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채광 좋은 커다란 유리창 아래 아이보리색 편안해 보이는 소파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도롱도롱 곤히 잠든 불독 한 마리와 그 개를 쓰다듬고 있는 싱토, 그리고 싱토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는 크리스가 앉아 있다. 그 옆쪽으로 따로 놓인 1인용 소파에선 묵이 대략적인 오프닝과 엔딩 멘트를 한 번 더 확인하고, 그런 모두를 둘러싸고 방송용 카메라 다섯 대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그 중 메인 카메라의 뒤에서 단이 마지막으로 앵글을 하나하나 체크한 뒤 묵에게 신호를 보냈다. 모두에게 새 출발을 알리는 신호였다.


 “오늘 두 분께서 팬 여러분들께 전할 말씀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그게 뭔지 저는 딱 알 것 같네요.”


 묵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왼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그 모습에 크리스의 입에서도 짧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고는 여전히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네, 바로 그거요.”


 “바로 그게 뭔지 팬 여러분들께 직접 발표해주시겠어요, P'싱토?”


 묵의 부름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크리스를 바라보는 싱토의 눈빛이 정말로 부드럽고 다정하다. 몬스터 때부터 쭉, 이런 두 사람을 지켜보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그 때와 전혀 변하지 않는 이 온도가 묵은 너무나 부러웠다.


 “저희, 그러니까 킷과 저- 결혼했습니다.”


 “예이!”


 싱토의 말에 크리스가 싱토를 안고 있지 않은 다른 팔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자축했다. 


 “결혼을 했다고요? 그러니까, 벌써 했다고요?”


 너무 놀라 입을 쩍 벌리는 묵에게 크리스가 개구지게 웃어 보였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싱토의 얼굴에서도 농담이라는 분위기는 전혀 읽히지 않는다. 


 “오와~!”


 묵이 가까스로 놀란 마음을 가다듬었다. 두 사람에게서 깜짝 발표가 있다는 얘기를 먼저 전해 들었을 때에는 드디어 싱토가 크리스에게, 혹은 크리스가 싱토에게 프러포즈를 했구나 생각했었는데 역시 예상을 뛰어넘는 커플이다, 이 두 사람은.


 “그러니까 정확히 언제 결혼을 하신 거죠?”


 “지난달 12일이요.”


 “지난달 12일이라면...”


 6월 12일. 그제야 묵은 두 사람의 기념일도 아닌데 갑작스레 3주간 여행을 떠났던 지난달의 일이 이해가 갔다.


 “세상에, 그럼 지난달에 두 분 크루즈 여행 갔던 게 신혼여행이었던 거네요?”


 “네, 맞아요. 킷이 일로 말고 휴식으로 제대로 된 크루즈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그랬었거든요.”


 “근데 너무 급하게 결정을 해서 방을 오션 뷰로 받지 못해 아쉬웠어요.”


 “그래서 내년 결혼기념일에 다른 코스로 벌써 예약해 뒀죠.”


 이건 크리스도 몰랐던 일인지 싱토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조금 전까지 불퉁하니 튀어 나왔던 입술이 쏙 들어갔다. 그런 크리스를 향해 싱토가 부드럽게 웃어 보이곤 쪽, 그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다.


 “P'싱!”


 크리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둘이 사귄 지가 벌써 몇 해, 아니 두 사람의 말에 따르면 이제 결혼까지 한 사이인데 크리스는 아직도 싱토의 기습적인 스킨십에 한없이 약하기만 하다. 


 “음.. 그런데 크루즈 여행이 너무 급하게 결정됐다고 하셨죠? 원래는 다른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나요?”


 “아니요. 우리 결혼 자체가 굉장히 즉흥적이었어요.”


 “맞아요. 어느 날 같이 아침을 먹다가 날짜를 보고는 그럼 그 날 결혼하자, 그렇게 된 거니까요.”


