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9월 28일자로 무료 공개


 검은방 온리전 <그게나야 2013>에서 판매했던 류태현 x 허강민 단편 소설입니다. 검은방의 마지막 시리즈가 발매된 지도 벌써 6년이 지났고, 검은방 행사에 나간 지도 어언 4년 반이라 더 이상 실물로 판매할 일은 없을 듯싶어 유료로 웹공개합니다. 전체 내용의 1/3 가량은 무료로 공개되어 있습니다.

 Synopsis ::  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에 강민의 복수극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라는 설정을 전제로 하여 전개되는 태현과 강민의 이야기. 사고 이후 매일매일이 힘겹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은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 가고자 합니다. 커플링 책이지만 성애 묘사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A5 기준 총 30p, 전연령.


*  *  *


 집에 돌아오니 강민은 한창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태현이 돌아왔는데도 뒤 한 번 돌아보지 않았다. 언뜻 살펴본 도마 위에는 당근과 양파가 굴러다녔다. 다지고 있는 걸 보아하니 밥을 볶으려는 모양이었다. 강민은 손이 꼼꼼한 대신 속도가 느려서, 요리 자체보다는 재료를 다듬는 데 시간을 오래 썼다.

 “다녀왔어요. 간장도 사 왔고.”

 “잠깐만.”

 잠깐 물 쏟아지는 소리가 나더니 강민이 손의 물기를 털며 다가왔다.

 “영수증은 봉투 안에 있어요.”

 현관에 내려놓은 마트 봉투 안을 뒤적거리던 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은 그제야 신발을 벗고 집 안에 들어섰다. 좁은 거실을 가로질러 외투부터 벗어놓고 손을 씻었다. 나왔을 땐 강민이 막 양파를 썰고 있었다.

 “한참 걸려요?”

 강민은 대꾸도 안 하고 고개만 저었다. 태현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진지한 자세로, 도마 위에만 관심을 쏟고 있었다. 누가 보면 진수성찬이라도 준비하는 줄 알겠다. 태현은 빙긋이 웃으며 거실 소파에 앉았다. 도와줄 손은 충분했지만 어차피 강민이 거절할 것을 알기에 권하지도 않았다. 강민은 자기가 한 번 손을 댄 것에 남이 개입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설령 그것이 단순한 친절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더라도.

 소파 위를 굴러다니던 리모컨을 집어 TV를 켜자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다지 중요한 것도, 관심있는 것도 아닌 기삿거리들이었지만 태현은 눈을 줄곧 화면에만 고정시켰다. 텔레비전 소리가 작게 설정되어 있는 탓에, 간간이 이어지는 도마 소리가 아나운서의 멘트를 가로막곤 했다.

 불규칙하게 이어지던 도마 소리가 잦아든 것은 그로부터 뉴스 몇 개가 더 나가고 난 뒤였다. 태현은 애초부터 저녁을 빨리 먹으려는 생각 자체를 접고 있었기에 느긋하게 기다렸다. 조금 있자 슬슬 기름에 볶은 채소 특유의 향내가 났다. 이제 적당히 볶다가 밥을 넣고 간만 잘 맞추면 끝날 것이다. 때마침 거실 벽에 걸어둔 시계를 바라보니 6시 50분이었다. 강민의 손이 느렸다고는 해도 오늘은 평소보다 삼십 분 가량이나 빨랐다. 지금이 방학이기는 했으나 강민은 오히려 학기 중보다 바쁠 때가 많은 편이니 그야말로 양반이었다.

 식탁 유리에 그릇 부딪는 소리가 들렸다. 강민이 밥을 접시에 옮겨 담고 있었다. 태현은 얼른 리모컨을 들었다. 밥을 먹을 때는 늘 TV를 끄고 있었다. 두 사람이서 별 말 없이 먹는 저녁은 적적할 법도 했지만, 오히려 조용한 가운데 끼어드는 난삽한 말소리가 더 거슬렸던 탓에 이제는 TV 없이 식사를 하는 게 오랜 습관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태현이 돌연 주춤했다.

 전원 버튼을 누르기는커녕, 그는 시선을 TV 화면에서 떼지 못하고 있었다. 밥알을 흘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덜어내던 강민은 문득 의아함을 느꼈다. 그가 고개를 들어 태현에게 TV 안 끄고 뭐 하냐며 타박하려던 순간, 아나운서의 음성이 그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502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에서 원혼을 달래는 불교의식 천도재가 봉행될 예정입니다. 황보선 기자가 보도합니다.」

 태현은 리모컨을 든 채 어쩔 줄 모르고 그대로 굳어 있었다. 잠깐의 정적 직후, 화면에 7년 전 당시의 사고현장이 비치기 시작했다.

 강민은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 백화점의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내려앉고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은 태현뿐만이 아니었다. TV 화면에 건물의 잔해와 부상을 입고 얼이 빠진 사람들이 어지럽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강민이 입술을 깨무는 순간, 태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잠깐만 TV 켜 놓을게요. 괜찮죠……?”

 “……응.”

 강민은 이미 소복하게 담긴 밥 모양만 이리저리 다시 잡았다.

 「7년 전 이맘때 ○○백화점이 어이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사망 502명, 부상 937명, 30명은 시신을 찾지도 못했습니다.

 그 날 이후, 6년 만에 유족들이 스님들을 찾아왔습니다. 아직 이곳에 떠도는지 모를 원혼들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조계종 총무원에서는 502명의 위패를 세울 영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고일에 치를 의식은 불교식 제사의식인 영산재로, 불교 음악으로 원혼을 달래고 공양하는 의식입니다. 곧 37층짜리 고층 건물이 세워질 예정이어서 사고현장에서는 마지막이 될지 모를 진혼제가 되겠습니다. … 」

 애꿎은 밥만 주걱으로 꾹꾹 누르는 강민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머릿속에 교차하는 수많은 기억들. 잊고 싶어도 끝내 잊지 못할 핏빛 장면 한 컷 한 컷이, 영사기에 돌아가는 필름처럼 스쳐지나갔다.


* * *

 악몽 같았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가해진 충격에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떴을 때였다. 무너진 잔해 속에서 살려달라는 외침만이 누구의 입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게 울렸다.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을 간신히 버텨내며 몸을 일으킨 순간, 태현은 그만 넋을 놓았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있었다.

 소리는 잔해 밑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다리가 떨려 일어나지도 못하고 무릎걸음으로 기어가다시피 하여 다가가자, 목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의 목소리였다. 한 사람은 승아였다. 다른 한 사람은 누군지 모를 어린아이였다.

 급히 손을 쓰지 않으면 둘 모두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허나 태현은 곧 깨달았다. 두 사람 중 한 사람만을 먼저 끌어낼 수밖에 없었다. 잔인한 현실을 원망할 새도 없이 곧바로 선택의 기로가 밀어닥쳤다. 한쪽에서는 승아가 울부짖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어린아이가 손을 뻗으며 구해달라 애원했다.

