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란 우스운 것이다. 굳이 상처를 내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니까. 이 행동의 심리는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뿌리박힌 '나는 이래야 마땅한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스스로를 소중히 하기보다 더욱 몰아세우고 밀어부치고 채찍질을 하는 것이 언젠가 편해진다. 처음에는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 요인, 사람들이 미치도록 증오스럽고 미웠지만 그것도 어느 순간에는 상처받은 자의 의미없는 울부짖음에 불과한 것을 깨닫는다. 그 후는 모든 표적이, 모든 원인이 자신에게로 돌아가버린다. 이성적으로는 어느 하나 모르는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이해심이라는 포장을 씌워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모든 짐을 짊어진다.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나는 어느정도 괜찮은 사람이 되어있다. 과거의 찌질하고 한심하고 무능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책임감과 의무로 무장한 충실한 사람이 서있다. 주변에서는 박수갈채를 보낸다. 적당한 충언과 지적 그리고 계속되는 임무들. 나는 언젠가부터 남들에게는 빛나보였다. 정작 스스로의 이상은 언제나 영원히 채우지 못한 채. 바벨탑을 쌓으며 언젠가 하늘에 닿기만을 바라는 어리석은 그 시대의 사람들처럼 난 항상 그것만을 바라볼 뿐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내 거대한 탑만을 보고 만족하고 환호한다. 나느 또다시 묵묵히 탑만을 쌓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탑은 무너지고야 만다. 나는 또 신의 심판을 받은 오만한 죄인으로서 사지가 찢기고 분쇄되어 온 세상에 흩뿌려진다. 그러나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어차피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거든. 나는 내가 철저히 부서지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난 내가 행복하길 바랬던 적이, 나를 사랑했던 적이 한번도 없었으니까. 단 한 순간도 마음이 온전히 살아갔던 적이 있었나. 하루하루 나의 고질적인 고통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채찍질해왔고 다수에게 몰매를 맞았던 기억밖에 없는데. 하지만 내가 지금 가장 고통스럽고 동시에 무력감이 드는건 지금까지 몸부림쳐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흘린 땀과 피들이 모두 한낮 의미없는 자해의 결과물에 불과했던 것. 어릴 때부터 난 심하게 손과 발을 물어뜯었다. 살이 다 벗겨지고 빨갛게 들어날정도로. 일상생활에서 느껴질 정도로 아픈 적이 많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정신적인 고통에 비하면 이정도야 아무렇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날은 이것을 알게된 어른들이 날 심하게 나무랐다. 그 이후로도 항상 이 점에 대해서 걱정하셨다. 그당시 나는 이해를 잘 못했다. 이건 단지 나의 나쁜 습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반응들이 너무 오버스럽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것이 심각하단 것을 조금이나마 자각한 때는 아버지가 내 앞에서 내 손을 잡고 울고 계셨을 때이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의식을 하고 고치려고 노력했다. 그 습관은 아직도 남아있지만 이젠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상관이 없다. 어차피 나는 항상 생각하고 느끼는 1분 1초 마다 나를 자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자아를 끊임없이 죽이고 괴롭히고 채찍질해가며 자해하고 있기에. 몸의 상처는 아물고 흉터로라도 여물지만, 자아의 상처는 낫지도 않고 그저 그대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렇게 언젠가는 죽고 또다른 자아를 세우고 또 죽이고 이것의 반복만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까지 내 인생의 전부이다.

시, 에세이, 책, 소설, 잡글 등등 글쓰는 사업가 겸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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