 “꼭 그 날이어야 했던 이유가 있던 건가요?”


 “우리가 다시 처음 만난 날이었어요, 6월 12일이.”


 “다시 처음?”


 싱토의 입에서 나온 모순적인 말에 묵이 되물었다. 다시 만난 거면 다시 만난 거고, 처음 만난 거면 처음 만난 거지 다시 처음은 대체 어느 나라 문법이냐는 말이다.


 “아주 옛날에 정말 우리가 처음 만난 건 SOTUS를 찍을 때였고,”


 “근데 P'는 그때의 제 존재도 몰랐어요. 나만 P'싱 팬보이처럼 뒤에서 몰래 훔쳐보고 그랬지.”


 “두 번째로 만났을 때는 베브 OST 문제로 재계약을 하던 때였는데,”


 “저 때도 P'는 나 신경도 안 썼었어요. 지금은 그 날의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뻥 같아.”


 입을 삐죽이며 한 마디씩 거드는 크리스가 사랑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던 싱토가 결국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크리스는 머리를 흔들어 그 손을 털어 내면서도 입가의 미소를 숨길 수가 없다. 싱토는 제가 흐트러뜨린 크리스의 머리를 살살 정리해주고는 다시 묵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확실히 의미가 있게 된 7년 전의 그 날이 우리에겐 다시 만난 날이자, 처음 만난 날이기도 한 거예요.”


 “그럼 P'크리스는 P'싱토를 그 옛날부터 좋아했던 거예요?”


 싱토의 팬보이였음을 고백한 크리스에게 묵은 짐짓 놀란 척을 하며 다시 물었다. 크리스는 고개를 저어 그 질문을 부정했다.


 “그 때는 정말 순수한 팬의 마음이었고요, 이렇게 좋아하게 된 건 몬스터 찍을 때였어요.”


 “P'싱토도 그때부터 P'크리스를 좋아했던 건가요?”


 “저는 조금 더 빨랐던 것 같아요.”


 “얼마나요?”


 “킷을 만나고 그 다음날이나 그 다음다음날 쯤? 뭐 그 때는 그런 마음이라는 걸 몰랐지만요.”


 “아니야, 그 때는 P'도 나를 그냥 배우로서 좋아한 거라고.”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요즘은 점점 그때 이미 네 눈에 반했던 게 아닌가 싶어.”


 “이거 봐요, 자기는 내 팬보이였다는 거 인정하기 싫어서 무조건 나한테 벌써 반해 있었대.”


 입술을 삐죽이며 카메라를 향해 투덜대지만 그 눈에 가득 찬 사랑이 숨겨지지는 않는다. 화면 밖의 단은 나중에 편집할 때 이 장면만큼은 꼭 크리스의 클로즈업 샷으로 넣으리라 다짐했다.


 “그럼 두 사람의 어- ‘다시 첫 만남’부터 한 번 얘기해 볼까요? 6월 12일이라고 했죠? 그 날 어디서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건가요?”


 묵의 질문에 싱토와 크리스가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날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둘에게 최고의 날이 됐다.


 “결혼식장에서요.”


 “그 결혼식장에서 가장 불행한 두 사람이었죠.”


 “어째서요?”


 “실연을 당한 날이었거든요.”


 “실연? 두 분 다?”


 “네. 그 사실을 어쩌다 서로 알게 돼서 의기투합하고 으쌰으쌰.”


 “으쌰으쌰까진 좋았는데 제가 그 날 킷을 좀 화나게 해서 그마저도 파투나고.”


 “그걸로 끝인가 했더니 이 끈질긴 남자가 회사 이름까지 동원해서 절 만나러 왔었죠.”


 “그리고 그 날이 바로 몬스터 출연 계약한 날.”


 분명 무언가가 잔뜩 생략된 게 틀림없는 두 사람의 ‘다시 첫 만남’에, 묵은 꿈벅꿈벅 눈만 깜박거렸다. 그러다 이 두 사람의 넘버 원 팬답게 금세 구멍을 채워나간다.