 패닉에 빠진 머릿속에서 단 하나 명확했던 것은 이대로 시간을 끌다간 모두 죽는다는 것뿐이었다.

 먼지와 피가 엉겨 바닥을 긁어대는 손톱들. 그 가운데서 먼저 승아의 손을 붙잡았던 건 어떠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애초에 두 목숨을 저울에 놓고 누굴 구하는 게 더 합리적인지 따질 여유가 태현에게는 없었다. 그는 그저 자신에게 조금 더 소중한 사람의 손을 붙잡았던 것뿐이었다. 사실, 그 자리에서 합당한 이유를 세워놓고 승아를 구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끝내 알량한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았을 터였다.

 승아를 먼저 끌어내고서 태현은 미친 사람처럼 아이를 구하려고 달려들었다. 허나 이미 쓸리고 멍들어 곳곳에 피가 맺힌 손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태현은 승아에게 잠시 아이를 맡기고 잔해를 파낼 도구를 정신없이 찾아 헤맸다. 그러나 돌아왔을 때 아이의 울음은 이미 잦아들어 버린 뒤였다.

 그 뒤부터는 어떻게 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토록 절박하게 찾아 헤맸건만 도구는 조금도 소용이 없었다. 태현은 결국 도구를 내던지고 맨손으로 잔해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손톱에 피가 맺히다 못해 손바닥이 온통 피로 젖었을 때에도 태현은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느낄 수가 없었다. 아이는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으니까.

 아이의 몸을 짓누른 시멘트 덩어리를 치우기에 고작 두 사람의 힘은 턱도 없다는 것을 태현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러나 알면서도 아일 구해야 한다는 부질없는 발버둥을 멈출 수는 없었다.

 무력감에 울음을 토하며 몇 시간을 매달렸었다. 어디선가 들리던 소음이 점차 가까워지고, 마침내 까마득하기만 했던 구조의 손길이 닿았을 때에도 태현은 살았다는 안도감에 몸을 맡기지 못했다. 그 곳에서 살아남은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했건만, 기어이 아이를 끌어내지 못하고 접한 바깥세상은 차라리 잔해더미 밑보다 더한 지옥이었다.

 

 그 날 백화점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처음에 강민은 그 말이 의미하는 현실이 무엇인지 금방 깨닫지 못했다. 큰일이라고는 여겼지만,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날은 언제나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왔던 그에게 세상이 처음으로 발톱을 드러낸 날이었다. 평화로웠던 세계는 막내동생이 연락 닿는 곳 어디에도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점차 껍데기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 균열은 불안감이 커짐에 따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을 부풀리기 시작했고, 피를 말리는 하룻밤이 지나고 난 후 그가 연락이 온 병원에 도착했을 때에는 기어이 두 쪽으로 갈라져 그 안의 바닥 없는 지옥문을 열고 만 뒤였다.

 둘째동생은 군복무 중이었다. 부모님은 모두 막내를 찾느라 바깥을 헤매고 있었다. 연락 담당으로 집에 있었던 건 그뿐이었다. 병원으로 달려갈 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렇게까지 크게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뻤다. 죽었단 말을 들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잔해더미 속에서 동생이 잘 버텨줘서 끝내는 살아 나온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의 예상과 크게 달랐다.

 의식을 잃고 창백해진 막내의 얼굴을 보면서 그는 할 말을 잃었다. 무작정 손을 뻗어 막내의 얼굴을 더듬는데 죽은 사람처럼 온기가 없어서 강민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다. 그러나 그를 정말로 오열하게 만든 것은 들춰진 시트 밑의 광경이었다. 일순간 숨이 막혀오더니 눈앞이 무수히 검은 점을 찍어댄 점묘화처럼 변했고, 정신을 차렸을 땐 더 이상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억지로 그를 깨우는 사람들에 의해 그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그것은 뒷날 그가 몇 번이나 스스로를 탓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수술실에 실려들어갔던 동생은 끝내 그 곳에서 죽어 나왔으니까.

 뒤늦게 도착한 부모는 무어라 말도 꺼내지 못했다. 수술을 담당한 의사가 알코올 중독자였고, 음주한 뒤에 수술을 하여 막내가 죽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의사는 해직되었지만 그게 강민과 남은 가족들의 마음을 달래주지는 못했다. 어떻게든 일을 묻으려는 병원의 조치로 허겁지겁 동생의 장례식을 치른 직후, 둘째동생은 부대로 돌아가자마자 구두끈으로 목을 매어 자살했다.

 

 실려가면서도 미친 사람처럼 그 아이는 어떻게 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다 끝내 기절하고 깨어났는데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약속한 듯이 전말을 알려주지 않았다. 태현은 막무가내로 병원을 헤매고 다녔고 결국 그들이 말해주지 않았던 사건 이후를 알게 되었다. 악몽과 현실은, 이미 뒤바뀌어 있었다.

 그 곳에서 탈출했다 해서 그 곳의 기억마저 떨쳐낸 건 아니었다. 사고 당일의 악몽은 마치 그림자처럼 태현을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눈을 감았다 떠도, 몇 날 며칠을 자다 깨도 그 날의 악몽이 끝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승아조차도 태현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병실에 있는 내내 태현을 보는 것을 거절했고, 몇 번이나 매달려도 흐느끼며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태현은, 만신창이였다. 영구적으로 남을 기억. 몸의 상처는 회복되어도 뇌리에 깊게 남은 그 날의 기억은 결국 그에게 폐소공포증이라는 병명을 안겨주었다. 어둠과 좁은 곳, 그리고 소음은 마치 열쇠처럼 태현의 기억 속에 잠겨 있던 잊고 싶은 감각을 자꾸만 열어 꺼내놓았다. 그 때문에 태현은 지하철조차 타지 못했다. 역을 지나치고 창문이 어둡게 물드는 순간, 가슴이 조여들며 숨을 쉬지 못해 바로 다음 역에서 도망치듯 뛰쳐내린 것도 여러 번이었다.

 증상이 심할 때는 잘 때도 불을 끄지 못했다. 불을 끄고 누워 있노라면 어디선가 조그맣게 우는 소리가 났다. 태현은 근원을 알 수 없는 소리의 행방을 좇아 집안을 이리저리 배회했다. 그리고 늘 숨바꼭질을 하듯 숨어 있는 그 아이를 만났다. 눈물로 얼룩져 창백한 얼굴을 한 아이는 다리 한 쪽이 없었다. 그러나 없는 다리로도 아이는 잘 돌아다녔다. 때로는 침대 밑에, 때로는 벽장 속에 숨어서 끊임없이 울었다. 아이가 울 때마다 태현도 같이 울었다. 약을 삼켜도 그 아이는 사라지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아이는 단순한 환영이 아니었으니까. 아이의 존재는 태현이 평생 지고 가야 할 죄책감이었다.

