않은가.


"네가 예쁨 받을 짓을 해."


봐라. 이게 정보 팀장님과 당신의 차이다. 정보 팀장님은 있는 그대로의 사람의 성품과 능력을 존중하여 상호보완적 관계를 이러가지만 당신은 일방적으로 상대를 자신의 잣대에 맞게 끼워 맞추려하지 않나.


"저도 정보 팀장님이었으면 예쁜 짓 했죠."


냅다 할퀴어버렸다. 끊임없이 내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팀장님이 몹시도 싫었다. 당신과 정보 팀장님은 달라요. 나는 팀장님한테 예쁜 짓 하기 싫어요. 라는 의미의 말을 기어코 뱉었다.


S가 그득 인상을 찌푸렸다.


나니까 이렇게 띠꺼운 거다? S는 저와 C를 차별대우 하는 개별에게 나름 서운한 티를 낸 거였으나, 그 말은 개별에게 '너는 내게 예쁨 받을 자격이 없다.'라는 뜻으로 해석되었고, 그에 따른 개별의 대답은 '당신은 내 예쁜 짓을 받을 자격이 없다.'였다. 제가 말을 내뱉는 족족 받아치는 게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주는 대로 받은 것 뿐인데.



"제가 3번이 정보 팀장님 대하듯 살갑게 굴길 바라는 겁니까?"



기세를 이어 녀석이 말을 덧 붙였다. 나름 숨기고 싶었던 S의 욕구가 녀석에게 제대로 간파 당했다. 꿈도 꾸지 말라는 듯, 역겨움 가득한 표정을 내어보였다.



"속마음 다 털어놓고, 팀장님 보자마자 칭얼대고 하나부터 열까지 하소연 하기를 원하세요?"



그걸 바라는 것인가. 그래 씨발, 그걸 바란다. 바라면, 해줄 생각은 있냐? 나는 네가 다친 게 몹시나 속이 상한데 나한테 신경쓰지 말라는 식으로만 말을 하니 내심 서운하고, 화가 난다. 대체 넌 왜 나를 그렇게 싫어하는 건지 모르겠다.



"3번이 작전팀에 오면, 팀장님한테 정보 팀장님 대하듯이 굴 것 같습니까?"



다 내 탓이다? 어쩜 저리도 날카로운 말을 서슴치 않고 내뱉는 것인가. 내가 잠자코 들어주고 있기 때문인가? 역시나 내가 만만한 탓인가?



"그럼, 네가 정보팀 가면, 3번처럼 굴 자신은 있고?"



S의 눈빛에 힘이 실렸다. 녀석에게 모질게 내쳐진 내 진심이, 너를 향한 마음이 이리도 대놓고 거부 당하니 초라하기 그지없다. 내 자신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로 비참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팽팽한 기싸움이었다. 두 눈빛이 허공에서 맞닿아 지직 거렸다. S의 오펜스에 개별의 디펜스가 전혀 밀리지 않았다. 무엇이든 뚫는 창과 무엇이든 막는 방패의 대결이었다.



"걔네는 너 시험하고 싶어서 안달난 놈들인데 뭐하러 어울려주는 건데?"


"팀장님은 그런 말씀하실 자격 없습니다."



그리고 그 대결은 일방적으로 무엇이든 뚫는 창이 불리 했다. 이 녀석은 방패로 방어만 하는 게 아니라, 공격도 함께 하니까. 나는 이 창으로 그 넓은 면적의 방패를 모조리 디펜스할 수가 없었다. S는 심장이 불룩 불룩 뛰는 기분이었다. 네가 뭔데 나한테 자격을 논해? 일그러진 S의 표정에도 개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 녀석은 저런 쌈닭 기질을 풍길 때면 상대가 누구든 쫄지를 않는다.




"팀장님도 저 시험하려 든 건 마찬가지고, 버금 가는 상해 입힌 것도 사실이잖아요."




무슨 말을 저렇게... S의 눈이 크게 일렁였다. 천천히 시선을 내려 녀석의 벗은 상체를 훑었다. 그 곱디 고운 허연 피부엔 곳곳이 붉게 물들어 부어있다. 그리고 곳곳에 보랗다 못해 시커먼 멍자국도 새겨져 있었다. S가 개별에게 저지른 학대의 흔적이었다. 그 놈이 입은 상처는 녀석들이 주먹질 발길질로 낸 것보다 제가 며칠 전에 몽둥이를 휘둘러 낸 것이 더 많았고 색도 짙었다.




