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고문
Written by. Maria






 겨울엔 언제나 손이 얼었다. 손이 차구나, 케이지. 어머니는 늘 그리 말하며 어린 내 손에 항상 장갑을 끼워 주셨다. 어머니가 고운 털실로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뜬 장갑 속에서도, 여전히 내 손은 차게 얼었지만 차마 어머니 앞에서, 장갑을 마다할 수가 없었다. 네, 감사합니다. 어머니.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장갑 속의 손은 차게 얼어 있었다.

 아카아시.

 드물게 눈이 많이 와, 오후 연습을 취소한 날이었다. 선배는 늘 그렇듯 연습을 하지 못 한 게 못내 아쉬운 듯 내내 체육관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눈 오는 날은 평소보다 더 손이 차가워진다. 어차피 장갑을 끼나 안 끼나 똑같이 손이 얼어 버리니까, 요즘은 가지고 다니는 것조차 귀찮아 그냥 아무것도 갖고 다니지 않는다. 이미 모두가 하교하고 난 학교를 가로질러 걸었다. 뽀득뽀득 눈 밟는 소리가 들렸다. 새하얀 교정엔 우리 둘의 발자국뿐이었다.

 손, 안 시려?

 먼저 걷던 그가 돌아보는 동시에 내 손을 낚아챘다. 빨갛게 얼다 못 해서 보랏빛으로 보이는 손을 그가 조용히 주물렀다. 너 손이 차다. 만약 그때, 내가 그에게서 내 손을 빼냈다면 우리는 평범한 선후배로 남을 수 있었을 텐데. 그때, 나를 바라보며 씩 웃는 그의 금색 눈동자가 그렇게 따뜻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서서히 잊힐 그런 인연으로 남았을 텐데. 그가, 따뜻하게 입김으로 내 손을 녹여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를.


 

 *





 그만둘 운동이었다. 배구. 어떤 학교의 누군가가 한 말처럼, 그저. 장래 이력서에 부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정도에 걸맞을 정도로만. 딱 그 정도로만 하려 했다. 하지만 사람에겐 태양이 필요한 법이었고, 사람은 눈이 멀고 몸이 타들어가는 걸 알면서도 빛에 이끌린다.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처음, 그의 황금색 눈과 마주쳤던 때부터 나는 이미, 반쯤 타들어간 나방처럼 변해 있었다. 17살 봄. 내가 느꼈던 사랑이라는 감정은 추락을 닮아 있었다. 아, 밑도 끝도 없는 추락이었다. 그와 친해지고, 그와 함께 걷고, 그와 같은 곳을 바라볼 때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없으면 안 돼.’ 나는 그 말이 주박이라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발목에 족쇄를 찼다. 네, 선배. 네, 보쿠토 씨. 나는 그를 거부할 수도 없었고, 거부할 줄도 몰랐다.
 그래서 그랬다. 그의 부탁을 저버릴 수가 없어서 대학교까지 배구를 계속 했다. 아버지는 대체 무슨 변덕이냐고 하셨지만,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으셨다. 내 눈동자에 생전 처음 보는 절박함이 깃들어 있었기에 그러셨을 것이다. 아마, 당신이. 나를 그렇게 필요로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좀 더 빨리 이 추락감에서 해방될 수 있었을 텐데. 한도 끝도 없이 바닥을 향해 추락하는 기분을 더는 느끼지 않을 수 있을 텐데.
 그가 졸업하기 전 까지도 계속. 그의 등을 봤다. 그는 여전히 내 옆에서 걸었고 나는 여전히 그보다 약간 뒤에서 걸었다. 학교에서도 내내 붙어있으면서 대체 왜 헤어지고 나서도 내게 메시지를 보내는 걸까. 대부분 시답잖은 이야기들뿐이었음에도, 그의 메시지가 와있는 걸 확인하면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가곤 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다. 선배는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팀을 위해 구단에 입단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배구를 그만두겠다 말했다. 그는 내 말에 조금 놀랐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네. 내가 아카아시에게 무리한 부탁 했던 거지. 씁쓸하게 웃는 그를 보며 나는 말을 꾹 꾹,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아니에요 선배. 아니에요 보쿠토 씨. 제가 당신이 보고 싶어서 그랬어요. 제가요. 제가, 당신이 너무 좋아서요.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삼키며 이젠 잘 못 보게 되겠네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정말로 아쉽다는 얼굴을 하며, 자기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자길 잊지 말라고 했다. 내 목을 잡아채는 쇠사슬과도 같은 말은 달콤하게 다가와 나를 피투성이로 만든다. 늘, 언제나 그랬다.