 오랫동안 아이에게 시달렸던 태현이 아이의 유족에게 생각이 미친 것은 그로부터 어느 정도 뒤였다. 그 날도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벽에 기대앉은 채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 때 새벽을 틈타, 비가 왔었다. 비가 오는 것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해 창 안으로 들이친 비가 벽지를 적신 걸 뒤늦게 발견한 후에야 태현은 창을 닫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비척비척 일어나 창가로 다가간 순간, 갑자기 바로 아래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얼어붙은 태현이 숨을 삼키며 아래를 내려다보자 그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미처 닫지 못한 창문으로 들이치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울고 있었다. 그 순간 태현은 말을 잃었다. 이윽고 무너져내리는 듯 주저앉으며 아이를 있는 힘껏 그러안았다. 느껴질 리가 없었는데 어째서인지 빈 품 안이 차디찼다. 태현은 한참을 울음을 삼키며 허공을 더듬고 있었다.

 태현이 정신을 차린 것은 들이친 비에 머리카락이 축축해졌을 무렵이었다. 멍하니 그 자리에 넋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던 태현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다 문득 짚이는 바가 있어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 애, 혼자…….”

 반쯤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생각나는 대로 주절거리던 태현은, 불현듯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민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람을 만난 것은 동생들에 이어 부모의 줄초상을 치르고 난 뒤였다. 연이어 상을 당한 직후라 그 때 강민은 너무 많이 지쳐 있었다. 울거나 슬픔을 느낄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슬픔보다 더 크고 더 무거운 것이 강민을 짓눌렀다. 상주대기실에 혼자 앉아있을 때 막연하게 느껴지던 그것은, 상을 치르고 빈집에 홀몸으로 돌아왔을 때 급격히 커졌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없이 얇게 먼지 쌓인 집안에 발을 들여놓을 엄두조차도 내지 못해 한참을 현관에만 서 있었던 것이 바로 며칠 전이었다.

 그 며칠 동안 강민은 살아야 할지 죽어야 할지도 감을 잡지 못한 상태였다. 공복감조차 잊은 채 많은 생각을, 정말로 많은 생각을 했지만 그 무엇도 결정할 수 없었다. 그는 모두 떠났으니 이제 자신도 떠나야 할 것인지, 아니면 행복했던 과거, 가족의 기억을 홀로 떠맡고 살아가야 할지, 강민은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솔직히 말해 개중 좀 더 끌리는 것은 전자였다. 죽음은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앞으로 살아가며 겪게 될 수천, 수만 번의 혼자라는 자각이 더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 때 만나게 된 사람이 태현이었다.

 태현을 처음 마주한 순간 강민은 그에게서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음에도 그가 누군지, 왜 왔는지 알 것 같았다. 막내동생 곁에서 구출된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을 어렴풋이 들었던 게 기억이 났다. 당신에게 또다른 상처를 안겨줄지도 모르겠지만, 과거 그 날 일어난 일이 불가피한 일이었든 아니든 사죄를 표하고 싶어 찾아왔다는 태현을 바라보며 강민은 그를 들이지도 내쫓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강민이 가까스로 입을 연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오늘은 그냥 가주면 안되겠냐는, 그 짧은 문장을 얼마나 힘겹게 내뱉었는지, 문고리를 붙잡은 ― 세게 붙잡은 탓에 손마디가 하얗게 변했다 ― 강민의 손바닥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태현은 그런 강민을 잠시 절박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무리라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태현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잠자코 돌아갔다.

 

 처음으로 강민을 찾아간 날 태현은 강민의 어깨 너머로 그 아이를 보았다. 두세 뼘 남짓 열린 문가를 강민이 가로막고 있어 보이는 공간은 적었으나 분명 그 아이가 거실에 서 있었다. 낮이라고는 해도 불이 전혀 켜져 있지 않아 어둑한 집 안에서, 그 아이는 울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기만 한 표정도 아니었다. 태현은 문득 그 아이가 강민에게도 보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확신에 가까운 예감은 훗날 강민의 입을 통해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날 태현은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낮이건 밤이건 불을 켜 둔 방 안에서 미동도 없이 앉아만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 집안이 풍비박산났어요……’ 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허강민이라는 이름 석 자를 처음 지면으로 접했을 때의 아릿했던 감각도 떠올랐다. 자신의 행동이 그저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정말로 강민에게 사죄하고 싶어서 그런 것인지 이제는 태현 스스로도 잘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얼마 없는 선택지 중에서 그나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고를 뿐이었다.

 

 태현은 정확히 한 달 뒤에 다시 강민에게 찾아왔다.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결국 강민은 태현과 마주앉았다. 집안의 기물들을 대부분 처분한 탓에 살풍경한 실내에 두 사람의 그림자만이 홀로 선명했다. 강민은 태현이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분명 할말이 있어 찾아왔을 텐데, 태현은 좀처럼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적막한 가운데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갔다. 태현은 죄책감 때문에 말을 꺼내지 못한다기보다는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일과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적절할지 몰라 오랫동안 가다듬는 것 같았다. 강민은 그런 태현을 묵묵히 바라볼 뿐 재촉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지껄이든 일단 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 태현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는, 류태현입니다.”


 강민은 자신을 태현이라 소개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저쪽이 먼저 자신을 소개했으니 응당 그도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는 게 도리였다. 그러나 강민은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계속…… 고민했습니다. 상처를 더 들쑤시는 게 아닐까 하고…… 하지만 변명으로 들린다 하더라도, 전해야 할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태현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강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태현의 입을 통해 그 날의 악몽이 실 뭉치에서 풀려나가는 실처럼 천천히 흘러나왔다.

 길고도 짧은 시간이었다. 강민은 내내 듣고만 있었다. 무언가 대꾸를 하고 싶은 마음도, 그에게 왜 내 동생을 먼저 구하지 않았냐며 따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저 공허하고, 피곤할 따름이었다.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태현의 말 한 단어 한 단어가 귀에 박히기는 했으나 그럼에도 그는 어떠한 감정의 변화를 느끼지는 못했다. 아니면 대체 어떠한 감정을 보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떠오르는 말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찾아온 거냐고. 지금 용서를 바라서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은 거냐고.

 그러나 그 말들은 끝내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했다.

 이야기하기 전과 같이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이번엔 좀 더 긴 침묵이었다. 해가 기울어졌음을 의식하고서 강민이 퍼뜩 놀랐을 땐 이미 한참이 지난 뒤였다. 강민은 자신이 컵 손잡이를 있는 힘껏 붙잡고 있었다는 걸 알고 슬그머니 손의 힘을 풀었다. 맞은편에서 태현이 그것을 조용히 눈으로 좇고 있었다.

 강민은 먼저 일어났다.

 “……오늘은 그만 가시죠.”

