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팬서의 본명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 에서 쓰인 번역을 토대로 '트찰라'로 표기합니다.
-<블랙팬서>의 ost 'All The Stars' 의 가사를 제목과 첫 문장에 인용하였습니다.
-수위 묘사가 없으니 리버스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https://youtu.be/uhmbBMd6OC4





Love.
Is it anything and everything you hoped for?






"은자다카, 불편한 곳이라도 있어?"
"... 전혀. 그런 건 왜 물어?"
"아니. 꼭 아픈 강아지처럼 낑낑대길래."


겨우 16세가 된 공주의 웃음소리는 거슬릴 정도로 맑다. 와칸다의 의료기술은 실로 감탄할 만한 수준이었다. 심장에 날붙이가 박힌 몸도 되살려내는 힘은 환자가 아는 과학과 거리가 멀다. 차라리 여기는 호그와트고 경험한 것은 마법이라 하는 게 납득하기 쉬울 정도로. 에릭- 킬몽거, 이 나라에서는 은자다카라 불리는 그는 거동하는 데에 전혀 불편이 없었다. 그가 와칸다에 머무른지 한 달이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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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자는 항복 혹은 죽음으로 결정된다. 제가 죽인 주리의 목소리가 암흑 속에서 웅웅 울린다.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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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제국은 역적을 가둬놓지 않았다. 은자다카는 의심할 바 없는 자유인이었다. 그는 제 고향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었고, 그렇게 바라던 노을을 질릴 정도로 바라볼 수 있었다. 거짓말하지 마. 분명 어딘가에 위치추적기가 달려있겠지. 그의 날 선 문장에 공주는 그저 웃으며 제 손목을 흔들어 보일 뿐이었다. 그건 나에게도 해당되는데, 그리고 네 휴대폰에도 GPS는 있지.


한 달의 시간 동안 그가 가장 많이 마주한 사람은 슈리 공주였고, 그다음은 오코예 장군이었다. 그리고 또 다음은...


제국의 황제는 온화한 성품을 가진 이다. 그는 말없이 미소 짓는 일이 잦았고, 그의 어린 동생을 존경했으며, 제 곁을 지키는 신하들을 신뢰했다. 황제가 가지고 있는 색은 양치기가 누비는 초원, 고요한 먹색의 바다 그리고 빛나는 성 너머 석양의 그것이다. 은자다카는 문득, 틈이 생길 때마다 생각했다. 나는 그를 죽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리워했던 것이 아닌가?  황제의 눈동자는 제가 그리던 노을처럼 망연하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말인가. 얼마나 아연한 일인가. 겨우 한 달인데. 내가 이를 갈며, 피부에 죽음을 새기며 살아온 세월이 그보다 몇 배는 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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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삽십 일 만에, 에릭은 항복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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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왕은 너무 물러."


나라면 네놈을 살려두지 않았을 거다. 적어도 이렇게 나돌게는 안 해. 설산 위 부족의 지도자가 한 말이었다. 은자다카는 부정하지 않고 되레 동의했다. 그는 정말로 무르다. 은자다카는 창 너머 나리는 눈발과 그 밑의 투박하게 깎인 암벽을 바라봤다. 아득한 세월 동안 그 어떤 타인도 발 들이지 않았다는 영토는 어딘가 낯이 익다.


"맞아, 멍청한 생각이지. 당장 등에 칼이 박혀도 이상하지 않아."


아니. 은자다카는 처음부터 왕좌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왕좌는 수단일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더더욱 없다. 아주 수치스럽고 황망한 일이다. 복수심을 잃었다. 그 킬몽거가, 전장에서 수백의 사람을 죽인 그가 표적에 대한 살의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음바쿠는 은자다카가 무의미하게 세운 가시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당신이 그의 뒤에서 칼을 든다면 도와드리지요, 왕자님. 트찰라가 어떤 성품을 지녔든 음바쿠는 그를 자신의 왕으로 인정한지 오래다. 그러므로 그가 뱉은 반역적인 단어와 맞지 않는 호칭, 어색한 존칭은 명백히 비웃기 위한 목적일 터. 은자다카는 뻗은 손가락을 손바닥 안으로 꾸욱 밀어 넣었다. 꿰뚫리는 감각은 지나칠 정도로 불쾌하다.


"자네가 농담을 즐기는 성격인 건 알았지만 말이야, 음바쿠."