 “아, 그럼 그 사이에 P'싱토가 P'크리스의 필모를 찾아보고 영화 ‘이방인’을 봤다는 거죠?”


 “네, 그렇죠.”


 “지금 이 인터뷰를 보고 계신 분들 중에 이방인 얘기가 뭔지 모르시는 분들은 지금 당장 그 영화를 찾아서 보세요. 그게 바로 P'싱토가 P'크리스의 재능을 알아보고 직접 몬스터에 캐스팅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거든요.”


 과연, 두 사람에 대해 잘 알면서도 능숙하게 진행을 하는 묵을 보니 오늘의 인터뷰어로 그녀를 선택한 것은 옳은 결정이었다.


 “그럼 이제 조금 껄끄러운 얘기로 들어가 볼까요?”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질문이 묵이 즉흥적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것이라면 이것은 미리 싱토와 크리스로부터 전달 받은 대본에 있는 것이었다. 꽤 오랫동안 두 사람을 괴롭혀왔던 루머, 아직까지도 두 사람의 관계를 탐탁찮아 하는 사람들이 둘을 공격할 때 빼먹지 않는 그 루머에 관한 질문.


 “몬스터 촬영 당시에 두 분이 스폰 관계였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묵의 질문에 크리스는 질렸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고, 싱토는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두 분의 반응을 보니 여전히 그 루머를 부정하시는 것 같은데요.”


 “당연히 부정하죠. 스폰 관계라는 게 기본적으로 주고받는 게 있어야 되잖아요. 특히 저희에게 돌았던 소문은 제가 킷에게 배역을 주고, 킷은 저한테 몸을 줬다는 뭐 그런 거였잖아요.”


 “그렇죠.”


 “근데 제가 처음 킷을 안은 게 언젠지 알아요? 우리가 서로 마음을 확인한 지 딱 100일 되던 기념일이었어요. 100일! 석 달 열흘! 그동안 킷을 구슬리느라 제가 얼마나,”


 “P'!”


 물론 그 전에도 연인들의 행위가 없지는 않았지만 남자를 처음 사귀어 본 크리스가 그 마지막 단계로 나아가는 용기를 내기까지 인내해 온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그때의 서러움이 다시금 복받쳐 점점 목소리가 커지는 싱토의 입을 결국 크리스가 막고야 만다.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크리스의 손에 얼굴이 반쯤 가린 싱토지만 그 눈은 여전히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었다. 


 “P'싱토.. 제가 생각해도 그건 tmi였어요, tmi. 투 머치 인포메이션!”


 “진짜 가끔 보면 창피한 걸 몰라.”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크리스를 향한 싱토의 눈에서 장난기가 번쩍 하더니, 크리스가 으앗! 소리를 지르며 싱토의 입에서 손을 떼어냈다. 아까보다 더 붉어진 얼굴로 손바닥을 바지에 벅벅 문지르는 걸 보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수이 짐작이 간다. 짜증을 내는 크리스에게 눈썹만 까딱까딱 해 보이는 싱토를 웃는 낯으로 바라보던 묵이 단의 신호를 받고 흠흠, 목을 가다듬었다.


 “그럼 그 소문은 정말 거짓에 불과한 악성 루머일 뿐이다, 그렇게 결론 내려도 되겠네요?”


 “네. 지금 이렇게 저희가 아니라고 해도 고집스럽게 믿지 않으실 분들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그래도 한 번쯤은 공식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킷의 재능이 그런 식으로 계속 오해받는 게 너무 싫거든요.”


 “그리고 저와 P'싱 사이의 감정도요.”


 뾰로통한 크리스의 목소리에 싱토가 그의 어깨를 당겨 안아 크리스의 관자놀이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 눈빛이 너무나 달달해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오디오 감독마저도 어느새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올린다.


