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희나리_w. 제철망개



겨우내 도련님에게서 일본말 형식의 한자를 배웠다. 나는 문자를 읽는 것만은 어느 정도 익힌 터라 일본식의 한자를 배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도련님은 내게 주로 목재소에서 많이 쓰이는 일본말을 가르쳤다. 큰 어르신의 연세가 많으시니 앞으로는 도련님 혼자서 일본인들의 거래처에 가거나, 한성에 갈 일이 생기면 나를 동행시킬 수도 있으니 완벽하지는 못 하더라도 조금은 알아두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밖에서는 경성이라고 하지만 박씨의 집안에서는 경성을 꼭 한성으로 칭했다.



“도련님, 이게 뭐예요? 수취….”

“어디? 수취…수형, 어음이야. 어음 말하는 거야.”

“어음요?”

“돈을 주기로 약속했다는 증서야.”

“아….”

“수취니까, 우리가 받아야 할 어음인 게지.”

“그럼 여기 적힌 게 약속한 날짜예요?”

“응, 맞아. 이 날까지 돈을 내지 못하면, 은행에서 대신 내어주기로 되어있어.”



한자를 배우면서 일본의 문자도 조금씩 익혔다. 일본 문자는 꼭 그림처럼 생겨서 외우기가 어려웠고 내게는 한자를 읽는 편이 이해하기에 나았다. 도련님은 일본의 한자말은 우리와 그 의미가 크게 다를 것이 없으니 그 정도만 해도 훌륭한 것이라고 나를 자주 칭찬했다. 겨울이 끝나기 전, 나는 미깡을 한 번 더 먹어 볼 수 있었고 어머니는 또 이걸 왜 얻어왔냐고 말로는 부아를 지르면서도 맛을 보면 고것 참 희한하게 맛있다고 감탄했다.

도련님과 나는 그렇게, 집 앞에 좁고 길게 늘어진 신작로에 제비꽃 봉오리가 틔기 시작할 무렵까지 하루는 방에서 장난을 치고 놀기도, 또 하루는 열심히 일본말로 된 책을 읽기도 했다.





3월이 되자 학교를 다니던 보통신분의 남학생들이 학교 대신 멀리 떨어진 공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왜정에서 학교 수업을 강제로 중지시키고 학생들을 군수공장으로 보내 무기를 만들게 했기 때문이다. 일부는 식량생산을 이유로 밭에 나가 괭이질을 해야 했다. 미국이 일본의 동경에 폭격을 날렸다는 소식이 들렸어도 이 나라는 여전히 일제의 치하였고 학교를 보낼 수 있는 집안의 자제라면 연필 외에는 쥐어본 일이 없을 텐데도 그들은 찍소리 없이 일제의 군사들이 시키는 대로 보내져야 했다. 나 또한 예외 없이 식량생산에 동원되거나 무기를 만드는 일에 보내져야 했지만 나는 일제의 아가리로 들어가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다. 이 집안은, 이 집안이 있는 이 마을만은 일본 군사들이 휘두르는 생사여탈권에서 안전할 수 있었다.




박씨의 누이, 그러니까 도련님 고모인 숙희의 혼인이야기가 나온 것은 아직 아침저녁으로는 입김이 보이는 2월 말경이었다. 고모는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번 생에 시집가기는 글렀다며, 죽으면 처녀귀신이 될 것이라고 한탄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4월에는 혼인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상놈이라 제 주인들의 대소사에 관여할 주제는 못 되었지만, 참지 못하고 도련님에게 물어보았다. 도련님은 쿡쿡 웃으며 거래하는 일본인의 친척에게 고모가 곧 시집가게 될 것이라 알려주었다. 그 쪽도 나이를 꽤 먹은 노총각인 모양이고, 어쩌다 한 번 목재소에 들렀던 고모를 그 친척이 우연히 본 일이 있었는데 나와 도련님이 방에서 공부를 하며 겨울을 보내는 사이에 고모는 그 쪽 남자와 두 번 만났고, 차일피일 미룰 것 없이 어서 혼인을 치르자는 얘기까지 나온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 쪽에서 아쉬운 것은, 고모를 시집보내는 것은 좋으나 ‘숙희’ 라는 이름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그 쪽 집안사람이 된다는 것은, 완전한 일본인이 된다는 것이었기에 혼례조차 일본식으로 치러야 한다는 것이 이 집 큰 어르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그러나 고모 본인은 그저 시집을 가게 되는 것이 좋은지, 바뀌는 이름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으니 어서 한성의 미츠코시 라는 곳에 가서 혼례를 치를 때 입을 예복을 보고 싶어 했다.




