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드득.



폰 뒤트리히 공작이 이를 악물었다.




얀이 꼬고 앉은 그의 긴 다리위 무릎위로 손가락을 툭툭 치기 시작했다.



얀이 초조할때 드물게 나오는 습관이었다.




‘이게 다 그 배속의 아이놈 때문이다.


이것이 지 에미의 몸을 양분삼아 우리 귀여운 오르페의 생명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고 있어!’


얀은 자신의 핏줄임에도 오르페우스의 배속의 아이를 증오했다.



처음부터 그랬다.


얀은 배속의 제 자식에게 애정이 1도 없었다.



‘처음부터 그 녀석은 오르페를 온전히 내것으로 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어차피 나는 영생의 존재.


오르페만 죽지않고 건강하게 내품에 영원히 안고 살아갈수 있다면 다 필요없어! 그깟 후계자 따위!

당장 사라져도 상관없어.’


 

자신의 것은 그 누구와도 나누기 싫어하는 그가 얀 자신의 생명만큼 이 지구상 가장 소중한 존재, 오르페우스의 애정을 다른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결국 제 핏줄인 친자식조차 얀에게는 연적(戀敵)이었을 뿐이다.




어머니 프시케는 유리디체와 오르페우스 쌍둥이를 낳고 얼마안가 산독으로 사망했다.



신은 오메가들에게 영원히 늙지 않는 젊음과 아름다움, 성적인 매력을 주었지만,동시에 선천적인 허약함과 단명을 선물로 같이 안겨주었다.



오메가가 아틀란티스에서 멸종하는데는 불과 1세기(世紀) 의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지상의 인간 오메가나 바닷속 인어 오메가나, 결국 태생적으로 극약하고 체력이 뒤쳐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오메가의 임신과 츌산에는 언제나 사망이라는 위험이 운명처럼 따라다녔다.



얀은 초조해서  주먹을 계속 쥐었다 폈다.



 그가 손가락을 폈다 굽힐때마다 뼈마디가 빠각거리며 소리가 났다.



얀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울렁거렸다.



사실 얀은 목구멍위까지 치밀어 오르는 공포에 떨고 있고 있었다.



그것은 끔찍한 공포였다.



평생 두려움을 모르고 살았던 얀조차 생각조차 하기 싫은 악몽.



그것은 오르페우스의 ‘죽음’이었다.



인어 오메가는 죽으면 그 영혼까지 소멸된다.



오르페우스가 죽으면 그냥 잃는 게 아니라, ‘영원히’잃는 것이었다.



‘오르페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환생도 못하고 그대로 사라지는거야.


아..안돼! 오르페 널  잃을 순 없어!

너없이 영생이 무슨 의미인가?

오메가인어는 혼이 소멸되고 영원히 공기방울로 산화되어 버려. 오르페가 죽으면 기껏해야 영혼없는 사이렌으로 남아, 안개가 자욱한 날이 되야 얼굴이나 겨우 볼수 있겠지.


프시케처럼. 하아…안돼…오르페만은 제발…’


오르페우스가 단순히 그를 피해 도망다닐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랐다.



누군가 자신의 아기인어을 뺏어가도, 다시 찾아오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죽음의 신이 오르페우스의 하나뿐인 생명을 거둬간다면, 그것은 영원한 이별을 의미했다.



바다의 신인 얀마저도 한번 죽어 공기방울이 되어버린 오메가 인어를 되살릴 수는 없었다.



오르페우스를 영원히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를 안절부절 못하게 했다.



네툰의 마지막 오메가 왕비는 무려 6천년이나 장수했음에도, 프시케를 포함한 모든 연약한 오메가들에게 출산은 언제나 무모하고 위험한 도전이었다.



어머니를 빼어박은 오르페우스역시 출산의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안전하다 말할 수 없었다.




‘차라리 지금 배속에 있을때 없애 버려?’


못할것도 없었다.



오르페우스를 독차지하기 위해 친아우이자, 무려 100년간이나 애정했던 유리디체마저 망설임없이 없애버린 자신이었다.



더구나 오르페우스의 생명까지 위협한다면, 아예 아기인어의 건강에 큰 위협이 안되는 지금의 작은 태아일떄 깨끗이 치워버리는 것이 안전했다.



