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가 옆으로 돌아간 피부가 홧홧하게 달아오르며 아릿한 통증이 일었다. 진짜 얼굴은 건드리지 말라니까. 얼마나 세게 친건지 골까지 울리고 귓가에 삐이, 하고 소리가 맴도는 감각에 동현은 휘청이는 다리 위로 힘을 잔뜩 주어보았다. 


"사람 망신을 주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철은 언제 들거냐."

"신부가 도망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유난이세요."


이제는 안맞을거라는 신념으로 날아드는 재떨이를 가볍게 피한 동현이 입매를 슬쩍 올리고는 입안에 고인 피섞인 침을 휴지에 뱉어낸다. 아니 진짜 신부가 도망친 것도 아니고 신부 동생이 그냥 결혼식 참석 하기 싫어서 도망친걸 가지고 왜 이 난리를 부리는지 모를 일이다. 뭐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결혼식장 주변에 배치한 삼촌들을 다 저 하나 잡는다고 굴린 건 미안하게는 생각한다. 아니, 근데 진짜 왜 굳이 그렇게 잡냐고. 나 결혼식 보기 싫다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 결혼식에서 동현은 신부 남동생이 아니고 신부가 되고 싶었다. 그러기엔 저는 여자도, 알파도, 오메가도 아니라 그럴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베타라고 무시하던 다른 새끼들과 다르게 저한테 제법 다정하게 대해준 웅과 결혼하는 사람이 김다정보다는 자기가 낫지 않나하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진짜 저가 김다정보다 못한건 베타라는 거 하나 뿐이다. 아, 그게 존나 크구나. 

어쨌거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베타 아들이 늘 못마땅한 아버지는 이번에 결혼식장에 저가 얼굴도 안 비치고 도망갔다는 사실에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그니까 전웅이랑 내가 결혼한다니까. 뭐 식장에서 나가는 길에 전웅이 그렇게 아끼다 못해 물고 빤다는 박우진을 만났는데 기분이 진짜 아, 말도 못하게 구렸다. 저보다 배 이상으로 구린 기분을 한 얼굴에 조금 동정심이 생기긴 했지만. 어차피 김다정은 지 애인이 있으니 전웅이 박우진이랑 붙어먹건 말건 신경도 안쓸테니 어쩌면 둘이 결혼하는게 이래저래 깔끔할지도 모르겠다. 아마 저가 전웅이랑 결혼했다면 박우진부터 조졌을거다.  


"씨발, 여기가 어딘데, 도대체."


이럴거면 그냥 몇 대 더 때리던가 왜 이런 깡촌에 보내는 건데. 동현은 바닷가 근처에 덩그러니 놓여진 후줄근한 외양의 삼층짜리 건물을 바라보며 담배를 찾던 손을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끊는다고 안가지고 다니는데 그 대체할 만한 사탕도 안가지고 왔다. 그래도 묻으려고 하는 건 아니라 다행이네. 갑자기 이른 아침부터 저를 차에 태우고 어디론가 가길래 나는 영감탱이가 미쳐서 저를 묻으려는 줄 알았다. 그래 이제 대기업 사위도 얻었는데 범법행위는 저지르면 안되지. 그렇지만 이 건물은 누가 봐도, 신분 세탁하고 해외로 나르기 직전에 잠깐 삼촌들 머물게 하는 곳 같은데. 


"나 해외 보낸데?"

"그냥 거기서 정신 수양 좀 쌓으시랍니다."

"영감탱이가?"

"네."

"아 진짜 미쳤나봐!"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구질구질한 건물을 한번 쓱 둘러본 동현이 아버지에게 통화를 시도하려했지만 영감탱이가 받지도 않는다. 김다정 분명 전웅이랑 오래 안가 이혼할거고, 그 뒤로 저가 전웅이랑 결혼할거라는 개소리 좀 했다고 이러기냐. 진짜 미치겠네. 


"한달만 있으시라고 합니다."

"한달만? 삼촌, 당신 여기서 한달 있을 수 있어?"

"죄송합니다."

"여기서 뭐 씨발, 나 뭐하라고? 그거 내 짐 챙겨온거야? 아냐? 여기 두지마. 삼촌!!!"


아 씨발 오는 내내 아무 생각 안하고 잠만 자서 난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른단 말이야. 동현은 갑자기 닥친 상황에 눈앞이 컴컴해져서는 울고 싶은 기분이다. 지금 나 그럼 베타라서 그런거야? 씨발, 그 이유 하나 밖에 없다. 영감탱이는 주제에 저와 김다정 말고도 혼외자식 놈들도 몇 되는데 걔들한테도 이렇게까진 안한다. 그냥 저가 베타라 이렇게 막대하는거다. 씨발 눈물나네. 분을 이기지 못해 엄마에게 전화를 해보지만 그냥 아버지 말이나 잘 듣고 정신수양이나 하고 오란다. 아니, 김다정 결혼식에 참석 안한게 그렇게 잘못이냐고! 

