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추천/ 우연히 봄 - 로꼬, 유주 (냄새를 보는 소녀OST)







수상한 동거

w. 흑두


04. 달콤한 빈말











늦은 오후의 카페는 한산했다. 동운 앞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담긴 머그잔의 얼음들이 녹아 만들어내는 달그락 소리가 분위기를 더 했다. 학교 근처에 있으면서 골목 안 쪽에 있어 사람이 많지 않은 곳. 요즘 카페에서는 부쩍 볼 수 없는 오래된 인테리어들이 더 해져 요섭이 즐겨 찾는 카페이기도 했다.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이었기 때문에, 바로 동운에게 연락해 적극적으로 만남을 주선한 요섭이었다. 카페인이 주는 두근거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에, 그린티스무디를 앞에 놓은 요섭이 뜸을 들이는 동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두준이 형은 촬영 중인 거예요?"

"아, 네. 근데 짧은 씬이라. 곧 끝날 거에요. 저랑 헤어지고 집으로 가실 거면 같이 가요."

"그래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조용한 공간을 뚫고 멀리 퍼져나가는 요섭의 하이톤에 동운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눈을 꿈벅이다간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늘 제 곁에 있는 사람이 두준이어서 그런가, 영 적응이 안 되는 텐션이다.


"어제는 많이 안 놀라셨어요?"

"안 놀랐다면 거짓말이고, 초반엔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이었는데."

"그런데요?"

"형이 현관 앞에서 주저앉아있는 것을 보고 어떤 결심이 섰던 것 같아요. 무어라 형용할 수는 없지만…."


솔직히 말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에 대해서 잘 안 다고 자부하기에는 함께한 시간이 터무니 없이 짧았으니까.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저에게 있어서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완벽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그 사람이 너무도 쉽게 무너져내리는 것을 눈 앞에서 보고야 말았다.

굳이 그 때의 느낌을 표현하자면, 아찔했다.

무언가가 쿵 하고 내려 앉는 느낌이었고, 어쩌면 다른 생각들은 필요치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다가가 한껏 작아져 버린 그 어깨를 끌어안을 수 밖엔, 도리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이후엔 제가 더 슬퍼졌었다. 그의 감정이 그대로 투영되어 전해져 오는 느낌이었다. 분명히 벅찼지만, 모순적이게도 어거지로 다 받아내고 싶었다.


"…형이 자주, 때려요?"

"…음. 글쎄요."

"……."

"자주는 아니고, 가끔이요. 그러고 싶지 않아해요. 하지만 욱하는 감정에 자기도 모르게 그러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놀랐는데, 집안 사정을 알고나서는 그냥 받아들이게 되더라구요."

"…그렇죠."


그냥 받아들이게 된다면서 지어보이는 미소는 어째서인지 너무도 슬퍼보였다. 안쓰러운 사람. 두준도 물론 안쓰러웠지만, 그의 옆에서 온전히 그를 이해하며 그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했던 이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 상처들을 밟고, 몇 번이고 넘어졌다 일어섰을까.

감히 이런 생각을 해도 되는 걸까. 싶기도 했다. 어차피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는 동거인에 불과한데, 그에 대해 알려고 해도 되는 걸까. 그를, 더 나은 삶으로 끌어당기고 싶다는 생각을 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동운에게 손을 드는 그 모습을 보았을 때, 그 모든 걱정들은 쓸 모 없어졌다.


"아, 여기 명함이요."

"……?"

"혹시 어제 같은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형은 달가워하지 않을테지만. 도움은 못 주더라도 매니저라는 사람이 알아는 둬야죠."

"아, 네! 그럴게요!"


동운이 건네는 명함을 받아들고 한참을 그것을 바라보던 요섭이 이내 씨익 웃어보였다. 지갑을 안 주머니에 넣다간, 그 모습을 보고 갸우뚱 하며 동운이 물었다. 


"왜요?"

"아뇨, 그냥. 주제 넘을진 몰라도."


그리고 그 답에, 알 수 없는 따스한 기운이 제 안으로 스며듬을 분명히 느꼈다.


"매니저님 같은 분이 형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 * *






"요섭이 기다릴 테니까, 바로 집으로-"

"오랜만이에요!"


아무렇지 않게 차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선 두준이 막 동운에게 늘 하던 주문을 하려던 참이었다. 당돌하게도 제 말을 뚝 끊고 들어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놀란 두준이 고개를 돌려 그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낯선 이방인이 차에 먼저 타 있던 것이었다. 이런 반응일 줄 알았다는 듯 생글생글 웃어오는 것이 얄밉기까지 하다.


"여기 왜…."

