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희언이 혼인한단 소식이 알려지자 순주 사람들은 놀라서 서로 반문하였다.

"기 씨 공자가 드디어 혼인한단 말인가?"

"틀림없이 그리 전해 들었네. 순주 사람이 아닌 다른 지방에서 온 매파가 기 씨의 집에 다녀갔다더군. 여러 달 소식이 없더니 홀연히 나타나선 혼담을 주선해주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

"헌데 그 공자의 눈이 아득할 정도로 높아 이 운국에서 제일가는 미인이 아니면 혼담을 이야기하지 못하겠다더니? 어디 달에서 항아님이라도 내려오셨나?"

"내 듣자 하니 북방의 취성이라는 아주 먼 곳에서 오는 신부라고 하였네."

"북방이라면 이 순주에서 한참 먼 곳이 아니던가. 매파가 오래 걸린 이유가 있군."

남의 이야길 하기 좋아하는 치들은 찻집에 모여 기희언을 흉보았다.

"미인을 밝히는 사내는 끝이 좋지 못하다던데."

"그러니 이 순주의 매파가 전부 기 씨를 피해 다녔던 거지."

"그 매파도 참 고약한 사람이야."

차를 홀짝홀짝 마셔가며 한껏 기희언을 흉본 이들은 곧 저녁이 될 무렵에 흩어졌다. 저잣거리에서 사람들이 절 흉보든 말든 그 구설수를 모르는, 그리고 알 생각도 없는 기희언은 얌전히 신부를 기다릴 뿐이었더란다. 신부가 도착하는 날이 코앞에 닥치자 기희언은 오랜만에 집 대문을 나가 소유한 땅에 세운 사당에 찾아가선 향을 피우고 칠이 다 벗겨진 상에 새 금박지도 세심하게 잘 붙여주면서 공손히 몸을 숙여 예를 표하고는 빌었다.

"아버지께서 생전에 말씀하신 대로 이 희언이 혼인하여 백년가약을 맺습니다. 지금도 아버지께서 제게 베풀어주신 은혜는 갚을 길이 없습니다. 부디 신부와 오랫동안 해로할 수 있도록 살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이 희언이 아버지께 바라는 것은 오직 그뿐입니다."

기희언은 그 자리에서 향을 하나 더 피운 뒤 그 향이 다 타올라 재가 될 때까지 기다린 뒤 사당을 나왔다. 기희언이 사당에서 나오자 근방의 땅에서 일하고 있던 농부들이 고개를 들었다.

"저 사당은 버려진 곳인데-."

"기 씨 집 사당은 다른 곳에 있을 터인데 어찌하여 공자가 저곳에서 나오는지 모르겠구려."

"어차피 근방이 다 기 씨의 땅이니 그 집 사당이 하나 더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닐세."

"하기야 이 넓은 순주 땅에서 기 씨 땅이 아닌 곳이 없지."

"북방의 절세미인이 혼담을 받아들인 이유가 뭐겠나. 북방의 무관보다야 순주의 기 씨가 나은 법이야."

기희언은 그 길로 곧장 집으로 돌아와 서신을 적었다. 혼담이 정해진 후 매파가 말한 길일로 혼롓날을 잡아두었다. 신부를 보려면 아직 여러 날이 남아 미리 보내두는 것이었다.

「북방에서 오는 길이 평안하길 바랍니다. 이 순주는 사시사철 기후가 온화한 곳이라 늘 따스한 볕이 듭니다. 허니 무거운 짐이 되는 솜옷은 친정에 두고,  친정에서 꼭 가져와야 하는 것이 있다면 편히 가져오십시오. 이 집은 궁궐처럼 넓은데 방을 쓰는 사람이 없어 다 텅 비어 있습니다. 원하는 곳을 창고로 쓰시면 됩니다. 매파에게 미처 묻지 못하였는데 친정에서 사람은 몇이나 데려오십니까? 미리 거처를 마련해두겠습니다. 유모가 쓸 곁방을 만드느라 안채를 증축하는 중입니다. 내자의 유모이니 골방을 쓰라고 내주기에는 민망하여-, 오실 날만 기다리겠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글자 쓰는 것이 서툴러 필체가 단정하지 못합니다. 

