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우 카드 애니메이션 기준 52장 입니다.

-토도이즈ts 입니다.

-스테인이랑 뒷골목 이야기 진짜 좋아하지만, 생략했습니다ㅠ 

-그 덕에 이이다 군 형님이 건재합니다.




일주일 간의 직장체험을 마치고 다시 모인 A반은 자신들이 경험을 주고 받으며 떠들었다. 


 "푸하하하하!"

 "머리가 8대2야! 트로트 가수냐!"

 "죽여버린다! 쪼개지 말라고!"


키리시마와 세로의 비웃음을 받으며, 바쿠고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지니어스에게 개조당한 반지르르 머리는 아무리 감아도 풀어지지 않았다. 짜증스런 친구들의 놀림에 열받은 바쿠고는 손바닥 위로 작은 폭발을 일으켰고, 그제야 머리칼로 원래대로 돌아왔다.


 "쿄카는 빌런퇴치까지 했구나, 부러워!"

 "그래봤자 피난 유도랑 후방 지원이라 교전은 없었어." 

 "나도 트레이닝이랑 순찰이 다야. 한 번은 이웃나라에서 온 밀항자를 잡았고."

 

 그거 엄청난데! 아스이의 체험을 들은 아시도와 지로가 감탄했다. 아스이는 옆에 있던 우라라카에게도 물었다. 배틀 히어로 밑에서 체험하고 온 우라라카는 어느 만화책에 나오는 무술가처럼 온 몸에서 기를 흩날리며 각이 잡힌 주먹질을 보였다. 휙휙 바람소리까지 났다.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눈까지 희번덕 떴다.


 미네타는 Mt. 레이디 밑에서 험한 꼴을 보았는지 여자는 다 악마라며 딸깍딸깍 이를 부딪치며 불안해했다. 카미나리는 불안에 떠는 미네타를 다독이며, 가장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는 곳에 말을 걸었다. 


 "너희 셋은 언제부터 그리 친해진 거야?"


 책상에 앉은 토도로키와, 그 양 옆에 선 미도리야와 이이다. 직장 체험 전까지만해도 절대 볼 수 없었던 낯선 조합이었다 


 "내가 직장 체험 하는 곳에 미도리야 군과 토도로키 군이 파견을 따라 왔다."


 이이다 말로는, 둘이 엔데버의 파견에 같이 따라 왔다고 한다. 그러다 셋이 우연치 않게 도망 중인 빌런과 마주 했고, 뒷골목에서 한바탕 전투를 치르고 병원에 나란히 입원했다. 며칠 만에 나타난 그란토리노는 지팡이를 들고 무모한 짓을 한 미도리야를 혼냈고, 토도로키와 이이다가 겁에 질린 미도리야를 뒤에 숨겼다 대신 얻어 맞았다.


 알고 보니 그 빌런은 히어로 살인마라 불리는 어마어마한 중범죄자였다. 그런 빌런을 1학년 셋이 멋모르고 대치했으니 혼나는 게 당연했다.


 "어라, 미도리야 너 엔데버 사무소에 갔거야? 다른 데 아니었나?"


 바쿠고에게 등살 잡힌 키리시마가 물었다. 미도리야는 담당 히어로가 엔데버와 아는 사이라서 잠깐 머문 거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도리야는 마지막 체험 날은 그란토리노 사무실로 돌아갔다. 많이 배우고 경험도 쌓았지만, 엔데버와 토도로키에게 큰 신세를 졌다고 부끄러워했다. 

 

 "...근데 있지."


 가까이 다가온 우라라카가 미도리야에게 물었다.  


 "체육대회 때, 데쿠 쨩 말이야. 토도로키 군을 '쇼쨩'이라고 부르지 않았어?"

 "...내가?"

 "응. 근데 그때 토도로키 군이 지고, 데쿠 쨩도 복잡한 표정이라 물어보질 못했어."

 "나도 들었어. 처음엔 바쿠고 응원하는 줄 알았는데. 지로 너도 들었지?" 

 "분명 쇼쨩이었어."