그래, 네 말이 다 맞다. 네 몸이 말해주잖냐. 내가 그런 말할 자격이 어디 있냐고.



"지금도요. 저 때리고 싶잖아요."


"...너 말 그딴식으로 할래?"


"이런 걸 바라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할 말이 없다.


넌 정말 이 아이가 너한테 마음 열고 이것 저것 심정을 털어놓길 바라는 거니? 어린 아이가 부모를 만나면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듯이? 그렇다면, 녀석이 내게 솔직함을 드러내는 지금이 왜 기꺼운 건데? 


넌 그냥 이 녀석이 내 말에 기었으면 좋겠는 거잖아. 내가 명령하는 대로 움직여주며 짖을 땐 짖고 배나 살살까며 애교나 부리길 바라는 거잖아. 마치 개처럼.


왜 쟤가 네 개처럼 굴길 바라는 거니? 개 취급이 목적이라면 굳이 이 녀석에게 요구않아도 ND에 널려 있었다. 간잽이 같아 혐오해놓고 막상 저의 말이라면 몽땅 거스르려는 이 녀석에게 간잽이 노릇을 하길 바라는 것인가.


S가 주먹을 꽉 쥐고 녀석의 몸을 훑던 시선을 올렸다. 날 보는 눈빛이 참 좋지 않다. 저 예쁜 두 눈에 서린 증오감이 너무나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상처 받은 건가. 


개별에게 두어 발자국 성큼 다가섰다. 베드에 달린 철 손잡이를 두 손으로 넓게 잡고 허리를 숙여 녀석과의 눈높이를 맞췄다.




"네가 맞을 짓 한 건 그새 까먹고 내 원망이야?"





그래 상처 받은 거다. 네 말 하나 하나가 송곳 마냥 뾰족해서 이리 저리 긁힌 내 가슴이 미치도록 따갑고 쓰리다. 나를 지독히도 거부하는 너를 나는 지독히도 원한다. 네 놈이 나를 이리 물어 뜯어도 나는 여느 놈들 대하듯 과감히 널 버릴 수가 없다.



"그게 네 맘이 편해서 그렇니? 네가 멍청했던 건 인정이 안 돼?"



과연 누가 누굴 가스라이팅 하는 것일까? 잘못을 저질러 놓고 나를 원망하는 녀석인가, 때려놓고 네가 잘못 했으니까 라는 말을 하는 나인가.


둘 다 서로에게 잘못을 논할 자격이 없다. 녀석은 내게 죄를 저질렀었고, 나는 과잉처벌... 그래, 학대를 했다. 누구보다 인정하는 바였다. 그리고 속으로 수십 번이나 후회하고 반성했다. 네가 나를 싫어하고, 나만 보면 인상을 굳히는 게 내 업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곤 할 수 없지 않은가. 각자 반성의 시간을 갖고 서로에게 사과하지는 못 할 망정, 서로에게 돌팔매질을 하니 그 어떤 마음도 해소되지 않고 또 다른 상처만 생길 뿐이었다.


"그러니까 계속 그 모양 그 꼴인 거야. 그 꼬라지로 있는 게 싫으면 남탓 세상탓 하지 말고, 스스로나 돌아봐. 너 자신이나 바꾸라고, 이 병신 새끼야."



이건 누구를 향한 말이었을까.



S의 냉기 어린 말에 개별의 표정이 돌처럼 굳었다. 차가운 두 시선이 맞닿아 온 방 안을 차갑게 얼어 붙였다. 서늘하고 차갑다. 아까까지만 해도 둘은 불똥이 튈 만큼 팽팽하고 열기에 가득찬 싸움을 했는데 지금은 또 극지방보다 더 차가울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S는 개별을 위 아래로 훑고선 차갑게 돌아섰다.




콰앙-!




치료실 문을 세게 닫고 나오는 S에 벽에 기대어 서 있던 C와 미국지사 의료 팀장이 황급히 그를 맞았다. 안에서 하던 대화를 모조리 듣고 있었던 C가 S의 눈치를 살폈다. 차갑다. 아주 냉혹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쟤 저렇게 만든 새끼들 어딨어."



S가 의료 팀장을 바라보며 나즈막히 물었다. 풍기는 아우라를 보아하니 찾아가서 깽판을 치고 올 기세였다.



"A 병동 104..."