매파에게 듣길, 학식이 대단히 높다고 하셨습니다. 서신 쓰는 법을 가르쳐주신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또한 매파의 편으로 미리 보내었던 비단이 마음에 드시길 바랄 뿐입니다. 그 비단들은 도읍에서 들여온 것인데, 이제껏 아껴두다가 광에서 꺼낸 것입니다. 도읍의 황족과 귀족들은 그것으로 의복을 지어 입는다지요. 신부가 입을 것은 꼭 그 비단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부족함 없게, 한 치의 모자람이 없도록 혼례식을 준비해두고 있으니, 말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더 하고 싶은 말은 혼례를 치른 뒤에 말해도 되겠습니까? 그럼 이만.」

제 할 말만 하고 끝낸 기희언은 서신을 봉하여 아랫사람에게 내주었다. 그리고 북방에서 오는 길에 신부를 만나 서신을 전하고 함께 오라고 말해두었다. 신부는 겨울이 오기 전에야 순주 땅을 밟았다. 기희언은 하루라도 빨리 신부를 집에 데리고 오고 싶었으나, 하필 중앙에서 온 새 현령이 부임하는 바람에 연회에 불려 다니느라 바빴다. 여관을 통째로 빌려 신부와 그 식솔을 머무르게 하였으나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라 기희언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는 혼례식 전날에야 현령의 연회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밤을 꼬박 지새운 기희언은 그대로 혼롓날 아침을 맞이했다. 기희언은 아랫사람의 시중을 받아 정결하게 씻고는 혼례복으로 환복한 뒤 신부가 집 대문을 넘어오길 애타게 기다렸다. 늘 대문을 걸어 닫고, 객을 거부하던 기희언이었으나 오늘만큼은 사람들이 와서 혼례식을 구경하고 실컷 먹고 갈 수 있도록 넉넉한 음식과 답례를 준비해두었다. 헌데 신부는 무슨 영문인진 몰라도 늦은 오후 무렵에야 기희언의 집 대문을 넘었다. 화가 날 만도 하건만, 기희언은 싱긋 웃으며 신부를 맞이했다. 환하게 웃는 낯인 기희언과 달리 혼례식을 보러 왔던 객들은 할 말을 잃었다. 

북방의 취성에서 왔다는 그 신부는 커도 너무 컸다. 기희언은 그리 작은 편이 아니었다. 그는 관례를 치른 지 벌써 수년이 흐른 건장한 사내였다. 헌데 기희언의 신부는 그보다 더 컸다. 기 씨 공자의 눈이 멀어 버린 게 분명했다. 그는 신부가 태산만큼 큰 것도 모르고 실실 웃는 중이었다. 은밀히 시선을 주고받은 객들은 그저 혼례식이 끝나 답례를 받고 곧장 이 집을 떠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기희언은 신부와 합환주를 나눠 마셨다. 그 뒤에 신부는 신방으로 갔고, 신랑인 기희언이 사람들을 대접했다. 헌데 사람들은 기희언이 준비해둔 혼례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답례만 챙기고는 재빨리 떠났다. 

기희언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그간 이 집에 손님을 초대한 적이 없어 그러려니 할 따름이었다. 하물며 부친의 장례식도 조촐하게 치른 기희언이었기에 더 그러하였다. 사람들이 떠나자 기희언은 북방에서 신부를 따라서 왔다는 식솔들과 인사를 나눴다. 기희언이 알기론, 신부는 부모가 진 빚 때문에 곤궁한 처지라고 하였으나 꼭 귀족처럼 호위를 여럿 대동한 데다가, 그 호위들은 죄 무예가 뛰어난 무인처럼 보였다. 허나 혼인했단 기쁨에 잠긴 기희언은 그네들에게 북방에서 오느라 수고하였단 말을 할 뿐이었다. 곧 밤이 깊어지자 기희언은 신방에 들었다. 오랫동안 신부를 기다려왔기에 기희언은 신방 문을 열면서도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는 산초로 꾸민 침상 위의 신부 곁에 앉아 손을 꼭 잡았다. 기희언은 문을 열던 것보다 더 조심스럽게 신부의 손을 잡은 뒤 의아해했다. 신부의 손이 예상보다 큰 탓이었다. 손만 크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제야 기희언은 신부를 바라볼 수 있었다. 신부가 벗어둔 비단신도, 그리고 신부의 체격도 저와 비슷하다 못해-. 기희언은 잠시 말문이 막혀 눈을 깜박이다가 바로 신방을 뛰쳐나왔다. 월궁 항아보다 더 아름답다던 제 신부는 여인이 아니라 사내였다. 비단 체격의 문제가 아니었다. 목에 툭 튀어나온 것, 여인이라면 없어야 하는 것이 제 신부에게 있었다. 헐레벌떡 신방을 뛰쳐나온 기희언은 숨을 골랐다. 