 “하지만 두 분의 열애 발표가 몬스터의 첫 방송을 앞두고 이루어졌잖아요? 이것 때문에 두 분이 진짜 사귀는 게 아니라 화제성을 노린 홍보 전략이라는 말도 있었는데요.”


 “하지만 우리 결혼까지 했는데요?”


 크리스가 제 왼손을 들어 반지를 보여주며 덤덤하게 대꾸했다. 묵은 잠시 은은히 빛나는 화이트골드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다 싱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 날 P'싱토가 먼저 P'크리스에게 고백했잖아요. 왜 하필 그 날, 그 시간을 골랐는지 얘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묵의 질문에 싱토는 어깨를 한 번 으쓱거렸다.


 “그 날 좀 제정신이 아니었거든요.”


 “네?”


 “갑자기 몬스터의 첫 방송 날짜가 한 달 뒤로 결정되면서 다들 엄청나게 바빠졌었어요. 킷은 킷대로, 또 저는 촬영팀에 합류하게 되면서 또 저대로. 근데 그 한 달 동안 킷이랑 저랑 동선이 안 겹쳐서 거의 못 봤었거든요. 막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고 깨닫자마자 얼굴을 볼 수가 없으니 제가 뭐 반쯤 미쳤었던 거죠.”


 지금이야 담담하게 얘기하지만 정말 그 한 달, 너무 힘들었었다. 보답 받지 못할 사랑에 빠져 있었던 것도, 그나마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도, 촬영팀 하나를 지휘하는 새로운 책임에 대한 부담감도 다 싱토를 한계에까지 몰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킷을 오랜만에 보게 됐는데, 음 뭐랄까, 모르겠어요, 그냥 그런 촉이 왔던 것 같아. 이 사람도 어쩌면.. 하는 그런 촉이.”


 싱토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 크리스의 표정이 부드러웠다. 그 촉, 자신은 뭔지 알 것 같다. 한 번도 그의 앞에서는 티조차 내지 못했던 제 심장이 속에서 울부짖는 소리였을 거다. 제발 자신 좀 봐달라는 그 애타는 외침 말이다.  


 “그럼 P'크리스는 어때요? 그 날 인터넷에선 온통 P'가 P'싱토에게 키스하는 사진으로 도배가 됐었는데.”


 묵의 질문에 크리스는 창피해 죽겠다는 듯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그 때만 생각하면 정말 땅으로 꺼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유이를 따라 싱토와 함께 레크리에이션룸에서 벗어나는 중간에 문득 그의 고백이 진짜로 와 닿았다. 너무 행복해서, 저를 보고 웃고 있는 그 얼굴이 너무 기뻐서 저도 모르게 그대로 싱토를 잡아끌어 그에게 입을 맞췄었다.


 “저도 그때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P'싱 때문에 너무 놀라서 정신이 나갔었던 게 아닌가.. 그동안 딴 사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나 좋다 그러니까.”


 “딴 사람이라면... 그 ‘피치’?”


 묵의 질문에 크리스와 싱토에게서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커플의 넘버 원 팬을 자칭하는 묵이 유일하게 풀지 못한 비밀이 바로 이것이었다. 피치라는 사람의 정체. 이 사람에 대해서만큼은 제인도 입을 꾹 다물고 있고, 싱토와 크리스도 그 후로는 단 한 번도 먼저 언급한 적이 없어 그저 싱토가 예전에 사귀었던 일반인이겠구나, 하는 추측만이 돌 뿐이었다. 


 “네.”


 이번에도 역시 단답형의 대답만 내뱉고는 둘이 그저 웃고만 있다. 묵은 답답한 마음에 발까지 동동 굴렀다.


 “그래서 이 피치라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예요?”


