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는 문화사의 고전이며, 저자인 부르크하르트는 당연하게도 문화사가로 불린다. 우리는 이제 이것을 문제삼아야 한다. 부르크하르트는 제1부 “인공물로서의 국가” 서론의 서두에서 문화사(Kulturgeschichte)의 본질적인 탐구대상이 “거대한 정신적 연속체”(ein großes geistiges Kontinuum)라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문화는 특정 인간 집단에 위력을 발휘하는 거대한 정신적 실체이면서 선행하는 시대의 정신적 실체와의 연관 속에서 특정 시대에 규정적으로 나타나는 연속체인 것이다. 주지하듯이 부르크하르트에서 역사를 움직이는 역동적 힘들은 국가, 종교, 문화이다. 그런데 이 힘들은 동등한 위력을 가지지 않는다. 문화는 앞의 두 가지와 이질적인 것이면서도 우위에 있는 힘이다. 앞의 두 가지가 전경前景에 있는 것들이라면, 문화는 배경에 있으면서도 그것들을 형성해내는 이념적인 것이다. 


부르크하르트의 문화 개념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의 세련(refinement), 프랑스의 문명(civilisation)과 스스로를 구분하려는 도이치적 사상 전통의 산물이다.* 도이치 사상가들은 특히 로코코의 인위적 화사함과 잉글랜드 국교회의 정통집착적 투박함,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자신만만함에 대립각을 세워 음울해보이기 십상인 깊은 관상과 로만틱한 열정의 기묘한 결합†이라는 이념을 만들어 놓았고 이것이 19세기에 이르러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의 탐구대상으로 등장한 것이다. 


거의 모든 이가 내면의 경건함을 가지고 있을 도이치의 사상가들에게 세계의 현상 배후에 있는 힘은, 명확하게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었기에 새삼 탐구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과 세계의 목적으로 관철되어 있는(durchgehen) 신의 섭리(providentia, Vorsehung)이다. 그런 까닭에 세계의 배후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힘을 연구하고 그것을 설파하는 것은 문화사가의 과제가 아니라 신학자와 사제의 숭고한 소명이었다. 볼테르에서 시작하여 헤겔에 이르러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은 역사철학이라는 학문 또한 역사를 학으로서 정립하려는 시도에서가 아니라 역사의 배후에 있는 힘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된 것인데, 볼테르는 신의 섭리를 계몽주의의 이념에서 도출되는 과학의 법칙으로, 헤겔은 순정한 것으로 정화된 사변적 절대적 이념으로 대체하려 하였으나 신학과 무관한 학문으로서의 완전한 성취에 이르지는 못한 상태였다. 물론 학으로서의 역사학의 사정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으니 랑케는 역사학 고유의 방법론‡을 확립하여 이른바 근대적 역사학을 개창하였으나 그의 학문이 섭리라는 목적론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르크하르트를 아우구스티누스와 유사한 ‘신학적 역사가’라 불러도 무방한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부르크하르트와 동갑인 마르크스의 작업들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는 사회경제사의 주제와 방법을 창시함으로써 역사학에 기여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의 한 구절을 보자: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지만 자기 마음대로 만들지 않거니와, 자신이 선택한 환경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주어진,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환경에서 만든다.”(MEW., Bd. 8, S. 115) 인간은 역사를 만든다 — 역사를 만드는 진정한 주체로서의 인간을 천명한다. 인간은 물려받은 환경에서 만든다 — 그러나 인간의 역사만들기는 환경의 제약을 받는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 환경의 핵심은 경제적 요소, 인간의 삶이 영위되는 사회의 물질적 생산의 구조였다. 마르크스는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서 나타나는 행위의 패턴, 즉 가족구조, 일상적 행동, 사회적 공간을 배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 간단히 말해서 문화적 요소를 ‘정신적 상부구조’(die geistige Superstruktur, Überbau)라 지칭하면서도 그것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이데올로기’라 치부하면서 무시하여 버렸다.‖ 경제적인 것이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듯이 인간의 문화는 환경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데 마르크스는 이를 정교하게 다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사섭리 또는 목적론적 형이상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하였다.


부르크하르트의 문화사는 마르크스가 외면한 것, 즉 상부구조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탐색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즉 마르크스와 부르크하르트는 정치사, 왕조·국가사와는 대립되는 또는 별개의 영역인 사회사를 창시하여 전자는 사회경제사를 후자는 사회문화사를 정립한 것이다. 더욱이 부르크하르트는 스승인 랑케의 역사학 방법론을 계수하면서도 목적론적 역사철학을 배척하여 이른바 세속적 역사학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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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ultur 개념, 그리고 그것의 변형태로서의 Bildung(도야, 교양)이 도이치인 스스로 발명해낸 것이 아님을 유념해두어야 한다. 이 개념의 성립에 관해서는 ⟪철학 古典 강의⟫, 32강 “판단력의 연원”을 참조할 수 있다.


† 이 결합의 널리 알려진 산물이 교양소설(Bildungsroman)이다.


‡ 랑케의 방법론에 관해서는 앤서니 그래프턴의 ⟪각주의 역사⟫를 참조할 수 있다. 이 방법론은 학으로서의 역사를 정립하려는 노고와 관련되어 있다. 시공간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불변의 진리들로 이루어진 수학, 시공간에 놓여 있어서 관찰과 실험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진리를 산출하는 과학과 달리 확인불가능한 시공간에서 벌어진 우연한 사건들을 이야기하는 역사가 왜 학문이 되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심각한 난문이다. 역사학이 제시하는 수준의 근거조차도 갖추지 못한 철학의 학적 성립가능성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 역사학에게 이러한 것들에 관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학문은 사회문화인류학이다. 존 모나한과 피터 저스트가 공저한 입문서인 ⟪사회문화인류학⟫의 목차만 보아도 사회문화인류학이 얼마나 기초적인 학문인지를 알 수 있다.


‖ 이념적인 것 일반에 대한 마르크스의 경시는 정치철학, 좁게는 규범적 권력론의 결여, 윤리학적 정초의 결여 등을 수반하였으며, 이는 유토피아 구상과 더불어 잔혹한 후과를 초래하였다.

철학 선생 /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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