 움찔하던 태현은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나 앉은 의자를 밀어넣는 그에게서 미묘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 때 문득 강민은 태현의 손을 바라보았다. 방금의 이야기를 통해 태현의 손가락과 손등 곳곳에 남은 흉터의 의미를 깨달은 순간 강민은 잠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목울대에 뜨겁게 내려앉은 그것을 간신히 꿀꺽 삼키고서, 강민은 문가로 걸어갔다.

 “……저.”

 그 때 태현이 입을 열었다.

 “다음에 다시 와도 될까요?”

 강민은 바로 대꾸하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할 말도 없을 텐데, 동생을 구하지 못한 죄인인 당신이 무슨 말을 더 하겠다고 여기 오겠다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강민은 그 말 대신 다른 말로 응수했다.

 “어째서?”

 “…….”

 태현은 잠시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눈동자로 허공을 더듬었다. 대답은 오래지 않아 나왔다.

 “강민 씨가 힘들지 않다면…… 다음에는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한 건 얘기가 아니고 뭐였습니까, 라고 몰아붙이려던 강민은 내내 태현 혼자 말하고 자신은 말 한 마디 꺼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대신 그는 말없이 문을 열었다. 태현은 멈칫하다가 조용히 현관을 나섰다.

 나가기 직전, 태현은 잠깐 그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고 다시 돌아섰다. 강민은 그런 그를 붙잡지 않았다. 붙잡을 이유도 없었다. 태현이 나가자마자 그는 문을 매몰차게 닫아 버렸다. 드리워져 있던 태현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철컥 하는 소리만이 잔향으로 남았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현관에 있던 두 켤레의 신발이, 다시 한 켤레만 남은 것을 보는데, 갑자기 가족을 모두 떠나보내고 혼자 집에 돌아왔던 그 순간이 겹쳐지면서, 일순 강민의 억장이 무너져내렸다. 이제는 아무도 신을 리 없는 신발만이 가득한 현관에 한참 동안 서 있었던 그 순간이 다시 찾아온 것처럼.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태현은 그것이 강민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은 괜한 짓이었나 싶어 마음이 무거웠던 것이다. 그래서 강민이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불에 덴 듯 놀라 고개를 돌렸다.

 “다음에 온다면, 언제 올 겁니까?”

 그렇게 묻는 강민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어서 태현은 크게 당황했다. 내내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태현은 자신의 당황이 강민을 기다리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 곧 확신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만간…… 다시 오겠습니다. 2주 뒤 괜찮을까요?”

 강민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태현은 잠자코 기다렸다. 이윽고 강민의 고개가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 태현은 굳었던 입매를 끌어올려 웃어보인 뒤 마침내 집으로 돌아갔다.

 지나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었지만, 다시 와도 되겠냐는 태현의 질문은 거의 억지에 가까웠던 부탁이었다. 그러나 강민은 언제 올 것이냐고 물었다. 태현은 강민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강민의 모습에서 태현이 어렴풋이 과거의 자신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아주 어릴 적, 하나둘씩 입양되어 떠나가는 고아원의 아이들을 보며 느끼고 싶지 않았음에도 느꼈던 서글픔이 되살아나면서.

 어쨌든 태현은 정말로 2주 뒤에 강민의 집으로 다시 찾아갔다. 고작 2주가 지났을 뿐이었는데 그새 강민은 수척해져 있었다. 태현은 망설인 끝에 사들고 갔던 빵을 내밀었다. 강민은 그것을 힐끗 내려다볼 뿐이었다. 태현이 재차 받기를 재촉하자, 강민은 그제서야 빵을 받아들고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빵의 포장을 벗기고 한 조각을 잘라 내놓았다. 태현은 자기보다는 강민이 먹길 바랐지만 강민은 몇 번 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그만이었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이어진, 기묘한 교류가 시작되었다. 늘 2주에 한 번 보는 것은 아니었고 1주일에 한 번 꼴로 보거나 한 달씩 건너뛰며 만날 때도 있었다. 뭔가를 가지고 가는 빈도도 꽤나 불규칙한 편이었다. 허나 태현이 다음에 언제 올 것인지 미리 말하는 것만은 변하지 않았다. 태현은 늘 자기가 한 말을 지켰다. 하지만 그렇게 약속을 지켜서 만난다 해도 둘 사이에 그리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맨 처음 만났을 때가 그들이 지속했던 수많은 만남 중 가장 오랫동안 만났을 때였다. 두 번째처럼 태현이 사들고 갔던 빵만 먹고 오거나, 심하면 아무 말도 안 하고 마주앉아 있다가 그냥 오는 경우도 있었다. 태현은 때로 자신이 불청객이 아닐까 고민했지만 강민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면서도 태현이 오면 늘 문을 열어주었고 나중에 몇 번은, 자기가 직접 빵을 사다놓기도 했다.

 
*

 

 형아.

 응.

 오늘 누구 와?

 ……응.

 막내는 가뭇 웃더니 사라졌다. 강민은 멍하니 사라진 막내의 잔상을 바라보다 창문을 열었다. 바람은 찼으나 맑은 날씨였다. 추위는 한풀 꺾였다 해도 아직 2월 중순인데, 비치는 햇살이 겨울답지 않게 눈이 부셨다. 낮이건 밤이건 쳐 놓았던 블라인드를 걷어올리자 거실이 제법 환해졌다.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곳마다 블라인드에 내려앉아 있던 먼지들이 부유하다 바람이 들어올 때마다 날리는 게 보였다.

 태현이 집을 들락거리게 된 지도 반 년, 혹은 그보다 좀 더 되었다. 전부터 약한 불면증을 앓았던 강민은 태현이 집에 온 날이면 거의 항상 밤을 꼬박 샜다. 온갖 상반된 감정이 극단적인 생각과 함께 떠올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민은, 태현이 오겠다고 할 때마다 고개를 저은 적이 없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래도 단 한 가지 이점을 꼽자면, 그것은 태현이 집에 오게 된 후로 간간이 보이던 남동생의 모습이 그렇게 자주 보이지는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막내는 그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불현듯 나타나 강민을 동요시키고는 했다. 아침에 일어나 막 거실로 나갔을 때라던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갑자기, 혹은 자려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있을 때 등, 막내는 살아생전의 포동포동한 모습으로 나타나 꼭 강민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강민은 단 한 번도 살갑게 대꾸해 준 적이 없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를 했다고 생각한 시점에도 예고 없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막내는 반갑다기보다 차라리 괴로워서 강민은 자주 가슴을 쥐어뜯었다.

 오늘도 태현이 온다고 했다. 창문으로 찬기가 밀려들었지만 강민은 추위도 모른 채 창밖만 바라보았다. 날씨가 유난히 좋았으나 그게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구름 끼고 음울한 날씨였다면, 좋았을까.