위치를 전해 듣자마자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는 S의 손목을 C가 황급히 붙잡았다. 새로 산 옷에 더러운 거라도 묻은 것 마냥 예민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다.



"뭐하려고 그러십니까?"

"족칠 거야."


S는 본인의 손목을 단단히 붙들고 있던 C의 손을 반댓손으로 잡아 떼어냈다. 


"S...!"


저의 부름을 가뿐히 무시하며 빠르게 돌아섰다. S가 점이 되어 시야에서 사라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아..."



C가 골치 아프다는 듯 미간을 짚고 탄식했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는 거야.


저 녀석 일이라면 물 불 안 가리고 달려들어 해결한다. 본인이 제일 녀석을 괴롭히면서 남이 괴롭히면 절대 가만히 못 두지. 개별이가 3급 때 사내 괴롭힘을 당했을 때에도 가해자들을 모조리 불 살라버리더니 이번에는 또 어쩌려고... 그래도 미국 지사 교육생이니 함부로 생명을 앗아가진 못할테고 어디 하나 부러뜨려 놓고 오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테드는 무조건 S의 편일테니 그정도는 그냥 눈감아 줄 것이다.


C는 당분간 목발 짚고 다닐 미국 지사 교육생들을 속으로 안타깝다 여겼다. A 병동이 또 얼마나 크게 뒤집어질ㄲ...



잠시만, A 병동 104실?



얘는 치료실인데 왜 걔네는 병동에 있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 C가 개별이 있는 곳으로 다시 들어가려는 의료 팀장을 막아 세웠다.




"쟤만 다친 거 아니었어?"

"아냐, 걔네가 더 다쳤어."




C가 얼빠진 표정을 하고 서 있자 의료 팀장이 가운에 두 손을 꼽아 넣곤 어깨를 으쓱 했다.




"하나는 이마 찢어지고 나머지 하나는 지금 중상태야. 척추가 나갔어."


"뭐?"


"일본 무술이지? 팔 다리 잡고 이리저리 넘기는 거."




엎어치기라도 했다는 건가? 서양 애들이 총질 주먹질은 잘 해도 동양 무술은 못 할테니, 그것을 노렸나? C는 의료 팀장에게 치료가 끝나면 호출 해달라는 부탁을 남겨 놓고 보안실로 뛰어갔다. 그 명장면을 좀 확인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보안실로 가서 CCTV를 확인해보니 참 가관이었다. 넷이서 애 하나를 조지고 머리 다친 놈을 부축하여 사라지던 녀석들을 바라보던 개별이 꾸물꾸물 일어나 기습 공격을 가했었다. 딱 한 놈만 노렸다. 노란 머리. 냅다 엎어치고는 올라타서 뭐에 들린 놈 마냥 주먹질을 해댔다. 나머지 두 놈들은 덤비지도 말리지도 못하고 벙쪄서 지켜만 봤다. 엎어치기의 충격이 컸나보다.



윌리가 도착하고 상황이 중재 되었으나 노란 머리 녀석은 움직이지 못했다. 기절한 게 분명했다.



한편 A 병동에 막무가내로 쳐들어갔던 S는 개별이 조져놓은 두 놈을 보고 황당함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하나는 머리에 붕대를 둘둘 감고 있질 않나, 하나는 복대도 모자라 목에 고정기를 차고 있었다. 얼굴 상태는 개별이 만큼 아니, 개별이 보다 더 심각해 보였었다.



의료 팀원 하나를 붙잡아 상태 설명을 들었다. 하나는 척추에 금이 가고 목 뼈에도 충격을 받아 여러 검사 중에 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이마부터 눈썹 아래 까지 여덟 바늘이나 꿰맸단다. 



적어도 녀석이 입은 부상 만큼은 다 되돌려주려 친히 발걸음을 했는데 얘네들 상태를 보니 개별이가 얘네들 스승한테 응징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지잉-'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몸을 부르르 떨며 S의 허벅지를 두드렸다. 짜증 가득히 담은 눈빛으로 누워있는 두 외국 사내놈들을 꼬라보던 S가 문자를 확인했다. C에게서 동영상 하나가 전송되었다. CCTV 영상이었다.



"...참."



개별이 너를 어쩌면 좋을까?








-







S는 A 병동을 나서고도 곧장 개별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공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브로커와의 미팅을 통해 알아낸 정보를 테드에게 보고한 뒤 장시간 동안 회의를 했다. 잠깐 브레이크 타임을 가지던 중, 윌리로부터 개별이의 치료가 끝났다는 보고를 받은 S는 녀석을 숙소로 갖다놓아 달라고 부탁했다. 탈출하지 않도록 문 밖을 지키는 것은 덤으로.