 반에서 가장 청각 좋은 지로의 확언에, 미도리야가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응원한 건 기억나는 데, 설마 저도 모르게 토도로키를 쇼쨩이라고 불렀다니. 사색이 된 미도리야가 토도로키에게 서둘러 사과했다. 


 "미, 미안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나봐!"


 토도로키는 그런 미도리야를 이상하게 보았다. 틀린 호칭을 부른 것도 아닌데 왜 사과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토도로키는 미도리야의 길게 묶은 머리끝을 살짝 잡아당겼다. 그리 불러주길 바라는 아이 같은 투정이었다.


 "......"


 그러다 뒤에서 자신들을 아니꼬운 시선으로 보는 바쿠고와 잠깐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미도리야는 바쿠고를 '캇쨩'이란 어린 별명으로 불렀다. 바쿠고도 그 유치할 법한 호칭을 이래나 저래나 미도리야에게만 허락했다. 싫어하는 눈치도 없었다. 갑자기 불쾌해졌다.


 "이즈쿠."


 그렇게 부르니, 이름 주인이 새빨갛게 얼굴을 물들였다. 주변에 있던 아이들도 웅성거림을 멈추고 자신들을 바라봤다. 다들 놀라고, 경악하는 눈치였다. 가까이 있는 이이다와 우라라카가 토도로키와 미도리야를 번갈아 보았다. 무슨 레이싱 경기 관람하는 것처럼 빠른 움직임이였다.


 토도로키가 웃었다. 이건 좀 마음에 들었다. 


 "이름으로 편하게 불러."

 "하, 하지만...!"

 "하지만?"

 "그, 그건, 그러니까, 쇼쨩, 아니, 토도로키 군에게 민폐..."

 "민페일 리 없잖아. 네가 불러주는데."

 

 이상한 녀석, 토도로키가 피식 입가를 올렸다.

 

 ---


  체육대회에 직장체험이 끝나니 기말시험이 코앞이었다. 미도리야는 숨가쁘고 부끄러운 나날을 제나름 열심히 버티었다. 숨이 가쁘다는 건 당연히 기말시험 준비였다. 미도리야의 반 석차는 스무 명 중 4위. 지금처럼만 하면 무난히 기말을 넘길 수 있을 터다. 그래도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부끄러운 건 토도로키와의 관계였다. 토도로키는 그 뒤로 미도리야를 이름으로 불렀다. 이즈쿠, 이즈쿠. 사탕보다 달콤하고 초콜릿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는 미도리야의 얼굴과 목을 늘 붉게 물들였다. 그러면 항상 서늘한 오른손이 열을 식혀주었다. 10년이나 같이 못 있었으니, 그 사이를 메꾸고 싶다는 게 토도로키의 이유였다. 미도리야의 흉진 오른손에 죄책감을 가지는 듯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미안하면서도 기쁘다고.

 

 그래서 미도리야가 용기내 쇼쨩이라고 불렀더니, 몰래 계단으로 데려가서는 싫다고 했다. 무슨 장난 같은 짓인가 싶었더니, 이름으로 정확히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쇼, 쇼토 군...?"


 더듬거리며 이름을 부르니,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 자리에서 심장 터져 죽을 뻔 했다.

  

 그러다 보니 토도로키는 자연스레 우라라카와 이이다와도 어울리게 되었다. 둘은 원래가 사람 좋은 호인인지라, 불쑥 찾아온 토도로키를 기꺼이 받아드렸다. 점심도 같이 먹고, 실습 팀도 같이 짜고, 하교도 같이 하게 되었다. 셋은 은근히 죽이 잘 맞았다. 


 "토도로키 군은 왜 데쿠 쨩을 이름으로 불러?"


 시험 자습 중, 우라라카가 토도로키에게 물었다. 우라라카도 은근히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편이었다. 토도로키가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옆에서 같이 공부하던 미도리야도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이다는 자습 중이니 조용히 해야 하라고 말했지만 궁금한 눈치였다.


 "솔직히 체육대회 때 데쿠 쨩한테 선전포고 하고, 좀 무서웠는데."

 "그랬구나. 미안."