바다비린내로 가득한 방구석(이라고 하기엔 제법 크다)에 드러눕다 잠이 든 동현이 눈을 번쩍 뜨고는 어둑한 주위에 그제야 몸을 일으켜 휴대폰 시계를 확인한다. 조금 잔 것 같은데 왜 벌써 아홉시냐고.


"존나 배고파."


그러고보니 어제 저녁이후로 지금까지 먹은게 하나도 없다. 밀려드는 허기에 벌떡 일어난 동현이  대충 슬리퍼를 발에 밀어넣고는 질질 끌면서 계단을 내려간다. 아까는 몰랐는데 식당이 있나, 제법 맛있는 냄새가 피어오른다. 


"인...어 식당?"


허물어진 싸구려 간판과 정말 어울리지 않은 인어라는 명칭에 동현의 잘생긴 눈썹이 꿈틀댄다. 뭘  파는 건지는 모르지만 대충 사이즈를 보니 기사 식당 같고, 내키진 않지만 먹어보기로 한다. 


"...여기 아직 해요?"


아니 사람이 들어오면 보통 어서오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거나 장사를 안하면 그냥 가라고 말이라도 하지 않나. 동현은 눈 앞에 떠억하고 나타난 저보다 키며 등치가 큰 사내를 보며 목울대를 일렁인다. 


"장사 하시냐구요."


절레절레. 가로저어보이는 고개에 동현의 입술이 뭉그러지면서 고개가 옆으로 갸우뚱해진다. 척 봐도 저보다 나이가 좀 많아 서른줄은 되어보이는데 귀여운 척하는 건가 싶은거다. 


"저기요, 사람이 말을 시키면 대답을 해야죠. 지금 나 슬리퍼 끌고 왔다고 무시하는 거에요? "


알파 혹은 오메가 형제들 사이에서 큰 김동현은 크고 잘빠진 몸에 잘생긴 외양을 하고도 베타라 무시를 당해 자격지심이 상당했는데, 이 성향을 최대한 누르고 살아보려 애를 쓰지만 꼭 이럴때마다 찌질하게 이딴식으로 말이 멋대로 튀어나가는 거다.


장사 끝났습니다. 


누렇게 빛이 바랜 일수 메모지에 대충 연필로 휘갈긴 글씨에 동현은 어쩐지 더욱 착잡한 기분이 되어버린다. 지금 나랑 말 섞기도 싫은거야?


"저기요, 이거 뭔데요?"

"....."


아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동현은 되묻는 저에게 누런 메모지만 들이대는 그를 보며 한숨을 쉬며 앞머리를 꾹 쥐어올린다. 아니 오늘 일진 왜 이렇게 사나운데? 


"말 못해요? 사람이 말을 시키면 말을 해야지, 무슨 종이 쪼가리만 들이밀고 있어요?"

"임사장, 오늘 우리 다람이 밥 좀 받아가도, 총각, 방금 뭐라고 그랬어?"


아니 또 이 상황은 뭔데. 동현은 인상 좋게 들어오다가 저가 하는 말을 듣고는 팔을 걷어붙이는 아주머니의 행동에 놀라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만다. 그러자 팔을 뻗어 슬그머니 제 옷깃을 당겨 뒤로 오게 한 그가 다시 메모지를 들어 무언가를 적기 시작하는거다. 노안이 있는지 메모지를 들고 저만치 떨어져 보던 아주머니가 그래도 영 마뜩찮은 얼굴을 하고는 저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거다. 아니 진짜 뭐, 내가 잘못했다고.


"임사장이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그냥 갈게. 다람이 밥은 매번 고마워."


다람이는 뭐고 뭐라고 했는데 절 죽일듯이 바라보던 아줌마가 그냥 가는 건데? 의아한 눈을 하고 임사장이라 불리우는 남자를 올려다본 동현의 도톰한 입술이 달싹인다. 


"뭐라고, 저 아줌마한테 말한 건데요?"


알아서 한다구요. 

저 그리고 듣는 건 되는데 말을 못해요.


"아."


김동현 그냥 나가 죽어라. 칼에 베이기라도 한건지 굵직한 손가락에 붙은 밴드를 바라보던 동현이 고개를 들어 그제야 왼편 목부터 시작해 턱까지 이어진 상처를 바라보곤 입술을 꾹 다문다. 꼭 뜨거운 불덩이라도 삼킨 기분이다. 