꽤나 긴 회의를 끝낸 뒤 곧장 세미나실을 벗어난 S는 테드의 식사 요청도 다음에 먹자며 거부하고 숙소로 향했다. 객실 앞을 지키고 있던 윌리에게 감사를 표하곤 카드키를 꺼내었다.




'삑, 철컥.'




숙소 문을 열자 삭막한 분위기가 S를 반겼다. 아까 치료실에서 녀석과 언쟁을 주고 받았던 탓인가보다. 신발을 슬리퍼로 갈아신은 S가 안으로 들어 서자 개별이 마지 못해 일어났다. 상사를 보면 인사는 해야 하는 게 법도니까. 안 하면 또 그것을 빌미로 얼마나 욕을 먹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S는 개별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우뚝 세워 둔 채 자켓을 벗어 걸어놓곤 책상 위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S가 손목에 시계를 풀자, 그 의 행동을 주시하던 개별이 침을 꿀꺽 삼켰다. 혹시 이 주변에 저를 때릴 만한 흉기가 있으면 또 엉덩이를 내어줘야 할 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개별은 숙소로 당도하자마자 막대기란 막대기는 다 침대 아래로 숨겨놨었다.




"서."




침대에 걸터 앉은 S가 바닥을 손가락질하며 낮은 음성으로 지시했다. 흘끔, S의 눈치를 살피던 개별이 곧장 발걸음을 옮겨 S의 앞에 섰다. 본인의 넓게 벌린 다리 위에 팔꿈치를 걸친 팀장님은 고개를 푹 숙이고 길게 한숨을 내 뱉었다.




긴장됐다. 아까 감정 조절 못 하고 개긴 것이 내심 찔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었기에 후회는 없었다.




한편 S는 개별을 세워두고 무슨 말을 할 지 고민했다. 괜찮냐고 물어야할까?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인지 제대로 된 경위를 개별이의 입을 통해 들어야할까?



사람들은 왜 널 가만히 두질 않을까? 그 잠시도 너는 왜 편안하질 못할까. 이조차 다 제 탓 같았다. 제게 맞아 피가 터진 그곳도 아직 덜 아물었을텐데. 아니 한창 거뭇거뭇 멍 들어, 괴사한 피부보다도 더 흉측한 상태일텐데. 그 몸으로 애 새끼들 여럿을 상대했을 것을 생각하니 여러모로 마음이 뒤숭숭하고 복잡했다.



오래도록 침묵이 이어지자 개별은 슬슬 불안했다. 긴장 됐다. 꿀꺽 소리가 나도록 침을 삼킨 개별은 뒷짐을 진 채 붕대가 감긴 팔을 괜시리 어루만지며 S의 정수리를 구경했다. 재수없어. 미친척 하고 저 검은 머리카락들을 두 손으로 쥐어 흔들어 볼까?




"야."


움찔.




팀장님의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상상을 하는 중에 들려온 중후한 목소리에 개별은 S의 눈치를 살폈다. 설마 이 사람 독심술 있는 건 아니겠지? 괜시리 찔렸다. 그 상상을 한 걸 들키면 고대로 인물만 뒤바뀌어 실사화 될 지도.


"...예."


저를 바라보고 있는 고요한 눈빛을 개별도 지그시 바라봤다. 침대가 높아서 그런가? 팀장님은 앉아있는데 나랑 눈높이가 맞는 것 같지.


몇 초나 지났는데 아직도 고요하다. 꽤나 포스있게 저를 부른 팀장님이 대답이 없자 개별은 입술을 달싹였다. 혹시 날 때릴까? 내심 두렵기도 했다.


팀장님이 손을 들어 올렸다. 또 한 바탕 뺨을 맞겠구나. 어금니부터 꽉 깨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뭐지? 


고통이 아닌 따뜻한 손길이 볼에 닿자 개별이 슬며시 눈을 떴다.



"다치지 좀 마라..."



팀장님의 눈빛에 속상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이런 다정한 손짓이 분명히 낯설고 어색해야 정상인데 그 손길이 인위적이지 않다. 원래 본인은 이런 사람인 것마냥 자연스러워 큰 이질감이 없었다. 그저 내가 그 손길을 받는 게 어색할 뿐이었다.