‘오르페를 조금이라도 위험하게 한다면 당장 그 작은 생명을 내손으로 끊어버리리라.’


얀은 무서운 생각을 서슴치않고 머리속에서 쏟아냈다.



그는 이제서야 네툰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자신이 아틀란티스의 제왕 네툰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네툰의 세째 아들 얀은 자신의 아버지를 증오하고 경계했었다.



 얀은 자신이 아직 어려 작고 미약했던 아기용(龍) 시절, 친부(親父) 네툰이 제손으로 제 자식인 얀을 없애려 들었던 사실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행하려 했던 패륜을 그 얀 자신이 자신의 핏줄에게도 하려 하고 있다.



얀의 운명은 얄궂게도, 어머니 프시케의 모정덕분에 얀은 목숨을 건졌지만, 동시에 생모이자 첫사랑인 프시케를 잃었다.




이제와 오르페우스까지 잃을 수없었다.



그 고통은 아무리 천하의 패자인 얀조차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수준이었다.



얀은 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해 몸부림치다 폭주하여 세상을 뒤엎어 멸망시킬지도 몰랐다.



그만큼 얀은 오르페우스 없는 지옥같은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오르페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 그 자체야.


내 생명보다도 소중한데, 그깟 자식들 쯤이야!’. 


하지만 이내 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아니야. 그깟 배속에 태아 없애는 것은 문제도 안되지만, 만약 그게 잘못돼서 오르페마저 다친다면?’


얀의 눈앞에 하혈을 하며 하얀 허벅지가 시뻘겋게 피범벅이 되어 몸부림치는 어린 인어의 고통스런 모습이 어른거렸다.



결국 강제로 유산시키는 것 역시 체력이 약한 오르페우스에겐 무리였다.




얀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래.


아기가 태어나, 오르페 몸밖으로 나오고 나서 없애도 늦지않아. 한몸일때는 오르페까지 위험하니깐.


쥐도 새도 모르게 아기를 치워버려야지.


오르페도 어미라 제 아기라면 못숨걸고 지키려 들테니까. 마치 프시케가 목숨걸고 날 네툰에게서 지켜냈던 것처럼.’


곧이어 얀은 다른 문제의 주제로 생각을 전환했다.




얀의 또다른 고민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제 오메가가 무사히 출산할 장소였다.



일부러 오스트리아 빈에서 조용한 시골의 고성에 신혼살림을 꾸린 얀은 아무래도 오르페우스에게는 생생한 활기를 불어넣어줄 필요가 있다 생각했다.




‘흠…너무 한적한 곳이라 오르페가 심심하고 더 외로움을 타는지도 몰라. 

우울증도 심하고 몸에서 갈수록 힘이 빠져나가고 있어.


향수병일수도.갈수록 몸상태가 안좋아지니. 

하아…우리 아기.. 넌 왜 이렇게 몸이 약한거니?’


연회장으로 가는 내내, 세계에서 한대 밖에 없다는  슈퍼카 ‘마이바흐 엑셀레로' 차량안에서 얀은 오르페우스의 건강문제로 고민했다.



(*마이바흐 엑셀레로:실제 세계하나만 제작된 세계 최고가 순위 4위의 고급 세단)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폰 뒤트리히 종합병원과 옥스퍼드대학병원이 있는 런던으로 오르페를 데려가야 겠어. 언제라도 위급한 상항이 오면 오르페 하나만은 구해내야 해!’


차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비엔나의 화려한 길거리 조명들을 바라보며 얀이 고개를 다시 저었다.



‘ 그럼에도..혹시…

 만약 런던에 가서도 오르페 건강에 차도가 없다면?

불안하게 인간세계에서 출산하는 것보단 차라리 친정인 아틀란티스로 돌아가 아이를 낳는것이 낫지 않을까? 인어들에게 아틀란티스는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자 영혼의 고향이니까…’


얀은 마음속 결심을 굳혔다.



향수병에 걸린 아기인어에게 친정만큼 편안한 곳도 없을 터였다.



연어떼는 강물속 알에서 부화해 일생을 바다를 떠돌다, 새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바닷물와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고향인 강기슭까지 도착해 알을 부화하고 그 짧은 생을 마감한다.



인어도 결국은 바다가 고향이었다.


