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 하루도 집 안에서만 보낸 날이 없었다. 그래서 목요일도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오늘을 흘려보내러 들어간 카페의 직원분이 친절했다. 숙련도에서 나오는 능숙함이 그를 더 상냥하게 만들 여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유가 곧 친절로 이어지는 건 분명 아니다. 과거 내가 머물렀던 수많은 카운터에서, 나는 줄곧 숙련된 직원이었으나 한 번도 내가 만들어내는 우유거품만큼도 부드러웠던 적이 없었으니. 그래서 나는 그 직원이 그냥, 원래 친절한 사람이라고 결론지어버렸다. 그가 나에게 포인트카드가 있냐고 물었을 때, 내가 뱉은 '잠시만요'라는 혼잣말에 가까운 습관에도 그는 상냥하게 '네'라는 대답을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글로 늘어놓으면 별 것 아닌 딱딱한 직각의 자음과 모음이 소리가 되고 말이 되면 부드럽게 풀어진다. 뒤에 물결이 세 개쯤 붙어야 그 어스름한 온도가 비로소 글로 표현이 될 만큼. 나를 찾는 진동벨이 울리고 음료를 받으러 갔을 때, 그의 손끝과 내 손끝이 짧게 부딪혔다. 그 사이에서 정전기가 매미자석처럼 따닥, 소리를 냈다. 그 때 직원은 나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면서도 웃었다. 나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손만큼이나 건조한 목을 가진 나는 그가 냈던 것과 비슷한 소리조차 영 낼 수가 없어서 그냥 따라 웃었다. 내가 건조한 손님이 아님을, 앞니를 드러내는 것으로라도 그에게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어서. 호의에 대꾸하는 것도 나같은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주에 드디어 곰팡이가 슨 접이식 토퍼를 갖다버렸다. 주민센터에 가서 대형폐기물 신고를 했더니, 이 동네는 스티커 대신 필증을 끊어준다고 했다. 친절하게도 양면테이프까지 붙여준 구청직원의 센스에 감탄하며 나는 집앞에 내놓은 토퍼에 필증을 잘 붙여두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구청에서는 통 수거해가지를 않았다. 뭔가 이상해서 삼일째 되는 날 토퍼를 보니, 붙여둔 필증이 사라져있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자 필증을 누군가 다시 붙여두었다. 나와 언니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다음주가 되면 토퍼는 사라져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토퍼는 계속 남아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 관리사무소에서 전체문자가 날아왔다. 무단으로 매트리스를 투기한 세대가 어디인지 다 알고 있다, 자진수거하지 않으면 세대주 얼굴이 찍힌 cctv 장면을 캡쳐해서 건물전체에 붙이겠다는 협박성 문자였다. 관리사무소에서 보낸 문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경우없는 단어와 문장들이었다. 화가 난 언니가 그 즉시 답장을 보냈다. cctv를 확인했다면 우리가 필증을 붙여 내놓은것도 알 수 있을텐데 그건 또 확인을 안했느냐, 어떤 세대가 버렸는지 안다면 우리에게 직접 말할 것이지 이렇게 협박조로 말하는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 이렇게 큰 물건을 미쳤다고 집앞에 떡하니 무단으로 투기하겠느냐,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서는 공개처형식으로 겁주는 협박식 문자를 돌리면 정의의 사도라도 된 것 같으냐...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정말로 잘못한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좀 어리둥절해졌다. 그리고 한 20분 뒤 관리사무소는 우리에게 답장을 보냈다. 

- 아 그건 확인을 못 했네요 죄송합니다;; 곧 수거되실 겁니다.

토씨 하나 안틀리고 저렇게 왔다. 언니는 관리사무소를 당장 어떻게든 조지고 싶다며 거품을 물고 화를 냈다. 세상에 상식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건물주도 하다못해 세대주였던 적도 없으나, 수십 번의 이사 속에서 건물 엘리베이터 안에 노상방뇨를 한 세대도 봤고, 복도에서 터뜨린 음식물봉지를 치우지 않고 잠적한 세대도 보았으며 반려동물 금지 건물에서 엄청난 성량의 개를 버젓이 기르는 세대도 보았다. 계약할 때 들었던 바로는 이 동네에서 벌써 몇 채의 빌라를 지어 관리하고 있는 건축사무소라고 했으니, 못볼꼴 정말 많이 겪었을 것이다. 얼마나 경우없는 상황들에 지쳤으면 그랬을까 싶다가도, 메세지목록에서 마주칠 때마다 정말로 내가 죽을 죄를 지은 것만 같이 심장을 놀래키는 그 무서운 문장들이 밉다. 참 못됐다. 나는 살면서 나를 죽일 듯이 겁주었던 얼척없는 남자들을 많이 겪었지만, 그 때문에 남성만 골라죽이는 연쇄살인마가 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나 간단히 못되어진 사람들을 보면 밉다. 내가 오늘 보았던 카페직원의 또박또박한 '죄송합니다'에서 며칠 전의 어물쩡한 사과가 생각나 괜히 속이 쓰리다. 수거해가지 않은 토퍼를 볼 때마다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은 느리더라도, 잘못한 일에 사과 정도는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다짐을 오늘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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