"네가 하도 나한테 숨기는 게 많으니까. 자꾸 나 혼자 판단하게 되잖아."




S가 한숨 섞으며 말했다. 이것조차 저의 잘못을 개별이에게 떠넘기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냥, 속상하다는 의미였다. 니 새끼가 자꾸 그 식빵 반죽처럼 허여멀건하고 뽀송한 얼굴에다 스크래치를 내는 게, 복숭아 빛 피부로는 만족을 못하는 것인지 이색 저색 먹칠을 해오는 게 속이 상하다는. 단순히 아름다운 것이 망가져서 그 뿐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네가 겪었을 시련이 고됐을 것을 생각하니 내가 다 고통스럽고 속상하다고.




"앞으로 어디 가서 다쳐 오지마."



그게 본인 마음대로 되나. 현장 수업만 들어도 몸 이곳 저곳에 잔 멍이 생기기 일쑤인데. 너무 무리한 요구잖아. 심지어 저 녀석 몸을 가장 많이 다치게 하는 사람은 정작 본인이면서 다쳐 오지 말라니. 그게 할 소린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부당한 걸.



"다치면 무조건 보고 해. 명령이야."



그냥 그러길 바랐다. 내가 이 녀석에게 휘두를 수 있는 거라곤 권력 밖에 없어서. 어차피 내 마음이 이렇다 저렇다 말 해봤자 이미 이 녀석은 나한테 마음 뜬 지가 오래였다. 그냥 못 본 척 넘어가기엔 내가 힘들고, 그렇다고 이 녀석한테 부탁을 하기엔 얘가 내 부탁을 들어줄 생각은 없어 보이니 명령이나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 입 통해서가 아니라, 네가 직접. 어디에 입은 부상인지, 어쩌다 입었는지 모조리."

"그런 걸 뭐하러,"


"보고 못 받은 상처 하나라도 걸려봐. 진짜 혼날 줄 알아."



개별은 말문이 막힌 듯 입을 허, 벌렸다. 팀장님의 '혼난다'라는 그 말의 의미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짓말 섞었다가 걸리면 말 안 해도 알지?"

"아니 그러니까 보고해서 어디다 쓴답,"


"한 번만 더 토달면 몽둥이 가져온다."


끄응, 개별이 잔뜩 불만스러운 얼굴을 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한 번만 더 토달면 몽둥이를 가져온다니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반발하는 녀석의 입을 또 협박으로 동여매고 만 S가 개별을 무표정으로 쳐다봤다. 보아하니 제 명령이 부당하다 여기는 것이 뻔했다. 안다. 나도 그게 하등 쓰잘데기 없는 행동일 수도 있고, 부당한 지시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근데 뭐, 어쩌라고. 꼬우면 니가 더 세지든가. 


"보고하기 싫으면 다치질 마."


"어떻게 안 다칩니까? 애초에,"

"하아..."


경고와도 같은 제 한숨 소리에 녀석이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말을 더 얹었으면 S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매를 가져왔을테고 개별은 침대에 엎어졌을 것이다.


S가 화를 삭히며 마른 세수를 했다. 제 성격을 뻔히 알면서 왜 자꾸 성질을 돋구는지 모르겠다. 위협을 느끼곤 곧장 입을 다무는 것을 보면 꼴에 맞기는 싫은가보지. 


너 내가 많이 봐주고 있는 거 알아야 돼. 네 몸 꼬라지가 병신만 아니었어도 넌 오늘도 나한테 뒤지게 혼났어. 알아?


S는 제 앞에 서 있는 개별의 팔을 붙잡았다. 손길이 닿자마자 석화되듯 녀석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바짝 경계하는 듯 하다. 해를 가할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경직된 개별의 모습에 S는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어디 더 다친 곳은 없는지 살피려고 했을 뿐인데 제 손길을 슬쩍 거부하며 뒤로 물러났다.


얘 진짜 나 싫어하나봐.


그 행동에 내심 또 상처를 입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팔을 놓아줬다.



또 긴 시선 교류의 시간이 찾아왔다. 실핏줄이 터져 흰자에 붉은색이 묻은 개별의 두 눈을 오랜 시간 바라봤다. 그런 S의 시선을 받아내던 개별은 이내 눈을 깔았다.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다.



제가 시선을 피하고 몇 초나 흘렀을까, 팀장님은 갑자기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무언갈 꺼내어 내밀었다. 



"발라."




