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셉평가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잔인하게도 컨셉곡을 배정받은 아이들이 연습중에 35인을 뽑아낸다고 한다. 열심히 연습한 연습생들 중에 25명은 무대에 서보지도 못하고 탈락하게 됬었다.

빌어먹을 방송국 놈들.


곡배정의 순간 난 아이와 같은 곡을 하고 싶은 마음과 지난 밤의 일로 인해 아이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마음이 겹쳐 머리가 복잡했다. 같이 연습하고 같은 숙소를 쓰고 싶은 욕심 속에 지난밤 꿈속의 아이를 내품에 안고 다른 욕망을 채우고 싶어 하는 내가 있었다. 

건희 형이 들어오고, 의웅이가 들어오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대휘는 다른곳으로 갔구나. 

컨셉평가 곡은 Oh Little Girl, 귀엽고 발랄했다.

머리가 복잡해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와중에 건희형이 임시로 서브보컬 1로 권유하여 배정받았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와중에도 꿈속의 아이가 생각이 났다. 미친새끼. 

집중이 되지 않았다. 

계속 걷도는 나를 보며 건희형이 날 조심스레 불러내 무슨일 있냐 물었다.


"진영아, 힘들지?"

"아냐, 미안해. 형."

"너 힘든거 알아. 근데 조금만 우리 집중하자. 중요한 평가잖아. 여기서 35인 안에 들면 우리, 콘서트도 할수 있고. 거기서 더 잘하면 생방도 할수 있고. 더 있으면 데뷔도 할수 있어. 난 몰라도 넌 가능할거야. 그러니 조금만 더 힘내. 얼마 안남았잖아."


건희형은 정론으로 일반적인 연습생이 고민하는 주제에 대해 진지한 답변을 내놓았다. 내 고민은 그게 아니었지만 진지하게 말하는 건희형에게 감사를 전했다. 건희형은 내 어깨를 잠시 토닥여 주고 바람좀 더 쐬다 들어와 라며 먼저 들어갔다. 성인은 다른걸까. 내가 한낱 18살 먹은 미성년자라 그런걸까.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 꿈도, 꿈을 생각할때마다 느껴지는 내 몸의 변화도.


"배진영!"


멀리서 지훈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지훈형 옆에 대휘가 팔짱을 끼고 다가오고 있었다. 연습을 하다 온것인지 머리끝은 땀에 젖어 팔짱을 끼지 않은 다른 쪽 팔로 아이가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언제나 처럼의 환한 미소와 함께. 피가 차갑게 식었다. 당장 달려가 지훈형 옆에 붙어있는 아이를 때어내어 아이를 데리고 도망가고 싶었다. 내 가슴속 어디에 이런 소유욕이 숨어있었던 것일까. 


"진영이형 여기서 머해요?"

"배진영, 요즘 연습에 정신 못차려서 건희형한테 혼나고 여기 앉아있는거지."

"정말요? 왜요? 형 무슨일 있어요?"


아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숙이고 나에게 눈을 맞춰왔다. 젖은 앞머리 끝에 매달린 땀방울도 걱정스레 바라보는 눈동자도 홍초띤 볼, 빨간 입술. 거기까지 바라보고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눈앞엔 더욱 복병이 있었다. 하얗게 뻗은 얇은 종아리가 시선 한가득 들어왔다. 알통하나 없이 얇게 뻗은 저 하얀 다리에 손을 대고 만질수만 있다면.

몸의 변화가 다시한번 느껴졌다.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수 없었다. 

나의 번뇌도 알지 못한채 아이는 지훈형이랑 재잘재잘 떠들었다.


"난 먼저 가볼께. 대휘야 진영이 챙겨서 들어와."


지훈형이 먼저 자리를 뜨며 대휘에게 날 부탁했다. 그리고 내 귓가에 무어라 속삭였다.


-배진영, 선물이야.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알려지면 안되는데, 들켰다.

급하게 고개를 들어 지훈형을 바라보니 장난스레 윙크를 하고 건물로 뛰어들어갔다.


"형, 힘든 일있으면 나한테 말해요. 나도 형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우리 이제 그럴수 있는 사이잖아요."


얇게 웃으며 아이가 내옆에 앉아 말을 걸어왔다. 

너에게 입을 맞추고 몸을 끌어안고 만지고 싶은 내 욕망을 자신에게 말하란다. 

내가 어떻게 그럴수 있을까. 내가 너의 앞길을 막을순 없다. 넌 무대에서 빛나기 위해 태어난 아이잖아.

난 고개를 숙인채 입술만 잘근잘근 씹을수 밖에 없었다.


"아이참, 잘생긴 얼굴이 이게 머예요. 내가 형 비주얼 원픽으로 뽑았는데. 다크서클에. 어머, 이 볼 야윈것좀 봐. 안그래도 작은 얼굴이 더 작아졌잖아요."


대답이 없는 나를 못참았던지 아이가 손으로 내얼굴을 들어 제 얼굴 앞에 놓고 요리조리 뜯어보며 말을 이었다. 마주치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아이는 단단하게 얼굴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형."

"...."

"진영이형."

"...."

"C9 배진영 형."


저를 보지 않는 나에게 눈을 맞춰오며 여러차례 나를 불렀다. 아이의 시선에 결국 왜- 하고 대답을 했다. 겨우 자신과 시선을 맞춰오는 날 보더니 아이는 작은 머리통을 이리저리 돌려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곤 내 입술에 제 입술을 가볍게 대었다. 짧게 마주쳤던 입술을 때고 아이는 빨갛게 익은 얼굴로 힛 하고 웃고는 잽싸게 뛰어 건물안으로 사라졌다.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믿을수 없었다.

딱딱하게 굳은 팔을 들어 아이의 체온이, 부드러운 입술이 닿았던 입가를 살짝 쓸어보았다. 열이 올랐다. 



2차 순위발표식 날이 되었다.

1차때보다 더한 긴장감이 흘렀다. 

의자는 좀더 땅위로 내려왔고 그것을 바라는 아이들의 욕망은 더욱 커졌다. 

하늘의 별이 될수 있는 동아줄이 내려왔고 저마다 자신만의 재주로 그 동아줄을 잡으려 했다. 나도, 나의 그 아이도.

하지만 동아줄은 누구에게도 쉽게 잡혀주지 않았다. 

또한 잡았다고 생각한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인 경우도 있었다.

제옆에 있는 플레디스의, 아더앤에이블의, 또 다른 데뷔의 경력이 있는 사람들 역시 처음 자신이 잡은 동아줄이 하늘의 별까지 올려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이다.


"1등, 플레디스 김종현 연습생."


과연 저 형이 올라가는 저 자리 끝에 놓여진 동아줄은 별까지 올라갈수 있을까.

그리고 넌, 저 자리에 올라 별을 손에 쥐기위해 나에게 내민 손을 거두어낼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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