그는 혼례복을 입은 채로 밤을 꼴딱 새웠다. 그리고 혼례를 도와준다는 이유로 찾아온 매파를 찾아갔다. 마침 떠날 채비를 하던 중인 매파는 기희언이 어제 그 차림 그대로 찾아온 것을 보고는 급히 찾아온 이유를 짐작한 듯했다. 기희언은 매파에게 따졌다. 

"부, 분명 미인이라 하였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미인이지요."

"헌데 나보다 손도, 발도 크고."

횡설수설하는 기희언과 달리 매파는 태연한 기색이었다. 

"북방의 사람은 본디 춥고 혹독한 곳에 살기 때문에 손발이 큽니다."

"후사를 이을 마음은 없지만, 내가 말한 것은 사내가 아닌 여인일세. 주, 중매금은 필요 없으니-."

"혼담을 파해 달란 말씀입니까?"

기희언이 창백한 낯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매파가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이미 합환주를 나눠마셨고, 또한 그를 지켜본 증인들이 수두룩한데 어찌 백년가약 맺은 신부를 그리 매정하게 파하려 하십니까? 이 사람은 공자께서 미인을 원한다고 하여 소신껏 하였습니다. 이 운국에서 그보다 아름다운 미인은 없을 것입니다."

하도 어안이 벙벙하여 말문이 막힌 기희언은 바깥의 소란스러운 인기척에 문을 열었다. 그곳엔 혼례복을 신부가 엎드려 우는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는 시늉 하는 중이었다.

"낭군님의 약조만 믿고 먼 북방에서 왔는데 어찌하여 저를 바로 소박 맞히려 하십니까? 제 지참금은 전부 숙부께서 가져가셨기에 식솔을 데리고 북방으로 되돌아가도 이 가련한 몸 하나 의탁할 곳이 없습니다."

가련? 저 체격으로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기희언은 정신이 흐릿해졌다. 

신부는 온 집안에 다 들리도록 흐느꼈다. 그러자 잠에서 깬 아랫사람들이 나와서는 제 주인과, 아무리 봐도 소박맞은 듯한 신부를 번갈아 보며 주인을 경멸하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기희언은 실로 억울하였으나 아무리 봐도 제가 신부를 소박 맞힌 꼴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신부가 사내라고 밝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온 순주 땅에 기희언이 혼인하였단 소문이 퍼졌다. 이 운국에서 제일가는 미인을 신부로 맞이하였다는 소문이 현령의 귀에도 들어갔는데, 그런 신부를 북방에 돌려보낸다고 하면-.

"이, 일단 일어납시다."

기희언이 손을 내밀자 신부가 눈물을 닦는 척하며 물었다. 

"저를 대문 밖으로 미실 의중입니까?"

"그,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요?"

"저, 저는-."

"첫날밤에는 저를 소박맞히고 나가시더니, 이젠 저를 이 집 밖으로 내쫓으시려고요?"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진 기희언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기희언은 얼핏 마주한 신부가 매파의 말마따나 무척 아름답다고 느꼈다. 사내라고 인식한 것만 아니었어도 기희언은 그저 넋 놓고 홀려 있었을 것이다. 기희언은 신부에게 말했다.

"우, 울지 마십시오."

"허면 북방에 있는 친정으로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약조해주세요."

기희언은 차마 말문을 떼지 못했다. 신부는 그런 기희언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약조해주세요."

그 목소리가 어찌나 스산한지 기희언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야, 약조하겠습니다."

기어코 약조를 받아낸 신부가 어여쁘게 웃더니 냉큼 일어나 기희언에게 손을 내밀었다. 구경하러 나왔던 사람들은 어디로 간 것인지, 이곳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기희언은 신부의 손을 잡고 일어나면서도 무어라 말을 잇지 못하였다. 제 욕심에 제가 당한 꼴이었다. -허나, 그저 미인과 혼인하여 부부의 연을 맺길 바란 것뿐인데 무엇이 그리도 죄였는지. 기희언은 무언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단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기희언은 잘못 걸린 게 맞았다. 신부는 여인이라 속인 것도 모자라,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기희언의 신부는 부황과 모후를 차례로 잃은 후, 숙부의 간계로 인하여 황위를 찬탈당하고 급히 도피하여 신분을 위장한 황태자, 서주단이었다. 

1차 BL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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