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게 달려든 혜성에 의해 바닥에 누워 양팔을 포박당한 도윤의 얼굴엔 낭패감이 가득했다. 반쯤 녹아내린 화장 아래의 창백한 피부와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덧씌운 인간의 거죽이 벗겨지자, 그는 다른 무엇보다 두려움에 제일 먼저 잠식됐다. 위험한 상황이라는 사실이 뒷전으로 될 만큼의 공포였다. 

 "이게 좀비가 아니라고?"

 비아냥거림이 향한 건 도윤이 아닌 규혁이었다. 이 얼굴을 고스란히 들켜버리고 만 상황은 이제 나아가기로 결정한 도윤에겐 최악의 흐름이기도 했다. 일부러 외출을 했고, 착한 아이로 남아있지 않겠다는 다짐이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알 수 없었다.

 볼일을 마치고 나온 가게 앞에서 갑작스레 만난 소나기가 문제였을까. 급히 얼굴을 가리고 차에 올라타 몰래 집에 들어가면 문제가 없을 거란 생각이 어리석었던 걸 수도 있었다. 당장 눈앞에 이 남자만 해도 예상치 못한 변수였으니, 도윤은 섣불리 변명의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혜성아. 그 손 놔!"

 "내가 왜? 가족이라는 형이 가만히 있는데, 허락한 거 아니야?"

 혜성의 말처럼 규혁은 물끄러미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움직일 생각 따위는 없다는 듯, 그의 태도는 냉정하기 그지없었다. 도윤이 가장 두려워하는 눈빛은 보지 않아도 날카롭게 그를 베어버리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바닥에 누워있는 건, 이규혁이 알던 한도윤이 아니었다.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덜덜 떠시나. 이제 곧 죽을 거란 걸 알아서 그런가 보네. 걱정 마, 형씨. 내가 이래 보여도 좀비를 꽤 많이 죽여봐서 안 아프게 보내줄 수 있어."

 도윤은 혜성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어차피 벗어날 수 없단 걸 알고 있어 발버둥 치지도 않았다. 그가 떨리는 몸으로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다. 이 자리에서 죽는다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눈에 담고 싶다. 매정하게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을 가장 소중한 사람을 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그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눈을 필사적으로 굴려 규혁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이런 얼굴 따위를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는데. 정말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자 공포를 이길 정도의 간절함이 솟아올랐다. 조금만 용기를 내면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규혁의 눈동자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미세한 변화가 눈에 새겨지는 순간. 도윤은 혜성이 어디선가 꺼낸 칼을 치켜드는 걸 깨닫고 무의식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늘 피어스를 사 왔어. 형이 선물해준 거랑 가장 비슷한 거로 사 왔는데. 잘 어울리면 좋겠다."

 눈물이 나오지 않으니, 이왕이면 두 번째 죽음은 웃으면서 맞이하고 싶었다. 비어있던 귀를 채운 여러 개의 피어스에 피부였던 갈색 물이 흘러내렸다. 반짝이는 새 피어스의 색이 탁해질 즈음 도윤은 미련 없이 눈을 감았다. 

 "……!"

 "윽. 이런 미친! 형 진짜 제정신 아니구나!"

 "규혁아!"

 주영의 새된 비명과 함께 무언가 찢기고 구르는 소리가 났다. 도윤의 몸을 누르던 무게도 사라졌다. 금세 찾아올 거라 믿었던 안식 대신 도윤에게 들이 밀어진 것은 예상치 못한 남자의 손이었다. 

 "규혁이 형?"

 억지로 뜬 눈에 보이는 건 죽어서도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광경이었다.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규혁이 도윤의 옆에 앉아있었다. 혜성이 휘두른 칼을 손으로 잡아내고, 그를 밀쳐낸 규혁의 표정은 사정없이 일그러진 채였다. 날카로운 칼을 잡은 손이 도윤의 코앞에 있었고,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렀다. 흘러내린 피는 그대로 도윤의 코와 뺨에 떨어졌다.

