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크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병원에서 눈을 떴어. 정신을 잃은 지 1달만의 일이었어. 저번 칸의 공격 때와 비교하면 정확히 2배가 걸렸어. 이번에도 눈을 뜨자마자 커크는 본즈의 얼굴을 볼 수 있었어. 본즈는 트라이코더로 스캔을 하면서 커크가 몸에 힘을 빼고 눕게 했어. 커크는 그 손길에 잠시 동안 생각했어. 내가 왜 여기에 누워 있는 거지? 그 멍한 느낌은 오래가지 않았어. 곧이어 온갖 기억들이 빠르게 되살아나기 시작했거든. 폭발하는 엔터프라이즈에서 커크는 마지막까지 함선에 남았어. 탈출정들은 뒤늦게 함선을 빠져나갔어.

 

“다들 무사해?”

 

커크는 불안하게 본즈를 올려다봤어. 자기가 무사하다면 분명 모두 무사하겠지만. 본즈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어. 본즈는 세게 하이포를 찔러 넣었어. 포도당이라고 덧붙였지. 오랫동안 영양소를 제대로 공급하지 않아 피곤할 거라며. 마음과는 다르게 불을 끄고 있으니 금방 잠이 왔어. 크루들이 무사한지 확인해야하는데 말이야. 그런데 자꾸만 눈이 감겼지. 본즈는 마지막으로 이불을 덮어주고 병실을 나갔어. 커크는 본즈를 붙잡으려고 손을 올렸어. 하지만 너무 졸려서 손이 제대로 뻗어지지도 않았지.


“네 잘못이 아니야.”


본즈는 대답 대신 그렇게 말했어. 커크는 재판에의 출석을 요구 받았어. 예상하고 있던 절차였어. 커크가 잘못된 판단으로 규정을 어긴 탓에 그렇게 피해가 커졌던 거니까. 커크는 이게 현실이 아니었으면 했어. 시간을 조금만 더 앞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커크는 그 짧은 선택에 너무 많은 것들을 잃었어. 본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커크를 봤어. 네 잘못이 아니야. 본즈는 그렇게 말했지만, 커크는 동시에 알았지. 그렇게 말하는 건 본즈밖에 없을 거라는 걸.


퇴원을 하자마자 커크는 제복으로 갈아입어야 했어. 본즈는 커크의 건강 상태를 핑계로 재판 날짜를 늦추고 싶어 했지만 본즈의 권한으로도 늦출 수 있는 건 그게 최대한이었어. 커크는 천천히 본즈의 손을 놓고 병원 밖으로 나갔어. 그 경계를 넘으면서부터는 본즈가 함께 해줄 수 없었지. 오롯이 커크 혼자서 감당해내야 했어. 길거리에는 아직도 엔터프라이즈의 소식이 흘러나왔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커크는 살아남은 크루들이 본즈와 자기 둘 뿐이라는 걸 확인받았어. 생각보다 폭발이 빨랐던 탓이야. 커크가 모험을 시도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지는 않았겠지.


“제임스 T. 커크. 시작하기 전에 변론할 말 있나?”

“없습니다.”

 

커크는 뒷짐을 지고 똑바로 섰어. 이제 함선을 잃었으니, 함장도 아니었지. 이 자리는 분명 커크가 만장일치로 엔터프라이즈의 함장으로 임명되고, 훈장을 수여받은 그 자리였어. 하지만 자기에게 쏟아지는 눈길들은 그 때와 사뭇 달랐지. 그는 어느 때보다도 커크라는 성이 무겁게 느껴졌어. 아버지 조지 커크는 고작 몇 분 함장직을 맡았을 뿐이지만 본인을 희생해 수많은 크루들을 희생했지. 하지만 제임스 커크는 여기에 있었어. 모든 크루들을 희생시키고 살아 돌아와서 말이야.


