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츠무쨩, 오늘 일 있어서 조금 늦을 것 같으니까 기다리지 말고 자.


아츠무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문장만이 쓰인 메시지 창을 죽어라 노려봤다. 이런다고 해서 메시지가 철회된다던가, 늦는다던 애인이 빨리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아츠무는 눈을 뗄 수 없었다. 도대체 몇 번째인지.


저와는 달리 썩 중요하지도 않은 인맥을 더럽게 중시하기 때문에, 오이카와가 약속 자리에 항상 참여하려 한다는 건 이해했다. 하지만, 일찍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정확히는 저에게 집중해줬으면 좋겠다는 슬쩍 흘린 이야기에도 꿋꿋하게 늦게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좋게 넘어갈 수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조만간 화병으로 죽어도 할 말이 없겠다고 제 쌍둥이에게 호언장담했을까.―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이카와를 두고 죽을 생각은 일절 없다.―


애당초 사람들의 넘치는 관심을 썩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오이카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관심으로 피해 보는 건 자신이면서. 아, 열 받아. 니는 그 성질머리를 좀 어떻게 해라. 저희 학교 주장의 진심 어린 조언에는 잠깐 고개를 끄덕였지만, 오이카와가 연관이 되어있다면 고칠 수가 없었다.


‘츠무쨩, 진짜 괜찮아?’

‘토오루, 니는 내를 뭐로 보노. 내 걱정하지 말고 놀고 와라!’


처음에는 쿨하게 보내줬었다.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의외의 곳에서는 또 다른 오이카와가 사람들의 평판을 신경 쓴다는 걸 알기 때문에. 또 그때는 그 이유가 남의 눈치를 본다기보다 오래전부터 이러저러한 일을 많이 겪어서 생긴 오이카와만의 연륜이라는 걸 느끼고는 새삼 또 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는 이렇게 연락 하나만 띡 보내놓고 잠수다. 그래놓고 다음 날 만나면 ‘츠무쨩, 이해하지~?’ 라던가, ‘어쩔 수 없었어. 그래도 나한테는 츠무쨩밖에 없어, 응?’ 라던가. 온갖 애교를 부려대는데, 그거에 또 넘어가는 자신도 빙시다. 그놈의 츠무쨩에는 당최 이길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눈치도 빠른 사람이 왜 이럴 때는 자신에게 넘어와 주지를 않는 건지. 하여튼 여러모로 오이카와를 이기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 도저히 안 되겠네!”


저, 저. 성질머리 또 티 나오네. 뒤에서는 또 무언가를 먹으며 제 쌍둥이가 주절거렸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오늘은 내 꼭 토오루랑 담판 짓고 온다!




*




패기 있게 나온 것치고는 날이 꽤 쌀쌀해서, 그냥 돌아가서 오이카와를 기다릴까 생각한 게 아쉽게도 그의 집에 도착해서였다. 이전에는 저희 집과 오이카와의 집이 꽤 멀다고 생각했는데, 열이 받아 그런 것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온 덕분에 금세 도착해 버렸다. 에이, 이왕 도착한 거 그냥 기다리자.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성격이 드러나듯 가만히 서 있으려니 좀이 쑤셨다. 오이카와의 집 담벼락에 기대어 서 있기도 하다가, 대문 앞에서 큰 원을 그리며 돌아 걷기도 해보고, 궁상맞게 쪼그려 앉아 있어 봐도 오이카와는 오질 않는다.


가뜩이나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도 열 받는데, 길 가던 초등학생이 제가 불쌍했는지 건넨 막대사탕 하나를 물고 있자니 갑자기 제 신세가 서러워졌다. 아, 이대로 돌아가 버려? 생각은 들었지만, 이제는 오기로 버텼다.


‘츠무쨩은 질투나 집착 같은 게 없어서 좋아.’


언제였더라. 연애 초반, 저도 모르게 내숭을 피고 있던 건지, 오이카와가 저따위―오이카와가 한 말에 ‘따위’를 붙이고 싶지 않지만, 정말 말같지도 않은 소리라서 어쩔 수 없다.―의 말을 했다. 집착이 없다니, 개뿔. 없었으면 오사무랑 그렇게까지 싸우지도 않았을 거다. 제가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오이카와는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연락도 없지.


왜 그때, 아닌데? 질투나 집착 엄청 많은데? 라고 반박하지 않았을까. 물론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저 고개만 끄덕이면서 대충 얼버무렸을 거다. 없어서 좋다는데 굳이 있다고 말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주장이 연습을 빙자한 페널티를 주었을 때도 이렇게까지 몸이 떨린 적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아직까지도 연락 한 통 없는 오이카와를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 내 오늘은 진짜 가만 안 둔다.


그렇게 또 얼마를 있었을까. 저 멀리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서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아, 드디어.


“누구…. 헉, 츠, 츠무쨩…?!”

“아, 왔나.”


끙―차. 오래 기다리다 이제 더는 움직이기도 귀찮아서 쪼그려 앉아 있었더니 다리가 다 저렸다. 하여튼 토오루랑 사귀면서 진짜 별걸 다 한다.