 비릿하고 익숙한 혈향이 코를 찔렀다. 이 모든 일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를 구한 규혁이 사실 환상인 것은 아닐까.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 같은 피가 저를 위한 것이란 사실이 낯설게 다가왔다. 누워서 볼 수 있는 시야는 한정적이었는데, 눈에 들어오는 규혁의 옆모습은 여전히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피, 피가. 규혁아. 얼른 지혈을!"

 "누나. 도윤이 데리고 올라가요."

 "나랑 해보겠다 이거야?! 그깟 좀비 때문에?"

 아직 도윤이라 불러주는구나. 칼을 멀리 던져버린 규혁을 보며 도윤이 몸을 일으켰다. 본능적으로 얼굴을 가리고자 팔을 들어 올린 그는 문득 바닥에 떨어진 피를 보았다. 빨갛다. 붉은 액체가 떨어진 모양이 냄새와 같이 익숙했다.

 "도윤아. 얼른 가자!"

 "누, 누나. 저."

 바닥의 흔적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도윤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하필 이때. 그는 머릿속을 휘젓는 과거의 기억에 그대로 자리에 엎어졌다. 고통스러운 죄책감이 그를 덮쳤다. 지금까지 흐릿할 뿐이었던 좀비였을 때의 기억, 살인이 그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플래시백이었다. 마치 바로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오감을 자극했다. 도윤은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사람의 목을 잡았다. 세차게 뛰는 맥박이 살아있는 사람이란 걸 깨닫게 하는 와중, 그는 결국 사람을 죽였다. 엎어진 채로 패닉에 빠진 그의 곁에서 주영은 바로 상태를 알아채고 규혁의 팔을 잡았다. 

 "지금 싸울 때가 아니야! 규혁아, 네가 옮겨줘. 혜성이 너도 도와!"

 "내가 왜 도와야 하는데!"

 "도윤이는 사람이니까."

 그동안 규혁이 해왔던 말과 같았다. 한도윤은 좀비가 아니라는 말. 그러나 미묘하게 다른 어순은 규혁과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좀비라는 걸 부정하기보다 사람이라는 확신을 준다. 주영의 단호함에 혜성의 기세가 주춤했다. 팔을 잡힌 규혁 또한 마찬가지였다. 외면하기엔 그 자신이 행동한 모든 것들이 이미 전과는 다르다는 걸 보인 후였다.

 "…… 도윤아."

 바닥에 엎어져 안쓰러울 정도로 떨고 있는 도윤은 연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규혁의 부름 따위는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 몸을 웅크린 꼴은 겁에 질린 무력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제 죄를 인정하기에 두려워하는 약한 인간. 언뜻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전부 사과의 뜻을 담은 것들뿐이었다.

 그런 도윤을 보며 규혁이 마른침을 삼켰다. 돌아온 이후로 처음 보는 도윤의 무너진 모습은 충격을 안겨줬다. 화장이 지워진 하얀 피부를 가리려던 노력이 무색하게 얼굴을 들키고 말았다. 어린 시절 좀비에게 당해 죽는 순간에도 보이지 않았던 참혹함을 담은 고통이 규혁을 꿰뚫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의 공포의 대부분은 등 뒤의 이규혁이 이유였다. 

 "잘못,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내가 죽였어. 흐으, 흑."

 "아니야. 그건 네가 한 게 아니야. 항상 아침에 하던 말이 있잖아, 알지?"

 "그렇다고 죽인 게 없어지는 건 아니지."

 "서혜성. 조용히 하고 있어."

 쳇. 혜성은 혀를 찬 뒤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노기를 띤 규혁의 경고는 두 번은 봐주지 않는다라 말하고 있었다. 애써 도윤의 등을 쓸어주던 주영의 곁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남자는 깊게 가라앉은 눈을 한 채였다. 무시해온 도윤의 손을 잡을 때와 현재는 달랐다. 숨기지 못한 진실을 잡을 용기가 있는가. 계속 피가 흐르는 손을 꾹 쥔 규혁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인정하지 못했던 것은 도윤과 같은 이유였을지도 몰랐다. 어린 시절에 기억한 이규혁이라는 환상에 갇힌 어리석은 마음의 화살표 말이다. 그는 어릴 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벗어나고 싶어 했다. 무력했던 자신이 도윤을 놓친 그 순간부터 규혁은 몇 번이고 자신을 바꾸려 노력했다. 자신은 어떻게 해도 올곧은 도윤처럼 될 수는 없었으니까.

