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공(空)'


너무 깔끔하고 단아해서 오히려 텅 비어 있는 느낌마저 주는 갤러리의 입구. 한 여자가 한참을 서 있다가 이내 결심한 듯이 무거운 발걸음을 안으로 들였다. 내부로 들어선 여자는 여러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 내부를 둘러보았다. 늦은 시간에도 열려 있다는 갤러리 안에는 다른 손님들이 없었다. 손님 뿐 아니라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고 고요하기만 했다. 여자는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요..”



아주 작은 목소리가 내부를 메아리쳐 그녀에게 다시 들려왔을 때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내부의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또각거리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시야에 누군가의 모습이 들어왔을 때쯤 그녀는 뭔지 모를 한기를 느꼈다. 그녀를 향해 걸어오는 이는 핏기 없는 하얀 얼굴의 남자였다. 그는 붉은 입술이 살짝 꼬리를 올린 정도로 웃고 있었지만 검은 눈동자는 웃고 있지 않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소름끼치는 이 미남자는 어느 새 그녀의 앞까지 걸어와서는 그녀에게 물었다. 목소리에서도 한기가 느껴지는 남자의 질문에 두려운 마음이 든 여자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긴장한 듯 입만 달싹거리고 있었다. 남자는 여전히 눈은 웃지 않은 채 그녀에게 미소 지은 얼굴로 다시 물었다.



“저희 갤러리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저.. 그.. 그림을 주문하려고..”



겨우 내뱉은 여자의 말을 듣고 있던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그림을 전시하고 팔뿐, 주문은 받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남자가 돌아서자 그녀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소문을 들었어요! 여.. 여기에서 원하는 그림을 주문하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돌아섰던 남자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리더니 그녀를 쳐다봤다. 순간 웃고 있지 않던 검은 눈동자가 웃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는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남자는 그녀를 향해 다시 돌아서서는 웃으며 말했다.



“이런 손님에게 결례를 범했군요. 저희는 '주문'을 받지 않습니다. 다만, 저희에게 손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면 그 이야기를 듣고 만나고 싶은 이를 만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네!! 꼭.. 꼭 부탁드려요.”



여자는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다가 고요한 갤러리에 울려 퍼지는 자신의 목소리가 무서웠는지 움찔거리며 목소리를 낮춰 다시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어요.”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주문'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돈은 받지 않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셔야지만 원하는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네.”

“그리고. 그 그림은 이 갤러리 안에서만 볼 수 있고, 이 갤러리에 소장될 겁니다. 동의하십니까?”



남자의 말에 여자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울 것도 없었고, 어차피 단 한 번만이라도 다시 그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온 것이었으니 그녀에게 손해 볼 것은 없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안으로 따라 들어오라고 말하고선 등을 돌려 먼저 걸어갔다. 남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했고, 검은 눈동자가 불빛에 반짝였다. 여자는 두리번거리며 남자를 따라 걷다가 갑자기 남자가 걸음을 멈추자 그녀도 걸음을 멈췄다. 티테이블이 눈앞에 있었고 남자는 그녀에게 앉으라고 권한 뒤 어디선가 향긋한 향이 나는 차를 가지고 와서 그녀에게 따라주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느꼈던 한기가 차 한 잔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그 말을 뒤로 남자는 그녀를 마주 보지 않은 위치에 앉아서 눈을 감은 채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남자의 모습을 보고 있던 그녀는 문득 밝지 않은 갤러리 안의 어둠과 그가 하나인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남자의 옷이 검은 색에 가까운 정장이라서 그럴 거라고 혼자 생각하며 차 한 모금을 입에 머금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지금도 눈앞에 있는 것처럼 아른거리는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마치 그 사람이 살아있는 것처럼 그때를 떠올렸다.







달을 보며 위안삼듯이 누군가가 나의 글에 재미와 위안을 받길 바라며 이것저것 끄적거리는 공상가.

구월의 달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