문이 열리고, 뭉툭한 창끝의 소음이 바닥을 울렸다. 그 사이를 비집는 목소리는 귀를 막아도 들릴 정도로 선명하다. 그런 장난은 자제해주길 바라네. 내가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족장은 건조한 태도로 용서를 구했고, 목소리의 주인은 웃음 지었다. 은자다카가 무르다 비난한 황제, 낮은 목울림의 주인- 트찰라는 은자다카의 말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의 괴물 같은 오감이라면 분명 은자다카의 말도 들었을 터인데. 트찰라와 은자다카의 시선이 잠시 얽힌다. 흑진주 같은 눈동자는 지는 태양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비쳤다. 여기 있었군. 가자, 은자다카. 은자다카는 그 올곧은 시선을 피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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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스티븐스가 와칸다로 귀화한지 한 달 하고도 보름 동안 알아낸 것: 숨을 쉬는 한, 현 와칸다의 국왕을 증오하기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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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의 성으로 돌아가는 내내 트찰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침묵에 능숙한 사람처럼 보였다. 은자다카 또한 그러하다. 정확히는, 살아있는 이가 아무도 없는 황야의 침묵에, 체온이 없는 송장들 사이에 홀로 서 맞는 바람이 익숙했다. 에릭의 삶을 지배해온 것은 상실로 인한 고요함뿐이었다. 이런, 이런 답지 않게 아늑한 대기가 아니라, 이런 적의 없는 시선이 아니라. 은자다카는 트찰라와 눈이 맞닿을 때면 죽고 싶어졌다. 트찰라는 늘 에릭을 비참하게 만들었으므로. 에릭이 할렘가에서 힘겹게 살아있던 때부터 그의 옆에 자리하는 이 순간까지, 항상.


"하나만 묻자. 왜 나를 가둬놓지 않았지?"
"... 그 질문을 하기에는 조금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트찰라가 은자다카를 향해 창을 등진 채 돌아선다. 네가 지켜봤으면 했어. 우리가 변화하는 모습을. 그 목소리는 티 없이 순진하다. 증오가 아닌 사랑. 폭력이 아닌 포용, 암벽이 아닌 다리를 말하는 사람. 그는 국왕이었고, 순진이라는 것에서는 거리를 두어야 했지만 이렇게 종종 무방비한 모습을 보이곤 했다. 이런 게 너희들의 왕이야? 이런 게 국가의 수호자야? 이런 게... 나의 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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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게도, 나는 당신을 숭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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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를 잊는 시간이,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경계를 푸는 법을 배웠다. 누군가를 '믿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만약 킬몽거를 아는 모두가 이 모습을 본다면 토악질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만큼 그는 달라져있었다. 완전히 돌아버린 것 같아. 그의 혼잣말에 오코예 장군은, 폐하의 곁에 있으면 누구든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지. 라고 대답했다. 와칸다의 누가 그분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어? 불공평할 정도의 사실이다. 에릭은 그저 분했다. 치가 떨리도록 분했다.  


그의 꿈에는 이제 어린 시절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다만 반복되는 것은 트찰라의 두 눈과 그에게 이끌려 보게 된 풍경이었다. 아름다웠던 것은 진실로 노을이었던가, 노을을 바라보는 그 눈동자였던가. 은자다카는 잠시 칼날이 박힌 몸의 통증을 잊고 말았다. 순간의 적막. 상실로 하여금 만들어진 적막이 아니었다. 그래, 그 서늘함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감각에 에릭은 무릎 꿇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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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포기하지 마. 더는 허공을 부유하지 않아도 돼. 더는 차가운 대기에 익숙해질 필요 없어. 이제 그만 뿌리 내려, 내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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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자다카는, 에릭은 철저하게 패배했다. 상대는 자신이 승리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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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블랙팬서의 ost인 All The Stars에서 따왔어요. 처음에 인용한 것도 이 노래의 가사예요. '사랑, 그게 네가 바란 모든 거야?' 너무 트찰라한테 반한 킬몽거 아니냐 싶은 가사여서ㅋㅋㅋㅋ 그리고 킬몽거에는 애정이 필요했다고 생각해요. 무조건적인 사랑. 잔뜩 인용해놓고 정작 글 분위기랑은 안 맞아서 브금은 다른 곡을 썼어요.

어떻게 트찰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잘생기고 착한 고양이인데...<이런 생각에서 출발한 글입니다. 다 쓰고 보니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흔한 팬픽에서 페로몬 흘리고 다니는 총수물 같은 느낌이 드네요 ㅋㅋㅋㅋㅋㅋ 전 그냥 킬몽거가 블팬을 제 주인으로 인정하고 사랑하게 되는 게 보고 싶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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