 한도윤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많은 이들 앞에서 좋은 사람이기를 연기한 삶은 나쁘지 않았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이 그를 따랐고 원하는 일을 앞장서서 해결해주곤 했다. 그들은 이규혁을 의심하지 않았다.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렇기에 그는 자신을 바꿀 수 있었다. 이상적인 울타리가 되어줄 사람이 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아, 아. 죄송해요. 죄송해요!"

 그런 모습을 들키는 게 두려웠다. 한결같이 자신을 바라보는 도윤에게 곪아버린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규혁은 겁쟁이로 남아있길 원한 채였다. 선을 그으면 도윤은 그에 맞춰 몸을 낮췄다. 원만한 관계를 위해 들키는 것보다 비겁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나을 거란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그랬을 터인데. 발작으로 한없이 작아진 도윤을 보자 덜컥 모든 게 소용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규혁아. 안 되겠어, 진정제를 놔야겠어."

 "잡고 있을게요."

 "어? 으, 응. 가져오면서 구급상자도 가져올게!"

 다시 눈앞에서 망가지는 도윤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어쭙잖은 선을 그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규혁은 잡생각을 접어두고 피가 흥건한 손으로 도윤의 어깨를 잡았다. 

 "한도윤. 도윤아. 너는, 부분적 사망 증후군이야. 치료 전 상태에서 저지른 짓은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거 알지."

 "……!"

 방으로 달려간 주영의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은 규혁의 말. 도윤은 다른 의미로 머리가 새하얘졌다. 지금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알고 있는 건지, 그는 제대로 된 사고가 멈춰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부분적 사망 증후군이라는 단어가 몇 번이고 귀에 감겼다. 그런데 너무 늦었어 형. 좀비인 걸 이제야 인정해주면, 내가 기억해낸 죄의 무게가 더해질 뿐이잖아.

 "이거 놔!"

 도윤은 거칠게 규혁의 손을 쳐냈다. 제정신이 아닌데도 알아챈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지 않았다. 어깨에 닿는 모든 감촉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할 수만 있다면, 아무도 없는 곳에 틀어박혀 쉴 새 없이 잘못을 고하고 싶었다. 따뜻해지지 않는 바닥에 엎드려 규혁을 거절한 도윤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탓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어이쿠. 형 얼굴 진짜 볼만한 거 알아?"

 "나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그를 보며 혜성이 이죽거림을 숨기지 않았다. 내쳐진 손이 허망하게 허공을 맴돌았다. 먼저 일어서려는 도윤의 뒤를 쫓기엔 늦어버린 탓일까. 겨우 한 걸음을 뗀 규혁이 본 등은 한없이 약했고, 또 쓸쓸해 보였다. 억지로 다시 잡으면 도윤은 거부할 수 없을 터였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건 상대를 위한 배려이기도 했으니. 

 "진정제 가져왔어!" 

 어색한 분위기를 깬 건 양손에 짐을 들고 달려온 주영이었다. 그녀가 가져온 것들을 내려두며 도윤을 잡아 일으켜 세울 때, 그는 얌전히 몸을 일으켰다. 이제는 얼굴을 가리려고 하지 않는 도윤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룩덜룩한 피부와 지친 눈이 멍하니 앞을 보고 있는 상태는 한눈에 봐도 좋지 않은 수준으로 보였다. 

 "도윤아. 내가 누군지 알겠어?"

 "응."

 "계속해서 떠오르는 과거에 빠지지 마. 벗어나야 해."

 "응, 규혁이 형."