그래서, 오르페우스는 틀림없이 그곳에서 생명의 에너지를 다시 얻어 그 아름다운 영혼에 생기가 돋으며, 과거처럼 영롱한 빛으로 찬란하게 반짝일 것이었다.




얀은 자신이 이세상에서 진정으로 유일하게,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오르페우스가 아틀란티스로 돌아가 무사히 출산하기를 바랬다.



그에게 더이상 새로 태어날 생명은 안중에도 없었다.



얀에겐 오르페우스의 생명만이 제일 중요했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얀이 한쪽으로 꼬았던 다리를 풀어 반대쪽으로  그의길고 긴 다리를 꼬아 올렸다.



긴장이 풀어져,얀의 표정이 훨씬 편안해졌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하나를 결정하니, 또 하나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럼.4왕자는?’


얀의 손안에 모든 권력이 있었지만, 아틀란티스에 남겨진 4왕자는 여전히 그 힘은 건재했다.



모두 네툰의 우성 알파 아들들이었기에, 이 네명이 협공한다면,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얀조차도 무시할 수 없는 위협적인 존재들이었다.



바다의 신의 능력을 골고루 물려받은 이 4명의 형제들은 얀 본인만큼이나 그 힘이 강한 동시에 성욕마져 강해,  이들이 한번 미친듯이 폭주하다면  얀마저도 제어가  불가능했다.



가뜩이나 건강상태까지 악화된 여리디 여린 오르페우스를 이 미친 짐승들 사이에 둘 수는 없었다.



이는 싱싱한 고깃덩이를 굶주린 상어떼로 가득한 바다 한가운데로 그대로 던져 넣는 것과 같았다.




다시 신경이 날카로와진 얀이 주먹을 폈다 다시 콱 쥐었다.



하도 힘이 들어가 손 바닥이 하애지고 손등에 굵은 핏줄과 힘줄이 우두두 일어섰다.




‘ 역시 암덩이들은 더 크기 전에 도려내야겠지?

오르페가 친정에서 아기를 무사히 낳고 편안히 몸조리를 하려면 그것들이 주변에 얼쩡거려서는 위험해!’


“도착했습니다.각하.



얀의 깊은 상념을 비서 마레 백작에 의해 멈춰졌다.



“오르페우스님을 위해 새로 건축하신 미술관 모라토리엄입니다.”



세계유일의 명품 세단 ‘마이바흐 엑셀레로’ 의 전용 운전사옆 조수석에 앉아있던 제1비서 마레 백작이  뒤에 거만한 자세로 앉아있는 얀을 향해, 조심스럽게 고개숙여 아뢰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세명의 사내가 부리나케 뛰어와 차문을 정중히 열고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각하.


내빈들이 모두 기다리고 계십니다.”


세명의 사내가 허리굽힌 등뒤로, 최고급 연회용 정장슈트를 차려입은 제3비서 로트렉 후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새 로트렉 후작의 눈은 얀의 뒤에 서있어야할 어린 공작부인, 오르페우스의 모습을 찾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가우뚱거리며 폰 뒤트리히 공작에게 조용히 물었다.



“각하.오늘도 역시 공작부인께서는 불참하십니까?”


얀은 그대로 로트렉을 지나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호화차란한 불빛과 음악이 흐르는 만찬 연회장쪽을 향해 걸어갔다.



“공작부인께서는 건강문제로 오늘도 불참이십니다.


개관식의 샴페인 잔은 각하께서 직접 깨실 겁니다.”


얀 대신 그의 제1비서 마레가 앞좌석에서 내리며 제주인의 대답을 대신 전해 주었다.



마레 백작과 제 3비서 로트렉 후작은 폰 뒤트리히 공작의 총애를 향하여 서로 경쟁관계였다.



로트렉의 한쪽 눈썹이 삐끗 올라갔다.



“아니.오늘도?

그러면 리본 커팅은 누가?”


“그것도 각하가 대신할 것입니다.”


얀의 대리인이나 다름없는 마레가 역시 대신 대답했다.



로트렉의 입은 불만으로 댓발 나왔지만, 입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마레 백작은 공식적으로는 폰 뒤트리히 공작의 입이었고, 비공식적으로는 얀의 그림자였다.



서열 3위나 되었던 로트렉 후작조차 자신보다 귀족 계급도 낮은 마레의 말에 감히 토를 달 수 없었다.