연고에 적힌 영문을 읽어보니 멍 연고였다. 오늘 따라 S의 행동이 이해되질 않았다. 낯설고 어색하다 못해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뭐."


"...아닙니다."




팀장님 갑자기 왜 나한테 잘 해줘요?









*










S는 요 며칠 이부자리에 누웠다 하면 잠에 빠져 들었다. 아니, 눕기도 전에 꾸벅 꾸벅 졸다 데스크에서 잠든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커피를 타 마셔도 피곤하긴 매한가지였다. 고된 일정을 소화하느라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피로가 쌓인 탓이 분명했다. 밤만 되면 몸이 나른해지고 정신이 몽롱해지더니 단 한 번을 깨지 않고 아침을 맞이했다. 개별이 녀석도 첫날에는 사람 잠도 못 자게 뒤척이는 바람에 여러모로 골치 아팠는데 다음 날부터는 얌전히 본인부터 수면을 취했었다. 혼자 내비뒀다가 여기저기 다쳐온 몹쓸 녀석 때문에 한동안 제 옆에 붙여놨더니 달리 헛짓거리를 한다거나 말썽을 피우지도 않았다. 그 덕분에 제가 잘 자는 것인가?


"오셨습니까?"


그렇게 잠을 잘 잤다 한들 일어났다해서 개운한 것도 아니었다. 정신이 몽롱해서 일어나고도 몇 시간은 뇌가 죽어있는 것 같았다.


"어어, 그래."


오늘은 Fast의 비밀 실세인 노인네의 양자를 만나는 날이었다. 작전일로부터 딱 이틀 전. 오늘은 ND의 조직원이 아닌 Exi의 임원이자 관계자로 만나야 했다.



"너는 별 말 하지 말고 옆에만 붙어 있어."



그리고 이 녀석도 함께.



S는 제 뒤를 졸졸 따라 걷고 있던 개별을 홱 돌아보며 명령했다. 볼에 난 상처가 많이 옅어져 있었다. 그동안 애를 써서 관리하고 치료했다. 빨리 낫기 위한 목적도 있었으나, 오늘 미팅을 위해서도 빠른 회복이 필요했다. 대기업 회사원의 얼굴에 흉이 있으면 이미지가 좋진 못할테니까. 다행스럽게도 이 녀석의 놀라운 재생력도 한 몫 더해주어 유심히 쳐다보지 않으면 멍이 잘 확인 되지도 않았다.


"제가 가도 되는 겁니까?"


의아했다. 꽤 중요한 미팅에는 늘 인원 제한이 있었고, 저는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미팅은 더군다나 더 사람이 적었다. 테드와 S, 그리고 C 고작 셋이었다. 그런 소규모 인원에 내가 포함될 수가 있는 것인가? 


"네가 가야 해."


...왜?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개별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꼭 배워야 할 거리라도 있는 건가? 궁금한 게 투성이지만 따로 묻지는 않았다. 안 그래도 정신 없어 보이는 사람한테 말 거는 건 정신을 더 사납게 할테니까.


약속 장소에 미리 도착하여 양자를 기다렸다. 10분 정도 여유가 남아 잠시 정신이라도 깨울 겸 커피를 들이켰다. 개별은 그런 S의 동태를 눈으로 유심히 쫓았다.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모두가 기립했다. 팀장님도 마시던 커피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자켓의 주름을 탁 펼쳐 복장을 갖췄다. 개별은 눈치를 살피다 천천히 일어났다.


"...어?"


저 사람은...


"데미안입니다."


개별은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S를 바라봤다. S는 데미안과 악수를 나눈 뒤 저를 빤히 바라보는 어린 눈빛에 반응하였다. 아주 짧은 시간 둘은 눈을 맞췄다. 그래, 이게 네가 필요한 이유다.


"...넌,"


S를 선두로 테드와 C까지 악수를 나누던 데미안은 개별에게도 손을 내밀다 녀석의 얼굴을 보고 놀란 듯 동공을 키웠다.


"세실...,"


그날 공항에서 절 붙잡으며 칭한 여자의 이름을 다시끔 외치려는 데미안의 손을 덥썩 붙잡고 악수했다. 팀장님들이 듣지 않길 바라서였다. 만나서 무척이나 기적스럽고 반가웠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해야만 한다.