 태현을 보면서 증오스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태현의 손을 볼 때마다 강민은 절로 차오르는 감정을 꾹꾹 누르느라 뭐든 힘주어 붙잡고 있어야 했다. 흉터를 볼 때마다 그게 막내를, 잔해 밑에 깔려 있던 그 애를 파헤쳤던 손이라는 것을 떠올렸지만 동시에 그것이 막내를 선택하지 않았던 손이라는 사실도 떠올리게 되어 강민의 감정은 연이어 널을 뛰었다.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태현의 말을 가로막고 그래서 왜 내 동생을 먼저 구하지 않았냐고 다짜고짜 묻고 싶었던 일도 여러 번이었다.

 그 날 태현은 느지막이 왔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이며. 추위 때문에 태현의 손은 벌겋게 얼어 곱아 있었다. 시간을 들여 왔건마는, 이미 어둑해진 탓에 태현은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얘기를 많이 나누는 것도 아닌데 꼬박꼬박 오고야 마는 태현을 강민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한 한파가 몰아닥친다며 걱정하던 태현은, 돌아가기 전에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놓았다. 손을 오므리면 알맞게 잡힐 듯한 타원형 물체의 정체는 충전식 손난로였다. 강민이 그것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자, 태현은 손수 충전까지 해보이며 밖에 나갈 때 꼭 쓰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하고 갔다. 강민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태현이 돌아가고 난 후에도 강민은 한참을 손난로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손을 뻗어 잡자, 도드라진 버튼이 손바닥으로 느껴졌다. 그는 잠시 망설인 끝에 버튼을 눌렀다. 미약한 온기가 느껴지던 그것은 오래 쥐고 있자 점차 뜨겁다 싶을 정도의 따뜻함을 발했다. 그러나 강민은 왜인지 무감각하기만 했다.

 이윽고 강민은 몸을 일으켰다. 그의 발이 다다른 곳은 쓰레기통 앞이었다.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손난로를 쓰레기통에 내버리고 돌아서려는데, 또다시 막내가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하루에 몇 번씩이나 나타나는 일은 드물어서 강민이 당황한 순간, 막내가 쓰레기통으로 다가가더니 강민과 쓰레기통 속을 번갈아 바라보며 어쩔 줄 모르겠는 듯 동동거렸다.

 강민은 일순 숨을 멈추었다. 막내가 사라질 때까지 그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강민이 처음으로 말다운 말을 꺼낸 것은 계절이 한 차례씩 돌아서 다시 제자리로 왔을 즈음이었다. 그 전까지는 늘 태현 혼자서 지껄이는 것과 다름없었다. 강민이 듣기만 하고 거의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태현에게 두 가지 상반된 효과를 가져왔다. 첫째는 어떤 말도 부담없이 할 수 있었다는 것. 둘째는 그만큼 벽에 대고 얘기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강민의 말문이 터진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강민은 이따금씩 태현의 얘기를 듣는 듯하다가도 문득 멍해져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볼 때가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대수롭잖은 이야기를 하던 그 때도 그랬다. 강민의 눈동자가 어느새 빈 곳을 헤매는 것을 발견한 태현은 별 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

 “강민 씨는 가끔 그렇게 멍해지는데, 자각하고 있어요?”

 그 말에 일순 강민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깜짝 놀란 듯이 태현을 마주보던 눈동자가 차츰 평소의 조용한 빛을 띠었다. 태현은 끈질기게 그런 강민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강민이 툭 내뱉었다.

 “별 것 아니야.”

 “……그래요?”

 “그래.”

 태현에게 말한다기보다는 혼자 중얼거리는 어조로 말을 끝맺은 강민의 눈동자가 다시 흐려졌다. 태현은 잠시 조용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그 얘기를 꺼낼 생각을 했는지는 태현 자신도 몰랐다. 만일 깊게 생각했다면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실수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 말이 결과적으로는 강민의 입을 열게 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지도 몰랐다.

 “전부터 막연히 생각만 해왔던 건데.”

 “…….”

 “혹시 강민 씨도 강민 씨 남동생을 보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뭐?”

 “사실 제가 강민 씨를 찾아오게 된 건, 그 애 때문인 게 크거든요……. 지금은 좀 덜하지만, 강민 씨를 찾아올 때만 해도 밤만 되면 늘 그 애가 보였습니다. 항상 울었어요. 무슨 말을 걸어도 대답은 없고……. 전 밤새 그 울음소리를 듣다가 간신히 눈을 붙이곤 했는데. 하지만 그렇게 잠들고 나면 꼭 악몽을 꿨어요. 꿈속에서 저는 항상 그 잔해 앞에 다시 서 있고, 두 사람 중 누구를 구할지, 매번 선택해야 하는 겁니다…….”

 속절없이 중얼거리다 문득 태현은 강민이 조용한 것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본 강민의 표정을 태현은 지금도 잊지 못했다.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내던져버린 사람처럼 망연한 얼굴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에 할 말을 잃은 듯도 보였다. 완전한 무방비 상태로, 강민은 잠시 얼음처럼 굳어 있다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비록 강민에게 정확한 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태현은 언젠가 강민 또한 그 아이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예감이 사실이었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러나 정작 확인해버리고 난 뒤끝은 어째선지 씁쓸하였다.

 

 태현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남동생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강민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항상 마음속에 머무르고만 있던 태현에 대한 원망이 새삼 일깨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날 태현이 가고 나서 강민은 해묵은 증오가 다시 불길을 일으켜 한참을 머리를 식혀야 했다.

 또다시 막내가 보인다면 설령 그것이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환영이라 할지라도 강민은 태현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그토록 보고 싶지 않았을 때는 더욱 자주 나타나던 막내는 태현이 오지 않은 2주의 간격 사이에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혹은 나타났더라도, 그의 눈에 보이지 않게 살그머니 사라져 버렸을는지 몰랐다.

 

 “왜 그 애를 구하지 않았어?”

 강민이 대놓고 물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저는 그 때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주 후 다시 마주앉은 자리에서, 강민은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러나 태현은 생각 이상으로 담담했다. 동요할 것도, 떨릴 것도 없었다. 어차피 맨 처음에 했어야 하는 얘기를 지금에서야 하는 것뿐이었다. 아니, 강민이 물어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편이 더 가깝겠다.

 태현은 변명할 생각 따윈 없었다. 그냥 자신이 생각한 그대로를 말할 작정이었다. 애초부터 그 외엔 어떠한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최선?”

 “……네.”

 “그게 최선이어서, 지금껏 내 집을 들락거렸나?”

 강민의 말은 차갑게 비꼬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미처 억누르지 못한 분노가 새어나와 덜덜 떨리고 있었다. 태현의 가슴속에서 천천히 심장을 압박하는 죄책감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괜찮았다. 태현은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급박한 상황이었고, 저는 둘 중 한 사람밖에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자친구는 그 때 저에게 전부였던 사람이고요.”

 “……고아원에서 같이 자랐다고 했었지.”

 “네.”

 “하지만 지금은, 헤어졌다고 했잖아.”

 “……네.”