 “노코멘트. 그 사람도 지금 결혼해서 잘 살고 있어요. 그러니 그냥 묻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순간 묵의 뇌리에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스쳐 지나갔다. 피치. 결혼. 실연. 싱토의 옛 연인. 6월 12일. 그리고 오직 몇몇만이 알고 있는 크리스 루머의 진원지. 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우연찮게도 그 모든 장소에 묵 그녀 역시 자리하고 있었다. 피처와 기기의 결혼식장, 몬스터 촬영 현장, 첫 방송을 앞둔 SPR의 레크리에이션룸. 왜 진작 이 모든 단서들을 연결시키지 못했을까.


 “음, 그럼- 그렇죠,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은 지켜줘야죠.”


 재빨리 말을 돌리는 묵을 보며 싱토와 크리스도 묵이 뭔가를 눈치 챘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그녀가 함부로 입을 놀리고 다닐 타입은 아니라는 걸 알기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서로에게 서로가 있으니 과거가 밝혀져도 상관없기도 하다.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두 분이서 각자 가슴앓이를 많이 하신 것 같은데, 이게 P'크리스가 P'싱토의 마음을 잘못 알고 있어서 그런 게 큰가요?”


 “제 입장에서는 그랬죠.”


 “저는 킷이 남자인 저를 좋아해줄 거라고 생각 못한 게 컸어요. 그런 일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역시 두 분의 운명은 특별한 게 맞네요.”


 묵의 말에 크리스가 낯 뜨겁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지만 그 입가는 여전히 웃고 있음을 모두가 안다. 반면 싱토는 아직도 이 기적을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눈동자가 점점 까맣게 부풀어 올랐다. 결국 그런 싱토를 느낀 크리스가 팔을 올려 그의 머리를 꼭 당겨 끌어안는다. 묵은 크리스의 옆통수에 제 머리를 갖다 대는 싱토의 얼굴에서 그 행복을 절절히 읽을 수가 있었다. 아무래도 이제 분위기를 바꿔 즐거운 이야기만 해야 할 것 같다.


 “이건 전혀 얘기되지 않은 거라 나중에 편집될 수도 있는 질문인데요.”


 “뭐요?”


 크리스의 눈이 동그랗게 뜨이고 싱토도 의아한 눈으로 묵을 쳐다보며 고개를 똑바로 하고 앉았다. 대충 이야기할 만 한 건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또 뭐가 남은 거지.


 “10년? 아마 그쯤 됐죠? P'싱토가 연기를 그만둔 지?”


 이 물음에 묵이 하려는 질문이 뭔지 바로 알아 챈 크리스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잠깐 놀란 얼굴을 하던 싱토도 곧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맺힌다.


 “네, 딱 10년이요.”


 “10년. 그 10년 동안 사업가로, 제작자로, 그리고 연출가로 계속 카메라 뒤에만 머물러 있었잖아요. 그런데 요즘 P'싱토의 팬들이 들으면 아주 기뻐할 소식이 이야기되고 있다면서요?”


 “네, 뭐-”


 “P'싱이 N'소이의 차기작에 출연하게 됐답니다!”


 결국 크리스가 흥분으로 들썩이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외쳤다. 그러면서 바로 머리와 어깨를 흔들어대는 것이 어째 본인보다 저가 더 신난 것 같다. 싱토가 그런 크리스를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다 그의 어깨를 당겨 안아 제 품에 가뒀다. 그 속에서도 머리통을 부빗부빗,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게 크리스가 지금 얼마나 기쁜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와우, 오피셜인가요?”


 “네, 오피셜입니다.”


 “드디어! P'싱토의 복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잖아요. 그동안 제안도 많이 들어왔었는데 다 거절하셨고요.”


 “그랬죠.”


 “마음이 바뀌신 이유가 있나요? 혹시 P'크리스와의 결혼 때문에?”


 묵의 추측에 싱토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제가 이런 결정을 내리는데 크리스가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맞지만 그게 결혼 때문은 아니다. 몬스터 때부터 저의 연기에 대한 열망을 눈치 채고 계속해서 저를 설득해왔던 크리스니까. 다만..