눈치를 읽은 데미안이 얼떨떨해 하며 입을 닫았다. 본인도 반가운 건 마찬가지인듯 손에 가득 힘을 실어 악수했다. 인사를 마친 다섯은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데미안,"


Fast의 숨겨진 실세, 패터슨의 밀정자. 그는 영아 때 버려져 일반 보육원의 원생으로 자라다 10세에 한 여자에게 입양된다. 그 여자는 당시 30대 중반, 양자를 입양 후 몇 해 지나지 않아 돌연사. 사인은 불분명하며, 당시 미들 스쿨 학생이던 데미안은 다시 보육 시설로 돌아가지 않고 생활. 미국 유명 대학 IT 기술 관련학과 차석 졸업으로 졸업 연설까지 한 인재.


Exi가 Fast에서 노리는 기술을 창작 해낸 인물이 바로 이 데미안이다.


"한국에 가지 않을래요?"


S의 제안에 데미안이 표정을 진지하게 굳혔다. 이 사람들이 무언가를 알고 온 게 분명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왜죠?"


"당신이 우리가 원하는 그 기술을 만들어낸 개발자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Fast는 패터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늙은이의 돈으로 지어진 회사이다. 그리고 Fast의 기술을 개발한 사람은 데미안이다. 그가 진정한 비밀 실세라는 것.


그런데 그는 왜 직접 회사를 설립하지 않았을까?


조사 결과, 데미안은 빚이 많았다. 투자를 실패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신용 불량 등급에 놓여있어 창업은 커녕 투자자도 찾을 수 없었다.



"당신에게 거액을 투자할 수 있습니다. 지금 Fast에게 제시된 계약금은 아무리 규모가 큰다 한들 셋이서 나누면 금액이 적죠."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했다 해도 지원해 줄 사람이 없었기에 돈 많은 양반을 찾으러 다녔고, 그렇게 패터슨을 만난 것이다. 그렇게 둘은 손을 잡아 허수아비 사장을 영입하여 기업을 세운 뒤, 셋이서 분할하여 돈을 나눠먹고 있는 것.


"그러니 당신들이 인상을 더욱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요? 셋이서 나누면 금액이 적기 때문에."

"...크흠."


데미안이 헛기침을 했다.


"우리는 불필요한 계약금을 낭비하지 않아서 좋고, 당신은 큰 이익을 얻어서 좋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패터슨은 데미안의 양부가 아니다. 브로커는 데미안을 양자로 칭했으나 실상 둘의 관계는 지독히 얽힌 비즈니스 관계다. 패터슨이 신분세탁을 한 탓에 정확한 정보는 알 수 없으나, 신분 세탁을 한 부자가 공적인 일을 할 수 없다면 범죄자, 그 중에서도 사기범일 확률이 크지. 이미 수배가 내려져 있을 지도 모른다.



"당신의 조력자는 위험합니다. 당신의 기업에서 그러한 비리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들통나는 순간 사업이 망하는 것은 한 순간이죠."



그리고 우리는 당신들의 비리를 꿰뚫고 있죠. 저 문장들에는 이 한 문장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은신하고 있었다. 무척이나 모순적인 말일 수가 없다. 그 의도를 읽은 데미안은 두 손을 입가에 대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혹을 가장한 협박이다. 우리는 당신의 회사를 무너뜨리기 전, 당신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겠다는.



"...당신들의 계획이 뭔가요?"



데미안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데미안의 빠른 손절은 그동안 그가 얼마나 치열한 줄타기를 하며 살아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본디 돈에 쫓기며 불법을 저지르는 자는 위기가 오면 본인이 살아남는 방식을 택하기 마련이다.



"당신이 Fast의 사장이 되는 겁니다."



거액을 받아 빚을 탕진하는 것도 모자라 사장 자리에? 데미안에겐 이 제안이 벼룩처럼 몸을 숨겨 타인에게 기생하는 삶을 갱생할 절호의 기회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람 아래서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몰래 받아먹는 것보단 Fast의 사장이 되어 한국으로 와, Exi의 산하기업으로 일하는 게 훨 이득일테니.



"우리는 Fast의 사장의 비리를 폭로할 겁니다."



세계적인 포털사이트가 여론을 조성하고 한 회사를 몰락시키는 것 쯤이야 아주 간단한 일이니까. 반대로 그들이 우리 회사의 실체를 폭로하려 해봤자 우리는 그들의 입을 손 쉽게 막을 수 있기에 우리가 유리한 승부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하면 될까요?"



이미 마음을 우리 측 제안으로 기울인 듯 했다. 패터슨과 한 집에 사는 것 같더라니 이렇게 쉽게 넘어오는 것을 보면 그렇게 유대감 깊은 관계는 또 아닌가보다.