‘이런 젠장! 무슨! 각하께서 일개 미술관 따위 행사에 일일히 나서야 하냐고?

그런 것들은 모두 폰 뒤트리히 공작부인이 주관해야 하는…아니.관두자!  지금 각하는 어차피 저 어예쁜 오메가 꼬마에 푹 빠져서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을 테니. 이건 뭐 공작부인이 생기니 없던 일도 생기네.


2배로 내 업무가 늘었쟎아!  저 재수없는 마레 자식!’


결국 오스트리아의 최대 규모의 신축미술관 ‘모라토리엄’의 리본 커팅과 샴페인 잔 깨기는 미술관 대표인 폰 뒤트리히가의 안주인 오르페우스 대신 얀 폰 뒤트리히 공작의 손과 발에 의해 직접 거행됐다.



얀은 몹시 귀쟎았지만, 오르페우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면 없는 시간도 쪼개었다.



그즈음 런던의 폰 뒤트리히 공작의 메인 오피스에서는 산더미 같이 쌓인 서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얀의 머리속엔 오직 오르페우스의 귀여운 얼굴와 그 배속에 있는 자신의 아이 생각뿐이었다.



****


오르페우스는 힘없는 팔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제주인의 의지와 다르게 팔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털썩.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려 팔걸이를 잡고 힘을 내어 서서 버티다 이내 고꾸라졌다.



“아. 공작부인님!!”

“오르페우스 도련님! 아기가 배속에 있으니 조심해야 해요!”



오르페우스의 양쪽으로 전문 간호사들이 급하게 우루루 달려와, 어린 공작부인의 몸뚱이를 다시 소파위로 조심스럽게 모셔 앉혔다.



‘이게 뭐야? 이제 혼자서는 거동도 못하쟎아?’



갑자기 서글퍼진 오르페우스는 자신의  동그랗게 나온 배를 만지작거렸다.



소년용 고급 아사면 소재의 나이트 드레스 옷위로 예쁘게 나온 동그란 구형의 형태가 제법 아기집의 모양을 잡아가고 있었다.



오르페우스의 배는 어느덧 동그란 형태를 갖춰, 그 크기가 작았음에도 이제는 임산부티가 났다.



결혼식이후 오르페우스의 몸과 정신은 급속도로 망가져갔다.



하루종일 하늘만 바라보다 한숨쉬고, 그러다 눈물만 주르르 흘리며 조용히 흐느끼다 이내 지쳐 잠들었다.



오메가 소년은 멍한 상태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든 게 낯설고 크고 허전했다.



광활하게 펼쳐진 호수와 숲을 끼고 지은 화려한 오스트리아 고성의 건물들과 넓디 넓은 공간들은 오히려 오르페우스에게 독이 되었다.



드넓은 궁정 살롱 공간과 수많은 이름모를 방들이 오르페우스의 가슴속엔 텅빈 공허함만 더해줄 뿐이었다.



오르페우스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외롭고 쓸쓸해져갔고, 거기다 임신의 우울증과 무력감이 이 어린 인어의 연약한 몸과 영혼을 좀먹고 있었다.



얀이 어린 신부를 위해 신혼집으로 선택한 장소는, 화려한 로코코 양식의 성관 건물들 내부 설계와 달리 외부는 오래된 바로크식으로 고전적인 방식으로 지어진 오스트리아의 오래된 고성이었다



값비싼 내부 인테리어와 휘황찬란한 샹들리에와 조명들, 온갖 대리석 동상과 황금장식의 조각품들 사이에 우아한  궁정식 가구들이 오르페우스의 방안을 호사스럽게 차지하고 있었다.



수백개의 방은 몇개인지 셀수도 없어,혼자 복도를 거닐다 보면 길을 잃기 일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르페우스는 갈수록 고향 아틀란티스와 바다가 그리워졌다.



사랑하는 왕자님을 잃었어도,고향으로 돌아가 내일을 위한 에너지를 충전하고 싶었다.



 힘과 용기를 되찾는다면, 희망을 잃지않고 버티고 견디어 낸다면, 언젠가 왕자님과 다시 만날수도 있지 않을까?


다 부질없는 짓이라 모두 비웃어도 상관없었다.