 “그럼 내 동생은 왜 죽었지? 이제는 너에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죽은 거라면 내 동생의 죽음에 무슨 의미가 있어?”

 강민은 숫제 부르짖고 있었다. 태현은 그런 강민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차라리 화를 내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상할까. 분노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태현은 조용히 대답했다.

 “……없습니다.”

 “……뭐?”

 “강민 씨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그 자리에서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니, 애초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는.”

 강민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파랗게 질렸다. 그러나 그는 일단 말을 아꼈다. 아마도 모두 들어본 뒤에 판단할 생각일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리고 태현은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됐다. 지금, 해야 할 말을 태현은 알고 있었다.

 “……만일 그 때 제가 강민 씨의 남동생을 구하고 승아를 구하지 못해 승아가 죽었다 해도, 승아의 죽음에 의미가 있었다고는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죠. 제가 승아를 살렸기 때문에 강민 씨의 남동생은 뒤늦게 구출되고 말았지만…… 그렇지만 승아와 제가 계속 연을 맺고 있는 것과 상관없이, 그 죽음에 의미가 있다거나 혹은 없다고 함부로 뭔가를 부여할 수는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때는, 제가 어떠한 이유를 가지고 둘 중 한 사람을 ‘선택’한 게 아니니까요. 그건 선택이 아니라…….”

 태현의 말이 끊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에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허나 ― 다행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 강민은 태현이 뭘 말하고자 하는지를 대강 알아들은 것 같았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고 있던 강민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의 목에서 녹슨 쇳소리 같은 목소리가 났다.

 “그래서, 너는, 그러니까 네 말은 즉, 내 동생의 죽음이 결국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개죽음이었다는 소린가……?”

 “……아뇨, 그것도 아닙니다.”

 토해 내듯이 말하며, 태현은 입술 안쪽의 말랑한 살을 짓씹었다. 무의식중에 세게 깨문 탓인지 찝찔한 피 맛이 났다. 허나 이미 그런 것에 신경쓸 계제는 없었다. 다만 그를 절박하게 바라보는 강민에게 마지막 쐐기를 박을 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건 그냥, 죽음이에요. 강민 씨에겐 변명처럼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제가 찾은 답입니다. 강민 씨도 그렇겠지만 저도 그 날 이후 하루도 그 날의 일을 잊어본 적 없습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절로 떠올라서, 수천 수만 번을, 잠도 못 자고 곱씹었어요. 그렇지만 이 이상의 답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정적이 흘렀다.

 말을 했다기보다 토해낸 것에 가까운 태현의 답을 듣고 나서 강민은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심한 고통을 겪는 사람처럼, 이따금씩 그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 어깨를 감싸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태현이 고민하다 천천히 손을 내뻗으려 했을 때에야 강민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결국 네가 잘못한 건 없다는 소리잖아.”

 그 말에 태현이 강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묘하게도 그 눈은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혹은, 너무 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담겨 뒤섞이는 바람에 분간할 수 없는 상태거나.

 “저는…… 사람을 죽게 만든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

 “하지만 결코 의도를 가지고 한 게 아닙니다. 두 사람 모두 살리고 제가 죽는 선택지가 있었다면 저는 틀림없이,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게.”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것에 굳이 하나를 더 덧붙이자면…….”

 강민이 그를 쏘아보았다.

 “……저에게 있어 승아를 구한 게 그 때 당시의 최선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제가 지금 승아를 구한 걸 후회하고 있다면…… 저는 그게 강민 씨의 남동생에게 더 죄를 짓는 꼴이 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에 후회를 더 끼얹어봤자 그건 정말로, 변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뿐더러, ……강민 씨의 남동생이 저의 잘못된 판단에 의해 헛되이 죽었다는 얘기밖에는 안 되니까요.”

 강민은 입을 다물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는 자발적으로 입을 다물었다기보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말이나 글로는 표현할 수 없고, 몸부림치거나 울부짖어도 쇳덩이처럼 가슴에 얹힌 채 쏟아지지 않는 감정 때문에 강민은 질식 직전의 사람처럼 원망을 삼키지도 토해내지도 못하고 굳어만 있었다.

 그리고 태현은 그런 강민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강민에게 한 말엔 한 치의 거짓도 가식도 그리고 죄책감을 덜기 위한 자기합리화도 없었다. 태현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셈이었다. 남은 일은 이제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강민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뒤이어 그를 어떻게 대하든 태현은 군말없이 수용할 생각이었다.

 

 별 생각 없이 낯선 번호로 온 전화를 받다가 태현은 깜짝 놀랐다. 작아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명 강민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강민의 집에 들락거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혹시나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한 번 연락처를 쥐어준 적은 있었지만 강민은 단 한 번도 그에게 전화를 건 적이 없었다. 어쨌든 태현은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며 수화기를 붙잡았다.

 강민의 말은 간단했다. 만나자는 것이었다. 강민이 먼저 만나자고 한 일도 처음이라 잠깐 멍했던 태현은, 놀란 티를 채 지우지 못하고 그럼 제가 강민 씨네 집으로 갈까요, 라고 물었다. 하지만 강민은 거절하며 ○○역 근처에서 만나자고 못을 박았다.

 바깥에서 강민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생경한 기분으로 기다리던 태현은 곧 저 멀리서 걸어오는 강민을 알아차렸다. 강민은 남색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햇빛 아래 서자 실내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창백해 보였다.

 두 사람은 별말 없이 근처 커피집에 자리부터 잡았다. 대충 메뉴판에 보이는 것을 아무거나 골라놓고 두 사람은 마주앉았다. 창가 자리에 앉은 덕분에 겨울이었음에도 탁자 위로 내리치는 햇빛이 꽤나 눈이 부셨다.

 강민은 무언가 각오하고 나온 듯했다. 그는 다소 수척해져 있었지만 불안해하거나 눈동자가 흔들리는 등, 감정이 흔들리거나 동요하는 기색은 전혀 비치지 않았다. 이윽고 주문한 음료가 나오자마자, 강민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네가 한 말을 줄곧 생각해 봤는데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더군.”

 시킨 커피는 몹시 뜨거웠다. 손으로 잔을 감싸며, 태현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때 너의 행동을 너는 최선이라 생각한다고 했지.”

 “……네.”

 “그렇다면 너는 왜 날 찾아왔지? 그게 네 말마따나 최선의 행동이었다면, 네가 나에게 올 이유가 없잖아.”

 “그건…….”

 태현은 잠깐 머뭇거렸다. 당황해서 그랬다기보다는 말을 고르기 위함이었다.

 “분명 그 때 있어서는 최선이었다고는 했죠.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행동이 불러온 결과마저 최선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결과에 책임을 지고 싶었고, 그래서 강민 씨를 찾아간 거죠.”

 강민이 태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태현은 재차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막상 찾아가서 얘기를 하고 난 후에 느낀 건 좀 달랐습니다. 책임을 지고 싶어서 방문을 지속했다기보다는, 강민 씨를 혼자 있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으니까요.”