"당신의 몸을 담보로 잡고 계약을 할 겁니다. 계약이 성사되는 순간부터 우리의 계획은 실시될 것이고, 그동안 당신은 우리 측으로부터 철저한 보호 및 감시를 받게 될 겁니다."

"그 말은,"

"우리도 당신에 대한 믿을 거리 하나는 있어야 하잖아요?"


후우... 데미안이 마른 세수를 했다. 그에게 내려진 두 가지 동앗줄 중에 우리가 내민 것이 과연 튼튼한 줄인지는 그의 입장에선 불분명하다. 그러나, 썩은 동앗줄은 확실했다. 이 사람들은 나의 기술이 필요하기에 나를 버릴 일은 없겠지.


"계약서엔 나에게 내려지는 이득이 아주 자세히, 그리고 명확히 기재되어야 할 겁니다."


"그렇게 하죠."


어쩔 수 없겠지. 일말의 희망이 깃든 밧줄을 잡는 것이 밑져야 본전일테니.











*







AM 02:00



개별은 기다렸다는 듯이 잠에서 깨었다. 부스럭 소리에도 일어나지 않는 S에게 몰래 다가가 손을 흔들었다. 곤히도 잠에 빠져있었다. 개별은 익숙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도어락을 소리 나지 않게 열었다.


혹여 들어올 때 소리가 나면 S가 깨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며 객실 문을 아주 약간만 열어 놓은 채 숙소 프론트의 데스크로 향했다. 일개 조직원이 호텔에서 머무는 이유는 호텔의 보안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외부인 출입이 통제된 곳이니 객실 간 침입이 일어날 리 없기에 문을 살짝 열어두고 나가는 것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누구보다도 가장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 바로 팀장님일테다. 방문이 열려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 무방비하게 곤히 잠들어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 상황이 절대적으로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성당에 불이 난 뒤 우리는 떨어지고 말았어.'


미팅이 끝나고, 잠시 데미안과 대화를 가진 후부터 개별은 줄곧 이 시간만을 기다려왔다. 그에게서 얻은 단서가 아주 많았기 때문에. 그 정보들은 세실리아라는 사람에 대한 광대한 범위를 대폭 축소시켰다. 며칠만 더 애를 쏟는다면 기필코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을 빌릴 수 있을까요?"



엿새 째 이 시간에 찾아오는 한국인 소년에 이제는 호텔리어들도 익숙하다는 듯 랩탑을 내어 주었다. 처음엔 기꺼이 내주었고, 이튿날은 조금 의심을 품었고, 사흘부터는 아주 의미 심장했다. 그러나 호텔 내에서 벌어지는 일은 불법이 아닌 이상 누설하면 안 되었기에 그 다음부터는 소년이 올 것을 대비하여 미리 준비해놓기까지 했다.



말 그대로 인터넷을 빌려 쓰기만 하고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으니 말이다. 검색 내역을 조회했을 땐 눈에 띄는 별 다른 것도 없었다. 뉴스 기사들이나 나열되어 있을 뿐. 그래서 야밤에 잠이 들지 않아 시간을 떼울 겸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이라 확신했다.




오늘도 소년은 늦은 새벽에 찾아와 노트북을 빌려갔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여러분. 편백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잘 보내셨나요? 이제 2021년도 5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네요. 저는 그 남은 5일 동안 아주 아주 바쁠 예정이랍니다. 빨리 1월이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2021 저와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정말 행복했습니다. 글 쓰는 게 좋았고, 제 글을 좋아해주시는 여러분들의 반응 하나 하나가 정말 벅찼습니다. 한동안 현실에 지칠 때면, 정말 이 채널에 이끌리듯 와서 여러분들에게 기대어 갔습니다. 진심으로 애정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여러분의 2022년이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제목을 [개별이는 못말려]로 지을 걸 그랬나, 매 회 사고치는 우리의 개별이. 결국 탈출을 감행했네요. 이렇게 자유로운 영혼일 수가 없습니다. S의 머리 위에서 노는 것 같아요. 앙큼하기 그지 없습니다. 미운 짓만 골라 해도 개별이가 이뻐 죽겠는 S. 결혼해라! 지금이 한창 떡밥을 푸는 중이라 내용이 조금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쏟아지는 정보들을 감당하시는 독자님들께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오늘도 감사합니다!

트위터: @PB2022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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