왕자님에게 버림받았음에도, 오르페우스는 왕자님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제이슨의 거칠고 투박하지만 가슴을 울리는 저음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오르페우스에게 핸드폰이 있고, 제이슨의 전화번호를 알았다면, 이 아기 오메가는 당장 서툰 손가락질로 핸드폰의 번호판을 눌렀을 것이다.



지금 오르페우스에겐 오직 제이슨의 목소리 한마디가 영혼의 치료제였다.



그러나 얀은 인간세계 현대인의 기기 사용법을 전혀 모르는 오르페우스에게 핸드폰은 물론, 개인 노트북이나 PC 기타 현대문명의 이기( 利器)대신 엄청난 양의 보석과 명품백, 명품 의류만 안겨다 주었다.



거기다 오르페우스는  혼자가 아니였다.



수많은 얀의 눈들이 폰 뒤트리히 공작부인을 항상 감시했다.



얀이 특별채용한 개인 간호사가 7명, 전문 요양사가 15명나 붙어 오르페우스를 24시간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하지만 임신한 아기 오메가에게 필요한것은 따뜻한 어머니의 손길이었지, 전문가의 엄격한 관리가 아니었다.



오르페우스는 숨이 막혔다.



그냥 혼자 쉬고 싶었다.



“모두 물러가요. 오르페 혼자 있을래요.”


하지만 아직도 소년티를 못벗은 여린 목소리에는 위대한 폰 뒤트리히 가문의 안주인의 위엄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40대 중년의 노련해보이는 간호사가 풋 웃으며 어린 공작 부인의 메마른 팔뚝을 움켜 잡았다.



하지만 신경이 예민해진 아기인어는 가는 긴손목을 이용해 간호사의 손을 탁 쳐냈다.



“저리 가욧! 오르페 혼자 있을꺼야!”


오르페우스를 겹겹히 둘러싸있던 간호사들과 시녀들이 깜짝 놀랐다.



순진하고 얌전하기 그지없는 귀여운 공작부인이 처음으로 반항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잠시 서로 쳐다보며 고민하는 듯 하다가 , 유령처럼 조용히  사라졌다.



공작부인이 두려워서가 아닌, 냉혹하고 잔인한 폰 뒤트리히 공작의 심기를 건드릴까봐서였다.



아기 오메가가 바람불면 날아갈까 안달복달하는 공작 각하에게 저 어린 공작부인의 불평이 각하의 귀에 조금만이라도 들어갔단, 실직의 아픔보다 고문과 죽음의 고통이 더 클것이었다.



주변의 모두가 자리를 물리자, 드디어 오르페우스는 혼자가 되었다.




오르페우스는 가픈 숨을 몰아쉬고  다시 한번 있는 힘껏 팔목에 힘을 쥐어 소파 팔걸이에 몸을 의지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만 같은 볼품없이 말라 비틀어진 팔뚝은 오르페우스의 가날픈 몸뚱이 하나조차 감당하지못해, 오르페우스는 또다시 힘없이 털썩 주저 앉았다.



“ 흐흑…”


오르페우스는 울먹거리다 결국 참아왔던 울음을 터트렸다.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마음같아서는 바다로 달려가 인어의 몸으로 깊은 바닷물속에 뛰어들어 태평양을 건너질러 왕자님께 헤엄쳐 가고 싶었다.



“흐아앙~~~왕자니임…흐흑..윽..흑..”


서러워서 아기인어는 구슬프게 울었다.



등뼈가 도드라질 정도로 형편없이 말라붙어 동그란 배만 볼록 튀어나온 것이 너무도 초라하고 비참하게 느껴졌다.



‘왕자님이 지금의 날보면 없던 정도 떨어질꺼야!


임신이라는 것을 경험해본 적도 없고, 아틀란티스의 유일한 인어 오메가였기에 , 임산부를 한번도 본적도 없던 오르페우스로서는 저 스스로의 모습이 추하게 느껴졌다.



얀형이 밉고, 배속의 아이도 다 미웠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아틀란티스의 산호초 숲에서 루크와 헤엄치며 놀던 어린 시절의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루크….’



오랫동안 못본 돌고래 친구 루크의 맑은 눈동자와 검고 탄탄한 몸집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갑자기 오르페우스는 루크가 너무나 보고 싶어졌다.



‘이럴때 루크라도 옆에 있어줬으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텐데..’


왕자님을 만나기전 오르페우스의 곁을 지켜준 유일한 친구는 루크뿐이었다.