 걱정스러운 주영의 말에 흘러나온 대답엔 그녀가 아닌 다른 이의 이름이 있었다. 넋이 나간 상태의 도윤이 부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규혁 또한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분명 도윤은 규혁을 불렀다. 말을 걸고 있는 사람이 규혁이라는 착각에 빠진 것인지, 조금 전 그를 거절했던 기세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 핸드폰을 보고 있는 혜성, 그리고 가만히 도윤을 바라보는 규혁. 그 사이에서 도윤을 벽에 기대게 한 주영은 홀로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녀가 한 과거에 빠지지 말라는 말은, 비단 플래시백만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충격을 받은 인간은 어딘가에 문제가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몸이 아프다던가, 정신적 피로감을 느껴 힘들어한다던가 말이다. 

 "형마저 배신하고 싶지 않았어."

 도윤은 후자에 해당했다. 겨우 과거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그는 다시 과거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힘없는 말을 내뱉고, 축 늘어져 벽에 기댄 몸이 자꾸만 쓰러졌다. 헛소리를 일삼는 그가 불안정해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대로는 무슨 말을 해도 제대로 듣지 못할 터다. 주영은 어쩔 수 없이 챙겨온 주사를 도윤의 팔에 놓았다. 

 정부에서 직접 배포한 진정제가 들어가자 그의 중얼거림이 멈췄다. 진정제라 명명했지만, 약의 효과는 몸의 기능을 아예 멈추는 것에 가까웠다. 혹시나 문제가 생겨 좀비로 돌아가게 된다거나. 그럴 때 사용하는 용도인 약물은 빠르게 몸을 굳게 만들었다.

 느리게 깜빡이는 눈에는 빛이 머물지 않았다. 숨도 쉬지 않는 몸은 흡사 인형같이 보일 정도였다. 도윤이 바닥을 바라보고 앉아있자 주영은 그제야 규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단정하게 넘겼던 머리는 땀에 엉망이 됐고, 흐트러진 옷매무새와 피투성이가 된 손까지. 모든 것이 비틀려있는 상태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그의 음울한 얼굴이었다.

 "규혁아. 도윤이 옮겨야지."

 "차라리 도윤이가 저를 배신했으면 나았을까요."

 "내 대답은 아니. 상처받았을 대상이 달라질 뿐, 도윤이가 받았을 상처와 배신감은 네가 고스란히 떠안았을 거야."

 그녀의 덤덤한 말에 규혁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회피하는 사람이 그대로라면 달라지는 건 없었다. 제대로 설명하고 대화를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그들에겐 어려운 일이었으니, 도윤이 배신했다 하더라도 관계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도윤이는 나아가려고 했어. 여기 있는 누구보다도."

 "왜 나를 봐? 누나. 난 지금 간신히 참고 있는 거라니까!"

 상황을 지켜보며 구급상자를 뒤져 규혁에게 붕대를 던진 혜성이 어깨를 으쓱였다. 뚱한 얼굴은 아까와 달리 독기가 빠진 모양이었다. 칼 대신 들고 있던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은 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해! 이 좀비 자식 옮겨야 한다며. 빨리하고 전부 설명하는 게 좋을 거야."

 성큼성큼 다가가 선뜻 도윤의 팔을 잡아채 올린 혜성이 까칠하게 규혁을 불렀다. 완전히 힘이 빠진 성인 남자의 몸을 홀로 드는 건 무리라는 듯 일부러 낑낑대는 소리를 낸 그의 눈빛이 매서웠다. 당장 안 일어나? 재촉하는 말에 가시가 돋히자 규혁은 홀린 사람처럼 일어나 도윤의 다른 쪽 팔을 잡았다. 

 이번에는 손을 내치지 않는구나. 비쩍 마른 팔을 잡았을 때 규혁은 비겁한 안도감에 휩싸였다.

 2층에 올라가 도윤을 눕히고 내려온 혜성의 표정은 최악에 가까웠다. 1층에 퍼져있던 시체의 냄새는 2층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코를 막고 응접실로 내려와 창문을 닥치는 대로 연 그는 소파에 앉아 뒤따라 앞에 앉은 주영과 규혁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젠 숨길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할 차례였다.

 "안 그래도 회사 뒤숭숭한데, 진짜 이럴 거야? 이러다간 정말 다 들켜."

 "혜성아. 도윤이는 규혁이의 하나뿐인 가족이야."