커크는 가만히 자신의 혐의들을 듣고 있었어. 스타플릿 수칙을 어기고, 그 판단으로 인해 크루들과 함선을 희생시킨 점. 커크는 함선에 타고 있던 크루들의 규모를 들으며 눈을 감았어. 감당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느낌이었어. 커크는 크루들과 몇 년을 우주에서 함께 생활했어. 몇 년을 함께 죽을 고비를 넘겼지. 엔터프라이즈는 커크의 집과도 같았어. 그 모든 걸 잃고 가장 슬퍼야 할 사람은 커크였어. 하지만 커크는 슬퍼할 자격도 없었지.


재판을 마치고 커크는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어.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갔지. 커크는 가만히 서 있기만 했어. 저 중에 누군가는, 최소한 나를 동정하기라도 할까. 커크는 나가는 사람들의 등 뒤를 지켜봤어. 아무도 빈 말로라도, 커크에게 그래도 괜찮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 재판은 며칠에 걸쳐서 계속 진행될 거야. 지금까지 들은 바로는, 다시는 함장직에 복귀하지 못할 것이 거의 확실해보였지. 커크는 스타플릿 엠블럼을 뚫어져라 보고 서있었어. 저 구석에 앉아있던 본즈가 다가와 커크를 데려가기 전까지는.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짐, 넌 그냥 크루들을 살리려고 한 거잖아.”

“그러지 못했잖아.”

“크루들은 널 원망하지 않을 거야.”

“아니야. 그럴 거야.”

 

커크는 계단에 주저앉았어. 길을 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한 번씩 돌아보는 것 같았어. 네가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라고 말하듯이. 본즈는 커크를 억지로 잡아 일으켰어. 그리고 끌다시피 데려갔지. 너는 아직 환자고,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말이야. 그래도, 한 명 정도는 자기를 불쌍하다고 생각해주는 사람이 남아있는 모양이야. 어쩌면 그건, 본즈에게 커크는 한 번도 ‘캡틴’이었던 적이 없어서일지도 모르지. 본즈에게 커크는 항상 그냥 짐이었으니까. 고작 한 명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그게 위안이 되었어.

 

“난 이제 어떻게 살아야 되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몸이나 낫고 나서 해.”

“다시 우주로 못 돌아가게 되었잖아. 그러면 나는 무슨 쓸모가 있어?”

“댐잇, 짐. 제발 그냥 누워. 그런 소리 말고.”


커크는 본즈가 시키는 대로 다시 침대에 누웠어. 마음이 텅 빈 것 같았어.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감당하기가 버거웠어. 하지만 동시에 버거워하는 자기 자신이 가증스럽게 느껴졌지. 네가 죽인 게 맞잖아. 아무도 다시는 네가 이끄는 함선에는 타고 싶지 않을 걸. 커크는 실눈을 뜨고 본즈를 봤어. 본즈는 한숨을 쉬며 트라이코더를 들이대고 있었지. 본즈는, 내가 이끄는 함선에 다시 타줄까. 커크는 그 질문에는 답을 할 수 없었어. 그래도 본즈가 자기를 불쌍하게 생각하기라도 한다면, 그거면 됐어. 아니, 그거에 만족해야했지. 지금의 커크는.

 

커크는 그 날도 병원에서 밤을 보냈어. 본즈가 퇴원해도 괜찮지 않냐는 의사와 언쟁을 벌이는 걸 힐끗 봤지. 이곳이 아니면 커크는 갈 곳이 없었어. 스타플릿에서 제공하는 숙소에 돌아가야 했는데, 도저히 그럴 엄두는 나질 않았지. 이 죄책감을 안고 있으면 비난은 무섭지도 아프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언쟁을 마친 본즈는 다시 병실 안으로 들어왔어. 본즈는 계속 커크 옆에서 밤을 새고 있었어. 그러다 낮에는 숙직실을 빌려 쪽잠을 자곤 했지. 본즈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을 텐데 말이야. 본즈는 의사였어. 의사는 누구보다도 생명을 중요시하는 직업이라고 들었어. 생명이기만 하다면, 수백의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기 같은 생명이라도 별로 상관이 없나봐. 이럴 줄 알았다면 의료부 생도들과 더 친하게 지내둘 걸 그랬나.

 

“본즈. 내가 살아있어도 괜찮은 걸까?”

“....지미”

“너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정말 미친 것 같아.”

스타트렉 / 본즈커크 / 크리스 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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