왕자님의 품안이 불처럼 뜨거웠다면, 루크의 품은 어머니 품처럼 따뜻하고 포근했다.



한참을 끅끅거리며 울다가 보니 온몸이 오들거릴정도로추워졌다. 


오르페우스가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아틀란티스 밖의 아름다운 인간세상은 이다지도 춥고 황량했다.



이제는 더이상 오르페우스가 의지하고 그를 안아줄 유리디체도, 루크도, 왕자님도 그의 곁에 없었다.



이 넓고 추운 세계 한가운데 오르페우스 홀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한없이 외롭고 추웠다.


어머니 프시케도 처음 죽어 사이렌이 됐을때, 이 기분이었을까?




꿈틀.



그때 갑자기 오르페우스의 배위로 작은 물체가 얉은 배가죽위로 튀어 올라왔다.



그것은 마치 아주 작은 갓난아기의 손 같이 보였다.



“응? 이건? ”


오르페우스는 무언가에 홀린듯 자신의 배위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작고 앙증맞은 무언가가 배속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배위로 작고 아직은 연약한 어느 한 생명체의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생명체는 볼품없이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아주 강한 생명의 에너지를 뿜어내어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오르페우스는 몸이 서서히 다시 따뜻해져 가는 모습을 느꼈다.



모두가 떠나간 자리에 작은 생명 하나가 오르페우스의 텅빈 영혼을 다시금 채워주고 있었다.



아기인어는 작고 동그란 배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이제 오메가로 발현한지 채 1년도 안됐건만, 아기 인어는 자신의 몸안에 또다른 생명이 자라기 시작했는 것이 새삼  경이롭고 신기했다.



생명의 신비와 자연의 이치는 놀라운 것이었다.



오르페우스는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어머니 프시케처럼, 어느 누구도 그에게 가르치지 않았음에도 본능적으로 모정(母情)을 느끼기 시작했다.



평생 유일한 사랑이라 믿었던 왕자님도 자신을 버렸고,언제 자신의 형이자 남편인 얀의 손에 죽게 될지 몰랐지만, 적어도 배속의 아가만은 평생 오르페우스를 떠나지 않을 것 같았다.




‘아. 이 아가가 왕자님의 아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르페우스는 슬픈 상념에 빠져 깊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토록 제이슨의 아기를 갖고싶었지만, 왕자님은 처음부터 오르페우스가 싫었던지 임신을 피하기만 했다.



원했던 남자의 아이가 아닌, 얀형의 아이였지만 그래도 오르페우스가 생애 처음 품은 소중한 생명이었다.



갑자기 배속의 아이에게 오르페우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얀이 미워도, 아이에겐 잘못이 없다.



비록 사랑으로 인해 생긴 아이는 아니였지만, 그것이 어미의 사랑을 못받을 이유는 아니였다.



무엇보다 이 아이는 영원히 오르페우스를 사랑해줄 것이었다.



오르페우스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기쁨에, 새 생명에 대한 기대감에 가슴이 설렜다.




이에 부응하듯, 배속의 아이는 속에서 강하게 요동치더니, 쾅쾅거리며 발로 제 어미를 차기까지 시작했다.



“ 하악! 아아앗.아…흐으…”


고통에 배를 움켜쥐고 뒹굴면서도 오르페우스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하윽!  으응..응 핫!..아흐….


너 정말 네 아빠를 빼닮았구나.


왜이리 아기가 발힘이 세?”



 새 생명이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알려 엄마가 혼자가 아니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오르페우스는 아직 얼굴도 모르는, 이 태어나지도 않은 배속의 태아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틀림없이 저 자신도 어머니 프시케에게 이런 기쁨을 주었으리라.



아직 아기티를 못벗은 귀여운 아기인어는 자신의 배속 아기에게 태명으로 죽은 쌍둥이 형 이름을 물려 주었다.




‘내 아가…유리디체.이번에만은 꼭 널 지켜줄깨.


엄마가 널 꼭 지킬깨야. 내가 죽을지라도.’


오르페우스는 몸을 좀더 굽혀 배위에 대고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사랑해. 유리디체. 엄마가 널 아주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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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제이슨 버틀러는 세계적인 대배우로 성공하여 고향 LA로 입성했다.