 "가족은 개뿔. 형은 가족 취급도 안 하고 있었잖아? 그 좀비 반응을 보라고. 누나가 이 우매한 중생보다 더 잘 알고 있을 상황이더니만."

 혜성은 규혁의 손을 내친 도윤을 눈에 담았을 때를 되새기면 속이 울렁거렸다. 무기력하게 죽으려 하던  좀비가 살아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일까. 불쾌했다. 좀비를 죽이려 했는데, 정작 남은 건 사람을 해치려 했다는 죄책감이었다. 

 "…… 아, 젠장! 뭐가 이래."

 "직접 마주 보니까 다르지? 그냥 좀비들이랑은 다른 환자의 모습."

 할 말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그를 마주 본 주영이 부드럽게 물음을 건넸다. 사회에 뛰어들어 거칠게 살아남은 사람치고는 어린 나이. 이제 막 성인이 된 혜성이 죽여왔던 건 이성이 없는 좀비들뿐이었다. 혼란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상태를 알아차린 그녀의 말은 정곡을 찌른 것 같았다. 혜성은 투덜거림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내가 좀비를 싫어하는 건 변하지 않아. 그건 형도 마찬가지잖아."

 "그래. 좀비를 죽여야 한다는 건 변하지 않지."

 혜성을 마주 보고 단호히 대답한 규혁의 표정은 평소와 같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한 미소를 띤 얼굴에선 아까와 같은 당혹스러움을 발견할 수 없었다. 시끄럽게 쏟아지는 빗소리만이 남은 방 안에서, 셋은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솔직히 난 모르겠거든. 근데, 직접 보고 나니까 불쌍하더라. 좀비라서 배척당한다? 그건 당연한 이치니까 됐어. 근데 말이야. 가족이랍시고 붙어있는 사람이 좀비도, 뭣도 아니게 존재 자체를 무시하니까 동정심이 들어. 난 누구랑 다르게 정신머리가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서!"

 침묵을 깬 건 혜성이었다. 아오! 제 말이 정리되지 않는 것처럼 버럭 화를 낸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향해 걸어갔다. 

 "형이 똑바로 안 할 거면 그 부하 된 입장에서 내가 잘해야지. 일어날 때까지 위층에 있는다, 나."

 "괜찮겠어 혜성아?"

 "또 죽이려 하면 어쩌려고 내 걱정을 한담."

 "약 시간에 올라갈게. 혹시 도윤이 일어나면 연락하고."

 주영의 말에 혜성은 대충 손을 흔들고 쿵쿵거리며 방을 나섰다. 설명을 들어야겠다고 했던 장본인이 제일 말을 많이 하고 떠나자 주영은 묵묵히 앉아있던 규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혜성의 이야기를 듣고 깨달은 게 있을까, 혹은 이미 통감하고 있을까. 

 주영의 시선에 반응하듯 눈을 마주 본 규혁이 입술을 달싹였다. 말하는 것이 고통이라는 듯 몇 번이고 달싹이던 입에선 억지로 쥐어 짜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도윤이는 괜찮겠죠."

 "응.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야. 손은?"

 "피는 다 멎었어요." 

 엉성하게 묶은 붕대를 보인 그가 이내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두워진 날에 하염없이 쏟아지는 소나기가 세차게 땅을 때리는 소리가 났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괜찮을 거라는 것보다 더 알고 싶던 것은 도윤을 어떻게 마주 보는가에 대한 방법이었다. 출발선이 다른 규혁에게 이제 와서 새롭게 시작하라는 건 불가능했기에.

 "차라리 네 마음을 말해. 그러면 나아질 거야."

 "제 마음이요?"

 "응. 규혁이 네 마음. 도윤이를 왜 밀어냈고, 이랬어야만 하는 이유."

 "누나라서 할 수 있는 조언이네요."

