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희한하게도 처음 보는 자신의 품에서도 얌전히 안겨 방긋방긋 웃었다.
본능적으로 아는 건가? 하면서 토니는 낯설지만 나쁘지 않은 느낌에 용기 내어 주니어의 볼에 자신의 볼을 살며시 대보았다. 현재의 토니와는 다르게 수염이 없어 매끈한 그의 뺨이 주니어의 볼에 닿는 모습은 피터에게 어색하게 느껴져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이 뭐야?"

갑작스러운 질문에 피터는 빨리 머리를 굴려야 했다.

“벤이에요!"

죄송스러운 마음을 담아 삼촌의 이름을 말한 피터였다. 주니어의 이름은 앤서니 스타크 주니어였기에 이름만으로도 토니의 아이라는게 금방 들통날 것이기에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안녕 벤 인사가 늦었지?"

토니가 아기의 볼을 장난스럽게 톡톡치며 인사를 건내자 주니어가 방긋방긋 미소지었다.
세 사람이 함께하는 공간의 따뜻함, 잠시 시간을 보내며 마주했을 뿐인데 눈 앞의 남자는 역시 토니였다.
피터가 내내 힘겹게 쌓고 있었던 마음의 벽이 불가항력으로 토니의 작은 행동에도 너무 쉽게 허물어지고 있었다.
이후부턴 '어디서 살아?’, '몇 살이야?’, ‘아직 학생인가?' 등등 소소하지만 그렇다고 쉬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로 피터를 몰아붙이는 토니였다.
거짓말엔 영 소질이 없는 피터가 어떻게든 상황을 면하려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구원자처럼 식사 시간임을 알리러 마리아가 올라왔다.




피터는 식탁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토니와 주니어를 보고있어야 했다.

“아기는 정말 작구나”

방금 전까지도 아기가 어색한듯싶던 토니가 식사도 미룬 채 엄지손가락만 빨고 있는 주니어를 이쪽저쪽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에게 넘겨주고 얼른 밥 먹으라는 피터의 말에도 손을 휘휘 저으며 너 먼저 먹어 내가 돌볼게 하는 토니 때문에 피터는 서둘러 밥을 입에 넣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피터의 속도 모른 채 그들을 따뜻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마리아는 매일 밖으로만 돌던 아들의 새로운 모습이 신기했고 하워드는 피터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각자 다른 생각들 속에서 나름 화기애애한 식사시간을 보내는 중에 토니가 잊고 있던 스케줄을 마리아에게 얘기했다.

“참! 나 내일 외출해서 2~3일 정도 자리 비워요”

마리아가 그럼 그렇지 하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자 왜인지 억울해지는 기분이드는 토니가 마리아에게 그리고 피터에게 변명하듯이 대답했다.

“학교에서 요청이왔어요. 학교 연구실의 후배들 프로젝트를 봐달라고 요청이 왔는데 아버지가 마음대로 허락해버렸다구요!”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떠나버린 하워드의 빈 의자를 원망스럽게 가리키곤 최대한 보여줄 수 있는 다정한 얼굴로 피터에게 곧 돌아오겠다고 달래듯이 얘기했다. 그런 토니의 얼굴을 보며 안심하면서도 피터는 이 익숙해짐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피터의 방문 앞에 한참 서성이는 토니가 마침내 노크를 했다. 짧은 기다림 후에 피터가 문틈으로 조심스래 모습을 보였다.

“어제 얘기한 그것 때문에 이제 학교에 가야하는데......왜인지.....그....너에게 인사를 해야할 것 같아서"

토니의 말에 의아한 표정이었던 피터가 금새 조용한 미소를 보이며 잘 다녀오라 인사했다.
학교로 가는 길 내내 토니는 그 웃는 얼굴을 떠올리면 혼자 싱글거렸다.

그렇게 토니가 떠나고 얼마 후 이번에는 하워드가 피터에게 대화를 청했다.
혹여나 피터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라도 할까 불안한 마리아가 고집스럽게 그 곁을 지키고 앉아있었다.