큰 어르신과 박씨가 몇 차례 일본인들과 서신을 교환한 끝에, ‘숙희’ 의 ‘淑’ 만은 남긴 고모의 새 이름은 ‘요시코(淑子)’ 가 되었다. 벚꽃이 만개한 4월, 스물여덟 해 동안 숙희로 불리던 요시코는 아주 옅은 색으로 너불너불한 서양옷을 입고 새카만 자동차에 올라탔다. 보기에도 불편한 서양옷을 입고 머리에는 희뿌연 포를 뒤집어 쓴 채 혼례장소까지 자동차를 타고 가는 요시코는 마을 사람들 눈에도 참 기묘한 풍경이었다.


한성에서 올리려던 혼례는 큰 어르신이 연로한 탓도 있었고, 우리가 사는 박씨의 양옥은 혼례에 참석할 친척들과 손님들을 감당할 정도로는 크지 않았기에 목재소 근처의 신식 예배당을 빌렸다. 그 날은 원래 집안의 모든 여자 친인척들이 치마저고리를 입으려 했었지만 혼례에 초대된 일본 군사들의 눈치가 보인다는 이유로 서양식 예복을 맞췄고 어머니도 나도 적당히 예만 갖춘 서양식 옷을 입어야 했다. 지민도련님 또한 말끔한 가다마이를 입은 와중에 큰 어르신만이 유일하게 춘포로 지은 도포를 입고 앉아 혼례가 끝날 때까지 말 한마디 꺼내는 법 없이 밀화구슬을 꿰어 달은 갓끈을 가만히 만지고 있었고 예배당 근처는 마침 벚꽃이 잔뜩 만개해서 허옇게 팔락거리는 옷을 입고 벚나무 아래에 선 요시코는 더 이상 숙희로 보이지 않았다.






“생각이 없다고?”

“…한동안은 목재소 일에 전념하려 합니다.”



고모를 시집보낸 후, 큰 어르신과 박씨에게 당장은 혼인에 마음이 없으며 그렇다고 유학을 갈 생각도 없다는 도련님은 지금처럼 띄엄띄엄 목재소에 들르지 않고 정식으로 출근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달그락 거리던 수저 소리가 멈추고 조반 상 위로 정적이 흘렀다. 큰 어르신과 박씨의 뜻을 거르지도, 따르지도 않겠다는 대답이었다. 집안의 두 어른은 잠시 말이 없다가 큰 어르신이 먼저 도련님의 의견을 지지했다. 유학이든 혼인이든, 급할 것은 없으니 차근히 일을 배우며 생각이 바뀌거든 언제라도 계획을 말하라는 큰 어르신의 답이 떨어지고서야 다시 수저 소리가 들려왔다.




“정국아, 어디 가?”

“자전거 고치러 장에요.”

“나도 같이 가자.”

“…쉬는 날인데, 집에 계시잖구요.”



도련님은 목재소에 정식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박씨를 따라 목재소에 갔다가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겨우 오늘 집에서 쉬게 되었는데 도련님은 굳이 나를 따라서 장에 가겠다고 나섰다. 장이 서는 읍내까지는 한참이나 걸어야 했기에 따라 나서겠다는 도련님을 말렸지만 집에 있으면 갑갑해서 싫다고 신발을 꺼내는 걸 더 이상 막지 못했다.



하필이면 자전거를 고쳐야 해서 바람이 빠진 바퀴를 탈탈 끌고 걸어 가야할 판인데도 지민도련님은 그저 장에 가는 것이 좋은지 힘든 내색 없이 자박자박 걸었다. 서구식 문물이 많이 들어 왔다 해도 촌구석의 시장통에는 아직 장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조선처자들과 어두운색의 기모노를 입은 일본처자들이 간간히 보였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일부 여염집 처자들과 기생들 사이에는 양산이란 것이 유행했는데 비가 오지 않는데도 꼭 우산처럼 생긴 그것을 서로 가지려고 한단다. 한성에는 고급 백화점이 있어 돈만 있으면 쉽게 구할 수 있다는데, 우리가 사는 곳에는 한 번씩 신식 양품을 가지고 오는 장똘뱅이들을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자전거포에 자전거를 맡기고 두 세 식경쯤 있다가 오라는 말에 도련님은 나를 끌고 요기나 하러 가자고 했다. 점포들이 늘어선 길을 걷다가 막 쪄낸 쑥떡 향내에 입안에 침이 고였다. 도련님은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 지나치려던 떡 방앗간 앞으로 다가서서 쑥떡에 콩고물을 묻혀달라고 했다. 김이 펄펄 나는 쑥떡이 손가락 크기만큼 썰려 노란 콩고물이 묻혀 졌다. 도련님과 나는 점포 앞에 놓인 판대 위에서 달큰하고 따뜻한 쑥떡을 나눠먹었다. 도련님은 가루가 묻은 떡을 먹으면서도 입 주변에 묻히는 것이 없었는데 나는 입가는 말 할 것도 없고 인중, 턱까지 마치 떡 먹은 것 자랑하듯 가루를 묻혔다. 도련님은 포스랍게 웃으며 손수건을 꺼내 내 입을 털어주었다.