 “….”

 배구를 그만두는 건 난데, 왜 선배가 술을 마시고 그러는 걸까. 연신, 표정이 좋지 않던 그는 친구들과 술이라도 한잔해야겠다며 평소보다 일찍 헤어졌다. 오늘은 선배의 메시지도, 전화도 없는. 고요한 날이었다. 나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 천장만 바라봤다. 심호흡을 했다. 눈을 감았다 떴다. 선배는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일 텐데. 원래도 감정 기복이 심했던 사람이고. 그럴 때 마다 굳이 나를 찾을 필요도 없는데. 그리고, 이제 더는 나를 찾을 수도 없을 거고. 선배는 대단한 사람이니까 외국 팀에 가겠지. 차라리 다행이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분명 멀어질 것이다. 차가워 질 거다. 사랑도, 식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머릿속에선 계속 그가 내게 해 주었던 다정한 말들이 떠돌았다. 알고 있다. 그저 친한 후배니까. 몇 년을 붙어 다닌 콤비니까. 다정한 사람이니까. 너무도… 다정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내뱉은 말들을 나는 다르게 받아들여버린다. 그렇게 매일, 혼자서 달아올랐다가 차가워지길 반복한다.
 
 이젠 멀어져야지.

 이제는, 멀어져야지. 나는 눈을 꽉 감았다. 처음부터 멋대로 시작한 사랑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멋대로 그만둬도 아무 문제없다. 고백하지 않았으니 헤어질 일도 없다. 헤어질 일이 없으니 상처받을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마음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울컥 솟구치는 건. 내가 그를 너무 사랑해서일 것이다. 분명, 그래서일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소리 없이 울었다. 갑자기 머리맡에서 휴대폰이 격렬하게 진동했다. 누구야 이 시간에…. 살짝 짜증이 솟구쳐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 액정에 뜬 이름을 보자마자 홀린 것 처럼 전화를 받았다.

 “…네. 보쿠토 씨.”
 -아카아시, 자?

 아니요 아직…. 그래. 늦게 자네. 그의 목소리엔 힘이 하나도 없었다. 평소보다 더 낮은 목소리가 조금 낯설었다. 가슴이 뛴다. 무슨 일이 있으신 걸까. 술 많이 드신 걸까.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라도 그가 부르면 나가기 위해서. 그러다 이내, 내가 한 생각에 내가 웃겨 다시 침대에 주저앉았다. 멀어지겠다고 방금 전 까지 다짐했으면서도…. 그의 전화 한 통에 또 다시 이렇게 되어 버린다.

 -그 동안.
 “…네.”
 -내 옆에서 고생했어.

 이것도, 아무 생각 없이 건네는 말일까. 그냥 인사치레일까. 술을 마셨으니까. 그 참에 하는, 감사 인사일 뿐일까.

 -나는 네가 내 옆에 있어서….
 “….”
 -아니 뭐, 배구도 좋았지만. 그냥.
 
 그냥, 네가 있어서 정말로 행복했는데. 너는, 너는 어때?

 숨이 막혔다. 나도 모르게, 가슴께를 꽉 쥐고 있었다. 옷이 손 안에서 구겨졌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무슨 대답을 해야 마음이 새어나가지 않을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한참 동안,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긴, 나 때문에 아카아시는 많이 귀찮았을 거야. 그래도. 그동안 정말로 고마웠고…. 그는 한참 동안 나에게 같은 말을 하고 또 했다. 역시, 많이 마신게 틀림없다.

 -미안. 늦은 시간에.
 “아뇨, 아닙니다.”
 -끊을게.
 “네….”

