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 아닌 것들을 위해
자취도 없는 너의 것들을 위해
빗줄기가 퍼붓고 또 퍼붓고
세상 밖으로 아무것도 새어나가지 못하네

/허연, 장마, 장마, 장마 


 




 세상은 빗소리에 파묻혀 고요한데, 이 공간만 그 소리에 방해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지훈은 집 안으로 넘쳐 흐르는 빗물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다시 시선을 올렸다. 그러자 삐딱하게 기운 머리 위에서 툭, 손이 떨어져 내렸다. 마왕이 한 순간에 자취를 감춘다. 다니엘은 알 수 없는 언어를 노랫말처럼 중얼거리다가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냈다. 사각사각- 만년필이 스치는 소리에 경련이 이는 듯 숨이 턱턱 막혀왔다. 차라리 저 자가 인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되뇌이며 무력감을 느끼는 지훈은 악마였다. 악마가 잔뜩 지친 목소리로 속삭였다.

 "말해줬어야죠..."
 "뭘요? 이 모든 게 처음부터 사탄의 시험이었다고요?"
 "...네."
 "똑똑한 박지훈 신부님. 지금 제가 지껄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으시는 건가요?"

어둠 속에서 수첩과 만년필을 든 채 돌아다니는 다니엘의 실루엣이 보였다. 지훈은 오래 전 질리게 들었던 '인터뷰'에 대해 생각했다. 이 자는 그 이후로도 계속 나를 인터뷰해왔던 걸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의심이란 가장 큰 원죄를 조금씩 추궁하면서... 지훈이 천천히 제 명치를 문질렀다. 깨진 창문 밖으로 감미로운 빗소리가 배경 음악처럼 깔렸다. 그리고 사이사이마다 곁들여지는 천둥, 번개, 우르릉, 쾅! 감동적인 공연을 보는 양 지훈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의심은 죄악인가요?"
 "그렇죠."
 "형제님은 모든 걸 의심하시잖아요."
 "그래서 저는 죄인이에요. 아니, 우리 둘 다."

두 명의 죄인이 서로 마주보고 섰다. 다니엘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게 느껴지는데도, 그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훈은 차라리 고개를 내려 다니엘의 손을 확인했다. 수첩도 펜도 없었다. 이상한 안도감을 느낀 지훈이 다니엘의 손바닥 안에 무력하게 날개뼈를 내줬다. 톡톡, 피아노를 치는 듯한 손 끝이 지겹게 날개뼈를 탐색하며 괴롭혔다. 낮게 날아야 한다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 진짜 날개를 보고 싶은 걸까? 지훈이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저는 갈 수 없어요. 날 수도 없어요."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안 돼요."

다시 한번 무서운 기세로 번개가 쳤다. 다니엘은 입 밖으로 비명을 내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욕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날개뼈를 붙잡은 손에 강한 악력이 들어가고, 지훈이 짧게 비명을 터뜨리며 몸을 뒤틀었다. 아파요...! 다니엘은 버둥대는 몸을 꽉 둘러안고 지훈의 목 옆에 얼굴을 붙였다. 아마 검을 것이 분명한 축축한 액체가 피부 위로 문질러졌다. 지훈은 차라리 함께 따라서 엉엉 울어 버리고픈 심정이 되었다. 물기 어린 목소리가 울음처럼 말했다.

 "싫다구요. 싫다고, 싫다고... 전 정말 싫어요."
 "천둥번개가 두렵지 않게 해줄게요."
 "...형제님은 두렵지 않으세요? 저 천둥번개가?"


내내 두려워 하셨잖아요. 저보다도 더... 지훈은 뒷말을 삼키며 다니엘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익숙한 향수 냄새, 물 비린내, 잉크 냄새가 섞여 후각이 온통 엉망진창이 됐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자 다른 감각이 빠르게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한껏 예민해진 청각 속으로 다니엘의 짧은 대답이 흘러들어왔다. 

 "네."


이상하리만치 단호하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선악과>




 정직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지훈은 다시 몸을 버둥거리며 다니엘에게서 벗어나고자 했다. 하지만 다니엘은 절대 지훈을 놔주지 않았다. 인간은 얼마나 강한 존재인가? 그리고 나는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 지훈은 자신이 다니엘 앞에서 유독 약해진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결국 회색 분자들에게 '힘'이란 '악'을 상징한다는 사실도. 커다랗고 차가운 손바닥이 지훈의 귓가와 아랫턱을 감싸 고개를 들게 했다. 시선이 또렷하게 마주쳤다. 


