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


 엉덩이가 한차례 들썩거렸다. 비포장 도로 위의 마차, 그 흔들림은 알아서 상상하길 바란다.


“……..”


 난 말없이 내 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필요한 거라도 있으십니까?”


 마주 앉은 남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정중히 물어왔다.


“아뇨. 괜찮습니다. 조금 흔들려서…”

“금방 도착합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네.”


 다시 마차 안은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울렁대는 속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며 방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건 루틴과의 불편한 대화를 끝내고 터덜터덜 내 방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은희! 여기 있었구나!”

“크리스?”


 내 방 앞에 서 있는 건 크리스였다. 그는 나를 찾았던 것 같았다. 오늘은 피곤했기에 이만 쉬고 싶었건만 크리스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듯 나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에요?”

“지난 번 말했던 조사단에 너도 같이 갔으면 해.”


 잠시 기억을 뒤져 바튼 씨가 말했던 조사단에 대한 내용을 떠올렸다. 분명 그 조사 결과에 따라 운이 좋으면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주문을 찾을 수 있다고 했었다.


“제가 같이 가도 되는 거에요?”

“고대어를 읽을 수 있는 이가 같이 가면 분명 더 많은 걸 찾아낼 수 있을 꺼야. 다만 같이 가려면 신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한가지 생각해 둔 게 있어.”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말하는 걸 보아하니 이미 난 가는 걸로 정해졌나 보다.


“은희 네가 스승님의 양녀로 들어가는 거야. 외부적으로는 넌 스승님이 재야에서 발굴한 인재로 이야기 할 꺼야.”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바튼 씨의 양녀로 들어가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튼 씨 같이 좋은 분이 양부가 되어주신다면 이곳에서의 생활이 한결 수월할 것이다. 분명한 신분도 생기는 것이고. 하지만 난 곧 떠나야 하는 사람이다. 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이곳에 깊이 관여하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 않을 듯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통로에 본격적으로 발을 딛는 기분이었고, 조금 불안해졌다.


“괜찮다면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나요?”


 그의 갈색 눈을 마주했다. 내가 들어가는 곳이 어딘지는 대강이라도 알아야겠다.


“외부인인 나에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부분 이외의 일반적인 부분이요. 저도 상황을 알아야 대처를 하지 않겠어요?”


 그가 거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으나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튼 씨가 처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바튼 씨와 대립하고 있는 안톤이라는 학자와 그의 추종 세력들에 의해 방해 받고 있는 조사단의 상황까지.


“이렇게 된 상황이야.”

“그렇다면 제가 좋은 카드네요. 그런데 그 쪽에서 고대어 외의 제 기본 능력에 대해 꼬투리잡지 않을까요?”


 크리스가 씨익 웃었다. 아, 뭔가 불안한데.


“그래서 내일부터 특훈이야.”

“네?”

“일단 오늘은 스승님의 집으로 가서 쉬어. 내일부터는 많이 피곤할 거야.”






 이렇게 된 것이다. 생각하는 사이 마차가 멈추어 섰다. 바튼 씨 댁에 도착한 것 같다.


“내리시지요.”


내 앞의 남자는 먼저 내려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어색하게 그의 손을 잡고 내린 나는 그의 안내를 받아 자그마한 저택으로 들어섰다.

 바튼 씨가 왕궁학사라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으리으리한 집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수수한 집이었다.


“은희 양.”

“아, 바튼 씨!”


 현관에 들어서자 안에서 바튼 씨가 날 반겨주었다.


“크리스에게 이야기는 들었지요? 갑자기 이렇게 결정되어 버려서. 미리 상의 못해서 미안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크리스에게 자세한 내용은 들었어요.”

“앞으로 같이 지낼 시간이 많아지겠군요. 잘 부탁합니다, 은희양.”


 살짝 목례하는 그를 보며 손사래를 쳤다.


“말을 놓아주세요. 이제 제 양부신데 딸에게 존댓말 쓰시면 안되지요.”

“흠, 그럼 그러자꾸나.”


 마주잡은 바튼 씨의 손은 따뜻했다. 그 온기에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과 편하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혼란스럽게 섞였다.

 불안감이 스멀거렸지만 그의 온기가 그것을 다독거리는 듯했다.


‘그래. 잠깐이야. 나쁜 사람은 아니니, 잠시 머물다 가자.’









 훈훈한 것도 잠시, 그 다음날부터 조사단에 들어가기 위한 특훈이 시작되었다.


“네? 이걸 다요?”


 내 앞에 있는 것은 책 무더기. 앞으로 한 달간 이걸 다 공부해야 한단다.