 전화가 끊겼다. 그는 참 쉽게 내 전화를 끊겠지만. 나는 이렇게. 매번. 그의 전화가 끊기고 나서도 한참을 손에 쥐고 있다는 걸. 그는 절대 모르겠지. 전화가 끊기고 나면 그제야 마법이 풀린 사람처럼 입이 열렸다. 그는 들을 수도 없고 들어서도 안 되는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는 말을 혼자 읊조린다.

 “선배….”

 저도 선배가 있어서 행복했어요. 아마, 선배가 제 마음에서 지워지기 전까지도 행복할거예요. 보쿠토 씨, 어딜 가서도 잘 하실 거예요. 선배 엄청 멋진 사람이에요 그건 제가 보장합니다. 어디에 가서든 건강 조심 하세요.

 “사랑해요.”

 그 날 이후, 그에게서 더는 먼저 연락이 오지 않았다.

 계절이 성큼 바뀌었다. 펑펑 내리던 함박눈이 그친 다음 날 선배는 해외로 출국을 했다. 가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건만 나는 결국 공항에 배웅을 나갔고, 미묘하고 얄궂은 표정을 한 선배와 포옹을 했다. 여전히, 속에 있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못 했다.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내 가슴 속에 있는 말은 모두 사랑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흔한 응원조차도 전부 사랑이 묻어 그에겐 보여줄 수가 없었다. 종종, 연락 할게. 그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못 했다. 그가 등을 돌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내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한참을, 고개를 숙인 채.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공간에서 혼자 서럽게 울었다.
 벚꽃이 화사하고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아버지의 회사에 들어가 인턴부터 시작한 터라 정신이 없었다. 일은 많고 복잡했고, 혹시나 아버지에게 누를 끼칠까봐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매일 계속 되는 야근과, 업무는 몸도 머리도 지치게 하기엔 충분했다. 그러면, 언젠가는 사랑도 모두 마모되어 사라지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카아시, 나 내일 저녁에 도착한다.

 아. 억지로 묻어 두었던 사랑이, 나에게 인사를 했다. 여전히, 나는 여기에 있노라고.

 나가지 말아야지, 가지 말아야지. 만나지 말아야지. 이제 더는 그에게 휘둘리지 말아야지. 그만 해야지. 사랑 하지 말아야지. 이렇게 답이 없는 사랑 같은 거 하지 말아야지. 다짐은 모래처럼 흩어지고 결심은 눈처럼 녹았다. 결국 나는 다시 공항으로 갔고, 캐리어를 끌고 들어오는 그를 보고 웃어버렸다. 미칠 것 같았다. 정말로 미칠 것 같았다.

 “아카아시, 오랜만이다!”
 “네, 보쿠토 씨.”

 그는, 조금 더 키가 자라고 조금 더 늠름해진 것 같았다. 햇살을 담은 금색 눈동자는 더욱 황홀하게 타올랐다. 그 눈을 마주친 순간 질식할 것 같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주말인데. 약속 없어?”
 “…없으니까 왔죠.”
 “아, 정말 다행이다. 사실, 말 해놓고도. 아카아시 약속 있으면 어쩌나 계속 생각했어.”

 네가 꼭 마중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 했다. 또, 두둥실 마음이 떠오른다. 나와 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그가 밥을 사겠다고 했다.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 이제 와서, 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목구멍으로 뭐가 넘어가는지도 몰랐다. 내 모든 감각은 그에게만 열려 있었으니까. 귀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입은 그의 말에 대답을 해야 했고, 눈은…. 눈은. 차마 그를 보지 못했지만.

 “피곤하실 텐데…. 들어가세요. 선배.”

 식사를 마치고도 한참을 계속 머뭇거리기만 하는 그가 의아했다. 할 말이 있는 걸까. 아니면 대체 왜 저러시는 거지.

 “오랜만에 우리 집 갈래?”

 한참을 머뭇거리다 한 말이 고작…. 나는 픽,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맥주라도 사 가는 게 좋겠네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대답했다. 맥주! 좋지! 아까까지 대체 무엇을 망설이고 계셨나 싶을 정도다. 택시를 타고 들어가는 동안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 침묵 속에서 혹시 내 심장소리가 들리는 건 아닐까 싶은 마음에 나는 계속 가슴을 문질러야 했다. 또 다시 쓸데없는 기대를 하는 내가 우스웠다. 이 기대가 터져도, 너무 큰 화상은 입지 않길 진심으로 바랐다.
 오랜만에 간 선배의 집은 말끔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청소 아주머니가 매번 다녀가시거든. 내가 없어도 사람 사는 것 같긴 해야지. 그가 히히 웃으며 캐리어를 방 안에 밀어 넣었다. 잠깐만 있다가 가야지. 맥주만 다 마시면 가야지. 더, 같이 있지 말아야지.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입으로는 다른 말을 했다.