“아이가 토니의 아이가 아니라고 했다던데, 검사 결과는 다른 얘기를 하는구나.”
“그게...그....죄송해요.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더는 말할 수 없는 사정이있어요.”
“휴....나도 안다. 내 아들놈이 퍽 믿음가는 스타일은 아니지...그”
“아니에요! 토니가 잘못한게 아니에요. 토니는 항상 저희를 지켜주고 아껴주고 그리고..그리고.흐윽”

하워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퐁퐁 눈물까지 보이며 변론하는 피터에 부부는 당황했다.
피터가 울자 품의 주니어까지 울먹울먹 하더니 결국 으앙 울어버리기 시작했다. 마리아가 하워드의 허버지를 나무라듯 살짝치며 둘을 달랬다.

“울지마 피터. 우린 너희를 나무라는게 아니야. 너도 토니도 아직은 도움이 필요해. 물론 아기도. 그래서 너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거야."

다정한 배려가 담긴 마리아의 말에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는 피터를 둘은 끈기 있게 기다려줬다.
조금 시간이 흘렀을까 결국 부부에게만큼은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마음을 정한 피터가 힘겹게 입을 땠다.

“믿어주실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그게 제가...저는 미래에서 왔어요. 27년 후의 미래에서....”

예상했던 방향의 이야기와 전혀 다른 말에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었던 두 사람이지만 일단은 피터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 두 사람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어떤 전투가있었는데 그때 받은 공격으로 자신이 갑자기 과거로 왔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간략하게 27년 후의 미래 상황을 설명했다. 물론 토니가 아이언맨으로 최고로 멋지고 강력한 히어로가 되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자신은 스파이더맨이며 둘은 정식으로 결혼했고 둘 사이에 태어난 아기가 주니어라는 것까지....

“만약에 과거의 토니가 미래를 알게 되면 미래가 바뀔수도 있고, 그럼 토니와 주니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웠어요”

놀라운 말들을 잔뜩 들은 두 사람은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참 후 힘들게 먼저 입을 땐 하워드의 첫 반응은 '네 말이 사실이라면. 내 아들은 망나니에...도둑인게 확실하구나’였다. 이 말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27년 후면 제 아들의 나이가 족히....그런데 그 아들의 상대라는 아이는 많이 봐줘도 20대 초반이었다. 


피터의 말들이 모두 거짓말이라며 부정하기에는 피터와 주니어가 갑자기 도로위에 나타난 광경을 직접 목격한 두 사람이었다. 혹시나 끝까지 믿지 않으시면 벽이라도 기어올라가야하나 고민하던 피터였지만 곁에 있는 무거운 가구를 한 손에 들어 올리는 쇼 정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여러가지 정황을 머릿속에 정리해보는 부부였지만 받아들이기 힘든것이 사실이었다. 결국 하워드는 커피가 필요하다며 잠시 자리를 비워야 했다.

둘만 남은 공간에 역시 믿기 힘드시겠지하는 마음에 울망해진 얼굴의 피터를 물끄러미 보던 마리아가 피터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걱정을 많이했겠구나”

마리아의 따뜻한 위로의 말에 눈이 다시 시큰거리는 피터였다.
악의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피터의 맑은 눈동자를 통해 이미 피터의 상황을 받아들인 것은 물론이고, 두서없는 이야기 속에 부부와 관련된 얘기가 없음에 그녀는 짐짓 아이가 말하는 그 시간에 자신들이 없다는 것까지 예측했다.  
그렇다면 자신들은 혼자 남겨진 아들의 반려자와 아이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까지 다다른 마리아였다.
사실을 받아들이자 언제 두 사람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조바심이 생겼다.

“피터 내가 아기를 안아봐도 괜찮겠니?”

그녀의 부탁에 피터가 선뜻 주니어를 넘겨주자 마리아가 조심스럽게 안아들었다. 그리고 결국 눈물을 글썽일 수 밖에 없었다.

“너무 예쁘구나 아가야”
“이름은 앤서니 스타크 주니어에요”

이름을 듣자 마리아의 얼굴이 감격과 기쁨으로 가득했다. 미래인지 다른 세계인지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이 자신의 아들이 사랑하는 존재라는 것만은 확실하게 느낄 수있었다.
미래의 토니는 수염을 기르고 있는데 주니어는 그걸 아주 좋아해요. 그리고 주니어의 아침 만큼은 토니가 꼭 챙겨주세요. 소소한 가족의 일상을 피터가 얘기했다. ‘그래도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났구나’ 방문너머로 얘기를 듣던 하워드의 입가에 미소가 맴돌았다.