"매니저님이랑 커피 한 잔 했어요. 아, 아닌가 난 커피 안 먹었긴 한데…."

"뭐야, 진짜 둘이 친구라도 된 거야?"


장난스레 입술을 비죽인 두준이 어깨를 으쓱이는 동운과 룸미러로 눈을 마주치곤 픽 웃어버렸다. 문득, 어제의 일이 생각나 고개를 절레 저어버렸다. 이래저래 미안한 것이 많은 사람이다.

처음 매니저 일을 하면서 가혹하게도 제게 배정된 사람이었다. 매니저라는 직업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채 배우기도 전에,  저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으니까. 저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몸에 베인 습관들과 행동들은 어쩌면 지독히도 증오하는 그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참으로 모순적이게도. 저는, 제가 싫어하는 그와 참 많이 닮아있었다.

매니저들은 몇 번씩 갈아치워졌다. 어차피 두준은 혼자서 스케줄 관리도 했었으므로 딱히 그게 문제되는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낫다 생각했다. 거지같은 인생을 누군가가 안다는 것은 저로 하여금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일이기도 했다. 

누가 봐도 완벽한 사람, 빛나는 인생을 사는 사람의 진실.

그 모든 것을 견뎌내고 여전히 제 곁에 머물러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일주일도 못 넘기고 사직서를 내던질 거라 생각했던 저의 안일한 생각과는 다르게. 그는 생각보다 단단한 사람이었다. 나이보다 조금 더 어른 스럽기도 했고. 어쩌면, 형인 저보다도 더.

자존감도 높고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동운이 자신이 있는데도 뭐든 혼자서 하려는 저를 탐탁치 않아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아마 그것은 모를 것이었다. 조금씩, 그리고 아주 천천히 제 일들을 그에게 온전히 맡기고 있다는 것을.


"저녁은 어떻게 하실래요? 아예 장 봐서 들어가게요."

"…밖에서 먹자 오늘은."


요섭이 무어라 옆에서 재잘거리는 것을 들으며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던 두준이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룸미러로 흘끗 본 동운이 운전대를 옆으로 꺾으며 물었다.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예약해둘게요."

"아냐, 그냥 요 앞에 갓길에서 세워주면 돼."


갓길..?

두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문득, 지금 지나가고 있는 곳이 번잡한 도로라는 것을 파악한 동운이 다시 룸미러로 그를 바라보았다. 괜찮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느리게 끄덕이는 두준에 의아한 표정으로 결국 갓길에 차를 세우는 동운이었다.

차 시트에 달려있는 주머니를 뒤적이던 두준이 이내 모자 두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하나는 제가 하는 것을 바라보던 요섭의 머리에 씌웠다가, '너무 크네.' 하면서 사이즈를 줄여 다시 씌웠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제 머리에 썼다. 그제서야 두준이 무엇을 하려는지 뒤늦게 파악한 동운이 무어라 소리를 치기도 전에, 두준이 차의 문을 확 열었다.


"형…!"


요섭과 동운이 동시에 두준을 불러세웠다. 뭐가 문제냐는 듯 차에서 내려 씩 웃어보이는 두준에게는 전에 없던 여유까지 흘러넘쳤다.


"갑자기 길거리 음식이 먹고 싶어져서."

"말씀을 해주시지, 그럼 제가 사다드릴 텐데…!"

"아냐, 너네 둘도 얼른 내려. 자고로 길거리 음식은 서서 먹는게 최고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두준을 따르는 요섭의 뒤로 동운이 기겁을 하며 급하게 안전밸트를 푸르고 차의 시동을 끄고 나섰다. 식은 땀이 등 뒤로 흐르는 두 사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준은 꽤나 신나 있는 상태였다. 제가 아는 곳이라도 있는 것인지 휘적휘적 망설임 없이 걷다가도, 시장 골목에 위치한 포장 마차 안으로 휙 들어가기까지 하더라.

엉거주춤, 두준을 따라 들어선 동운과 요섭이 그의 옆에 앉았다. 플라스틱 의자가 질질 끌리는, 익숙한 소리가 두준과는 영 어울리지 않았다.


"정말 괜찮겠어요?"

"뭐 어때, 연예인은 시장도 못 오나. 누가 알아보면 사진 찍어주고 싸인 해주지 뭐."

"그러다 사람이라도 몰리면-"

"그러니까, 그러기 전에 얼른 먹자. 이모님, 여기 떡볶이 2인분이랑 순대 1인분 주세요."


아, 내장 많이 주세요!

하고 주문을 하는 모양새가 꽤나 익숙하다. 동운과 요섭의 불안한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리고 짧은 정적 뒤로, 자잘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누가 말리겠어. 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절레 저어버린 동운과 요섭이 저마다 수저를 챙기고 물컵에 물을 따르기 시작했다.