 “자고 갈까요?”
 “어, 지 진짜? 그럴래?”
 “네…. 오랜만에… 만났잖아요.”

 다짐하자. 결심하자. 오늘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이 사랑 끝내겠다고. 그러면서도 머리 한 구석 속 또 다른 내가 나를 비웃었다. 네가? 퍽이나.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면서, 나는 조금 울었다. 내가 서러워서 울었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해서 비참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는 내가 미워서 울었다.
 
 “앉아 여기.”

 거실 테이블 위에 벌써 맥주가 있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다, 조용히 그 옆자리에 가 몸을 구겨 앉았다. 정적을 깨기 위해 일부러 틀어 둔 것 같은 TV에선 뉴스가 나왔다. 우리는 동시에 맥주 캔을 땄다. 나는 보쿠토 씨를 한번 흘끗 보다, 씁쓸한 탄산을 넘겼다. 우울했다. 그다지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 아니라 생각했었는데 그의 옆에만 있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아카아시.”
 “네.”
 “사귀는 사람 있어?”

 …왜 묻지?

 “…아뇨.”
 “아, 그래.”

 나도 물어 봐야 하나? 하지만, 그에게서 사귀는 사람이 있다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지금 당장 목 놓아 울어 버릴 것 같은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맥주 캔이 내 손에서 조금 구겨졌다. 그는 나를 흘끗 쳐다보다가, 맥주를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다음 캔을 딴다. 차라리 취해서 잠들어 버릴까. 하지만 어설프게 취해서 그에게 이상한 말을 하면 어떡하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다. 진퇴양난이었다. 아, 사랑에 압사할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은?”
 “….”

 입을 다물었다. 왜, 물어 보시는 거예요. 대체, 왜요. 저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요? 애가 절절 끓어 그를 보았다. 저는 선배 안에서 질식했어요. 그거 아세요? 당신을 처음 보았던 그 날, 당신이란 사람 앞에서 타죽어 버렸단 말입니다. 시체도 없을 정도로 하얗게 탔어요.

 “없, 습니다.”
 “그렇구나.”

 있다고 말하면 선배는 무슨 표정 지으실 건가요. 어차피 죽어도 저는 안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벌써 취했나보다. 벌써, 머리가 돌았나보다. 나는 테이블 위에 맥주 캔을 던지듯 올려놓고 마른세수를 했다. 차라리 여기서 숨이 끊어졌으면 좋겠다. 여기 오는 게 아니었다. 자고 간다는 미친 소리를 하는 게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다. 이런 대화를 할 줄 알았으면, 여기에 있는 게 아니었어.

 “나는 있는데.”
 “….”
 “좋아하는, 사람.”

 그가 또, 맥주를 단숨에 비웠다.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그것 봐. 보쿠토 씨는 내가 없어도 잘 살잖아. 잘 살 수 있으면서. 좋아하는 사람도, 만들고.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아갈 수 있잖아. 그렇잖아. 그런데 대체 왜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걸까. 왜 이렇게 나를 미치게 만드는 걸까. 내가 이렇게 바짝바짝 말라비틀어지는 걸 즐기시는 걸까.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랑이 터질 것 같다. 내 마음도 터질 것 같다. 몇 년을, 계속. 참아왔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질 것 같다.

 “보쿠토 씨, 죄송해요. 저, 저 그냥… 집에….”
 “아카아시?”

 따뜻한 손이, 내 손을 잡았다. 따뜻해. 따뜻하다.

 “…여전히 손이 차구나.”

 녹을 것 같다. 눈이 녹아서, 눈물이 날 것 같다.

 “아카아시, 있잖아.”
 “네, 말씀 하세요.”

 그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다 내 뺨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나를 봐, 응? 그가 말했다.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죽을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죽을 것 같다.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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