 "당신을 원해요."
 "...원한다고 다 이뤄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 말과 함께 코가 맞닿았다. 남들보다 조금 차가울 입술이 뜨거운 입술 위로 뭉개졌다. 지훈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 행위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툭, 툭, 툭, 빗줄기 같은 눈물이 지훈의 얼굴에 떨어졌다. 다니엘이 다른 손으로 뒷통수를 꽉 감싸왔다. 절박하게. 하지만 차마 혀도 섞지 못하는 입맞춤은 서로 미적지근한 온도만을 나누도록 했다. 다니엘이 입술 사이로 속삭였다.  

 "같이 지옥으로 가요."
 "다니엘."
 "우리... 영원히 벌을 받아요."


탁, 내내 꺼져 있던 형광등에 불이 들어왔다. 완전히 드러난 희멀건한 얼굴 위로 검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훈은 엄지를 뻗어 다니엘의 눈물을 닦아줬다. 뜨거운 열감이 눈가를 스치자 다니엘이 천천히 눈을 끔뻑였다. 속눈썹이 축축했다. 손으로 볼을 쓸어내리니 손바닥 안에 뺨이 기울었다. 애처롭게.

 "형제님이라고 불러주세요."
 "우린 더 이상 형제가 아니에요."
 "왜죠?"
 "저는 신의 아들이에요. 영원히."

영원이라는 말에 하하... 바람 새는 웃음 소리가 흘렀다. 뒷통수를 지나 척추뼈까지 훑어내리는 손길이 서늘했다. 묵직하고 아릿한 통증이 등허리를 맴돌자 지훈이 불편한 듯 눈썹을 찡그렸다. 발 밑으로 찰랑대는 빗물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다니엘이 낮게 속삭였다.

 "그건 신부님이 결정할 수 없는 문제에요."
 "저는 사탄을 제 아버지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 
 "루시퍼가 당신을 사랑하잖아요..."
 "루시퍼는 미카엘을 배신했어요."

 "...미카엘 신부님. 진짜 미카엘은 당신에게 관심도 없어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지훈이 다니엘의 어깨를 꽉 붙들었다. 대체, 얼마나, 뭘 더 알고 있나요? 마지막임을 예감하니 모든 걸 다 알고 싶어졌다. 지금껏 두려워서 알지 못했던 것들까지, 전부 다. 악마의 손에 점점 더 강한 악력이 들어갔다. 하지만 다니엘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깊이 답하기를 거부했다. 지훈은 삐딱하게 목을 모로 꺾었다. 뚜둑- 뼈 맞춰지는 소리가 들렸다. 손목 위에서 십자가 문신이 반짝, 눈가의 눈물도 반짝반짝거렸다. 하지만 다시금 추궁하는 목소리는 깊고 낮았다.

 "...또 다른 미카엘 신부 얘기는 뭐죠?"
 "말하고 나면, 당신을 잃게 될까요?"
 

우르릉, 쾅! 마치 경고하듯 천둥번개가 쳤다. 대체 누구의 경고인지 이제 알고 싶지 않았다. 불안하게 깜빡이던 형광등이 결국 빛을 잃고 말았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전혀 보지 못한 채 숨소리만 흘렀다. 이내 어둠 속에서 노란 빛이 지훈의 얼굴 위로 잠시 어른거렸다. 다니엘은 비로소 악마의 얼굴을 보았다. 악마는 슬픈 듯 울고 있었다. 하지만 눈물의 색까지 알 수는 없었다.

 "네."

이상하리만치 단호하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확언을 들은 다니엘이 지훈의 앞으로 다가왔다. 차가운 손 끝이 반듯한 이마와 눈썹뼈를 스치고, 눈가, 코, 입술, 그리고 단단한 턱까지 닿았다. 손바닥이 눈 위를 덮는 것은 마치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졌다. 속눈썹이 축축했다.

 "...이게 마지막 인터뷰에요."