"아니, 저, 미안해요. 진작 말 해주지, 아, 말을 못한다고 했지, 아니 그럼 막 얼른 써주던가, 아 그것도 내가 막 지랄했지, 아, 진짜, 이거 어떻게 하냐, 진짜 미안해요. 아, 미치겠네."


아니, 지금 웃을 때야? 남은 미안하고 머쓱하고 쓰레기 된 기분에 미치겠는데 왜 웃냐고. 씨발 웃는거 존나 왜 이렇게 잘생긴건데. 동현은 당황해 주절대며 떠드는 저를 보며 작게 웃음을 터트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푹 숙이고 마는거다. 


"아 뭐요."


가게 문은 닫아서, 다 정리 했는데. 배고프면 라면이라도 끓여줘요? 


"...돈 낼게요."


뭐 이런 천사가 다 있어. 후줄근한 하얀 반팔 티가 천사들이 입는 옷처럼 보이는 건 진짜 저가 배고파 미쳐서 그런거겠지. 동현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그럴 필요 없다는 듯 손을 내저어 보이는 남자의 부드럽게 올라간 입매를 보며 다시 고개를 푹 숙인다. 미친, 생긴거 존나 취향이야. 


"잘 먹겠습니다."


돌아오는 목소리는 없지만 동현은 제 말에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뒷정리를 하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잘익는 라면을 후후 불어본다. 아, 진짜 나 라면 꼬들한거 좋아하는 거는 어떻게 알았지. 후루룩,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입가에 붉은 국물을 묻히는 것도 모르고 야무지게 먹는 동현의 입술사이로 알수없는 노래들이 흥얼대며 나온다.


"아, 괜찮은데."

"....."

"어, 응, 잘먹을게요. 저 밥 말아 먹는거 좋아해요."


사실은 라면에 밥말아 먹는 것보다는 그냥 라면 3개 즈음 넣어 면을 많이 먹는 걸 더 선호하는 편이지만, 동현은 제 앞에 놓인 하얗게 김이 나는 뽀얀 밥을 보고는 침을 꿀꺽 삼킨다. 이 사람 진짜 좋은 사람인가봐. 


"어, 이거 안받으시면 안되는데."


고집 되게 세네. 못해도 5천원은 받았으면 좋겠는데 끝까지 안받는다며 손을 내저어보이는 남자를 본 동현의 입술이 다시 꾸욱 일자로 다물린다. 그냥 좀 받지. 말 못하냐고 하는 것도 존나 미안해 죽겠는데.


"이거 안받으시면 제가 나중에 밥 산다고 하면서 개수작 부릴거에요."

"......."

"나 남자 좋아해요. 임사장님 내 타입이고. 나같은 애가 꼬셨으면 좋겠어요?"


뭔 개소리야. 돈을 안받는다고 이런 개소리까지 굳이 할 필요가 있었나 싶지만, 자꾸 고집을 부리니 방도가 없을 뿐이다. 이러면 안받는다 소리 안하겠지.


뭐 사줄건데요.


욕이라도 적나 싶어 슥슥 연필로 무언가를 적어내리는 머리통을 바라본 동현이 손에 쥐어진 메시지를 보고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다. 아니 뭐야, 진짜. 


"아, 지,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이러면 막 거절하고 그래야하는거 아니에요?"


장난으로 한 말이에요?


"그건, 아, 응, 그러니까, 아뇨. 그건 아닌데. 먹고 싶은거 생각해요. 임사장님 먹고 싶은거 내가 사줄거니까."


지나치게 맑은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임사장의 시선에 동현이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키며 그대로 뒤를 돌아선다. 사실 그러고보면 저가 이 건물주고 세입자라 그런 말을 하면서 그냥 좋게 이야기 해도 되었을 것을 뭐 남자를 좋아하니 마니, 그쪽이 취향이니 이딴 소리를 하고 만거다. 후다닥 나온 저를 잡지도 않은 손길에 어쩐지 서운해지고 만 동현이 두어걸음 물러나 다시 허름한 간판을 바라본다. 인어식당. 어쩐지 말을 못하게 되어버린 인어공주가 떠올랐다. 물론 공주가 저렇게 덩치가 산만한 사람은 아니겠지만. 

저가 한달동안 살아야하는 이 곳의 지명이 인어군이라는 사실을 알 게 된 건 집에 올라가 내일 날씨를 습관처럼 찾아본 후였다. 그럼에도 인어식당이라는 간판과 목부터 턱선까지 주욱 그어진 임사장의 오래된 상처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참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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