 “몬스터 때 처음 감독을 해 보고 그 매력에 더욱 깊이 빠졌었어요. 그래서 그 쪽으로 집중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죠. 그런데 연출을 계속 하다 보니 카메라 안쪽도 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예요, 이번 결정은.”


 “혹시 피라야 커플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없나요?”


 “음.. 없어요. 당분간은 같이 일을 하지 않기로 했거든요.”


 “왜죠?”


 “신혼이니까요. 일에 집중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무슨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대꾸하는 싱토지만 묵은 이 대답이 어이가 없다. 두 사람이 언제 신혼 분위기 아닌 적이 있었다고. 본인 바쁜 와중에도 틈만 나면 크리스의 촬영장에 찾아와서 애교 철철 넘치는 크리스와 꿀이 뚝뚝 떨어지는 싱토의 염장질을 보게 만든 게 누군데! 


 이런 묵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크리스가 작게 하품을 하고, 그걸 본 싱토가 또 그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이자 크리스가 가볍게 눈을 흘기며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친다. 그러면서도 귀 아래까지 치솟는 입꼬리는 두 해째 싱글인 묵을 더욱 쓸쓸하게 만들 따름이었다. 묵이 축 처진 입을 한 채 단을 쳐다보자 단도 묵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묵은 바로 대본의 엔딩 부분으로 들어갔다.


 “신혼, 참 좋을 때죠. 그럼 신혼부부를 더 이상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으니 오늘은 이만 두 분이 서로에게 한 마디씩 하는 걸로 마무리를 지어볼까요?”


 묵의 말에 싱토와 크리스가 잠깐 서로를 마주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며 입을 쭈욱 내미는 크리스의 표정에 싱토가 먼저 그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들어 싱토를 쳐다보는 크리스의 표정이 부드럽다. 묵은 그 순간 마치 단 둘만의 시간을 훔쳐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킷,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나를 선택해줘서 고마워. 너의 사람이 되는 행운을 갖게 해준 것도.”


 크리스의 손을 끌어 왼손의 반지 위에 한 번, 그리고 그 손등 위에 한 번 입을 맞추는 싱토의 얼굴이 세상 더없이 행복해 보인다. 크리스는 그런 싱토의 얼굴을 다른 손으로 들어 올려 그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이미 카메라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오직 싱토만을 바라보는 크리스의 얼굴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도 깊은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싱토의 눈을 들여다보던 크리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의 현실을 동화로 만들어주어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싱토의 눈에서부터 온 얼굴로 환한 미소가 퍼져나갔다. 너무나 당연한 수순인 듯, 싱토의 입술이 크리스의 그것에 가 닿았다. 애초에 그렇게 조각된 퍼즐처럼 딱 들어맞는다. 그네들의 인생도 이와 같음을 안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We're meant for each other.

 Not for her, not for him.

 Only for you, only for me.
















(+)

마무리하려고 썼던 에필로그가 왜 평소 분량의 1.5배인지 저는 모릅니다(..)

최대한 짧고 빠르게 끝내려는 욕심에 구멍이 너무 많아서 상대적으로 길어진 에필로그(..)


어쩌다 쓰게 된 거라 그런지 처음 생각이 났을 때부터 시작해서 딱 일주일에 끝을 내고야 말았네요.

지금은 라이언이랑 또 진짜 단편 하나가 있어서 무리지만

언젠가 번외 같은 걸로 구멍들 좀 다 채우고 싶은 욕심도 납니다.

크리스 감정 변화라든지.. 프러포즈라든지.. 신혼여행이라든지...


안 그래도 부족한 실력인데 급하게 굴어서 더 부족하기만 해진 글,

끝까지 놓지 않고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__)

내일 라이언으로, 그리고 모레 단편 하나로 찾아뵙겠습니다! (네.. 이거슨 홍보😅)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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