다시 한번 입술이 맞닿았다. 이번에는 거침 없이 입 안을 가르고 혀가 밀려 들어왔다. 지훈은 버거운 듯 까치발을 든 채 그 키스를 받아내다가, 고개를 약간 틀고 다니엘의 뒷목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다니엘이 지훈을 품 안 가득 빈 틈 없이 꽉 가뒀다. 무언가 주체하지 못하는 양 몸이 떨리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지훈은 그 떨림이 다니엘만의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후득후득 비가 내렸다. 그러자 차가운 손바닥이 뜨거운 볼 위를 문지르고 지나갔다. 지훈은 선뜩하고 축축한 감각에 놀라 흠칫 눈을 떴다. 다니엘이 입술 새로 속삭였다. 

 "사랑해요."

숨결이 뜨거웠다. 입술도, 혀도, 눈빛도. 눈이 마주치자 다니엘은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 하지만 그 눈동자 속에서 소용돌이 치는 슬픔, 고통, 그리고... 눈물이 툭 떨어졌다. 당신은 정말 차가운 사람이었을까? 지훈은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다니엘의 뒷목을 끌어당겼다. 혀가 얽히기 시작했다. 다섯번째 죄는 너무 슬프고 달콤해서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하늘 위에서 누군가 보고 있다면, 이제 멈출 테니 용서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다니엘이 떠났다. 현관문의 잠금쇠를 풀고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 문 밖을 나섰다. 그는 평소처럼 지훈을 재우거나 방을 정리하지 않았다. 또한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지훈은 떠나는 다니엘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문이 닫히자마자 털썩 주저 앉았다. 빗물 고인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면서, 지훈은 자신과 다니엘이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으로.

 "죄송합니다..."

누구에게 비는 것인지 모를 용서와 기도는 아무에게도 닿지 못했다. 깨진 창문 사이로 차가운 빗바람이 몇 번 휘돌다가, 이내 비가 뚝 멈췄다. 형광등에 다시 불이 켜졌다. 이질적인 빛줄기에 기시감을 느낀 지훈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집 안이 깨끗했다. 창문은 반질했고, 바닥에는 물 웅덩이가 없었으며, 지훈의 옷 역시 뽀송뽀송 멀끔했다. 지훈은 헛웃음을 지었다. 오늘 다니엘이 이 곳에 들르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웃음은 또 울음이 되었다.    

지훈은 천천히 거실을 돌아다니며 바뀐 것이 없는지 확인했다. 모든 것이 똑같았다. 주방도, 거실도, 방도, 욕실도. 위치는 물론이요 젖은 물건 하나 없었다. 역겨운 기시감에 토가 나올 것 같았다. 차라리 다니엘이 한 짓이면 좋겠지만... 다니엘은 이미 떠났다. 집의 시간을 몇 시간 전으로 돌려놓은 자가 누구인지 궁금했지만 전혀 알 수 없었다.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지훈은 천천히 마른 세수를 하다가 다시 현관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신발장 턱 아래에 무언가 떨어져 있었다.

 "..."

수첩이었다. 다니엘이 늘 들고 다니던 수첩. 



 그날 밤, 꿈을 꿨다. 지옥에 대한 꿈을. 지훈은 사탄이 매우 사랑한 아들이었다. 날 때부터 비범하고 총명했던데다, 계획에 없던 늦둥이였으니 그럴만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음을 모두가 알았다. 박지훈은 '돌연변이'였다. 아름다운 돌연변이. 모체도 없이 지옥에 생겨난 작은 악마는 태어난지 3일째 되던 날 아버지를 거부했다. 타락하지 않은 자식은 처음이었다. 사탄은 그것이 너무나도 흥미롭고 사랑스러워서, 꼭 지훈을 타락시키고 싶었다. 

 -아버지라고 불러보련.
 -싫어요.
 -그래서 내가 너를 사랑한단다, 아가.

낮게 긁는 듯한 목소리. 지훈은 그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온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환영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왜 사탄은 신처럼 선하게 살지 않는 거지? 나는 왜 미카엘처럼 선하게 살 수 없는 거지? 매일 그런 고민을 하다가 깨달았다. 미카엘처럼 살기 위해서는, 자신도 신의 아들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지훈은 매일 밤을 숱한 눈물과 간절한 기도로 보냈다. 그러다 응답을 받았다. 처음으로.

 '지훈아.'
 -...누구세요?
 '그곳에서 도망치렴. 너는 지상의 인간들을 구원해야 해.'