비버리힐즈 89210번가의 수많은 이웃들, 특히 어린 시절 그를 봐온 수많은 초중고 동창들은 대스타의 귀환을 환영했다.



제이슨은 속으로 피식 비웃었다.



그가 인생의 밑바닥에서 지옥을 맛보고 있을때, 아무도 그에게 따뜻한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자들이었다.



성공후에 180도 달라진 주변의 시선이 제이슨은 이 세상 인간들의 이중성에 새삼 역겨움과 혐오를 느꼈다.



돌아온 과거의 탕아 제이슨 버틀러는 과거와 달리 이제는 감히 아무도 손댈수 없는 세계적 거물이 되어 있었다.



이미 헐리우드 명예의 전당 바닥의 별에는 ‘세기의 스타’제이슨 버틀러의 손바닥이 찍혀 있었다.



헐리우드 120년 역사상, 기라성같은 소수의 감독과 배우들만이 그들의 손바닥을 역사적인 그 곳에 남겼다.



이미 제이슨 버틀러의 부(富)는 과거 부모와 자신이 이뤄놓은 막대한 재산을 넘어서, 현재 미국 재산 순위 7위 였다.



세계의 막대한 자본을 한손에 주무르는 뉴욕 유태인 자본가들과 IT계열  초거대 재벌들 속에서 감독이나 제작자도 아닌,  일개 배우가 재산순위 10위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리고도 제이슨의 몸값은 매일 천정부지로 뛰어, 그는 이제 세계 영화계에서 함부로 불러 모셔오기 힘든 최고 개런티 가치의 배우였다.



3초짜리 광고하나만 찍어도 30~50억 불짜리 몸값으로, 제이슨의 부는 부를 키워 삽시간에 그 몸집을 불렸다.



심지어, 뉴욕증시에서는 제이슨 그를 두고 ‘MS사(社)’나 세계적인 네트워크 플랫폼 ‘다이아그램’의 주가가치만큼 높게 평가하였다.



한때 한순간에 나락에 빠져 모든 것을 잃었던 제이슨은 자신이 유년기를 보냈던 LA최고가 호화판 주택 「팔라조 디 아모레」를 결국 다시 되찾았다.



어린 시절 친구였던 존 쿠삭과 자살한 아버지와의 추억도 가득했던 곳이였다.



스페인 황실의 궁정을 모티브로 그대로 디자인을 재현한 초호화 주택 「팔라조 디 아모레」는 어린 시절 그대로 꿈속의 궁전처럼 화려했다.



그리스산 한정판 대리석을 바닥에 깐 고급스런 복도를 쭉 걸어가 제이슨은 과거 자신의 방이었던 곳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안 풍경과 어린 시절과 많이 바뀌어 있었으나, 제이슨이 향수를 달래기엔 충분했다.



제이슨은 방안에 들어서자 마자, 케노피 장식의 거대한 침대위로 뛰어 올라 그대로 침대에 엎어져 누웠다.



어린 제이슨 버틀러가 그랬던 것처럼,그는 침대 머리맡의 베게를 끌어안고 자신의 그리움과 고독을 되씹었다.



아무리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다지만, 결국 혼자인 것은 어린 시절과 다를 바 없었다.



소년시절에도 바쁜 부모의 부재로 이 거대한 주택은 더욱 을씨년스럽고 공허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저 자신의 가슴밑바닥까지 텅비어, 마치 가슴팍 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나있어  바람이 그대로 그의 가슴을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오르페….내 사랑…”


초록색 눈동자의 한 아름다운 소년에 대한 제이슨의 이 그리움과 독한 향수병은 그가 평생에 걸쳐도  치유되지 못할 병이 되어 있었다.



이미 그 얼마나 많은 밤을 오르페우스를 만나는 달콤한 꿈을 꿔왔던가.



눈을 뜨면 사랑하는 연인이 사라질 것이란 절망에 제이슨은 영원히 잠에서 깨지않기를 매일 기도했다.



“잘있는 거야? 오르페. 내 아기…아픈건 아니지?”


숨겨진 아픈 상처를 몰래 꺼내어 치유하듯, 제이슨은 저만의 공간에서 목숨보다 사랑했던 소년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오르페.오르페…내 사랑! 내 아기!

아아. 오르페우스. 널 아주 많이 사랑해.


영.원.히.”

조아라 노블레스 작가. 회사원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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