마음에 늘 솔직하지 못한 하워드가 안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문밖에 서서 피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때 갑자기 방안에서 강한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놀란 하워드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자 방안의 한쪽 공간에서 큰 원 형태의 스파크가 일고있는 것이 보였다. 세 사람을 보호하기위해 다급히 다가가는데 그 원 안으로 파도가 일렁이듯 다른 공간이 서서히 보여지고 있었다.

“피터! 주니어! 있다면 대답해!”

애타게 두 사람을 찾는 남자의 목소리가 그 원의 저편에서 들려왔다. 목소리만으로 이미 두 눈에 물기가 가득해진 피터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토니! 토니! 저 여기있어요!”

포탈을 오래 유지할 수 없으니 빨리 넘어오라며 맞은 편에 토니로 보이는 일렁이는 형태의 사람이 서둘렀다. 그의 부름에 발을 내딛은 피터가 한발짝 떼고 결국 멈춰섰다. 분명 미련없이 돌아가야하는 피터였다. 그런데 아침에 토니에게 다녀오라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이제야 하워드와 마리아에게 사실을 얘기했다. 세 사람이 마음에 걸려 피터가 잠시 머뭇거리고 있으니 아이의 등을 마리아가 살짝 밀었다.

“서둘러야지 토니가 많이 걱정한 모양이야. 저런 목소리는 처음 듣는구나”

피터가 마리아와 하워드를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했다.

“지금의 토니에겐......토니를 잘 부탁드려요. 고마웠다 전해주세요. 정말 감사했어요.”

감사인사를 전하고 서둘러 포털로 향하는 피터의 뒤로 부부의 대답이있었던 것 같았지만 순식간에 포털이 닫히는 바람에 확실히 들을 수는 없었다.

“Pete!!”

포털을 넘어오자마자 답삭 자신과 주니어를 힘껏 품에 안는 토니가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 피터가 품에 가만히 안겨있었다. 조용한 피터에 놀란 토니가 뺨을 두 손으로 다정하게 감싸 자신을 향하게 했다.

“피터? 괜찮은거야?”

걱정 가득한 눈빛. 투박하고 두꺼운 손....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눈을 맞춰 토니를 바라봤다. 그런 피터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마주대고 다행이야라며 읊조리는 토니. 둘 사이에는  아무것도 모른채 피터의 품에서 졸음 가득한 눈으로 두 사람을 보는 주니어가 있었다.




피터가 침대에 벌렁 누웠다. 포털을 열어준 스트레인지씨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해피와 페퍼도 봤던 것 같다. 혹시나 몸에 이상이 없는지 보기위에 다녀간 주치의들에 잔뜩 긴장했던 것까지 겹쳐서 메타휴먼임에도 피로감에 몸살기가 도는 것 같았다. 누워서 잠시 눈을 감고 있는데 부드러운 손길이 머리카락을 쓸어왔다. 눈을 뜨니 역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그 토니가 곁에 다가와있다.

“주니어는요?”
“방금 잠들었어.”
“정말 다행이에요. 못돌아오면 어쩌나 정말 걱정 많이했어요 토니”

시공간을 연결하는 마법은 매우 정확해야하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가능해서 몇 번 실패했었다. 덕분에 두 사람이 무조건 돌아온다는 확신을 갖고 있던 토니마저도 긴장을 많이 했어야했다. 스타크 패밀리 구출작전을 얌전히 듣던 피터가 몸을 돌려 어리광을 부리며  토니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런 자신의 등을 다정하게 쓸며 안아주는 손길을 느끼던 피터가 문득 의문이들었다.

“그런데 토니 어떻게 과거에 있는걸 아신거에요?"
“응? 네가 잊지 말라고했잖아.”

잠시 얼마간 과거에서의 일들을 곱씹던 피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럼, 그럼 토니는 이미 알고 있었던거에요? 저희가 과거로 간다던가 저랑 이미 만난적이 있었던것?”