"자주 드시나 봐요?"

"엉, 동운이 몰래."


장난스레 씩 웃어오는 것이 또 한 번 우습다. 다시금 웃음을 터트린 요섭이 불만스러운 듯한 동운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쳤다.


"저 없을 때 이런 곳에 돌아다닌 거였군요."

"원래 나만 아는 맛집이야. 영광인 줄 알아."


결국 그 능청스러움에 허, 하고 허탈한 웃음을 뱉어내는 동운이다. 얼마 안 가 테이블에 차려지는 진수성찬에 두준이 신이 난 듯 젓가락을 들었다. 호호, 불어내고서는 제 입에 가져가려다가도 그런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요섭에게 먹을래? 하고 내미는 것이 또 제가 아는 두준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입 바로 앞으로 내밀어진 젓가락을 제 젓가락으로 밀어내곤 보란 듯이 떡을 집어들곤 입속에 쏙 넣어버리는 요섭이다. 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어보이는 두준이, 모든 것을 다 털어내고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 모습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 * *






"아, 지인짜 배부르다~ 잘 먹었어요!"

"오늘 과제같은 거 있어?"

"…아뇨?"


빵빵해진 배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두준과 함께 집에 들어선 요섭이, 신발을 벗고 막 제 방으로 향하다가도 뜬금없는 질문에 몸을 틀었다.


"그럼 내 과제 좀 도와줄래?"


그와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단어를 입에 담은 장본인은 아무렇지 않게 외투를 벗으며 제 드레스 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무슨 말인가 싶어 아무말 않고 기다리는 요섭의 앞에 나타난 두준이 짠. 하고 눈 앞에 내민 것은 다름 아닌 드라마 대본이었다.

그러니까, 그 드라마 대본 말이다. 종종 연예인들의 인스타에나 등장하던 그것.

사실 두준에게는 말 하지 못 했지만, 기광의 극적인 찬양에 호기심으로 두준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요섭이었다. 시작은 그러했지만, 계속해서 시간에 맞춰 텔레비전 앞에 앉는 것은 아무래도 제가 그 시청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었다.

그런데, 드라마 대본이라니!

오른쪽 귀퉁이에 적혀진 회차를 보니 아직 보지 못한 회차임이 분명했다. 아니, 당연히 그러니까 들고 있는 거겠지.


"이, 이게 뭐…"

"대본. 처음 봐?"

"아뇨, 그건 아닌데 그걸 왜…."

"아, 다음 씬이 상대배우랑 같이 하는 건데 대사가 영 안 외워져서."


대본을 들고 거실의 탁자로 걸어간 두준이 여전히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요섭을 돌아보곤 이쪽으로 오라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쭈뼛쭈뼛 그 앞으로 걸어가니 당연하다는 듯 대본의 한 쪽 을 펴고는 소파에 앉아 제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탁탁 치기 까지 한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제가 어떻게 연희를 해요."

"…어어-?"


요섭의 입에서 나온 드라마속 상대 여주인공의 이름에 두준이 뭐냐는 듯 장난스레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참을 제가 무엇을 했는지 깨닫지 못하다가도 이내 아…! 하며 어쩔줄 몰라하며 아랫 입술을 깨무는 요섭이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고개를 푹 숙이고 끅끅 거리며 웃음을 터트린 두준이 이내 눈 꼬리에 눈물까지 매달고 부동자세인 요섭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결국 못 이기는 척 두준의 옆에 털썩 앉아버린 요섭이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몇 회까지 봤어?"

"뭐가요-."

"자꾸 아닌 척 하네, 다 탄로났는데."

"…5회요."


하여간. 어색하게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들릴 듯 말듯 중얼거리는 요섭에 두준이 다시금 웃음을 터트리며 그의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속삭이듯 고마워. 하고 중얼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제 머리를 두어번 헝클어트리고 지나간 온기에 요섭이 잔뜩 긴장한 채 입술을 앙 다물었다.


"바로 그 다음 부터야."

"…저 진짜 이거 봐도 돼요?"

"왜 안 돼?"

"아니, 그래도 엄연히 일반 시청자인데 제가 뭐라고…."

"네가 뭐긴."


당황스러운 듯한 요섭의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다시 대본을 펼쳐든 두준이 멀찍이 떨어져 앉은 요섭에 보란 듯 엉덩이를 들썩여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곧, 귓가에 울려퍼지는 낮은 음성에 요섭은 몸을 작게 부르르 떨어버리곤 그 대본에 시선을 둘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아끼는 사람이지."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사람 설레게 하는 문장들은 아무렇지 않게 내 뱉어 놓고, 그런 행동들은 다 해놓고.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 제가 김칫국이라도 마신것마냥. 어떻게 반응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조금 더워진 것 같기도 하고.