 먼저 말을 꺼낸 주영은 정답을 친절히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안 될 것 같아요.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이 입에 맴돌았다. 그는 여전히 제자리에 선 채였다. 달라진 나를 들키기 싫어서 너를 매몰차게 대했다고 말해? 붕대를 맨 손이 욱신거렸다. 상처 때문이 아닌 도윤이 쳐낸 감각이 선명하게 손을 옭아매고 있었다. 다시 거절당한다면, 자신은 견딜 수 없을 거다. 열린 창문 덕에 젖어가는 커튼과 같이 무거운 마음을 안고 규혁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침음을 흘렸다. 

 

*


 규혁은 절대 2층에 올라오지 않았다. 첫날과 일정 시간을 제외하고 인기척을 느낄 수 없던 방 안. 그 안에서 눈을 뜬 도윤은 옆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급히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이미 늦은 밤. 혹시 그럴 리는 없지만, 이 인기척이 규혁이라면.

 "징하게도 자네."

 "너, 너는."

 "그렇게 겁먹은 표정 하지 마! 내가 죽이려고는 했지만, 뭐……."

 그의 기억이 끊기기 전, 멱살을 잡고 칼을 들이밀었던 남자가 침대 옆에 앉아있었다. 불을 켜지 않고 스탠드만을 켜둔 방안은 1층과 같이 모든 창문이 열린 채였다. 차가운 공기가 가득 찬 방에 둘만이 앉아있는 상황이 퍽 어색했다. 도윤은 이리저리 눈을 굴리고 있는 혜성을 보며 슬금슬금 몸을 뒤로 뺐다. 

 "아씨. 사과하러 왔다고! 쪽팔리게!"

 "뭐?"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오고, 둘의 움직임이 동시에 멈췄다. 언제라도 침대에서 내려가 문으로 뛰어가려 하던 도윤이나 불쑥 말을 던진 혜성까지 전부 말이다. 붉으락푸르락해지는 그의 얼굴이 못할 말을 한 사람처럼 시시각각 변해갔다. 도윤을 똑바로 마주 보지 못하는 것은 여전했다. 

 "그, 내가 좀 성격이 싸가지가 없어서 말이지. 좀비도 엄청나게 싫어하고. 당연히 좀비는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그쪽도 죽이려고 한 거야. 다 변명이겠지만, 그게. 내가 환자를 처음 봐서 좀비랑 완전히 같을 거라고 착각했어."

 횡설수설 정리하지 못한 말이 속사포마냥 이어졌다. 사과하겠다고 한 말은 진심이었던 듯 허공을 헤매던 눈이 곧 도윤을 향했다. 의식을 잃은 사이 전부 지워진 화장, 인간이라 볼 수 없는 창백한 피부와 하얀 눈동자가 혜성의 눈을 마주 보았다. 물론 거부감이 들었다. 좀비다. 외형이 완벽하게 좀비와 같은 모습이 거북했어도 그는 하고자 한 일을 그르치지 않았다. 

 "죽이려고 해서 미안합니다. 이건 명백히 내 잘못이고, 사과를 받아주지 않아도 돼."

 "어, 어?"

 애초에 살인미수를 사과 한마디로 퉁치려고 하는 것도 웃기네.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린 혜성이 머리를 넙죽 숙였다. 침대에 이마가 닿을 정도로 몸을 접은 그의 사과에 도윤은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눈앞의 남자가 한 일을 사과하는 것이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왜 사과를 하지? 그는 자신이 좀비를 싫어한다고 했다. 엄밀히 말해 자신은 환자이기 이전에 좀비였다. 세상엔 좀비를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도윤은 좀비가 된 후로 받는 취급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사회의 시선도, 몇 번이고 본 좀비에 대한 토론과 같이 저를 대하는 규혁의 태도까지. 나아가기로 결정했어도 한도윤 그 자체는 부조리함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러니 혜성이 했던 일은 두려울지언정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을 텐데.

 "…… 됐어. 괜찮아."

 "하?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그쪽 좀비 될 때 혹시 뇌를 다친 거? 그래서 규혁이 형한테도 설설 기면서 지낸 거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

 "농담이거든. 안 봐도 우리 이사님이 기게 만들었겠지."