“그래. 일단 가장 시급한 글부터 시작하자꾸나.”


 그렇게 고3 보다는 물론이고 대학생 때보다 더한 공부 지옥이 열렸다.






 한 달은 지겹고 느리게 흘러갔다.

 공부를 하면서 새롭게 느낀 것은, 이 세계와 난 분리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머리카락도 자라지 않았고 생리도 없었다. 기본적인 생리현상은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심지어 손톱도 자라지 않았다.

 마력에 저항하는 능력이라는 항마력이 있는 것도 이 세계와 내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 그런 것만 같았다.

이질적인 이곳에 대한 생각을 제외한다면, 가장 힘든 순간은 처음 글을 배울 때였다. 새로운 언어를 단기간에 익혀야 하니 모조리 다 외우는 수 밖에 없었다. 하루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아침 6시에 시작해서 저녁 12시까지 계속 공부 아니면 쪽지시험을 보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순은 한글과 동일한 형태라는 점이었다.


 언어라는 큰 산을 어찌어찌 넘고 나니 이번에는 역사라는 해일이 밀려왔다.

 양아버지인 바튼 씨가 고대사 학자인데다가 고대 유물 조사단에 들어가야 하는데 역사적인 상식이 없다는 게 들통이 난다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아르의 역사는 아주 신기했다. 아르는 아이카-삼국시대-아카-아르로 이어지는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데, 삼국시대부터 대국 첸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주고 받아왔고, 아카 말기에는 옆 나라 제로스의 식민 지배를 겪었다. 강대국 사이에 낀 소국의 설움이 느껴져 조금 마음이 짠해졌다. 그리운 우리 나라도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기 때문에.


 그러고 보니 공부하러 아버지 집으로 들어오고 나서 에린과 루틴은 보지 못했다. 내가 조사단의 마지막 멤버로 들어갈 예정이라는 건 굉장한 보안을 요하는 정보인 건지 여기 들어오고 아버지와 크리스, 그리고 언어 스승님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무슨 권력의 암투 한 가운데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에이 그래도 학자님들인데. 배우신 분들이니 서로 막 죽이고 이러지는 않을 꺼야.’


 학자들간의 권력 다툼이라고 해 봤자 드라마에 나오는 왕족들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과는 다를 거라는 생각에 나름 안심하고 있었다.


“은희, 다 외웠느냐?”

“앗, 아버지 아뇨, 잠시 딴 생각을……”

“어허, 10분 후에 테스트 할 거니 외우거라.”


 잡생각은 그만하고 아카 시대의 왕족 계보를 외우는데 집중했다. 내 신세가 어처구니 없기도 했지만 이게 다 돌아가기 위해서이다. 돌아가면 잠부터 실컷 잘 것이다.

 난 전의를 불태우며 왕들의 이름을 노려보았다.








“폐하, 조사단 파견 예정일이 이제 일주일 앞으로 왔습니다.”


 머리가 시원하게 벗겨진 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분한 목소리로 왕 앞에 고하고 있었다. 긴 테이블의 상석에는 왕이 다른 이들보다 조금 높은 의자에 앉아 있었고, 테이블 앞 쪽에 크리스도 자리하고 있었다.


“허나 아직 조사단의 인원 조차 확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조사단을 제 시간에 못 꾸린다면 그거야 말로 왕국의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옵니다!”

“바튼, 진행 상황을 말해보시오.”


 왕의 말에 바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보고가 늦어져 송구하옵니다. 조사단 구성에 신중을 기하고자 하는 마음에 오늘에야 보고 드리는 신을 용서하시옵소서.”

“오호, 그렇다면 인원이 확정되었단 말이냐?”


 바튼의 말에 아까 말하던 대머리 학자와 몇몇 이들이 긴장했다.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후보를 거론하다니. 그들로써는 예상 못한 일이었다.


“본디 학자들 간에 상의를 거친 후에 보고 드리는 게 순서이나 이번 후보는 워낙 놀라운 능력을 가진 이라 폐하께 가장 먼저 보고 드리고 싶었습니다.”

“말해보시오.”

“고대어에 능통한 이옵니다.”


웅성웅성


 학자들이 술렁였다. 고대어란 아이카에서 사용한 언어로써 아직 제대로 해독된 부분이 없다. 아니, 주류 학자들 사이에서는 해독하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고대어 자체를 인정 안 하는 이들이 많다. 바튼은 이런 학자들의 분위기 때문에 공개적인 자리에서 터뜨린 것이다. 저들도 차마 왕 앞에서 고대어를 없는 걸로 취급할 수 없을 테니까.