 "나한테 미안할 건 아니지. 확실히 지금 토도로키 군은 편하고 좋아. 동글동글해졌달까. 어쨌건 그 때의 토도로키 군을 생각하면, 데쿠 쨩이랑 친해질 계기가 전혀 안 보여서. 아니면 직장 체험 때 무슨 일이 있었어?"

 

 우라라카 용감하네, 건너 카미나리가 중얼거렸다. 확실히 반 아이들 모두 그리 생각하고,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토도로키는 먼저 미도리야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이즈쿠, 말해도 돼? 굳이 귓속말하지 않아도 되는 걸 일부러 그렇게 물었다. 따뜻한 입김이 간지러웠던 미도리야는 어깨를 움츠렸다. 그리고는 잠깐 고민하고는 똑같이 귓속말로 대답했다. 해도 돼, 라고.


 "어릴 때, 동네에서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어."


 웃는 모습이 귀여운 아이는 저를  '쇼쨩'이라 부르고, 같이 그네 타고 모래성을 쌓으며 놀았고, 올마이트 인형을 선뜻 선물해줬다. 토도로키는 그 인형을 지금껏 보물처럼 소중히 여겼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어 같은 반 친구로 만나, 체육대회 때 저를 응원하던 목소리를 듣고 눈치를 채고, 얼마 전 직장 체험 때 서로를 알아보았다. 


 "...와, 와아! 세상에!"


 우라라카가 환호를 질렀다. 두 사람 사이에 영화 속 한 장면이 있었다는 사실에 반이 들썩거렸다. 너도나도 달려들어 진짜냐고 묻고, 감탄하고, 부럽다며 시기도 했다. 여학생들은 낭만적이라며 한목소리를 냈다. 남학생들도 놀라 했다. 그와중에 미네타가 세상은 불공평하다며 피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사이가 좋아졌구나! 나 이해했어!"


 한 편의 청춘영화를 보는 것 같다며 우라라카가 둥근 볼을 붉혔다.


 "......"


 그 속에서, 바쿠고만 한심하단 표정으로 미도리야를 지켜보았다. 저 멍청한 소꿉친구는 멋도 모르고 쑥쓰러워하며 토도로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토도로키는 이전의 본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상냥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체육대회 이후로 낌새가 변했긴 한데, 설마 둘에게 그런 일이 있었던 줄은 저도 몰랐다.


 보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러서 고개를 돌리려던 차였다.


 토도로키가 바쿠고의 시선을 눈치채고 혼자 그곳에 눈을 주었다. 아니, 애초부터 토도로키는 계속 그곳을 의식하고 있었다. 두 남자는 아주 잠깐 서로를 보았다. 아무 말도 없이 보기만 하다, 토도로키가 조용히 웃었다. 바쿠고는 어이가 없어 인상을 팍 쓰다 이내 그 미소가 무얼 뜻하는 지 알아채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라? 이 문제 답이 왜 이렇게 나온 거지?"

 "그건 암기가 필요해. 여기서는..."


 토도로키가 미도리야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다른 친구들도 스멀스멀 제 자리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키리시마가 혼자 일어선 바쿠고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고, 바쿠고는 대답 대신 교실 문을 거칠게 열었다.


 "바쿠고 군! 지금은 엄연히 수업 시간이다! 자리에 앉..."

 "화장실!"


 바쿠고는 쾅 소리가 날 정도로 교실문을 크게 닫았다.


 "급한 가 보다."


 토도로키가 무신경히 말했다.


 ---


히어로 기초학 수업은 곧 있을 기말 연습시험을 위한 개인훈련을 가졌다. 미도리야는 마력 증진을 위해 친구들의 훈련에 도움이 될 카드를 빌려주었다. 가령 달리기 속도를 더욱 늘리고 싶은 이이다에게는 대쉬, 신체를 단련하고 싶은 키리시마와 오지로에겐 파워, 색적 실력 향상을 원하는 하가쿠레와 쇼지에겐 사일런트를. 미도리야 역시 수 많은 카드를 동시에 발동하며 마력을 소모하게 되니 상부상조하는 격이다.