그새 호기심 가득해진 얼굴이된 피터의 볼을 장난스럽게 톡톡쳤다.

“아주 솔직하게 얘기하면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었어 나중에 깨달았지.”

27년전 잠시 곁에 내려 앉았다 날아가버린 새처럼 사라진 피터를 오랫동안 자기도 모르게 품고 살았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이미 두 사람은 어디론가 떠나고 없었다. 아버지는 검사 결과가 잘못된 것이 맞다며 진짜 가족을 찾아서 갔다고 했지만 토니는 믿지 않았다. 사실일리없었다. 아는것은 그 둘의 이름 피터, 벤. 당연한 결과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피터가 자신의 마음에 지울수 없는 낙인처럼 찍혀버린 것이 스스로도 이해가 안될만큼 당시에 그의 집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하지만 그 해 그는 잠시 피터를 잊을 수 밖에 없었다.

“킫 네가 아무런 힌트도 남겨주지 않았잖아. 스파이더링을 퀸즈에서 만난 날에야 알았다고."

처음아닌 첫 만남. 실물을 보기전 사진으로 피터를 본 순간 잊고 살았던 맑은 얼굴이 떠오르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 아이 방에서 저도 모르게 품에 담고 살았던 얼굴을 다시 마주했을때 인생 처음으로 믿어본적 없던 운명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미래가 변해버리거나 토니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거나 주니어가 사라져버릴까봐 무서웠다구요!"
“아! 그리고 그 덕분에 난 세상에 엄청나게 많은 피터가 존재한다는 것 정도를 알게 되었지”
“토니! 절 찾으신거에요?”

토니가 그 이후로 자신을 찾았다는 사실에 왜인지 기분이 들뜬 피터가 눈을 반짝였다.

"찾았지 나중에 다 큰 아들 데리고 나타나기 전에 내가 먼저 찾는게 나을테니까.”

괜히 심술부리는 말에 피터는 입을 삐죽이면서도 재잘재잘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토니가 제 나이때의 모습도보고 신기하긴했어요. 긴장도 엄청했지만, 토니의 부모님은 알고 계셨는데 끝까지 얘기해주지 않으셨나봐요."
“뭐 그렇지 얼마 후에 사고로 돌아가셨으니까. 그래서 그 즈음에는 나도 정신이 없어서 잠시 마음에.....피터?"

신나서 토니와 과거의 일을 얘기하던 피터의 눈이 금새 물기로 흐려졌다. 

피터가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그래서 미처 그 해의 토니가 겪었던 일을 생각해내지못했다.

“저는 몰랐어요. 토니 제가 좀 더 세심했다면, 사고를 막았을 수도 있었을텐데 미안해요.”
“오 허니 그러지마 그건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일이야. 그래......누구의 책임도 아니야.”

글썽이는 피터를 달래며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라고 얘기하며 토니가 자신을 올려보는 피터를 향해 미소지었다.

“덕분에 부모님을 오랜만에 봤어”

피터가 주니어를 품에 안고 포탈을 넘는 순간이었다. 일렁이며 제대로 보이지 않던 서로의 공간이 선명해지면서 순간이라 할 만큼 짧은 시간이었지만 부모님을 마주할 수 있었다. 과거 함께했던 시간에 단 한번도 아버지 하워드의 마음을 이해할수도 이해할생각도 없었던 토니였다. 그런 자신을 언제나 걱정했던 어머니. 하지만 눈빛만 나눌 수있는 찰나의 시간이었음에도 드디어 그는 부모님의 마음을 읽을 수있었다. 많은 시간을 돌아야했지만 자신의 가족을 갖게 된 지금의 토니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피터를 만나지 못했으면 불가능했을 일들.

"이런말을 내가하는게 우습지만 모든일들이 그냥...운명같은 거야 피터. 그리고 네가 내 운명이어서 다행이야"

토니가 말랑한 볼 위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피터의 턱을 살짝들어 키스를 하자 오래전에 갑자기 나타나 토니의 마음을 빼앗았던 미소를 보여주며 피터가 대답했다.

“저도 그래요. 토니가 제 운명이라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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