자전거포로 돌아가는 길에 책방에도 들렀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전에 와 봤을 때는 짐작도 가지 않던 일본말이 얼추 눈에 들어찼다. 아주 완벽하게 그 뜻을 다 이해하진 못했어도 껍데기를 보면 이게 재미난 이야기책인지, 남을 가르치는 책인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도련님은 내가 읽을 수 있는 책과, 도련님의 공부에 필요한 책을 한 권씩 샀다. 같이 서서 떡을 먹을 때만 해도 내 주인이라는 것만 빼면 나와 다를 것 없어 보이던 도련님이 번듯하게 서서 아주 복잡한 말이 잔뜩 적혀진 책을 고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한참이나 어른으로 보였다.



“정국아, 갈 때는 자전거 타고 갈 수 있지?”

“네. 도련님이 뒤에 타세요.”

“나 태우고 가려고?”

“그럼요.”

“아, 재밌겠다.”



빵빵해진 바퀴를 확인하고 사람이 많은 시장통을 빠져나왔다. 자동차와 소달구지가 다니는 신작로에 다다라서야 도련님을 뒤에 태우고 나도 자리에 올라탔다. 천천히 굴러가도 저녁때는 맞춰서 집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길에는 자갈이 많아 조심한다고 해도 뒷자리가 들썩거리기 일쑤였다.



“도련님, 제 허리춤 잡으세요.”

“정국아, 뭐라고?”

“위험하니까, 제 허리 꼭 붙드세요.”



한 손을 등 뒤로 뻗었더니 도련님의 보드라운 손목이 잡혔다. 내 옷의 끝자락만 잡고 앉은 것이 영 불안해서 도련님의 손목을 잡아 당겨 내 허리에 두르게 했다. 내 명치와 아랫배 사이에 도련님의 두 팔이 감기고 내 등에는 도련님의 머리가 폭 하고 닿았다. 가슴팍이 벅차오르고 허리가 간질거렸다. 곳곳에 꽂힌 일장기도 혼자 볼 때처럼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올 때는 걷느라 힘들어서 눈에 들어오지 않던 얼마 남지 않은 벚꽃이 자전거에 올라타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니 눈앞으로 꽃잎이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도련님은 뒤에서 나를 꼭 안은 채로 ‘정국아, 더 빨리 달려봐’ 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소중한 도련님이 나에게 달리라 하면 달릴 것이고, 날으라 하면 날아 볼 작정으로 발을 세게 굴렸다.





집에 돌아와 저녁상을 물리고 도련님에 불려 방으로 들었다. 도련님은 낮에 장에서 사 온 책 한권을 나에게 주며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틈 날 때 마다 읽고 그 내용을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두 손으로 받아 들고 허리를 숙였다.



“누가 될지 몰라도, 정국이 색시 되는 사람은 참 좋겠다.”

“…제 색시요?”

“응, 정국이가 태워주는 자전거 매일 탈 것 아냐.”

“….”

“정국이가 태워주는 자전거는, 자동차만큼 빠르고 재밌다.”








“도련님만 태워드릴 거예요.”

“….”

“제 자전거에는, 도련님만 태워드릴 거예요. 색시는 필요 없어요.”



고개를 갸웃하다가 엷게 웃어 보이는 도련님에게 주무시라는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왔다. 도련님은 내 말 뜻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도련님을 향한 내 순애보를 착실한 종놈이 바치는 충성으로 위장하여 도련님에게 바쳤다. 내 마음은 나만 알면 되는 것이다. 나는 절대 당신을 배반하지 않을 당신의 충신이 되어 평생 당신 곁에 있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이번 생을 만족할 것이니까.





***




불금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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