“조용. 그 능력은 어찌 확인하였느냐?”

“폐하 말씀이 맞습니다. 아무도 읽을 수 있는 자가 없는데 그자가 진실을 말하는지 확인 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 동안 발굴된 동북부 지역의 글들을 읽을 수 있는지 확인하였습니다. 그 글이 발견된 곳과 상응하는 내용임을 확인하였습니다.”


 바튼은 그의 벽색 눈동자로 학자들을 훑어 보았다.


“그 아이 덕분에 고대어 해석에 큰 진전이 있었습니다.”

“미, 믿을 수 없소! 지금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는가!”


 다시 웅성거리는 학자들의 모습에 바튼이 손을 들어 주위를 집중시켰다.


“그러실 것 같아 이 자리에 데리고 왔습니다. 직접 보고 확인해 보시지요.”


 바튼은 왕을 보았고 잠시 생각하던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실의 화려한 문이 열렸다.








‘아 정말 미치겠네! 이 거추장스러운 옷은 대체 뭐야.’


 3일 전부터 갑자기 예절 수업을 하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왕을 보러 간단다. 덕분에 과하게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금색 장식이 되어 있는 화려한 문 앞에 서 있었다. 겉에서 보기에만 좋은 이 드레스는 입는 과정부터 굉장히 불편했다. 앉았다 일어나는 건 고사하고 걷는 것도 불편한 이 옷을 입고 어떻게 화장실은 가는지 모르겠다.


‘아아, 이래서 프랑스 파리에서 하이힐이 유행한 건가.’


 화장실 이용이 어려워 서서 일을 보았다는 비사를 들었을 때에는 더럽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입어보니 그 사람들로는 나름 최선이었던 것 같았다.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마침내 문이 열렸다. 난 표정을 다잡았다.


 크리스는 나에게 신비롭고 지적인 표정을 주문했지만 그게 뭔지를 전혀 알 수 없어서 머리 속으로 ‘신비롭고 지적인 표정’을 중얼거리며 들어섰다.


“……”


 문이 열릴 때만해도 웅성거리던 안의 분위기는 내가 들어서자 왜 인지 갑자기 조용해졌다. 순간 뭘 해야 할 지를 몰라 잠시 멈추었는데 크리스와 눈이 마주쳤다. 크리스는 미미하게 고개를 숙이며 나에게 인사하라는 싸인을 보내왔고 다행히 난 잘 알아들었다.


‘치마 양 끝을 잡고, 조심조심해서’


 인사하는 연습하다가 치마의 무게 때문에 몇 번 넘어질 뻔했기에 균형을 잡으려 애쓰며 인사를 했다.


“그대가 조사단의 마지막 인원 후보라 바튼에게 들었다. 맞느냐?”


 무거운 바리톤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가장 상석에 있는, 왕으로 보이는 이가 나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예. 은희 바튼이라고 하옵니다.”

“부모를 잃고 고아인 아이여서 제 수양딸로 들였습니다.”


바튼의 부연 설명에 왕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질문했다.


“은희, 자네가 고대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인가?”

“예. 어렸을 적 할아버지 서재에서 책을 보고 혼자 공부하여 터득하였습니다.”


 수십 번은 연습한 말이었지만 분위기 때문인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침착하고자 숨을 잠깐 들이 쉬고 말을 이었다.


“고대어는 모음과 자음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언어입니다. 관련하여 여기서 모두 다 말씀 드려도 되지만 귀한 시간을 뺏는 게 아닐까 염려되어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책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나보다 한 걸음 뒤에 있던 집사 아저씨에게 손을 뻗어 책을 받자 왕 옆에 있던 시종으로 보이는 이가 가까이 오더니 내게서 책을 받아 갔다. 왕이 책을 펼쳐보는 동안 침이 바짝바짝 말랐다. 바튼 씨,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파아란 그의 눈이 괜찮다고 말해오는 것 같았다.


‘이건 완전 면접 보는 분위기잖아.’


 생각해보니 그랬다. 왕이 사장님인, 조금 규모가 큰 면접이라고 생각하니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취업 준비 할 때 보았던 면접들 중에는 이보다 더 안 좋은 분위기의 면접도 많았었다.


‘할 수 있어. 떨지 말자.’


 면접관의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면접을 볼 때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쥐뿔(?)도 없지만 숨겨진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밀고 나가는 것.


 난 심호흡을 하며 움츠렸던 어깨를 폈다.








호흡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이번편은 조금 길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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