 

 [파이트]


 지팡이가 가리킨 카드는 푸른 빛을 띄는 여인이 되었다. 눈매가 올라간 여인은 주먹을 모아 예를 갖추었다. 미도리야와 우라라카가 똑같은 인사로 예를 보였다. 우라라카는 여인의 토끼머리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파이트 카드는 무술을 잘해. 아마 우라라카 상에게 좋은 훈련 상대가 되어 줄 거야."

 "데쿠 쨩 고마워."

 "파이트, 그래도 우라라카 상은 처음이니까, 살살..."

 "성심성의껏 부탁합니다!"


 우라라카의 기합 들린 목소리에 파이트가 씩 웃었다. 마음에 든 거다. 곧 파이트는 우라라카에게 달려들었다. 직장 체험서 마샬아츠를 배워온 우라라카는 집중했다.  미도리야는 지팡이를 통해 발동된 카드들에게 제 마력을 부어넣었다. 마력을 새로 부여할 수록 마법의 힘이 더욱 강해졌고,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울렸다. 


 그럼에도 미도리야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이정도면 카드를 내 마력으로 채워도 괜찮지 않을까.'


미도리야는 자신의 성장과을 지팡이의 변화를 통해 보아왔지만, 이렇게 직접 실감하는 건 처음이었다. 여름방학 합숙 전에 카드 한 장 정도는 제 마력으로 채워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마침 올마이트가 학생들의 지도를 봐주고 있었다. 


 "데쿠."


 올마이트에게 가려던 발걸음을 바쿠고가 잡아세웠다. 폭발 연습을 하고 왔는지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아마 니트로 비슷한 무언가의 냄새일 터다.

 

 "...하여튼 멍청하고 머저리 같은 게 진짜 ."

 

 느닷없는 욕설에 미도리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바쿠고는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화가 난 건 아니었다. 그런데 무언가 거슬린는 눈치였다. 왜 갑자기 와서 시비인지 고민하는 중에, 바쿠고는 다짜고짜 저는 단 한 번도 미도리야를 여자로 본 적 없다고 말했다.


 그건 미도리야가 가장 잘 알았다. 미도리야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가 서로를 이성으로 의식하기엔 볼 장 다 본 사이다. 친구보단 질 나쁜 오누이 사이.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입밖으로 내뱉은 적은 지금껏 없었다.

 

 "내가 너보고 여고 가라고 한 거 기억나냐."

 "응?"

 "그건 이런 여자 같지도 않은 여자한테 취향 타는 별 쓰레기 같은 것들이 있으니까, 너는 또 세상 멍청하니 그런 것들 걸러내지도 못할 거 같아서 내가 늘 말했던 거다. 널 위해서가 아니라, 너 때문에 걱정하는 아줌마가 우리 할망구한테 와서 무어라 하셔서, 그걸로 할망구가 나한테 잔소리할까 그런 거야."

"...어?"


 이건 또 뭔 말이지? 미도리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제게 여고 가라고 한 건, 돌고 돌아 바쿠고 자신을 위함이었다. 바쿠고는 멍청한 얼굴로 고민하는 소꿉친구에게 혀를 차더니, 어딘가를 힐끗 보았다. 그곳엔 토도로키가 있었다. 미도리야에게 루프 카드를 빌려 무한의 영역이 된 공간에서 쉴 새없이 불꽃과 얼음을 연발하고 있었다. 제법 힘이 드는지 턱 밑으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진짜 과대포장해서 말하면, 넌 손이 많이 가는 동생이야."


 계속해서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는 바쿠고를 미도리야가 영문 모를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바쿠고는 한 번 더 혀를 찼다. 이 멍청한 소꿉친구는 아직도 제 처지를 모르고 있다.


 "너는 잘못 걸린 거야."

 "그, 그러니까 뭐가..."

 "입 아파서 말하기 싫어."

 

말 해줘도 너는 모를 테니까. 바쿠고의 말에 미도리야가 조금 반항 섞인 눈으로 노려봤다.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건지. 하지만 자그마한 반항도 바쿠고의 살벌한 눈초리에 힘없이 꺾이고 말았다. 그러다 바쿠고가 세상 피곤하단 한숨을 흘렸다. 그리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조언을 던지고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나쁜 놈은 나쁜 놈이 알아보는 법.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달콤한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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