 멋쩍은 도윤의 말에 휙 허리를 편 혜성이 씩 웃어 보였다. 개구진 얼굴이 분노에 찼던 처음과 달리 호의를 담고 있었다. 정확히 문제점을 꿰뚫는 지적을 한 빨간 머리의 남자는 망설임 없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불편할 테니까 이만 가볼게. 어차피 이 집구석엔 자주 와야 하는 입장이라서.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지만, 아까 쳐낸 것처럼 규혁이 형한테 확 말하면 안 올지도 모르니까."

 혜성은 손목시계를 힐끔거리고 할 말만을 남긴 채 방에서 나갔다. 묘하게 응원한다는 말투가 꺼림칙했던 순간이 지나자 도윤은 그대로 힘이 풀려 침대에 쓰러졌다. 보통 죽이려고 한 상대에게 이렇게까지 갑자기 마음이 바뀌는 게 가능한가. 애초에 왜, 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눈앞에서 흐르는 피에 불현듯 떠오른 과거의 기억이 무슨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 정작 그 뒤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는 게 더욱 불안했다. 규혁이 형은 괜찮은 걸까 걱정이 앞서는 와중에 다시 몸이 떨렸다. 지울 수 없는 기억은 정신이 들자 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면죄부 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것뿐이었다. 

 "나는 부분적 사망 증후군입니다. 치료 전 상태에서 저지른 짓은 내 잘못이 아닙니다……."

 내 잘못인데, 내 잘못이 아니라 하는 건 끔찍한 기분이었다. 병동에서 마른 울음을 터뜨리던 사람들이 어떤 심정으로 이런 말을 되뇌었을까. 불을 켜지 않은 천장을 응시하던 도윤의 복잡한 시선이 곧 닫히지 않은 문 쪽으로 향했다. 방을 제외하고 일말의 빛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도윤을 부르는 것 같았다.

 혼자 있고 싶지 않다. 멈출 줄 모르는 몸의 떨림을 뒤로하고 그는 침대에서 벗어나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쩌면 이 아래에 간다면, 이라는 마음이 몸을 이끌었다. 불안정한 몸을 난간에 기대고 계단을 내려오자 넓은 복도의 한쪽에서 거짓말처럼 빛이 보였다.

 "형."

 넓지만 황량한 거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티비를 켜둔 채 소파에 앉아있던 규혁이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과 정면으로 마주한 창백한 도윤의 민얼굴은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들켰다는 두려움은 없었다. 화장이 전부 녹아내렸을 때처럼, 흐물흐물해진 마음은 그저 곁에 있기를 바랐다. 

 "도윤아."

 "응."

 규혁이 한 박자 늦은 대답과 함께 제 옆자리를 툭툭 쳤다. 이리 오라는 제스처에 얌전히 그의 옆자리에 앉은 도윤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마음이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 팔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거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떨림이 멈췄다. 

 현재로 나아가고자 비었던 구멍을 채울 피어스를 샀다. 그리고, 규혁이 제 죽음을 막았다. 완벽히 인정했다는 것이 아닌, 저를 한도윤이라 생각해준다는 증거가 지금을 만들어냈다. 이 얼굴을 부정하지 않고 곁에 부른 규혁도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

 도윤은 말없이 티비를 응시하던 규혁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움찔하며 떨린 어깨와 달리 그는 머리를 밀어내지 않았다. 더는 이어지지 않는 대화 대신 티비에서 웃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싸구려 티비가 있을 적에도 자주 보았던 쇼 프로그램이었다. 변하지 않은 것, 변해버린 것은 이다지도 명백하다.

 소파 앞 테이블에 널브러진 맥주 캔에서 술 냄새가 알싸하게 올라왔다. 취할 수 없어도 취했다는 핑계를 댄다. 같은 침대에서 잠들었던 어린 시절처럼, 이대로면 잠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도윤이 눈을 감았다. 

 "잘 자."

 한참이 지난 후 들려온 규혁의 인사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차가운 팔을 감싸는 온기가 점차 전신으로 퍼졌다. 둥실 뜨는 것 같은 몸이 완전히 품에 안긴 채, 따스해져 갔다. 부디 이 따뜻함이 꿈이 아니길. 도윤은 애써 저를 안아준 남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수마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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