 그 말에 강민의 표정이 굳어졌다. 태현은 자신의 말이 강민의 자존심을 건드렸나 싶어 뒤늦게야 당황했다. 그러나 강민이 생각했던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마지못한 듯이 흐른 침묵 이후, 그의 입에서 천천히, 태현의 예상범위 내에 들어있지 않았던 말이 흘러나왔다.

 “……나는 너를 원망해. 처음 봤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 그럼에도 나는 네가 오면 문을 열었지.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몰라. 너를 증오하는 동시에 증오하지 못했다. 난…….”

 강민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커피 잔만 만지작거리는 그의 손 위로 햇빛이 유난히 밝게 내리쬐었다. 태현은 엉뚱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실내에서도 풀어놓지 않은 그의 목도리 끝자락에 살짝 달라붙은 실밥. 눈이 아프도록 그것만 쳐다보던 태현은 느닷없이 말문을 돌렸다.

 “저도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강민은 대꾸 대신 숙인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안경 너머의 눈매가 살짝 치켜 올라가 있었다.

 “처음에 갔을 때…… 어째서 저를 붙잡았던 건지.”

 말을 내뱉은 순간 강민의 안색이 바뀌었다. 미미한 차이였지만 알아차리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태현은 강민의 동요를 모른 척했다. 묻기는 했지만 애초에 답을 들을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은 탓이었다.

 그러나 강민은 대답해줘야 할 의무라도 느낀 듯싶었다. 한참을 고심하던 그가 예상 외로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어.”

 “……오늘따라 강민 씨는 모르겠다는 말뿐이네요.”

 가볍게 던진 말이었는데 정곡을 찔렸는지 강민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그렇군. 틀리지 않아. 아니, ‘오늘따라’도 아니야. 나는 예전부터 무언가를 느껴도 그걸 한 단어로 정의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꼈다. 네가 말했던 그 때도 마찬가지였고.”

 그렇게 말하던 강민이 살짝 망설이는 듯 뜸을 들였다. 답의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강민이 이렇게 길게 말하는 게 태현으로서는 더 흥미로웠다. 그의 말을 조금이라도 방해하고 싶지 않아, 태현은 잠자코 듣는 편을 택했다.

 “……류태현 네가 나가기 전까지도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어. 뭘 느꼈다 하더라도 그 땐 다만 피곤했을 뿐이었지. 하지만 네가 나가고 문을 닫았을 때, 다시 집에 혼자 있게 된 걸 알아차린 순간 갑자기 모든 게 무너져내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목이 탔는지 강민이 드디어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넘겼다.

 “나는 그 감각이 싫었어. 누군가 떠나고 난 후에 느끼는, 그 지긋지긋한 감각. 내 곁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나서 다시 오지 않았지. 죽었으니 올 수도 없었지만. 결국 나에게 남는 건 오직 그 느낌뿐이었는데…… 하지만 너만은 그렇지 않았어. 너는 다시 올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나마도 내가 무얼 선택하냐에 따라 물거품이 될 수 있었지. 그래서, 붙잡았어.”

 “……그러니까 강민 씨는.”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 있던 태현이 입을 열었다. 강민의 말은 길었지만 결국 단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누군가 곁에 있어주기를 바랐던 거네요.”

 강민은 대꾸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그런 말을 처음 듣는다는 듯한 눈으로 태현을 마주보았을 뿐이다. 그 눈을 바라보며, 태현은 불현듯 목이 메어 굳어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들어올렸다. 강민의 주변을 감싸고 있었지만 강민 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한 것. 그러나 자각하지 못했다 한들 그것이 주는 괴로움은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태현 자신 또한 수없이 겪어봤던 경험. 그래서 더욱 강민을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건지 모른다. 강민만큼은 겪지 않기를 바라서.

 그 자신도 확신하지 못해 속에 묻어만 놓고 있었던 것들이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건 그 때였다. 태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민 씨랑 저는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대체 어디가, 라는 눈빛으로 강민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태현은 부연설명을 붙이는 대신 괜히 말꼬리를 돌렸다.

 “그런 생각을 해 봤어요. 강민 씨와 제가, ……다면 어떨까, 하고.”

 아주 조그맣게 중얼거렸는데도 용케 알아들은 듯, 대번에 강민의 얼굴색이 일변했다. 아까의 미미한 차이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놀랄 것까지는 없는데, 라고 괜히 강민을 탓하며 태현은 말을 이었다.

 “그러면 강민 씨가 더는, 그, 강민 씨가 말했던 지긋지긋한 느낌을 안 받게 될 테니까요.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괜찮지 않을까요? 이렇게 늘 제가 왔다갔다할 필요도 없고…….”

 “……농담이 아니라고?”

 “따지면 그렇죠.”

 “내가 납득이 안 간다면?”

 “어째서요?”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에 지금 그런 소릴 한다는 건…….”

 “단순히라니, 저는 진지한데요……. 달리 다른 이유라도 필요한가요”

 “따지면 그렇잖아.”

 “……왜 제가 했던 말을 따라해요?”

 “그 말을 하기 적절한 상황이었으니까.”

 조금도 지지 않는 강민의 대응에 태현은 실소를 터뜨렸다. 그게 기분이 나빴는지 강민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뜨끔한 태현은 재빨리 웃음기를 지웠다. 강민은 여전히 별로 좋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심호흡을 한 번 내쉬고서, 태현은 짐짓 장난스레 말했다.

 “그럼 이런 이유는 어때요.”

 “뭔데.”

 “제가 강민 씨를 좋아해서 제안한 거라면.”

 처음에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던 강민의 얼굴에, 마치 투명한 액체에 잉크 한 방울이 떨어져 퍼지는 것처럼 놀란 기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벼운 어조로 던진 말이었으나 그것이 내포한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강민은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일까. 태현은 자신이 던진 말을 고치지도 취소하지도 않은 채 강민이 진정하기만을 기다렸다.


*  *  *


 “밥이…… 완전히 압축됐네요.”

 게다가 식어버리기까지 했지만, 거기까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허나 강민은 그래서 뭐, 라는 눈빛으로 태현을 힐끗 바라볼 뿐 밥을 먹는 데만 열중했다. 가끔 오독오독하는, 요 앞 반찬가게에서 사 온 무장아찌 ― 강민이 은근히 좋아하길래 태현이 이따금씩 사왔다 ― 를 씹는 소리가 곁들여졌다.

 태현이 앉은 식탁은 태현이 처음으로 강민의 집을 방문했을 때 앉았던 그 식탁이었다. 가구가 거의 없어 살풍경했던 거실은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살게 되면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공간이 채워졌던 덕에 이제는 그 때의 모습을 거의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보통은 고백 후에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할 텐데 태현은 어째서인지 거꾸로 말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강민은 그 두 가지에 모두 미적지근한 반응만 보였다. 태현은 굳이 자기가 한 말을 반복해 강민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대신 전과 마찬가지로, 항상 그래왔듯, 강민의 집을 정기적으로 드나드는 편을 택했다. 때로는 말보다 일관적인 행동이 더 많은 것을 나타내는 것을 알았던 덕분이다.