신이시여... 지훈은 검은 망토를 온몸에 두르고 바로 지옥에서 빠져나왔다. 지금껏 단 한 번도 탈출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쉬워서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작고 검은 뒷모습이 복도를 내달려 점이 된다. 한참을 숨 가쁘게 달리던 지훈은 이내 커다란 절벽 위에 멈춰섰다. 지상으로 가려면 바다처럼 용암이 깔린 암벽 위를 날아가야 했다. 하지만 지훈은 다른 악마들과 달리 날개가 성숙하지 않아 아예 날지 못했다. 그렇다면... 뛰어야 한다. 두려움에 저절로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선한 자는 죽지 않는다.'

자신을 독려하는 신의 목소리. 지훈은 홀린 듯 도움 닫기를 하고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한 발자국이라도 실수한다면, 그대로 용암과 함께 용해되는 것이다. 질끈 감았던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다행히도 암벽이었다. 벌벌 떨리는 손발로 틈새를 짚고, 또 짚으며 지상으로 올라갔다. 어느 순간부터 머리 위에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찬란한 빛줄기가 보였다. 검은 망토가 휘이익- 바람을 타고 멀리 나부껴 용암 속으로 사라졌다. 지훈이 절벽 위로 완전히 기어오르자 온화한 목소리가 말했다.

 '구원자를 찾거라. 너와 태초부터 하나였던 자를.' 

지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온화한 빛 속에 몸을 맡겼다. 평화롭고 따스한 기분. 감은 눈 앞으로 검은 형체가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지훈이 처음 지상으로 올라가던 날 본, 바로 그 모습이었다. 기억은 딱 거기까지였다. 때문에 지훈은 이제 이 꿈에서 깨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검은 뒷모습은 예전의 기억과 달리 점점 형체가 뚜렷해지더니, 이내 정장을 입은 사내의 뒷모습으로 변했다. 익숙한 구둣굽 소리와 빗소리가 흐른다. 남자는 짜증스럽게 귓볼에 달린 십자가 귀걸이를 뜯어냈다. 후두둑- 바닥에 흐른 선명한 붉은 피가 뱀이 되어 지훈의 발 밑으로 기어왔다. 그리고 발목 대신 검은 사과를 덥석 물었다.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저는 죄인입니다."

그는 다니엘이었다. 지금껏 꿈 속에 등장했던 것처럼 흉측한 모습이 아닌, 너무나도 익숙하고 평범한 모습을 한 다니엘. 이내 다니엘의 머리 위로 검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니엘은 흠뻑 젖은 채로 지훈을 보고 씩 웃었다. 벌거 벗은 것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지훈은 무화과 잎도 없이 빛 속에 섰다. 어둠과 빛의 공간이 흑과 백으로 대립한다. 

 "제가 모두 짊어질 테니 장마를 거두어 주십시오. 아멘."

다니엘의 기도와 함께 비가 그쳤다. 그리고 다니엘은 서서히, 아주 서서히 발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훈은 천천히 그 앞으로 다가갔다. 발 끝에 어둠이 닿았다. 다니엘이 입모양으로 속삭였다. 

 신부님.

다니엘은 활짝 웃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윽!"

지훈은 제 심장께를 움켜쥐며 잠에서 깨어났다. 허억, 헉... 불안한 숨소리가 침대 위를 맴돌았다. 왠지 다니엘이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 꿈처럼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다. 덜덜 떨리던 손이 탁자를 더듬다가 실수로 리모컨을 떨어뜨렸다. 티비가 켜진다. 일기 예보 중이였는지 기상 캐스터가 XX 지역을 가리켰다.


[XX 지역에 한동안 비소식이 없을 예정입니다. 장마 피해로 고충을 겪던 주민들은 이로 인해 걱정을 한시름 덜었으며, 집중 호우 주의보는...]  


지훈은 조용히 티비를 껐다.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깨지지 않은 창문이 눈부신 햇살을 투과하고, 빛에 적응한 눈 속으로 화창한 거리 풍경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오랜만에 신이 난 듯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럴만도 했다. 이미 다른 지역은 모두 장마가 끝났는데, XX 지역만 유독 비가 그치지 않았으니까. 지훈은 그들의 행복을 표정 없이 바라보다가 구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장우산이 있었다. 찢어지고 젖은 장우산 하나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2:15)




-
완결인 줄 알고 놀라시는 분들... 혹시 있을까요....? 선악과는 25화~26화쯤 완결 예정입니다! 독자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늘 사랑합니당♥


인디고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