“언제부터 있었어? 나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츠무쨩 얼굴 빨개진 것 봐….”

“뭐, 개안타. 이 정도 갖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폼 안 나게 저도 모르게 콧물 훌쩍일 뻔한 걸 겨우 참아냈다. 막대 사탕이 아니었으면 그대로 훌쩍였을 거다. 꼬맹아, 고맙다. 그나저나 제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걱정하는 오이카와를 봐도 몸의 떨림이 멈추질 않는 게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는 건지…,


“어휴, 츠무쨩 오래 있었나 보네. 추워서 몸 떠는 것 봐. 우선 집으로 들어가자.”


… 아무래도 자신이 큰 착각을 한 모양이다. 아, 추워서 떨린 거였다니. 아닌데, 분명 화나서 몸이 떨리고 있었는데. 것보다 오늘은 진짜 화내야 하는데. 속으로만 생각하면서, 몸은 본능적으로 오이카와의 집으로 들어갔다. 아, 따뜻해.


“그래도 고개 숙이고 있었으면서 용케 나인 줄 알았네.”


솔직히 이전에도 지나다니는 사람은 몇 있었는데, 주택가에 뭐 얼마나 다니겠냐 싶어 올 때마다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렇기에 오이카와일 줄 알아서 그때 맞춰 고개를 든 건 절대 아니었지만, 대충 멋있어 보였다면 조용히 넘어가기로 했다.


“이 추운 날 왜 앞에서 미련하게 그러고 있었어. 전화를 하지.”

“그게….”


아츠무는 뭐라고 해야 좋을지 말을 고르느라 애썼다. 아그작, 막대 사탕을 씹어 삼키며 생각을 곱씹어봤다.


‘니가 먼저 하믄 안 되나. 왜 내가 먼저 해야 하는데. ’


이렇게 말하면 싸울 게 뻔하고,


‘약속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나.’


이건 조금 집착하는 것 같고,


‘ 보고 싶었다….’


아, 아니지. 이게 아니지. 오늘은 꼭 화를 내야지.


오이카와는 고민하는 아츠무의 앞에서 말 없이 서 있었다. 꼭 무언가를 기다리듯이. 아츠무는 에라 모르겠다, 속에 있는 말을 꺼냈다. 마음 먹은 것치고는 긴장돼서 몸이 떨리는 기분이 들었지만 무시했다.


“추운 건지 화난 건지 모를 정도였는데, 됐고, 이젠 내랑 좀 같이 있어주라.”

“응?”

“아, 짜증난다꼬! 자꾸 어디 가지 말고, 그냥 내랑 같이 있자. 솔직히 나 집착 진짜 많은데, 토오루 니 앞이라 없는 척 좀 해봤다. 그런데 이제 더 못 참겠거든? 그니까 토오루 니가 참아라.”


결국 다 합친 것보다도 최악의 레퍼토리다. 아, 몰라. 언제는 생각을 많이 하고 내뱉었나. 아츠무는 배 째라는 식의 생각과는 다르게 오이카와를 흘긋 쳐다 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오이카와와 맞붙을 걸 생각하니 또 몸이 떨렸다. 이놈의 몸은 왜 자꾸 떨리는지.


“겨우 솔직해지는구만?”

“… 하?”

“오이카와 씨가 츠무쨩이 집착하는 것도 모를까 봐? 계~속 괜찮다길래 언제까지 참을 수 있나 봤지.”


그래도 몸이 떨리는 이유를 모르는 건 신선하다, 야. 앞에서 쫑알대는 오이카와에도 아츠무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 그러니까 일부러 그랬다는…?”

“아니, 뭐, 일부러는 아니고…. 화낼 것 같아서 말하는데, 약속은 진짜 있었다?”


아츠무는 오이카와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아니, 아니. 그러니까 그냥 참았으면 됐다는…. 으악. 내 뭔 짓을 한 기고. 아까는 추워서 빨개졌던 얼굴이 이제는 부끄러움에 달아올랐다.


그래도 츠무쨩이 추운지 화났는지도 모를 정도였다는 말은 조금 웃기네. 앞에서 기분 좋게 웃고 있는 오이카와를 보고 있자니, 됐다 싶었다. 언제 또 생각을 많이 했다고.


“그럼 인제 안 나갈 기가?”

“… 그건 아니고….”


제 눈치를 보며 말을 흐리는 오이카와를 눈이 째지게 쳐다봤다. 하하…, 어색하게 웃던 오이카와가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뭐야, 츠무쨩. 이제 다 들켰다고 숨기지도 않겠다 이거야?”

“그래. 이제 그냥 다 보일 기다. 그러니까 나갈 거면 앞으로 내랑도 같이 가라.”

“아, 차라리 전이 나은 것 같아. 돌아와 줘, 츠무쨩.”

“됐다! 이미 다 끝난 마당에 무슨. 토오루 닌 이제 조심해라. 질릴 때까지 집착 보여줄 거니까.”


무섭다, 무서워~. 말과는 다르게 웃으며 이제는 따뜻해진 손을 꽉 잡아주는 오이카와 덕분에, 이유 모르게 떨리던 몸이 겨우 멈췄다.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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