 물론 암묵적으로나마 고백이 받아들여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강민이 동거에 동의하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단순히 곁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과, 그 누군가가 ‘태현’이었으면 좋겠다는 것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으니까. 태현은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조급해하거나 강민의 감정을 확인하려 드는 대신 강민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때까지 계속 곁에 있어주었다. 정말로 강민이 함께 있었으면 하는 사람이 그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다만 태현은 조금이라도 강민이 혼자 있는 것을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게 강민에게 어떻게 작용했는지 태현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최소한 강민이 싫다는 말은 내어놓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부분의 일은 태현이 바랐던 대로 진행됐지만, 그러나 태현은 그것에 단 한 번도 자만하거나 드러나게 좋아하지는 않았다. 단지 원래부터 해야 할 일을 맡은 사람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설거지는 네 몫이야.”

 먼저 그릇을 비운 강민이 말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밥을 안 한 사람이 설거지를 맡는 게 이 집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강민과 함께 살게 된 이후로 가장 좋은 걸 꼽으라면 그것은 단연코 그 아이를 보지 않게 된 것이었다. 사고 직후처럼 빈도가 많진 않아도 잊을 만하면 나타났던 강민의 남동생은 태현이 강민의 집에서 살게 된 뒤로부터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이런 걸 바라고 같이 살자고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이가 보이지 않게 되자 태현의 폐소공포증 또한 빠르게 나아졌다.

 하지만 강민은, 그리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식어서 밥알이 굴러다니는 볶음밥을 대충 입안에 털어넣고 그릇을 부시던 태현은 문득 강민의 기척을 느끼고 몸을 돌렸다. 저녁이면 습관적으로 방에 틀어박혀 잘 나오지 않던 강민이 거실에 앉아 있었다. 원인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자명했다. 원래도 이즈음이 되면 자주 울적해하던 강민이다. 뉴스 때문에 기분이 헝클어지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터였다.

 태현은 일단 설거지거리를 내려놓았다. 세제 거품 묻은 손을 씻어내고 대충 물기를 털어내며 강민에게 다가가자, 강민이 고개를 들었다.

 “설거지…… 안 끝났잖아.”

 “괜찮아요, 곧 끝낼 거니까.”

 지금 중요한 건 설거지가 아니다. 태현은 어쩔까, 하다가 시험 삼아 직구를 날려보았다.

 “마음이 심란하면 말하라고 했잖아요.”

 강민은 평소와 같이 무표정했지만, 하도 표정 없는 얼굴만 대해서 그 속에 무슨 감정을 감춰놓고 있는지 이제는 대강 파악이 가능했다. 그 예로 지금 강민은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지만, 실은 여러모로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아니니까 상관 마.”

 “거짓말하는 게 보입니다만…….”

 태현이 가벼운 어조로 말끝을 흐리며 그 옆에 앉자 강민이 싫은 기색으로 살짝 떨어졌다. 그걸 또 끈질기게 따라가며 태현이 집요하게 물었다.

 “또 남동생이 보였죠. 강민 씨 이러는 거 한두 번입니까, 참.”

 “아니라니까.”

 그러나 짧은 순간이나마 동요하는 것을 봐서는 그 말 또한 거짓이었다. 태현은 가벼이 한숨을 쉬다가 강민의 한쪽 손을 강하게 잡았다. 손을 빼고 싶은지 강민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렸지만 그럴수록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안 숨겨도 된다고 했는데.”

 태현은 더 이상 강민의 남동생을 보지 않았지만 강민은 달랐다. 그는 여전히 불쑥불쑥 나타나는 남동생의 환영에 시달렸다. 태현이 봤을 때처럼 우는 것은 아니고, 그냥 살아생전의 모습으로 말을 건다고는 했지만 그것이 강민의 속을 물어뜯는 것은 결국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리고 이맘때쯤이면 그게 더 심해진다고, 언젠가 강민이 태현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태현은 그럴 때 강민이 자신을 의지했으면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강민에게 그것은 늘 피하고 싶은 화제이기만 한 듯했다.

 한참 동안 손을 빼려고 시도하던 강민은 결국 포기하고는 말을 돌렸다.

 “……됐고, 이번 영산재…… 가야겠지, 마지막이라니까.”

 태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 말을 이었다.

 “강민 씨는 그냥 가족들 합제를 따로 지내고 싶다 했죠? 개인적으로.”

 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유가족들이 모이는 일을 기피했다. 사람들이 모여 울음바다가 되는 것이 꼴보기 싫다는 듯했다. 가만히 있어도 속이 들쑤셔지는 일을, 굳이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상기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문득 태현은 지난해 영산재에서 넘치던 곡소리 가운데 홀로 담담하게 서 있던 강민을 떠올렸다. 괜찮냐고 조심스레 물어보자, 고개를 끄덕였지만 결코 괜찮아 보이지 않았던 얼굴. 한 사람이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큰 악재에 오히려 울음마저 멈춰버린 것이었을까. 울어야 할 때에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 그를 보면서 태현은 다음부턴 대신 울어줘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럼 내년엔 그렇게 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막내동생 기일로 맞추죠.”

 태현은 간단히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그날 밤은 웬일인지 강민이 먼저 잠들었다. 평소엔 강민의 불면증 때문에 늘 태현이 먼저 잠들었는데 드문 일이었다. 그가 잠든 틈을 타, 태현은 강민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태현을 등진 채 옆으로 누워 자고 있었다. 마른 편인 강민의 등은 처음 봤을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 등을 살그머니 그러안으며 태현은 긴 숨을 내쉬었다.

 맨 처음 강민 곁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태현이 느낀 것은 죄책감도 책임감도 아니었다. 그저 그에 대한 미묘한 동병상련과 함께, 수백 수천 번을 느껴 왔으면서도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었던 '혼자'라는 기분을 강민만큼은 겪게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비록 그에게 죄를 지었더라도.

 그와 함께하는 것이 평생 죄의 무게를 직면하고 살아가는 길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오히려 외면한다면 죄책감은 언제고 그 모습 그대로 같은 자리에 있을 뿐이다. 허나 이곳에 있으면 아주 조금씩이라도 죄를 갚아나갈 수 있었다. 속죄해야 할 사람이 바로 지금, 눈앞에 있기에.

 강민의 숨소리는 고르고 깊었다. 새삼스레 이 사람의 곁에 있어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태현은 잠을 청했다. 새벽녘, 밖은 고요하고 이불 안은 따듯했다. 품에 안은 강민의 몸에서 느껴지는 맥박이 있어 태현은 평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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