빨개진 두 볼을 정신을 차리려는 듯 가볍게 두 손바닥으로 친 요섭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대본을 바라보았다. 그런 저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두준의 시선은 꿈에도 모른 채.


"여기서부터."


두준의 손가락이 가르키는 대본의 장면은, 두준이 말 했던 것처럼 드라마의 5회의 끝과 이어지는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5회의 끝이 어떻게 났냐면, 친구였던 현우와 연희가 연희의 남사친에 의해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 것이었다.

연희의 술 자리에 연락을 받고 도착한 현우가 그녀를 부축하고 나오던 남사친과 마주친다. 그리고 좀 오바다 싶을 정도로 화를 내며 연희를 제가 데려다 주겠다고 우긴다. 죄 없는 남사친은 툴툴거리며 현우에게 연희를 넘겨주고, 다시 술자리에 앉는다. 현우가 연희를 부축하며 가로등이 켜진 밤거리를 걷다가 연희가 묻는다. 넌 날 어떻게 생각해? 라고.



"…넌 날 어떻게 생각해?"

"그거 되게 뜬금 없는 질문인거 알지."

"어떻게 생각하냐고~"

"…너 많이 취했다. 일단 집에 들어가고. 나중에 다시 얘기해."


드라마를 많이 봤다면, 이 장면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뻔할 뻔자였다. 연기의 ㅇ자도 공부 해본적이 없던 탓에, 영 뻣뻣하고 딱딱한 대사를 치면서도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생각보다 간단한 문장들로 이루어진 대본에 새삼 이걸 살려내는 배우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괜히 제가 다 긴장이 되는 탓에 요섭이 몰래 침을 꿀꺽 삼켜냈다.  

그걸 또 어떻게 안 건지, 괜찮다는 듯 눈을 마주해오고 고개를 끄덕이는 두준에 요섭이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부축이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로, 두준이 제 어깨를 감싸 안았다. 입이 바짝바짝 말라가는 느낌이었다.

물이 절실한 건 저인데, 목이 마르는 듯 앞에 놓인 물컵을 들고 벌컥벌컥 마셔대는 두준을 흘깃 바라보았다. 가까운 거리에서 울렁이는 목울대가, 어째서인지 너무나도 야하게 느껴졌다.

또 한 번 침을 꿀꺽 삼켜냈다.


"ㄴ,나중에 언제. 맨날 나중, 나중, 그래서 언제 고백할 건데."

"…이연희."

"나 다 알아. 네 마음. 너도 다 알잖아. 내 마음."

"……."

"근데 언제까지 모르는 척 할 건데. 이거 고문이야, 알아?!"


두준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진짜 연기를 하듯 요섭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제 머리를 잔뜩 헤집었다. 그리고 다음 대사는…,


"좋아해."


대본을 보고 있었기에, 이미 알고 있었던 대사였는데도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시선과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꼭 진짜 연희와 현우라도 된 듯이. 심장이 귀에 달린 듯 두근 거리는 박동소리가 크게도 울려왔다.

뭐지, 이 분위기. 라고 생각을 하기도 전에 무언가가 스물스물, 가슴 안 쪽에서 피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간지러워. 요섭이 코 끝을 찡그렸다.


"이런 타이밍에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멋지게 준비해서, 멋진 곳에서 말 해주려고 했는데. 그거 다 놓친건 순전히 너다."

"……."

"많이 생각해봤는데, 결론은 똑같더라고. 아무래도 좋아하는 것 같아."

"……."


"좋아해."


달다. 너무 달다. 계속 이렇게 머금었다간 금방 질려버릴 것만 같아 두려울 정도로. 제가 아닌 연희에게 향하는 것일 부드럽게 지어오는 미소는, 실제 두준의 그것과 매우 흡사했다. 처음 두준의 집에 들어섰을 때 본 그 미소와도. 계속해서 곁눈질로 대본을 확인하는 저와는 다르게, 대본을 외웠는지 흔들림 없이 저를 마주하는 그 눈빛은 저로 하여금 엄청난 착각을 하게끔 만들어버린다. 여느 드라마에서 들어봤을 법한 진부한 대사임에도 불구하고,


"요섭아."


그 모든 말이, 제게로 향한 듯한 착각을.






드디어 썼다ㅠ

어색하고 급전개인 부분들은 나중에 수정하는 걸로.

이렇게 쓰고 또 그냥 냅두겠지만..^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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