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잡아보려해도 계속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보려해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사랑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되었다.
너무 어렸기에 깨닫는게 너무 늦어버렸던 탓에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이제 내 곁에 없음을 집에 들어왔을 때 불이 꺼진 집을 마주할 때마다 다시금 깨닫게 되는 현실이 너무나도 슬프게 만들었다.
왜 이렇게 늦게 깨닫고 마는지, 아니 왜 항상 뭐든지 다 늦어버리는 것인지.
다시 한 번 기회를 가질 수만 있다면, 그 때만큼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늦지 않게 전하겠다며 뒤늦은 후회를 하며 언젠지 모르게 까무룩 잠에 들었다.

1.
"언제쯤 제 시간에 일어날까요, 당신은."
절대 들릴 리가 없는 그 목소리가 들렸다.
아, 아직 내가 꿈이 덜 깼나보다.
너를 보고 싶은 마음에 아직 꿈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구나, 정신을 차려야지, 되뇌이는데 누군가의 손길이 미간을 꾹 누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 손길에 놀라 눈을 뜨니 그 목소리의 주인이 정말로 눈 앞에 있었다.
"이제 깼어요?"
"어...어...?"
"왜 그렇게 놀라고 그래요?"
오히려 당황한 얼굴. 하지만 그건 내가 더 묻고 싶었다.
"꿈인가? 꿈이지?"
"어.... 악몽이라도 꿨어요?"
"아니, 너.. 너가.... 왜...."
"... 이마이 씨... 절 안 좋아하는 걸 알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티는 내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아직은 법적으로 부부 관계니까요."
기분이 상한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 것을 보게되니 이제서야 현실임이 자각했다.
방금 깨어난 이미아 리사는 아직 과거 히카와 사요, 현 이마이 사요와 혼인관계였다.


정리해보자면 지금 두 사람은 한 호텔 방에 있었다. 멀쩡한 집은 어디에 두고 호텔방이냐고 물어볼 것 같아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 두 사람은 좋은 이별을 위한 여행 중이었다.

세상 사 좋은 이별이 어디에 있느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어찌되었든 취지는 그랬다.

한 달간 여행을 통해서 서로 정리를 하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었다.

결혼 생활이 길었다고 하기에는 짧았고 그렇다고 짧았다고 하기에는 길었지 않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둘은 결혼 7년 째에 결국 이혼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이마이 리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한 달이었다.

여행은 가장 최근에 함께한 여행지에서부터 두 사람이 제일 처음 했던 여행지까지, 둘의 추억을 역순으로 되짚으면서 서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아이디어는 사요가 냈고 이마이 리사는 그 생각에 동의만 했었다.

그때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게 해." 라고 했을 때 사요에게서 들었던 말이 뭐였냐면 "오랜만이네요, 당신이 그렇게 말해주는 것도." 그것도 무심하게 지나가는 투로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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