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식




0. 프롤로그


“산타클로스도 이 동네에 오면 방 잡고 섹스부터 할 거다.”


누군가 술에 잔뜩 쩐 목소리로 그리 외쳤다.


곧 한 무리의 취객들이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어딘가 악취가 날 것 같은 웃음소리였지만 지나가던 행인들 중 누구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았다. 이 동네에선 저런 더러운 농담쯤이야 얼마든지 외쳐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산타가 이런 동네에 오기나 하겠냐?”

“왜, 산타도 사내새끼라면 하고 싶을 수 있지.”

“멍청아. 내 말은-”


그 자식 착한 사람한테만 선물 주는 꼰대 새끼잖아. 여긴 술 처마시고 섹스나 뜨는 데란 말이야. 이렇게 처자식 있는 놈들도 발정난 개새끼마냥 박고 싸고 질펀하게 노는 게 좋아서 이러고 있는데 뭐가 예쁘다고 선물 주러 오냐고.


“취했냐? 이 새끼는 술만 마시면 혼자 진지해져선…… 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고 덤벼드네.”

“그러게. 아니 나이가 몇인데 산타가 선물을 주니 어쩌니 하는 거야.”


그렇게 선물 받고 싶으면 저어-기, 저기 예쁜 아가씨 있는 가게 가서 담배나 하나 사와 인마.


“그게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제일 착한 일이야.”


취객들 중 한 명이 마침 물품 배송 기사가 오는 바람에 문을 활짝 열어 놓은 편의점 한 곳을 가리켰다. 다 늙어빠져 세월에 찌든 얼굴을 하고서도 무슨 사춘기 애들처럼 실없이 천진하게 웃어대던 취객 무리들이 편의점 쪽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이야, 오늘도 저 여자는 예쁘네.”

“넌 여기 얼마나 자주 오면 이 동네 편의점 아가씨까지 꿰뚫고 있냐.”

“모르면 닥치고 있어. 저 여자, 여기 명물이거든.”

“명물?”


무리 중 하나가 과장스럽게 귓속말을 하는 제스처를 했다. 아주 유명인이야. 본인은 잘 모르는 것 같지만.


“이 근방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알아. 특히 남자 놈들은 언제 출근하고 퇴근하는지까지 다 안다고. 글쎄-”


ㅇㅇ모텔촌 편의점 오수현으로 불린다니까.


“오오-”

“에이- 진짜?”


일제히 환호와 야유가 터져 나왔다. 동네 별명과 편의점, 그리고 이어진 세 글자의 이름 때문이었다.


오수현.


평범하다면 더없이 평범하게만 들리는 누군가의 이름이 뭐가 그리 대단한 것인지, 무리들은 꽤 열렬한 반응을 낸다.


“뭐? 오수현? 오수현이라면 그-”

“탤런트잖아. 7년 전인가, 8년 전인가 갑자기 은퇴한.”

“이야-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 한때 전 국민의 첫사랑 아니었냐.”

“아니, 잠깐. 그만큼 예쁜 여자가 이런 야밤에 편의점에서 알바를 한다고?”


아, 그렇다니까. 어? 저기 잠깐 나왔다. 야, 봐봐, 봐 보라니까. 똑같지? 응? 오수현이랑 완전 똑같이 생기지 않았냐?


“어, 대박.”

“진짜 닮았네.”

“존나 예쁘네.”

“뭐야, 동일 인물 아냐?”


어떻게 닮아도 저렇게 닮았냐. 누가 보면 진짜 오수현인 줄 알겠다.


“오늘 3차는 저 편의점으로 하자.”

“미친놈. 또 무슨 추태를 부리려고? 편의점 바로 코앞에 파출소 있는 거 안 보이냐, 인마.”

“아우, 그래도 오래간만에 눈 호강하네.”


나 오수현 팬이었거든. 마누라 몰래 영화, 드라마, 잡지 다 찾아본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갑자기 은퇴니 뭐니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을 땐 눈물이 다 나오더라니까.


“그러고 보니 오수현 왜 은퇴했지?”

“단물 다 빨렸으니까 은퇴했지, 뭐.”


솔직히 그때 막 ‘제2의 오수현’이랍시고 후배 여배우들 엄청 나오지 않았냐. 그중에 하나가 지금 제일 잘나가는 차도연이잖아.


“맞다. 천하의 차도연도 처음엔 ‘제2의 오수현’이라고 떠들어대면서 뜨기 시작했지.”

“그러니까. 소문엔 오수현이 차도연한테 배역이며 광고까지 다 빼앗겨서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은퇴했다는 말까지 있었는데.”

“뭐, 진짜?”

“어어. 둘이 같은 소속사였는데 차도연이 막 떠오르니까 회사에선 마침 계약기간이 끝나가는 오수현한테 온 계약들을 전부 차도연한테 준 거지.”


오수현이 다른 회사랑 계약하려는 걸 알고 있었거든.


“넌 네 마누라 생일은 까먹으면서 그런 시시콜콜한 건 되게 잘 안다?”


다시금 왁자한 웃음소리가 터진다. 장난스럽게 투닥거리던 취객 무리들 중 한 명이 갑자기 하늘로 고개를 치켜들고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어? 눈이 오네.”

“아, 내일 출근인데 차 엄청 막히겠네.”

“내일 크리스마스야, 등신아. 쉬는 날이라고.”

“뭐?”


아아- 그럼 화이트 크리스마스네.


“뭔가 이거, 진짜 산타 놈한테 선물이라도 받은 기분인데?”


눈도 오겠다, 내일 쉬겠다, 그리고-


“오수현 닮은 여자도 보고.”








* 길지 않은, 소소한 사랑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잘 부탁드립니다. 







웹소설(GL) zezeme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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