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간지럽지만 일단은 박지훈이 고르곤졸라인지 뭔지 하는 걸 먹고 싶다고 해서 여자와 남자, 이렇게 짝지어지거나 아니면 여자들끼리 온 사람들 틈에 유일하게 남자끼리 온 사람들로 섞이게 되었다. 가게 안은 분위기 조차가 자주 가던 그런 곳의 분위기와는 달랐다. 이런 곳은 데이트 하러나 오는 곳인 줄 알았는데. 평생 데이트 한 번 못 해 봤으니 와 봤을 리가 만무하다. 그래서 나는, 메뉴판을 하나 들고 밑에 적힌 설명이나 꼼꼼히 읽으며 독파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여태 뭐 하고 지냈어? 편지 주고 나서는 한 번도 못 마주쳤잖아."

"…… 아, 뭐, 네."

"시킬 거 정했어? 아니면 그냥 내가 알아서 시킬까?"

"아, 아니……. 네. 저 아무 거나 다 잘 먹어요……."


지훈이 형은 웃었다. 원래도 웃음기를 띈 입술이었지만, 확실하게 방금은 활짝 웃은 것처럼 입꼬리가 많이 올라갔다. 미묘한 차이가 아니어서 알아보기 쉬웠다. 눈치를 보며 박지훈이 주문을 하는 동안 나는 괜히 티슈로 손을 한 번 닦고 물을 마시고 다시 티슈로 손을 닦았다. 지훈이 형은 서버에게까지 친절한 웃음을 보여 주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본 박지훈과는 확연히 다르게. 나이를 이제 좀 먹고 군대도 다녀와서 그런가 싶었다. 의젓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지훈이 형은 서버를 보내고 바로 나를 다시 쳐다보았다. 나는 눈을 마주 보며 괜히 놀라지 않은 척 물을 계속 마셨다. 박지훈은 눈을 접어 웃었다. 나는 내가 말할 차례임을 깨달았다.


"어, 그냥, 이사 가서요. 아예 다른 구로요. 학교도 전학 가고, 그 이후로 페북도 안 하고요."

"페북은 왜 접었어?"

"그냥……, 이유가 없어져서요."


전학을 갔던 학교에서 나는 페북스타로 일약 스타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전학을 가면서 페북 계정에 업로드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다른 SNS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타임라인을 보고 태그에 답글만 다는 그런 일상을 반복했다. 친구들과 더 자주 어울리려고 무던히도 노력하고 그게 되지 않는 날이면 공부를 했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 적어도 공부를 할 때에는 누구도 나에게 간섭하지 않으려 들었다. 하지만 굳이 이런 긴 얘기를 나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편지를 주고 나는 박지훈을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으니까. 특히 이사를 가고부터는 더욱 그런 생각은 버렸다고 하는 게 맞을 거다. 말을 끝내고 무거운 침묵이 내려 앉았다. 나는 일부러 지훈이 형과 마주치던 시선을 물컵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정적의 사이에 음료수와 피클, 식기를 내어주러 서버가 다녀갔다.


"형은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솔직히 형이 궁금하지 않다고 하면 아주 거짓이었다. 나는 언제나 박지훈이 생각났다. 그렇게 자주는 아니지만 자주 생각이 났다. 그러면 문득 박지훈이라는 이름을 페이스북에 검색했다가 그냥 폰을 덮어버리고는 했다. 지훈이 형을 슬쩍 쳐다보았다.


"나는 너 가고 좀 사람처럼 지낼 수 있었어. 네가 낸 소문 때문에 그 전에는 좀 힘들었거든."


나는 그 말에서 죄책감을 확연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훈이 형이 잘못한 것이라고는 나에게 직접적으로 한 가해였지만, 나는 아니었다. 형을 그렇게 만든 건 나인 게 확실했으니까. 고양이 내가 그런 거 아니라는, 그 말 한 마디가 아직도 머릿속을 유영했다. 그건 이사를 가서도, 수능을 칠 때도, 졸업을 하고도, 군대를 가고도, 언제나, 매일 그랬다.


"괜찮아. 편지 보고 조금 이해해 주기로 했어."

"설마 그거 아직 갖고 있는 건 아니죠?"

"갖고 있지, 그거. 요즘도 우울할 때 펼쳐 봐."


박지훈은 웃었다. 예의 그 예쁜 웃음으로.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 버려요, 하고 지훈이 형은 아, 싫어요, 하고 그런 무의미한 장난들이 몇 번이고 오갔다. 나는 그제야 조금 긴장이 풀려 웃을 수 있었다. 어쩌면 형이 그 예전 사건에 대해 괜찮다고 했을 때부터.

식사는 느끼했다. 그렇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생전 처음으로 스파게티가 아닌 파스타라는 걸 먹으며, 형과 나는 옛날 얘기를 하고 유행 지난 얘기도 하고, 군대 얘기도 했다. 학교 생활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 형은 문득 생각난 듯 퍽 진지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유미랑 무슨 사이야, 근데."

"제 동기요?"

"그래, 술 자리에서 네 옆에 앉은, 걔."

"아아. 친한 애예요. 걔랑 제일 친했고 친해요."


형은 탐탁찮은 듯 몇 번 더 입을 떼려다가 그만 두었다. 나는 그 모양을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별 일이네. 형은 보통 할 말 안 할 말 다 하고 산 걸로 아는데. 그렇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왜 그러느냐고. 그냥 그러고 싶었다. 식사가 끝날 무렵이었다. 내가 남은 피자 한 조각을 입으로 가져가는데 형과 눈이 마주쳤다.


"근데 있지, 배진영."


형은 올곧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잘생기기는 빌어먹게도 엄청 잘생겼네. 형은 그렇게 나를 불러 놓고도 피자를 다 먹을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티슈에 손을 닦으며 형을 다시 쳐다보았다.


"…… 저번에 왜 말도 없이 갔어?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데."


생각보다 꽤 대단하지도 않은 물음이었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다섯 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간. 다시 지훈이 형을 보았다.


"왜요?"

"그 날 우리 섹스했잖아."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호기심은 고양이도 죽인다.

보람 씀






형과 그 뒤로 몇 번 실랑이가 오갔지만 결국 내가 그런 소리로 장난 치는 거 아니라며 화를 냈다. 형은 못 믿겠냐는 투로 그럼 우리 집에 가자고 했고, 나는 또 홧김에 그래요! 하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은 또 알 수도 없는 이유로 형의 집에 오게 되었다. 저번에 내가 필름을 몽땅 잃고 일어난 곳. 그 날 했다고 기어코 우기는데 알 수가 있어야지. 학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이를 갈며 형을 따라 들어갔다.


하지만 이어지는 상황은 아주 오래 전과 같았다. 형은 현관을 열고 내가 들어가자마자 신발도 벗지 않고 내게 입부터 맞췄다. 현관문으로 밀려 등을 벽에 박았지만 순순히 입술을 내주었다. 생각보다 오랜만이었다. 내 키스 실력은 늘지도 않고 오히려 줄은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형은 그때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았다. 나는 형의 어깨에 손을 올려 살짝 밀쳤다. 형은 밀려나지는 않고 고개를 뒤로 뺐다.


"형, 형, 잠깐만, 잠깐."

"하기 싫어?"


빤히 얼굴과 얼굴이 마주친다. 나는 형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결국은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잘생긴 얼굴로 싫냐고 호소하면 나는 어쩔 도리가 없어진다.

보람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